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4장 여명 작전 - 4 >
국회의사당에 들어서자 국회의장 유수형이 기다리고 있다가 정중하게 맞아들였다.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님.”
“의장님, 수고가 많으시죠? 요즘 국회 활동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국회가 많이 변한 건 사실입니다. 의원들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국회를 아주 좋게 평가하고 있어요. 정말 예전에 비한다면 상전벽해가 따로 없습니다.”
“민주연합 쪽은 어떻습니까?”
“그 사람들도 대단합니다. 각종 정책 입안 과정에 적극적이고 정부에서 조금이라도 정책 수행에 문제가 생기면 철저하게 파고들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예전처럼 대충 일하지 못해요. 우리나라 정치인들 정말 많이 변했어요.”
“아주 좋은 현상이군요.”
“그런데, 대통령님. 저는 정의당 쪽 지도부에서 오늘 연설과 관련,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습니다. 당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실 거라 하더군요.”
유수형이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는 민주정의당의 중진으로 최강철 정부 때부터 국회의장을 맡아온 사람이었다.
당연히 알고 싶었을 것이다.
국회의장으로서 급하게 국회 연설을 하겠다는 최강철의 의중을 알지 못한다는 건 난감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최강철은 유수형을 향해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의장님, 저는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파병이라니요. 어디로요… 혹시 이라크를 말하는 겁니까?”
“이라크가 아니라 시리아입니다. 우리 국민들을 죽인 악마들이 있는 곳이죠.”
“으…….”
“저는 대한민국이 세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또한, 전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테러리스트들이 계속 우리 국민들을 인질로 잡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IS를 선택한 것은 그들이 전 세계 테러 집단 중 가장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때려 부숴 전 세게 테러 집단에게 경고를 할 생각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을 건드리면 수백 배, 수천 배 응징당한다는 걸 말입니다.
”
* * *
최강철이 단상에 서자 의사당을 꽉 채운 의원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임시국회 기간이었기에 대부분의 의원들이 서울에 올라와 있었고 대통령이 직접 요청한 연설이었기에 민주연합의 의원들까지 대부분 자리를 차지해서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최강철은 단상에 서서 마이크를 잡지 않고 한동안 의사당을 꽉 채운 의원들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대한민국의 정치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었다.
현재의 국회의원들은 정권의 시녀가 되어 입법부 본래의 기능을 저버렸던 과거의 국회의원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민주연합의 당 대표 최철한은 어젯밤 자신의 비밀 방문을 받은 후 파병의 당위성을 설명 듣고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놀랐을 뿐 그는 파병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와 민주정의당에 대한 공격조차 포기하며 최철한은 최강철의 손을 잡고 반드시 성공시켜 땅으로 실추된 대한민국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부탁했다.
고마웠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민주정의당의 반대편에 서서 움직여 주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엉뚱하게 돌아갈 리 만무했다.
이미 의사당을 꽉 채운 의원들은 오늘 대통령의 연설에서 중대 발표가 있을 거란 지도부의 말을 듣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최강철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광개토대제 항모전단의 시리아 파병안을 들고 온 대통령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해 보였다.
어깨를 세운 후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던 최강철의 입이 열린 건 긴장을 참지 못하고 대한정의당 원내 대표인 여문수가 작게 기침을 할 때였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께 중요한 말씀을 드리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IS가 우리나라 국민들을 인질로 사로잡고 두 명을 처형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더 이상의 희생을 만들지 않기 위해 2천만 달러란 거액을 그들에게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인질로 잡혀 있던 한영대학교 봉사단은 무사히 내일 아침 돌아올 예정으로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질들이 무사히 풀려나 돌아온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이번 사안을 그냥 넘기지 않을 생각입니다.
IS는 벌써 우리 국민들을 5번이나 인질로 잡고 5명의 무고한 국민들을 처형시키며 막대한 석방금을 가져갔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넘어가면 그들은 언젠가 우리 국민들을 또 인질로 잡고 대한민국을 협박해 올 것입니다.
