소설리스트

강남화타-97화 (97/255)

# 97

7장. 충격요법(衝擊療法) (2)

사뭇 충격적인 말이었다.

어쩌면 환자에게는 절대 해서 안 될 종류의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지호로서는 허충욱의 정신이 멀쩡할 때 그의 의사를 묻는 게 최선이었다.

영종도 내국인 카지노 사업자 선정을 위한 공개 입찰 심사 때문에 환자가 원하지 않는 치료를 할 순 없다.

그것도 아주 높은 위험성을 지닌 치료라면 더더욱 환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의사의 양심을 버려가며 억지로 무리를 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만약 허충욱이 위험한 치료를 거부한다면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공개 입찰 심사는 물 건너 가고, 카지노 사업권의 향방은 안개 속으로 빠지겠지만 감수해야 할 일이다.

이미 운동 성능을 제법 회복한 허충욱은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언어 능력과 정신이 언제쯤 나아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몸을 비교적 편히 쓸 수 있게 됐다는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경우에 따라 다시 병상에 누워 옴짝달싹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어떤 사람이 선뜻 고개를 끄덕이겠는가.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허충욱이 손을 뻗어 한지호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힘겹게 소리를 냈다.

“해… 으으…….”

알아듣기 힘든 말이지만 위험성을 지닌 치료를 받아보겠다는 뜻 같았다.

한지호는 눈을 크게 뜨고 허충욱의 의사를 재확인했다.

“위험한 치료라는 건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정말 시도를 해 보시겠습니까?”

“으버버…….”

허충욱이 신음 같은 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한지호의 말을 알아듣고, 자기 의지로 동의한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현재 허충욱의 정신은 온전한 상태다.

이러다가도 또 언제 넋이 나간 상태가 될지 모르지만, 지금의 판단은 멀쩡할 때 내린 것이 확실하다.

한지호는 허충욱의 동공을 살펴봤다.

초점이 100% 잡혀있지 않지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의지가 느껴졌다.

걸어 다닐 수 있고, 양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해서 마냥 만족하기는 힘들다.

특히 허충욱처럼 지역의 거물로 활약했던 사람은 순식간에 뒷방 노인으로 전락하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위험하더라도 다시 예전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박을 거는 심리가 이해 됐다.

지독한 안면 경련과 언어 장애가 있는 이상 허충욱은 두 번 다시 중앙 무대에 진출하지 못한다.

그동안 벌어놓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맡기고 병간호나 받으며 여생을 보내야 할 터.

아직 앞길이 창창하다고 생각해온 허충욱으로선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이었다.

한지호는 자신과 카지노 사업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허충욱을 위해서도 모험을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마음을 먹으니 담력이 샘솟았다.

감히 조조의 머리를 열어야 치료가 된다고 말했던 화타와 규호의 배짱이 어디 사라지지 않았다.

한지호는 어깨 위에 놓인 허충욱의 손을 꽉 부여잡으며 말했다.

“여기에 제 운명도 걸려있습니다. 한 번 해봅시다, 위원장님.”

+++

날이 밝았다.

결전의 날이었다.

빠른 치료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지호와 허충욱은 위험을 감수하기로 작정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높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면 경련과 언어 장애,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어진 일주일이 다 끝나갔고, 이제 마지막 날이 됐다.

한지호는 여느 때와는 다른 기분으로 인천의 대학 병원에 도착했다.

대학 병원 의사들 중 몇 명은 한지호를 알아보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TV에 나와 전국적인 화제를 일으킨 한의사이니 얼굴이 알려진 게 당연했다.

게다가 기라성 같은 대학 병원 교수들이 손도 못 쓴 허충욱을 치료한 사람이 한지호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마른 나무처럼 병상에 누워 죽어가던 허충욱이 며칠 만에 일어나 걸어 다니게 됐으니 질투는 둘 째 치고, 의사로서 존경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지호는 젊은 의사들의 목례를 받으며 특실 앞에 다다랐다.

