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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생존-73화 (73/200)

73화.  <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다 (2) >

“제가 심하다고요?”

채시은은 기막힌 표정으로 차강혁을 노려봤다.

차강혁은 인상을 살짝 찌푸린 채 대답했다.

“그냥 말로 하면 될 것 가지고 왜 애를 때리고 그래? 그것도 비각성자 앞에서. 전투조원들은 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사기가 떨어지면 전투력도 떨어지게 된단 말이야. 그리고 옷에 구멍이 나면 욱하는 마음에 화를 낼 수도 있는 건데 그런 걸 가지고 비각성자 편을 드는 건 좀 아니잖아.”

“차강혁 씨, 제가 누구 편을 드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요. 어디까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

“저딴 비각성자들을 보호하겠다고 어제는 전투조원 하나가 죽었어. 채시은 씨야 말로 뭐가 중요한지 잘 알았으면 좋겠군. 지금은 예전처럼 인도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니란 말이야.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전투조 각성자 한 명이 비각성자 백 명보다 중요한 존재란 걸 모르는 건가.”

그러자 이강석은 감동한 표정으로 차강혁을 바라봤다.

“강혁 형님.”

“됐으니 넌 이제 들어가봐라.”

“예, 형님.”

이강석은 의기 양양한 표정으로 집 안에 들어갔다.

그는 채시은을 향해 살짝 조소를 날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차강혁 씨, 처음 공동체를 만들 때 이러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나요?”

채시은은 실망스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차강혁을 노려봤다.

차강혁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난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군. 채시은 씨는 무슨 이유로 저딴 비각성자들의 처우에 대해 그리 집착하는 거지? 각성자들만 신경써줘도 모자랄 판에 말이야. 우리가 피 흘려 쌓은 코인으로 저들이 지내는 집의 임대료도 내주고, 옷도 사주고, 심지어 식량도 사주고. 대체 왜 우리가 그래야 하지? 그런다고 누가 상이라도 주는 건가?”

채시은이 대답했다.

“누군가의 가족이잖아요. 차강혁 씨, 당신도 가족을 찾지 못했잖아요. 당신의 가족이 어딘가에서 비각성자라는 이유로 저런 취급을 받고 있다면 어떻겠어요?”

“그거야 기분이 더럽겠지. 그리고 내 가족을 괴롭히는 놈은 가만 두지 않겠지. 하지만 저들은 내 가족이 아니잖아. 그냥 남일 뿐.”

“가족처럼 대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무시나 핍박은 하지 말아야죠. 저는 우리가 하는 행동 그대로 어딘가 있는 우리 가족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저들을 도와주면 어딘가에 있는 우리의 가족들도 누군가 도와줄 거라고요. 그래서 언젠가 무사히 모두 만날 수 있다고요.”

그러자 차강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본인이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뿐 그딴 건 없어, 채시은 씨. 그렇게 순진하고 답답한 성격으로 어떻게 이 무서운 세상에서 살아가려고 하는지 모르겠군. 어쨌든 이제 그만하지. 우리끼리 싸워봤자 좋을 것 없잖아.”

그 말을 한 후 그는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듯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채시은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한쪽에서 울고 있는 여성을 향해 다가갔다.

“죄송해요, 박희나 씨. 제가 힘이 없어서 별 도움이 못되는군요.”

“아니에요. 당신과 최진석 대장님이 아니었다면 우리 비각성자들은 지금쯤 모두 밖으로 쫓겨났거나 이곳에 있어도 노예처럼 살았을 거예요. 그나마 이렇게 살게 된 것도 다 두 분 덕분인 걸요.”

“힘내세요.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거예요.”

채시은은 박희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말했다.

한편 그때 차강혁은 한쪽 성벽 근처로 가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조상구가 서 있었다.

“형님, 뭔가 기분이 안좋아 보입니다.”

“채시은, 그년 때문이다. 이용가치가 있어 최대한 양보를 하고 있는데 여러모로 피곤하게 굴어. 뭐 최진석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 둘은 어차피 언젠가 없애버릴 것 아닌가요?”

조상구의 말에 차강혁은 끄덕였다.

“권수현은 겁이 많아 협박만 하면 알아서 굴복할 테니 신경쓸 것 없고, 채시은과 최진석은 언제고 없앨 생각이었다. 그 둘이 사라져야 비각성자들을 우리가 노예처럼 부리건 말건 누구도 간섭을 하지 않을 테니까. 빙의괴물들을 상대하려면 그 둘의 힘이 필요해서 놔뒀을 뿐이야.”

“강재윤이라는 놈이 잘하면 곧 빙의괴물들을 처리해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놈 혼자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지켜보고 있다.”

“흐흐흐, 그놈이 여기에 남는다고 할까봐 걱정했는데 알아서 떠나준다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형님.”

“공연히 쓸데없이 시비붙지 않도록 다들 최대한 조심하라고 해. 그놈은 우리가 어쩔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예, 형님. 그보다 채시은 그년은 죽이지 말고 노예로 만들죠. 그런 미녀를 그냥 죽이긴 좀 아깝지 않습니까?”