세계인들은 우리들의 선택을 비웃으며 대한민국의 우유부단함을 성토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실 또한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번 파병으로 인해 국가 예산이 얼마나 소요될지 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많은 병사들이 희생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린 이대로 물러서면 안 됩니다. 전 세계 국가에게, 전 세계의 테러 집단에게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강력한 국가인지 똑똑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그리니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정부에서 올리는 파견 동의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군이 국민들을 죽인 IS의 심장을 철저하게 응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
대한민국이 벌집을 쑤신 듯 난리가 났다.
최강철 대통령의 파병 결정안이 국회에서 빠르게 통과되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전 국민이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분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IS가 그동안 여러 번 대한민국 국민들을 인질로 잡고 처형이란 극단적인 협박을 통해 거액의 돈을 갈취했지만 지리적인 여건을 감안한다면 보복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만큼 멀다.
시리아는 지중해에 위치하고 있어 대한민국과 1만㎞ 이상 떨어진 나라였다.
더군다나 중동 국가의 하나로 그 폐쇄성이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지독하다.
인질들을 죽이고 거액의 석방금을 갈취했음에도 보복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은 공격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고 그 비용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막상 최강철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자 압도적인 지지를 나타냈다.
어떤 손해와 희생이 따르더라도 더 이상 그냥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국민들의 생각이었다.
전 세계가 놀랐다.
파병 결정이 외신들로 인해 빠르게 세계로 퍼져 나가자 대한민국을 비웃었던 국가들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무섭게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있었으나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그 어떤 국가보다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IS는 세계 모든 국가의 공적이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저지르며 그것을 자신들의 성전이란 미명 아래 정당성을 부르짖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나 보복을 결행한 국가는 미국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수하면서 사지로 들어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파병이 결정된 후 엄청난 속도로 출전 준비가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의 저력이 이렇다.
세계인들은 비밀리에 키워온 대한민국의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 모르다가 언론을 통해 파병 규모가 알려지자 다시 한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준비한 파병 전력은 국가 하나를 송두리째 파괴할 정도로 무시무시했기 때문이었다.
* * *
출전 준비를 마친 광개토대제의 항모전단이 부산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내자 몰려든 국민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항모 광개토대제를 비롯해서 충무공, 이이, 유성룡 등 6대의 이지스 구축함과 2척의 순양함, 3척의 지원함으로 구성되었고 해병대와 특전사를 실은 상륙함 을지문덕까지 포함되었기에 부산 앞바다는 대한민국의 최신예 전함들로 가득 찼다.
광개토대제에는 50대의 불사조-2와 10대의 불사조-3, 그리고 2대의 삼족오-3가 자리를 잡았는데 각종 지원기들도 보였다.
무려 대한민국이 지닌 전력의 20%가 부산항에 집결한 것이다.
이번 작전명은 ‘여명’이었다.
새로운 새벽을 열겠다는 대한민국의 의지가 담긴 작전명이었다.
최강철이 부산항에 도착해서 항모에 오르자 7천 명에 달하는 광개토대제 항모전단의 승무원들이 일제히 함선에 나타나 함성을 질렀다.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님.”
“준비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더 고생 하셔야겠군요.”
“고생이라뇨. 조국을 위해 싸우러 가는 군인은 그것을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대통령님의 결단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작전에 임할 것입니다.”
파병을 지휘하는 광개토대제 항모전단장 김성철 제독이 강한 눈으로 최강철을 바라보았다.
천생 군인이다.
그는 이번 작전을 임하면서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김 제독님, 작전도 중요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을 무사히 다시 데려와야 합니다.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제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병사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국의 명예가 김 제독님과 광개토대제 항모전단의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부디 작전을 완수해서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세워주시길 바랍니다.”
멀고 먼 길.
무려 만㎞의 바다를 건너 광개토대제 항모전단이 진군하는 모습은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로 생생하게 중계되었다.
CNN, NHK, BBC 등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첨예한 관심 속에서 원정군의 진행 과정을 알렸고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에서는 대한민국의 결정을 지지하며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중동의 여러 나라가 대한민국의 파병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여러 채널을 통해 그들의 반발을 완화시켜 나갔다.