그는 바로 문을 열지 않고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

방금 전까지 대학 병원의 의사들에게 받았던 존중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위험한 치료에 실패해 허충욱이 다시 쓰러지면 모든 책임과 비난은 한지호의 몫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의료 소송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그 모든 위험을 알면서도 한지호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환자가 결단을 내린 이상 작은 가능성을 향해 돌진하는 게 의원의 역할이다.

드르륵-

심호흡을 마친 한지호가 문을 열었다.

넓고 호화로운 특실 안에는 허충욱 한 사람밖에 없었다.

평상시에는 간병인이 머물지만 특별 면회 시간에 맞춰 자리를 비워주고 있었다.

무기력하게 병상에 누워있던 허충욱이 고개를 돌렸다.

한지호가 들어온 걸 본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으버버으어…….”

계속해서 말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언어 능력은 여전히 답보 상태였다.

한지호는 외투를 벗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때 말씀드렸던 치료, 오늘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시간을 질질 끌 생각이 없었다.

허충욱의 정신이 멀쩡할 때 동의를 얻어 놓았다.

괜히 시간을 끌면서 공포감이 커지게 놔두면 환자의 심리에 악영향을 끼친다.

속전속결(速戰速決)의 자세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준비해온 침을 꺼내 가지런히 정리한 한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위원장님, 어렵겠지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주십시오.”

다행히 허충욱은 정신이 멀쩡한 타이밍인 듯 몸을 일으켰다.

뻣뻣하게 굳었던 다리와 팔이 많이 회복 됐기에 혼자 움직이는 게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그래도 완벽한 가부좌 자세가 나오지는 않았다.

한지호는 병상 가까이 다가가서 허충욱이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양반다리를 한 상태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는 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러나 허충욱은 힘든 기색을 보이면서도 자세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 역시 오늘의 치료를 애타게 기다려온 것이다.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언어 장애 등이 나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한지호는 어렵사리 가부좌를 유지하고 있는 허충욱을 바라보며 침을 들었다.

전생을 각성하기 직전, 자신의 몸에 침을 꽂았던 날이 떠올랐다.

십삼대혈법(十三大穴法).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도박을 하듯 침을 놓았었다.

차라리 스스로가 대상일 때는 마음 편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아닌 환자를 대상으로 한의학에서 웬만해선 건드리지 않는 혈도에 침을 놓아야 한다.

부담감과 책임감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게 당연했다.

“최대한 자세를 풀지 말고, 이대로 앉아계셔야 합니다.”

한지호이 말을 알아들었는지 가부좌를 튼 허충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허충욱의 의사를 확인한 한지호는 첫 번째 침을 백회혈에 꽂았다.

대뜸 정수리에 장침을 박아 넣은 것이다.

“으어!”

허충욱의 입술 사이로 탄성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뇌를 관통하는 찌릿한 느낌에 온몸의 핏줄이 곤두선 모양이다.

백회혈에 침을 놓는다고 해서 전부 위험한 건 아니다.

다만 한지호는 꽤 깊숙이 침을 꽂았고, 뇌와 직결된 혈도를 깊이 자극하는 건 아무나 엄두를 못 내는 일이다.

침이 들어간 깊이가 깊을수록 통각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지호가 단단히 일러두지 않았다면 허충욱이 가부좌를 풀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시작입니다.”

두 번째 침을 집은 한지호는 망설이지 않았다.

시작한 치료를 중도에 멈출 수는 없다.

이것은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두뇌와 전신에 강렬한 자극을 선사해서 일시적으로 회복 능력이 극대화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잘 건드리지 않는 혈도를 깊이 눌러주는 수밖에 없다.

정수리 다음은 목이다.

머리와 척추를 연결하는 목 뒤의 혈도는 전신을 관장한다.

굳이 한의학이나 현대 의학의 지식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목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다.

