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 극한의 수련 (1) >
[마경 심법(Lv97)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환선공(Lv97)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흑요정의 탑 수련의 던전 안이니 재윤은 자신의 모든 실력을 부담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따라서 파투아의 전사들을 다시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던전에서 부활한 그들은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지만, 재윤이 나타나자 즉각 공격을 해왔다.
“네놈은?”
“마왕 따위가 감히!”
마왕의 날개를 활짝 편채 1백여 개의 촉수들을 날리며 나타난 재윤을 보자 그들은 가소롭다는 듯 달려들었지만, 모두들 무력하게 쓰러져갔다.
본 실력을 드러낸 이상 상마왕들도 재윤의 적수가 될 수 없는 상태.
촤아악! 촤악! 우드득! 콰직!
광채에 휩싸인 촉수가 사방에서 덤벼드는 파투아의 전사들을 무자비하게 휘감아 그들의 뼈를 으스러뜨렸다.
“으아아악!”
“쿠악!"
하루에 수련의 던전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이들을 빨리 해치워야 환족왕에게 가르침을 받을 시간이 그만큼 길어질 것이란 생각에 재윤의 손속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사악한 마왕을 죽여라!”
“크윽! 마왕에게 또 죽다니 분하다.”
“통탄스럽구나. 어찌하여 사악한 마왕이 이런 강한 능력을! 으아아악!”
하나같이 정의로워보이는 눈빛을 하고 있지만 그조차도 재윤은 가증스러웠다.
그래봤자 운명을 자칭하는 세력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면 그들은 결국 사악한 존재일 뿐이니까.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적들을 해치우다보니 레벨이 98로 상승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레벨 업!
하나같이 마왕 급의 경험치를 주는 이들이다 보니 가능한 일.
‘이제 한 단계만 더 올리면 레벨 100이다.’
적들을 절반도 해치우기 전에 레벨 99를 달성한 터라 나머지를 마저 해치우면 충분히 레벨 100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스스. 파파파팟-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어검술로 조종되는 거대한 검강이 미사일처럼 쏘아져나가면 그 궤적에 있던 이들이 진저리를 치며 마치 증발하듯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아아아악!”
“크아악!”
레벨 99에 이르자 재윤의 전투력은 다시 새로운 영역에 이르렀다.
마경심법의 검강, 환선도법의 도강은 말할 것도 없고, 그저 강기에 휩싸인 촉수들에 스치기만 해도 적들의 무기가 부서지고 전신이 무너져내렸다.
그러다 보니 아까 수련의 던전에 막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적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이제 단 한 명 남았는데.’
이상하게도 레벨이 99에서 멈춘 채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레벨 100의 요구 경험치가 많다고 해도 레벨 99에서 마왕 급의 적들을 300여 명이 넘게 해치웠는데도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는 건 황당한 일.
‘어쩔 수 없지. 어서 저 자를 해치우고 환족왕 사부님께 가자.’
레벨 100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족왕의 초월환령검을 터득하는 것이야 말로 장차 천마나 전쟁신과 싸울 때 승산을 높이는 일이 될 테니까.
그런데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적의 마지막 생존자는 푸른 눈을 가진 강인한 인상의 청년이었는데, 앞선 다른 적들과 달리 재윤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받아냈던 것이다.
어검술의 공격은 물론 순식간에 공간을 무수히 분리해버리는 환선도법의 공격조차 그는 간단하게 막아냈다.
‘누구지?’
오늘 해치운 적들 중에 저토록 강한 존재가 있었던가?
물론 대부분 막타만 치다보니 제대로 싸워본 상대는 거의 없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 보여주는 전투력은 상마왕들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게다가 그의 공격은 더욱 경악스러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
단순히 검이 투명화되어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공격 자체를 감지할 수 없었다.
그가 어디를 공격해올 지는 물론이고, 그 형태조차 알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검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활이나 창과 같은 것이 날아드는 것 같기도 했으니까.
‘으윽! 믿을 수 없구나. 이런 자를 내가 어떻게 죽였지?’
전력을 다해도 쉽사리 막아내기 힘든 공격들.
간신히 하나의 공격을 막아내도 그 사이 다른 공격이 그의 몸을 난자했다.
본신과 함께 청년을 공격하던 두 개의 분신이 처참한 상태로 부서져버렸다.
어느덧 재윤의 본신 또한 만신창이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위기감을 느낀 재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청년의 공격에 맞섰다.
그러나 청년의 공격은 무형(無形)으로 날아드는 터라 도무지 맞설 방법 자체가 없었다.
‘방법은 오직 공격뿐.’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재윤은 방어를 포기한 채 청년의 몸에 공격을 적중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
푸확!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공중을 새처럼 누비던 플루토가 극적으로 청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본래라면 적중 즉시 청년의 몸은 녹아버려야 했을 것이다.
