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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생존-160화 (160/200)

160화.  < 재앙의 이면 (1) >

* 아르데아의 의지

-분류 : 보물

-설명 : 흑화한 용사 아르데아가 흑화 전 자신의 의지를 봉인해둔 물건이다. 오직 이 검으로만 흑화한 용사 아르데아를 소멸시킬 수 있다.

-사용 제한 : Lv85

재윤의 레벨이 87이 되며 이 특별한 소검(小劍)의 사용 제한이 풀렸다.

또한 흑화 용사 아르데아는 지금 복부와 가슴이 각각 루니스와 재윤의 검에 꿰뚫린 채 무력화된 상태였다.

플루토가 아르데아의 등 뒤에서 가슴을 관통했지만 심장을 찌른 것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아르데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심장을 빗겨 맞은 것이다.

재윤은 플루토를 그의 가슴에 꽂아둔 채 앞으로 이동해 소검으로 그의 심장을 겨눴다.

그러자 루니스가 탄식하며 말했다.

“재앙을 막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른 당신을 라넨 대륙은 배신했습니다. 일단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대륙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당신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큭! 용서라……"

아르데아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루니스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그러나 재앙의 근원으로 수많은 사람을 해친 당신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제 지구의 각성자 강재윤 님에 의해 당신은 소멸될 것이며 피 그림자의 재앙 또한 당신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재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데아를 소멸시켜달라는 뜻.

“크하하하하!"

그 순간 아르데아가 돌연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재윤을 노려봤다.

그는 자신의 가슴과 복부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 개의치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군. 운명이 그대에게 말도 안 되는 힘을 부여한 건 곧 나를 죽이기 위함이었음을 아느냐? 그 때문에 정말 어이없이 나의 계획이 망가지는구나.”

그는 횡설수설하는 것 같았다.

하긴 죽을 상황이 되니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그가 흑화 용사라 해도 어쨌든 인간이었으니까.

“지금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를 죽이는 순간 너희들은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지 마라.”

루니스가 냉소했다.

“끝까지 당신은 뉘우치지 않는군요. 강재윤 님 어서 이 사악한 악마를 소멸시켜 주세요.”

“그러죠.”

재윤의 소검이 아르데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소검이 그의 심장에 닿는 순간 그의 몸이 진저리라도 난 듯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재윤은 거기서 더 소검을 찌르지 않고 잠시 멈췄다.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한 가지 말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지 마라!’

방금 전 이같은 말을 아르데아가 했다.

아주 공교롭게도 그 말은 흑요정 테네르가 했던 말과 동일했다.

테네르는 바로 그 말을 재윤에게 했다는 이유로 석화의 저주를 받아 돌이 되어버렸다.

“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 거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면, 당신이 알고 있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는 건가?”

재윤이 그를 찌르지 않고 물어보자 루니스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강재윤 님! 그 악마와 말을 섞어서 좋을 것 없습니다. 어서 그의 심장을 찔러 재앙을 완전히 파괴해주세요!”

데카투스 또한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인간, 뭐하느냐? 이때를 위해 그대가 얼마나 힘겹게 레벨을 올렸는지 잊었는가? 그에게 틈을 주면 어떤 식으로든 수작을 부려 달아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재윤은 아르데아의 답변을 듣겠다는 듯 소검에 힘을 주지 않았다.

아르데아가 큭큭 웃었다.

“이미 늦었다. 그 소검이 나의 심장에 닿는 그 순간 모든 게 끝이 났으니까. 나는 곧 죽을 것이고 피 그림자의 재앙 또한 소멸될 것이다. 네가 나의 심장을 찌르면 그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는 것일 뿐 이제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야.”

그는 의미 모를 말을 하며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재윤은 상상도 못했던 통신을 받았다.

《 성주님! 갑자기 안전 지대 보호막의 힘이 약해지고 있어요.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멀쩡하던 안전지대 보호막의 힘이 약해지다니.

《 자세히 얘기해보세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

《 이유가 뭔지는 저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어요. 다만 지금 상태라면 앞으로 희망 성을 포함한 모든 안전지대의 보호막이 10일 이내 소멸될 것이 확실해요. 》

재윤은 뭔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난데없이 안전지대의 힘이 약화되다니.

