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자생존-159화 (159/200)

159화.  <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2) >

안전지대 『희 망성』

광장의 게시판을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의 가족이나 친척 혹은 지인들이 재윤이 장악한 47개 도시들 중 어딘가에 생존해 있는 걸 확인한 것이다.

이미 그곳에 있는 이들도 이쪽의 생존 여부를 확인했을 터였다.

서로를 만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성의 관리자인 오르도를 통하면 그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거나 혹은 그들을 이곳으로 오게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윤은 가족들과 헤어져있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헤어진 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라고 오르도에게 지시해두었다.

희망 성의 내성.

재윤의 저택 및 모든 안전지대의 총괄 관리자인 오르도의 거처가 이곳에 있었다.

이곳은 안전지대인 희망 성의 내부에 위치한 또 다른 안전지대였다.

재윤의 가족 및 부하들, 기타 소수 허락된 이들만 진입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지내는 데 불편은 없으세요?”

재윤은 희망 성으로 돌아오자 내성의 저택으로 들어와 부모님을 찾았다.

“물론이다. 이제 좀 사람사는 것 같은 기분이구나. 광장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고.”

귀룡 성도 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야 사는 맛이 느껴지는 법.

강두성과 김지현은 한국인들이 많이 있는 희망 성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특히 김지현은 들떠 있었다.

“내일은 열차를 타고 그 초승달이라고 하는 도시에도 한 번 가볼 생각이야. 게시판을 보니 거기에 엄마 친구가 둘이나 살아있더구나.”

“잘됐네요. 어딜 가도 괜찮지만 안전지대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마세요.”

“호호, 알았다, 아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단다.”

재윤은 로사엔을 비롯한 부하들에게 부모님의 호위 임무를 맡겼다.

어디를 가도 그들이 부모님을 수행하는 터라 재윤은 안심하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다.

내성 오르도의 거처.

처음엔 투박한 건물이었던 이곳 또한 신비로운 탑 형상의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재윤이 방문하자 오르도가 정중히 예를 취했다.

“희망 성의 관리자 오르도, 존귀하신 성주님을 뵙습니다.”

“그동안 별일은 없나요?”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용사 루니스 님과 흑룡 데카투스 님이 흑화 용사 아르데아를 견제해주는 덕분에 재앙의 확장 속도가 느려진 상태이죠.”

“이제 그 문제는 곧 해결될 겁니다.”

재윤은 자신있게 미소 지었다.

흑화 용사 아르데아를 처치하러가기 전 재윤은 흑요정 테네르의 말에 대해 혹시 오르도라면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 온 것이었다.

곧바로 그는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그녀에게 말해줬다.

그러자 오르도가 놀랐다.

“흑요정이 그같은 말을 했다는 건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거예요.”

“짐작되는 것이 없나요?”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운명의 룰과 관련된 비밀들은 저에게도 대부분 감춰져 있어서 알지 못해요.”

상급 천족이었다는 오르도도 운명의 비밀은 모르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운명의 탑 아루넬을 찾아가봤지만 그녀 역시 테네르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

신비한 능력과 지식을 가진 오르도와 아루넬도 모른다고 하는 걸 고민해봤자 당장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재윤은 계획대로 흑화 용사 아르데아를 처치하기로 했다.

현재 루니스 등이 있는 위치는 마법사 로벨이 알고 있었다.

재윤은 로벨과 함께 귀룡을 타고 이동했다.

귀룡은 상공을 날아 빠른 속도로 질주했고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루니스와 데카투스의 모습이 보였다.

“강재윤 님!”

“오오! 귀룡이다!”

루니스는 재윤을 반겼고, 데카투스는 귀룡을 반겼다.

“흐흐, 이제 잠시 숨 좀 돌릴 수 있겠구나. 여기서 마족 놈들이랑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지쳤는데 말이야.”

“마족들도 나타났나?”

“마계화된 상태라 그게 가능해졌다. 다행히 마왕이나 최상급 마족까지는 오지 못하지만.”

흑화 용사 아르데아뿐 아니라 마족들과도 싸워야 하니 골치였다.

“아르데아는 어떻게 됐지?”

“어제 해치워놨으니 아마 잠시 후면 부활할 거다.”

“잘됐군. 오늘 부활하면 두 번 다시 살아나지 못할 거야.”

“오오! 그럼 벌써 레벨을 올린 것인가?”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겠지.”

재윤이 자신 있게 미소 짓자 루니스와 데카투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85레벨을 달성하셨어요?”

“대단하구나. 대체 어떤 괴물들을 해치웠기에 이토록 빨리 레벨을 올린 건가?”

재윤은 죄수 수용소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해줬다.

그리고 테네르가 한 말에 대해서도 물어보자 데카투스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 뒤바뀐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비밀이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할 지도 몰라. 아마도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루니스가 끄덕였다.

“사실 그건 어느 세계나 다를 바 없어요. 보이는 것은 그저 드러난 현상일 뿐 본질은 그 이면에 숨겨져 있답니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무슨 수를 써도 우리는 본질을 다 알 수는 없어요. 알려고 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그냥 드러난 현상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요? 지금은 드러나 있는 재앙을 제거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재윤의 생각도 루니스와 일치했다.