플루토의 검신을 휘감은 거대한 광채!
그 거대한 검강에 적중당한 것이니까.
그러나 믿기지 않게도 검강은 청년의 몸에 닿는 즉시 소멸되어버렸다.
천만다행히도 검신은 그대로 청년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곧이어 그의 심장을 박살냈다.
"큭!"
청년은 짤막한 신음과 함께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주저앉았다.
스스스.
그와 동시에 청년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신비한 눈빛을 가진 중년 사내.
그를 본 순간 재윤은 깜짝 놀랐다.
“사부님!”
그는 다름 아닌 환족왕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공격을 펼친다 했더니!
환족왕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
“사부님 어째서 이런 일을……."
재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방금 전 환족왕은 그의 비기인 초월환령창을 펼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을 펼쳤다면 재윤은 무슨 수를 써도 그의 몸에 검을 박아넣지 못했을 것이다.
즉, 환족왕은 현재의 재윤이 죽어라 몸부림을 치면 간신히 이길 수 있는 수준의 전투력만 발휘한 것이었다.
“그런 표정을 지을 것 없다. 시간이 없으니 내 말을 잘 듣도록 해라.”
환족왕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수련의 던전이라 부르는 이곳 결계의 흐름이 오늘 심상치 않았다. 알 수 없는 힘이 이곳을 소멸시키려 하고 있어 내가 일단 그 시간을 늦추어 놓았다만, 그래봤자 이제 고작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재윤은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수련의 던전이 소멸되고 있었다니.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흑요정 테네르는 이날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니 마음의 각오를 해두라고 항상 말했다.
그런데 그날이 바로 오늘일 줄이야.
게다가 환족왕이 그 시간을 늦추지 않았다면 이미 수련의 던전은 소멸되었다는 뜻.
“사부님, 그렇다 해도 어째서 저의 검에……."
“나의 말을 끊지 마라. 조용히 듣기만 해라.”
환족왕은 손을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나는 오늘로 소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네가 이 안에서 오직 경험치란 것을 얻어야 강해진다고 하니 기왕이면 그에 도움을 주고자 내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라.”
경험치를 주기 위해 일부러 검에 맞은 것이라니.
재윤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강해지기 위함이라도 사부님을 죽이고 경험치를 얻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환족왕이 책망하듯 쳐다봤다.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냐? 이 또한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거라. 시간이 영원히 주어진다면 모를까 어차피 오늘로 소멸될 수밖에 없는 나로선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생명력이 급격히 소진되었다.
재윤이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손을 휘저었다.
“문제는 네가 이미 이룰 수 있는 한계까지 강해진 상태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경험치라는 것이 너를 강하게 해준다고 해도 그 한계를 돌파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터. 내가 네게 전수한 초월환령검을 완전히 터득하면 그 한계를 돌파하게 될 것이다. 이미 그에 대한 요체는 네게 다 전수했으니……."
그동안 환족왕은 초월환령창을 재윤에게 맡게 초월환령검으로 변형시켜 전수했다.
검술에 능숙한 재윤에게는 그것이 좀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하리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저는 아직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수련보다 죽음과도 같은 실전만이 해답이다.”
환족왕은 거기까지 말한 후 뿌듯해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의 본래 숙원은 네가 말한 그 운명을 자칭하는 놈들을 다 깨부수는 것이었다. 내가 환선과 싸우게 된 것도 그놈들의 농간 때문이었지. 그에 대한 사정을 일일이 설명할 시간은 없구나. 그래도 네가 이미 그 길을 가고 있으니 다행으로 생각한다. 서두르지 말고 초월환령검을 완성할 때까지 섣불리 너의 힘을 드러내지말거라.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널 제자로 삼을 수 있어 무척이나 기뻤다……."
그는 재윤이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스스로 할 말을 하다가 그대로 숨이 끊어졌고, 이내 연기로 변해 흩어졌다.
“사부님!”
그는 시신조차 없이 순식간에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재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운명은 스승이 죽었는데도 슬퍼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사방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 흔들리더니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수련의 던전이 사라지고 있다.’
빨리 게이트로 나가지 않으면 어떤 꼴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는 환족왕의 죽음으로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다급히 수련의 던전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당연히 그를 반겨야 할 테네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있던 자리에 그림자처럼 흐릿한 흑색의 연기가 잠시 머물러 있다가 그조차도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하고 떠나서 미안해. 그대가 파투아를 물리치고 진정한 운명을 힘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게. 그때가 되면 부디……. 》
아주 미약하지만 테네르의 음성이 귀에 울리다가 끊어졌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대로 소멸되어버린 것이다.