‘혹시?’

재윤은 이 상황이 혹시 흑화 용사 아르데아와 관련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의 심장에 소검을 가져다대는 순간 오르도로부터 다급한 통신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제 알았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대는 나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제부터 절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순간 재윤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그로인해 소검이 아르데아의 심장으로 약간 파고 들었다.

“대체 무슨 헛소리냐? 당신이 죽는 것과 안전지대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크윽!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날 죽여라. 어차피 모든 건 끝났다. 나도 너희들도, 모두가 다 죽을 테니까.”

그 말과 함께 아르데아의 몸에서 생기가 급격히 소멸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들려오는 오르도의 급격한 통신.

《 성주님! 안전지대의 보호막이 더욱 약해졌어요. 앞으로 하루가 지나면 소멸될 상황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군요. 》

차분하던 오르도의 음성이 당혹스러움으로 떨렸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안전지대가 10일 후에 모두 소멸된다는 말도 황당했다.

그런데 아르데아의 생기가 소멸되자 그 10일이 하루로 다시 줄었다.

이젠 아르데아와 안전지대가 뭔가 연결고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

‘그럼 이자가 죽으면 안전지대가 바로 소멸될 수도 있어.’

재윤은 조심스레 아르데아의 심장에서 소검을 빼냈다.

그러자 아르데아가 비릿하게 웃었다.

“이제야 눈치챘나 보군.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말해라. 어째서 당신의 생명과 안전지대가 연결되어 있는 거지?”

그러나 아르데아는 실신 직전이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죽으면 안 돼!”

그러자 루니스와 데카투스가 깜짝 놀랐다.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인간! 안전지대가 아르데아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

재윤은 침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자가 죽으면 안전지대가 소멸됩니다. 이자의 생명과 안전지대의 보호막이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믿기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일단 이자를 살려야 합니다.”

루니스가 재윤을 노려봤다.

“속임수일 수도 있어요. 신중해야 합니다.”

“안전지대가 이자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건 분명합니다.”

오르도가 거짓 통신을 보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최악의 상황이다.’

세상이 괴상하게 변한 이래 그래도 살아볼 희망을 얻게 된 건 바로 안전지대 때문이었다.

안전지대가 사라지면?

희망 성을 비롯해 모든 곳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기적의 아파트이건 도시 초승달이건 괴물들의 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재윤이 걱정한 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보호막만 사라진다면 각성자들과 힘을 합쳐 어떻게든 괴물들을 막아내며 생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만약 안전지대의 효과도 사라져버린다면?

파투스가 더 이상 회복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전기와 수도는 물론이고 각종 시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

코인을 주고도 식량을 살 수 없게 된다면?

“제 말을 들어주세요. 일단 아르데아를 살리고 봐야 합니다, 루니스.”

재윤은 루니스에게 부탁하듯 말했다.

흑화 용사를 살리는 것에 대해 루니스는 짙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를 설득해야 했다.

흑룡 데카투스야 재윤의 뜻을 따르기로 맹약했으니 재윤이 하자는 대로 하겠지만 말이다.

루니스는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이 보이면 그땐 제가 아르데아를 처치하겠습니다.”

재윤의 소검에 의해 이미 아르데아가 가진 불사의 능력은 사라졌다.

이제는 누구라도 아르데아를 죽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행히 루니스는 일단 재윤의 뜻에 협조해주었다.

이어서 재윤은 데카투스에게 부탁했다.

“데카투스! 어서 이자를 치료해야 한다.”

“그대의 부탁이라면.”

그런데 그가 다가와 아르데아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늦었다. 이자를 지탱하던 마력의 기운이 흩어져버린 이상 하루 이틀 생명을 연장시킬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무슨 짓을 해도 살아나지 못해.”

방금 전 재윤의 소검이 심장에 닿는 순간 아르데아의 마력이 흩어져지며 그는 급격히 소멸화되고 있는 중이었다.