이번 파병은 테러 집단으로 규정된 IS에 대한 응징일 뿐 종교나 국가 이념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논리를 펼치며 중동 국가들을 설득했다.
가장 커다란 도움을 준 것은 미국을 포함한 영국과 프랑스 등 IS로부터 여러 번 공격을 받았던 서방 강국들이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결정을 지지하며 언제든지 필요한 것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부산항을 떠난 원정군이 지중해에 도착한 것은 11일이 지난 후였다.
대한민국 원정군이 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IS는 이라크와 시리아의 병력을 집중시키며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광개토대제에 실려 있는 전폭기와 폭격기의 성능이 세계 최강이라는 사실을.
재래식 무기로 무장된 그들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는 건 죽음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IS의 병력 이동 상황은 최첨단 인공위성망을 통해 고스란히 광개토대제의 작전 상황실로 들어왔다.
광개토대제 항모전단이 멈춘 곳은 시리아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리카키아 해변에서 5㎞ 떨어진 해상이었다.
오랜 이동을 감안해서 전단에 하루의 휴식을 준 김성철 제독은 도착한 다음 날부터 이지스 구축함에 탑재된 원거리 공격미사일 천궁-3을 이용해서 1차 공격을 감행했다.
천궁-3은 작전거리 500㎞까지 소화가 가능한 지대지미사일로서 8대의 구축함과 순양함에 각 6기의 발사대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 파괴력은 막강 그 자체였다.
반경 300m의 범위 내에 있는 생명은 그 어느 것도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미사일이었다.
천궁-3가 날아간 곳은 IS의 주력들이 몰려 있는 알레포, 알라카, 할라브 등이었다.
무려 100여 기의 천궁-3가 알레포 등의 지역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이런 공격을 받은 적이 지금까지 언제 있었단 말인가.
재래전으로 전쟁을 벌여왔을 뿐 첨단 공격 무기들을 상대한 적이 없었기에 그들은 악마처럼 날아온 천궁-3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더욱 커다란 공포가 남아 있었다.
천궁-3의 공격 이후, 광개토대제에 탑재되어 있던 70여 대의 불사조-2, 3이 일제히 창공을 박차고 날아올랐던 것이었다.
죽음의 칼날이 IS의 주력들이 몰려 있는 지역들을 초토화해 나갔다.
대공포로 무장한 IS의 반격은 아예 소용조차 없었다.
원거리를 비행하며 퍼붓는 비룡의 신무기, 현무미사일은 사정거리 50㎞를 날아가 적진의 심장을 그대로 관통해 버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공격 첫날이 지났을 때 IS의 주력 병력들이 몰려 있던 지역들은 그야말로 처참지경으로 변했다.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초토화되었는데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전력의 20%가 소멸될 정도였으니 얼마나 강력한 공격이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세계 언론은 광개토대제 항모전단의 공격으로 인해 IS가 엄청난 타격을 받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그 성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광개토대제가 휘두른 죽음의 칼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공격 3일째.
새롭게 무장을 갖춘 10대의 불사조-3가 2대의 삼족오-2를 호위하며 알하사카로 향했던 것이다.
알하사카는 IS의 지도자 알 바드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1차 공격 지점에서 벗어난 이유는 워낙 내륙 깊숙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알하사카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접경 지역에 위치했기 때문에 구축함이 지니고 있는 천궁-3로 타격이 불가능했고 불사조-2가 움직였을 때 대공망에 당할 염려가 있었다.
하지만, 스텔스로 무장한 불사조-3와 삼족오-2는 그럴 위험성이 없다.
“콰앙, 콰앙!”
삼족오-2에서 날린 10발의 정밀직격탄(JDAM)이 알하사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릴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지닌 정밀직격탄(JDAM)은 알하사카를 박살 내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특전사와 해병대가 영국, 프랑스, 터키에서 제공한 초거대 수송기 A400M 30대에 나뉘어 타고 알 하사카에 떨어진 것은 작전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번 작전 목적 중의 하나인 IS지도자 알 바드리를 생포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