목이 부러지거나 다치면 불구가 된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어떤 면에서는 머리 이상으로 신체를 컨트롤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쑤우욱-

한지호는 이번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백회혈 깊숙이 침을 놓은 것처럼 뒷목 중심에 있는 경와혈(頸窩穴)에 장침을 꽂았다.

손가락보다 긴 침이 절반 넘게 목 안으로 쑥 들어갔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허충욱은 또 다시 신음을 흘렸다.

만약 언어 능력이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훨씬 더 큰 소리를 냈을 것이다.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상태이기에 신음만 흘리고 마는 것 같았다.

“더 남았습니다.”

한지호는 마치 학생을 타이르는 엄한 선생님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허충욱의 의지가 흐트러지지 않게 채찍질을 하는 것이다.

백회혈과 경와혈에 침을 놓은 그는 더더욱 빠르게 손을 놀렸다.

정수리를 시작으로 목 뒤, 그리고 척추까지.

인체를 관장하는 중요하지만 위험한 혈도에 모두 침을 놓았다.

그것도 아주 깊숙하게.

여느 침술과는 다른 강렬한 자극이 허충욱의 온전하지 못한 몸을 휩쓸었다.

가부좌를 튼 채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고문이라도 받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침을 다 놓은 한지호는 마지막 과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꽂아놓은 침에 오금희의 기운을 불어넣어 강제적으로 막힌 혈도를 뚫으려는 것이다.

목화 현상은 허충욱의 혈도 구석구석을 막아버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의 치료로 목 아래의 혈도는 많이 뚫려 다리나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목 위로 통하는 혈도는 여전히 꽉 막힌 상태였다.

혈도가 막히니 기(氣)의 흐름이 원활해지지 않고, 그에 따라 목 위에 안면 경련과 언어 장애 등 여러 문제가 생긴 것이다.

고오오오오-

한지호는 단전에 쌓인 내공을 손끝으로 끌어 올렸다.

오금희의 다섯 기운이 하나로 응축 돼 양손에 모이는 게 느껴졌다.

눈앞에는 침을 꽂고 가부좌를 한 채 앉아있는 허충욱의 등이 보인다.

실제로 화타와 규호가 살았던 시절에는 추궁과혈(推宮過穴)이라는 치료법이 널리 통용됐었다.

삼국지의 시대를 넘어 무림(武林)의 명맥이 유지 되던 명(明)나라 시대까지도 추궁과혈은 그리 특별한 치료법이 아니었다.

내공을 익힌 사람이 상대방의 몸에 기운을 주입해 혈도를 뚫어주는 것을 추궁과혈이라 한다.

한지호는 백회, 경와 등 주요 혈자리에 침을 놓은 상태로 추궁과혈을 시도할 계획이었다.

이제껏 내공이란 걸 전혀 받아들여보지 못한 허충욱의 몸에 엄청난 무리를 가하는 셈이다.

허충욱이 추궁과혈을 견뎌낸다면 목 위의 혈도가 뚫리면서 증상이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부작용은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할 터였다.

“갑니다.”

기합을 뱉듯 짧고 굵게 신호를 준 한지호가 양손을 뻗었다.

그의 두 손바닥이 허충욱의 등판을 눌렀다.

침이 놓인 척추의 좌우에 손을 붙인 채 기운을 주입하는 것이다.

슈우우욱!

오금희의 기운이 허충욱의 몸 안으로 쏟아졌다.

이미 꽂혀있던 침이 기운과 반응하며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머리끝부터 목덜미를 지나 척추까지, 침이 꽂힌 혈도로 폭풍이 몰아쳤다.

투둑-

투두두두둑-!

허충욱의 몸에서 뭔가 끊어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으어어어어어!”

그가 토해낸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눈동자에서 흰자가 많아지고, 숨이 가빠지며 온몸이 거칠게 들썩거렸다.

한지호는 손을 뗄 수 없었다.

이미 기운과 기운으로 연결 된 상태다.

섣불리 추궁과혈을 멈추면 둘 다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한지호와 허충욱의 모험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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