그래서 피 그림자 재앙의 근원인 아르데아를 처치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니까.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귀룡 성에서 소주 잔을 기울이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데카투스의 눈이 돌연 번쩍였다.

“놈이 부활했다!”

“드디어 때가 됐군."

재윤은 아공간에서 아르데아의 의지를 꺼냈다.

신비한 빛이 번쩍이는 소검(小劍).

이제 이걸로 흑화 용사 아르데아를 끝장낼 것이다.

루니스가 감회가 새롭다는 듯 말했다.

“이제 정말 그와 마지막이 되겠군요.”

“어서 가죠.”

“내가 안내하겠다.”

데카투스는 아르데아가 부활한 위치를 이미 감지한 듯했다.

귀룡을 타고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하자 전방에 붉은 결계가 생성되어 있었다.

《 주인, 저 결계 안으로 나는 진입할 수 없다. 》

귀룡의 말이었다.

재윤은 즉각 루니스 등에게 말했다.

“저 결계 안으로는 귀룡이 들어갈 수 없다는군요.”

“그동안 아르데아가 저런 결계를 만든 적은 없었어요. 오늘이 최후의 날이란 걸 알고 대비를 한 것 같아요.”

데카투스가 끄덕였다.

“아르데아 정도면 이미 최후의 순간이 왔음을 느끼고 있겠지. 그가 비록 지금은 마왕의 하수인이지만 한때는 뛰어난 용사였으니까. 아마도 저 결계 안에는 마족들도 몇 놈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재윤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귀룡에게 장착한 내 날개 좀 잠깐 빌려줘라. 내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그게 필요해.”

재윤은 끄덕였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어차피 귀룡은 여기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그는 즉각 귀룡이 장착 중인 흑룡의 양쪽 날개를 빼서 데카투스에게 건넸다.

“쓰고 꼭 돌려줘라.”

“알았으니 염려 마라. 근데 대체 누가 날개의 주인인지 모르겠구나.”

데카투스는 왠지 어이가 없어했다.

자신의 날개를 빌려서 장착한 후 다시 돌려줘야하는 상황이 황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개를 돌려주지 않으면 그가 귀룡을 태우고 돌아다녀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럼 들어가죠.”

재윤이 플루토를 오른 손에 쥔 채 결계 안으로 들어가자 루니스와 데카투스, 로벨이 즉각 뒤따라왔다.

그런데 결계 안에는 뜻밖에도 아르데아 혼자 뿐이었다.

광활한 황무지와 같은 공간.

그는 두 자루의 흑색 검을 각각 양 옆으로 내리뜨린 채 담담한 표정으로 재윤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왔나?”

그의 몸 주위로는 사악한 기운이 휘둘고 있었지만 그의 음성은 의외로 차분했다.

루니스가 외쳤다.

“아르데아! 오늘로 당신은 끝이다. 당신의 원한이 아무리 크다하나 이미 천년도 지난 일. 이제 용사답게 최후를 받아들이라.”

그녀는 마지막으로 아르데아에게 마왕의 하수인이 아닌 용사로서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주려고 했다.

그래도 한때는 뛰어난 용사였으니까.

아니, 아르데아가 흑화되어 그의 명성이 가려져서일 뿐 실상 그가 활동하던 천년 전 그의 명성은 그야말로 전설적이었다.

지금의 루니스로서는 그의 발끝도 쫓아가기 힘들 것이다.

심지어 마왕들도 몇 아르데아의 검에 죽었다는 전설도 있었다.

그런 그가 마왕의 하수인이 되었다는 건 정말로 믿기 힘든 일.

그만큼 자신을 배신한 대륙에 대한 분노가 컸음을 의미하지만 여러모로 이상한 점은 많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아르데아가 흑화되어 마왕의 하수인이 되었다는 것이고, 동시에 끔찍한 재앙의 근원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했다.

“마지막까지 마왕 데사오의 하수인으로서 최후를 마친다면 당신은 죽어서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아르데아!”

그러나 아르데아는 루니스의 말에는 코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그는 재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대에게서 내가 남긴 물건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이제 나를 제거할 만한 자격을 갖춘 것인가?”

재윤의 아공간에 아르데아의 의지가 있음을 그는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그렇다. 이 소검으로 당신을 반드시 소멸시켜달라는 것. 그것은 당신이 흑화되기 전 당신의 뜻이기도 했다.”

재윤은 소검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소검에서 피어난 빛을 본 순간 아르데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이내 섬뜩한 흑색의 안광을 뿜어내며 말했다.

“후후, 어리석은 자들! 나는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누군가 그 검을 가져오기만을 말이야.”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아르데아의 전신에서 피어나는 기세로 사방 공간이 세차게 요동쳤다.

그러자 루니스와 데카투스의 표정이 경악으로 변했다.

평소 그들이 보아왔던 아르데아의 기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찌 저같은 기세를?”