“큭! 그것도 괜찮겠군.”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대화를 누군가 듣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 * *

첨탑 위에서 마치 석상처럼 미동없이 선 채로 있던 재윤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귀가 밝은 것도 문제일까?

듣지 않았으면 몰랐을 불편한 진실들을 알게 되었다.

‘꼭 저렇게까지 해서 욕심을 채워야 하는 건가?’

재윤도 인간이다.

차강혁과 조상구의 본심을 알게된 이상 그들을 결코 좋게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공격해 죽일 수도 없는 일.

어쨌든 그들은 이곳을 지키는 중요한 전력이다.

재윤이 여기에 계속 남아서 성을 지켜줄 게 아니라면, 오히려 그것이 공동체에 있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차강혁, 조상구, 이강석이 어떤 자들인지 알게 된 이상 앞으로 그들을 도와줄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괴물에게 죽어가도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는 자들이니까.

그렇게 어느덧 한나절이 흘러가고 밤이 찾아왔다.

그런데 오늘은 어젯밤에는 잠잠했던 언데드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이 몰려옵니다!”

“빙의괴물도 있습니다!”

날이 캄감해지는 순간 성을 향해 썩은 시체들이 걸어오고 오고 있었다.

좀비들.

그리고 그것들 사이로 전신이 뼈다귀로 이루어진 괴물들도 몰려왔다.

스켈레톤이라 불리는 그 괴물들은 좀비들보다 훨씬 강했다.

또한 신장이 5미터나 되는 스켈레톤 백부장은 성벽도 무너뜨리는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언데드들 사이로 멀쩡한 인간의 모습을 가진 자들도 보였으니까.

“흐히히히! 우리 레벨 업하러 왔다, 인간들아!”

“크크크, 오늘은 몰살시켜주마.”

검붉은 눈빛을 번뜩이며 달려오는 빙의괴물들.

곧바로 성에는 비상이 걸렸다.

최진석이 성밖을 보며 탄식했다.

“언데드에 빙의괴물까지! 이놈들이 오늘 완전히 미쳤군.”

“빙의괴물을 조종하는 놈들이 언데드들도 조종하는 게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놈들이 한번에 몰려올 리 없습니다.”

차강혁도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그는 힐끗 성안을 살폈다.

“그런데 강재윤 씨가 보이지 않네요.”

“나도 그게 이상해. 성안에 있다면 벌써 나왔을 텐데 말이야.”

그러나 어디에도 재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평소처럼 자신들의 힘으로 성을 방어해야 했다.

“괴물들이 성벽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라!”

“지원조 각성자들도 성벽으로 이동해 전투조를 지원하세요!”

한편 그때 재윤은 성 밖에 나와 있었다.

물론 일부러 성의 위기를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빙의괴물들과 언데드들을 조종하는 다크 엘프들을 먼저 없애기 위함이었다.

‘저기 있군.’

괴물들의 뒤쪽 먼 곳 어둠 속.

그곳에 어제 도망쳤던 엘프 페리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그녀보다 훨씬 강한 기세를 가진 남자 엘프도 있었다.

그때 페리나가 흠칫 놀라며 재윤을 가리켰다.

“저놈입니다, 킬리아 님!”

“염려마라. 이미 알고 있으니까. 저놈은 내가 맡을 테니 넌 성으로 가서 각성자들을 쓸어버려라.”

“예, 킬리아님.”

엘프 킬리아는 재윤이 오자 기다렸다는 듯 검을 휘두르며 돌진해왔다.

“인간 놈! 알아서 죽을 자리를 찾아왔구나.”

가까이로 접근하자 킬리아의 기세는 페리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가 검을 휘두른 순간 어둠 속에서 무슨 폭풍이 몰아치는 듯했다.

콰앙! 콰콰쾅!

심지어 힘에서도 재윤에게 밀리지 않았다.

검술 또한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했고 또한 빨랐다.

이에 비하면 페리나의 검술은 상당히 미숙한 수준이라고 봐야할 정도였다.

그러나 반대로 재윤 또한 킬리아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소롭다는 듯 조소를 흘리며 검을 휘두르던 킬리아의 표정이 점차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군. 어디서 이런 놈이 나타난 건가.’

그가 어떤 공격을 가해도 재윤은 노련하게 그것을 막아내거나 피했고, 그 즉시 빠른 반격을 가해왔다.

조금이라도 틈을 허용하는 순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무서운 공격들!

그러다보니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킬리아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검술 실력은 비슷한데 재윤은 재사용 시간마다 바람의 화살, 질풍의 화살, 검기파를 날려보냈기 때문이었다.

특히 재윤은 시간의 룬을 얻은 덕분에 바람의 화살을 10초마다 펼칠 수 있었다.

공간 이동기인 바람 이동 또한 마찬가지.