곧바로 데카투스는 아공간에서 핏빛의 물약을 하나 꺼내더니 아르데아의 상처에 들이부으며 그의 몸에 박힌 두 자루의 검을 조심스레 빼냈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로벨! 이제 그대가 회복 마법을 좀 펼쳐줄 차례다.”

데카투스의 말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로벨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팡이를 뻗어 백색의 빛을 쏟아냈다.

화아악!

백색의 빛이 아르데아의 몸을 연거푸 휘감았지만 이내 그의 몸 근처에서 소멸되어버렸다.

“안 되는군요.”

로벨은 탄식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아르데아가 눈을 떴다.

“소용없는 짓이라 하지 않았나?”

그는 힘없이 말을 이었다.

“지금껏 운명이 그대들을 돕는다 생각했겠지. 그러나 운명은 그저 그대들을 이용했을 뿐이다. 애초부터 운명은 그대들에는 별 관심없었다.”

“무슨 근거로 운명이 우릴 이용했다 말하는 거지?”

“운명이 그대들에게 힘을 주어 재앙을 제거한 건 그대들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 그림자의 재앙이 제거되는 순간 그대들의 임무도 끝나게 되고, 더 이상 운명은 그대들을 지원할 이유가 없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얘기. 운명이 피 그림자의 재앙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 따위 말을 하는 건가?”

재윤이 묻자 아르데아가 씁쓸히 웃었다.

아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의 눈빛이었다.

사악한 흑색의 흉광으로 번뜩이던 때와 달리 지금은 눈빛이 미약해졌지만 사악한 기운은 없었다.

흑화 상태가 아닌 본래의 그로 돌아온 것일까?

"그대는 이곳 세계에 왜 운명의 힘이 개입했는지 알고 있나?”

아르데아가 재윤에게 물었다.

재윤은 이전에 운명의 탑 아루넬에게 들었던 내용을 말했다.

“차원계에서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재앙이 지구를 덮쳤고, 본래 지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야 정상이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여러 초월적 존재들이 그 같은 상황을 막고자 개입을 했는데, 그들과 대적하는 이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운명의 힘을 빌렸고, 그 후로 운명의 힘이 모든 걸 주관하는 세계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자 아르데아가 픽 웃었다.

“그래도 조금은 알고 있었군. 맞아. 그래서 그 운명의 힘이 선하다고 생각하나?”

“악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천만에! 운명에게는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으로 치면 선인도 악인도 아닌 그냥 제멋대로 생각하는 놈일 뿐이다. 그런 놈에게 이 세계를 맡겨놨으니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그래서 당신이 죽으면 안전지대도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뜻인가?”

아르데아는 끄덕였다.

“운명은 이곳 세계가 마계화가 되는 걸 막고자 할 뿐 그대들을 지켜주고 싶은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다. 마계화가 되면 그곳은 운명의 힘이 통제할 수 없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야. 운명이 지배하지 못하는 구역을 제거하기 위해 인간 각성자의 힘이 필요한 것일 뿐, 그것이 저지된 이상 그대들을 지켜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운명이 우릴 죽이려 한다고?”

“운명은 그대들의 생사에 관심 자체가 없다. 죽든말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안전지대를 거둬들이는 건 더 이상 그대들이 이용 가치가 없다 판단해서다.”

피 그림자의 재앙으로 마계화가 되는 걸 막는 것까지만 인간 각성자가 필요했다?

즉, 아르데아의 말에 의하면 운명이 정한 재윤의 이용가치도 딱 여기까지였음을 의미했다.

순간 재윤은 테네르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운명을 맹종하거나 맹신하지 마. 모든 건 그대가 하기 나름이야.’

그러고 보니 그녀의 말이 이제야 확연히 이해가 되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운명을 맹종하거나 맹신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르데아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단, 아직 하나 이해되지 않는 말.

‘모든 건 내가 하기 나름이라고?’

그게 대체 무슨 뜻인지.

재윤은 문득 아르데아를 향해 물었다.

“아까 당신의 계획이 나 때문에 망가졌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 그대로다. 그대 때문에 나의 계획이 망가졌다.”

“무슨 계획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

그러자 아르데아는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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