“으윽! 평소보다 두 배는 더 강한 것 같다.”

아르데아가 조소를 흘렸다.

“그대들은 오늘 나를 소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것은 망상일 뿐이다. 나는 내게 있어 유일한 약점인 그 물건을 없애버릴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바로 이때를 위해 스스로의 능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뜻.

“이곳 세상에는 그대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아마도 그것을 알게 되면 그대들은 정신을 온전히 부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대들은 내가 진정으로 그 따위 마왕의 하수인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는가? 천만에! 나는 마왕을 이용했을 뿐이다.”

그는 큭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순간 가공스러운 압력이 파동을 이루며 날아와 재윤 등을 후려쳤다.

“으윽!"

“크억!”

재윤 등은 즉각 방어를 했지만 그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놈을 공격해요!”

“전력을 다해라!”

곧바로 데카투스가 본신으로 변해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루니스는 푸른빛의 검을 휘두르며 아르데아를 향해 돌진했다.

로벨은 그 자신을 비롯해 모두에게 백색의 투명한 보호막을 생성시켰다.

재윤 또한 플루토(Lv18)에 검강을 생성시킨 후 돌진했다.

레벨 87에 이르며 마경 심법의 경지는 물론이고 내공도 급증한 상태라 검강의 광채 및 길이도 이전보다 길어졌다.

“가소로운 자들! 아직도 그대들과 나의 격차를 모르겠는가?”

곧바로 아르데아의 쌍검이 폭풍을 형성하며 루니스를 덮쳤다.

루니스는 물러서지 않고 전력을 다해 맞섰다.

그러나 검풍(劍風)이 지나간 후에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으윽!"

단번에 치명상을 입은 듯 그녀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 사이 아르데아의 검풍은 상공의 데카투스를 쓸고 지나갔다.

데카투스 또한 전신이 난자당한 상태로 몸을 떨었다.

“커어억!”

거대한 데카투스의 몸체가 맥없이 지면으로 떨어져내렸다.

그는 바닥에 추락 직전 간신히 몸을 추슬러 착지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더 이상 전투를 수행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이제 너 뿐인가?”

아르데아는 마법사 로벨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곧바로 재윤을 향해 돌진해왔다.

거대한 폭풍!

그것은 쌍검이 형성한 검의 바람이었다.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아르데아의 강력한 검격에 베이는 것과 동일한 부상을 입게 된다.

“도망가요, 강재윤 님!”

“피해라, 인간! 오늘이 날이 아닌 것 같구나.”

루니스와 데카투스가 다급히 외쳤다.

그저 한 번의 격돌이었지만 그들은 아르데아의 능력을 실감했다.

도저히 지금의 전력으로는 아르데아와 싸워 이길 승산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쌍검풍이 지나간 후에 이변이 발생했다.

재윤은 멀쩡하게 서 있고 아르데아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비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으윽! 이런……"

아르데아는 믿기지 않은 듯 재윤을 쳐다봤다.

그는 방금 전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윤을 향한 그의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재윤이 휘두른 검강은 그의 몸을 지속적으로 가격해 몸의 보호막을 깨뜨리고 치명상을 입혔다.

그것이 쌍검이 형성한 폭풍 속에서 방금 전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재윤은 루니스와 데카투스가 연달아 아르데아의 검풍 돌진에 당하는 걸 보고 즉각 무적기인 광혈의 의지(Lv6)를 펼친 것이었다. 보통은 최후의 상황을 대비해 마지막까지 남겨두는 이 무적기를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펼친 건 처음이었다.

덕분에 아르데아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

검풍 돌진은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

무적기로 피해 면역이 된 재윤에게는 빈틈이 드러난 아르데아의 몸을 마음껏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두 번은 통하지 않을 기회! 지금 반드시 저자를 해치워야 한다.’

재윤은 그 즉시 아르데아를 향해 돌진하며 검강을 휘둘렀다.

카아앙! 캉!

아르데아가 쌍검으로 그에 맞섰다.

쌍검의 움직임은 환상처럼 빨라 재윤의 몸에서도 피가 튀었지만, 재윤의 검은 아르데아의 몸에 지속적으로 부상을 만들어냈다.

그 사이 로벨에 의해 상처가 회복된 루니스와 데카투스가 합류해 아르데아를 몰아붙였다.

대체 재윤이 어떻게 아르데아의 검풍 돌진을 막아내며 오히려 부상을 입혔는지 궁금했지만, 그들은 재윤이 만들어낸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푸확! 푹!

데카토스와 로벨이 마법으로 아르데아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사이 루니스가 그의 복부에 검을 꽂아넣었다.

또한 재윤이 등 뒤에서 찌른 검이 아르데아의 가슴을 뚫고 삐져나왔다.

“크으윽..!”

아르데아가 비틀거렸다.

그는 엄중한 상처를 입고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빠져나가려는 듯 몸부림쳤다.

“이제 그만 끝내자, 아르데아!”

그 순간 재윤의 손에 다시 신비한 빛의 소검이 나타났다.

아르데아의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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