재윤이 번쩍 사라질 때마다 예상치 못한 위치에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바람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특히 재윤이 갑자기 등뒤로 접근해 바람의 화살을 날릴 때면 킬리아는 그것을 피할 틈도 없었다.

몇 번을 그런 식으로 공격을 당하자 결국 킬리아의 몸을 감싸고 있던 보호막이 깨지고 말았다.

“크으윽! 감히!”

킬리아가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독이었다.

몸에 상처가 난 순간 갑자기 독이 침투해 그의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하락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시할만한 수준의 데미지였지만 상처가 날때마다 독이 침투하니 그는 결국 중독 증상으로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크윽! 이건 히드라 로드의 맹독! 어떻게 네놈이 이 독을!”

재윤은 히드라 보스를 처치하고 전설 4성급 영약인 히드라 보스의 정수를 얻었다.

그 영약을 먹은 덕분에 적에게 출혈의 부상을 입힐 경우 중독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독이 보통 독이 아닌 히드라 보스의 맹독이었다.

히드라 로드의 맹독은 평범한 해독제는 통하지 않는다.

특별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고급 해독제로만 해독이 가능한데, 킬리아가 소지한 것은 단 한 병뿐.

그는 재윤의 검을 피해 황급히 해독제를 먹고 독을 없앴지만, 그 즉시 광혈검이 그의 허벅지를 베고 지나가며 다시 독이 침투했다.

“크으윽! 두고보자!”

결국 킬리아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윤은 어제 페리나를 놓쳤을 때처럼 뒤늦게 추격하지 않았다.

킬리아가 도주할 것을 미리 짐작했던 터라 거의 동시에 놈을 따라붙으며 광혈검을 휘둘렀다.

촤악! 촥! 촤악-

“커어억!”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붉은빛의 사선들!

킬리아의 몸에 자상들이 길게 생겨 났다.

놈은 그 와중에도 단 번에 50미터를 공간 이동해 도주했지만 재윤 또한 질풍 이동과 바람 이동으로 놈의 지척에 따라붙었다.

동시에 지체없이 날린 검기파(Lv2)가 공간을 가르며 날아갔다.

파아아앗-

그 찰나 어제처럼 시커먼 구름이 킬리아의 몸을 휘감았지만, 그때는 이미 놈의 몸이 두 동강난 후였다.

“크아아악!”

결국 검은 구름이 데려간 것은 놈의 시체뿐이었다.

[6000코인을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쟁신의 검술이 Lv38이 되었습니다.]

[암흑의 상자를 얻었습니다.]

[다크 엘프에 대한 C급 지식을 획득했습니다.]

다크 엘프 한 놈을 처치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재윤은 그 즉시 성쪽으로 이동했다.

어제 놓쳤던 엘프 페리나를 처치하기 위함이었다.

재윤이 엘프 킬리아와 싸우는 사이 성쪽은 대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스켈레톤 백부장이 가공스러운 괴력으로 성벽을 무너뜨려버린 데다 엘프 페리나가 가세하면서 각성자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검기파!'

재윤은 먼저 스켈레톤 백부장이라 불리는 괴물부터 공격했다.

전투조 각성자들이 아무리 전투 능력을 퍼부어도 꿈쩍도 안하던 녀석이 검기파 한 방에 가슴뼈가 으스러졌다.

‘질풍의 화살! 바람의 화살!’

연이어 퍼부은 필살기!

그리고 광혈검으로 머리를 후려치자 놈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더니 가루로 변해버렸다.

[1500코인을 얻었습니다.]

[스켈레톤의 지식이 E급에서 C급으로 상승합니다.]

[스켈레톤 백부장의 상자를 얻었습니다.]

계속해서 재윤은 빙의괴물들과 언데드들을 빠르게 해치우며 엘프 페리나가 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그때가 막 페리나의 검이 조상구의 목을 찌르고 그에 이어 차강혁을 몰아붙이고 있을 때였다.

“호호호! 다 죽여주마, 어리석은 인간 놈들!”

“크아아악!”

조상구가 죽었다.

그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지금 재윤이 서두르면 차강혁을 살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곳과의 거리는 대략 50미터 .

그러나 재윤은 먼저 근처의 빙의괴물 십여 마리를 더 정리했다.

김민지가 위험에 처해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살릴 수는 없었다.

어느 쪽이든 택일을 해야 할 상황!

물론 그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김민지를 살리는 대신 차강혁을 포기했다.

“크아아악!”

그리고 차강혁이 가슴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순간 재윤은 질풍 이동과 바람 이동을 연이어 펼쳐 페리나의 뒤쪽으로 번쩍 이동했다.

동시에 검기(Lv10)에 휩싸인 광혈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파파팟! 촥! 촤아악-

조상구와 차강혁을 해치운 기쁨에 막 도취되어 있던 페리나는 갑자기 뒤쪽에서 엄습하는 불의의 기습에 깜짝 놀랐다.

피하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재윤이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전력을 다해 광혈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검은 구름이 페리나의 몸을 휘감았지만 그때는 이미 그녀의 허리가 동강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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