“테네르!"
설마 했는데.
정말로 아까 그때가 마지막이었다는 건가?
어쩐지 그녀가 평소에 하지 않던 모습을 보인다 했더니 오늘의 죽음을 예감했던 것이 분명했다.
"테네르......."
재윤은 비틀거리다 털썩 주저 앉았다.
아루넬, 베르타에 이어 환족왕 사부와 테네르까지!
그에게 도움을 주고 가까웠던 이들이 계속 죽어 사라지고 있었다.
“왜? 왜들 다 떠나는 거야?”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못주는 무력한 자신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었다.
슬픔이 복받쳐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이내 이를 악물었다.
“더 이상은 안 돼! 그놈들을 이대로 두면 모두가 죽고 말 거야.”
이것은 시작일 지도 모른다.
운명 아니, 운명을 자칭하며 운명의 힘을 조종하는 세력 파투아!
그들에 의해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덧없이 죽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반드시 죽인다. 한놈도 남김없이 다 쓸어버린다.”
그 사이 흑요정의 탑도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후면 이 탑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재윤은 일어나 탑 밖으로 나갔다.
파스스스!
예상대로 흑요정의 탑은 언제 그곳에 있었냐는 듯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그것을 재윤은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환족왕과 테네르가 죽은 것도 절망적이지만 수련의 던전이 사라진 이상 그는 경험치를 얻어 강해질 수 없었다.
현재 레벨은 99.
환족왕을 죽여 막대한 경험치를 얻었지만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이는 경험치가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환족왕의 말대로 재윤이 강해질 수 있는 한계가 바로 레벨 99인 것이다.
그 한계를 돌파해야 레벨 100이 될 수 있다는 뜻.
이는 뭔가를 죽여서 경험치를 얻는 문제로 해결될 수 없었다.
오직 깨달음!
그로써 초월환령검을 터득할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보다 진정한 운명의 힘이란 건 뭐지?’
방금 전 테네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 그대가 파투아를 물리치고 진정한 운명을 힘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게. 그때가 되면 부디……. >
그러고 보면 베르타도 죽기 전 이 비슷한 말을 했다.
진정한 운명의 힘!
그게 대체 뭘까?
‘혹시 파투아들이 조종하고 있다는 운명 시스템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의 파투아처럼 그 힘을 재윤이 조종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게 정말 가능하다면?’
지구를 본래로 되돌리거나 이미 죽은 베르타, 테네르 등을 살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허무맹랑한 바람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베르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아주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
< 그대가 그들을 물리치고 혹시라도 진정한 운명의 힘을 얻게 되면 그때 부디 나와 내가 속했던 세계를........ >
베르타가 미처 마치지 못했던 말.
그건 바로 그와 그가 속했던 세계를 부활시켜달라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긴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힘도 있지 않을까?
이는 허망하게 죽어버린 아루넬 등을 모두 살릴 수도 있다는 뜻.
‘정말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었다.
운명의 힘을 얻는다 해도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
‘이럴 때가 아니야. 어서 수련을 시작하자.’
깨달음의 장벽만 돌파하면 레벨이 오를 수 있다.
재윤은 귀룡을 소환 해제했다.
그리고는 부유섬의 숲에서 조용히 명상에 몰두하며 초월환령검의 수련을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수련에 몰두하던 재윤이 돌연 눈을 뜨고 일어났다.
‘그들이 돌아왔군.’
출전을 나갔던 천마와 마왕들이 부유섬의 마궁으로 막 귀환한 것이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의 상태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왕들 중 일부가 죽임을 당했을 뿐 아니라 천마 또한 무척이나 지쳐보였다.
“모두들 이곳에서 마력을 회복한 후 대기해라.”
“예, 마존.”
마왕들을 마궁의 마법진에 대기시킨 천마는 곧바로 부유섬을 살피더니 한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다름아닌 재윤이 있는 곳이었다.
“마존을 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막 마궁이 있는 곳으로 가려던 재윤은 천마가 나타나자 놀랐다.
그런데 천마의 표정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혼탁하게 흔들리면서도 간혹 담담함을 회복하는 눈빛이 특히.
‘저 눈빛은 설마?’
그 순간 천마가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아보았으니 더 이상 속이려 애쓸 필요 없다. 그 또한 나쁘지 않다 생각해 가능한 네 뜻을 존중하려 했다만.”
이게 무슨 소리인가?
천마가 이미 재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뜻.
그런데도 그냥 모른척 속아주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이제 더 이상은 그게 불가능하게 되었구나. 나의 모든 힘을 되찾지 않고도 놈들을 이길 수 있다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모든 건 내게 맡기고 이만 그것을 내놓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