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86화 (286/308)

< 제41장 전설, 그의 아름다운 향기 - 3 >

요즘 들어 대한민국에서 웬만한 뉴스는 아예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최강철의 재기전으로 인해 발칵 뒤집혔던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제2차 남북경협을 위해 실무협상을 추진한다는 발표와 함께 서울과 평양을 잇는 고속도로건설, 신의주까지 연결시키는 철도망 착공계획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다시 한번 벌집을 쑤신 것처럼 난리가 났다.

현재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경제공동구역에 이어 남과 북을 잇는 교통망들이 구성되기 시작한다면 건설경기가 활황을 맞게 되고, 자치구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 순간 북한에 매장되어 있는 자원들을 산업 전 분야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될 경우 통일에 대한 꿈은 점점 현실로 다가설 수 있었다.

남과 북의 국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사고의 간극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통일은 한걸음씩 가깝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동독과 서독이 그렇게 했다.

독일은 어느 날 불쑥 장벽이 무너지며 통일이 된 게 아니라 오랜 세월 자유로운 왕래를 통해 이념과 사상이 가까워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최강철에 대한 뉴스는 쏙 들어갔고 대신 2차 남북경협에 관한 뉴스들이 언론의 상단을 차지했다.

하지만 2차 남북경협에 관한 뉴스들도 정우석 대통령이 연이어 꺼내 든 국방개혁안에 의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 버렸다.

매머드 한 파괴력.

10년에 걸쳐 남북이 병력의 70%를 축소한다는 ‘남북 공동 군사력 감축안’이 국회의 승인을 받는 순간 세계 언론들의 눈과 귀가 온통 서울에 쏠렸다.

연속되는 충격.

60년이 넘도록 적대해 온 남과 북이 경협의 시행과 더불어 점진적으로 병력을 축소해 나가는 데 합의를 하자, 세계는 조만간 한반도가 통일이 될 것이란 예상을 연달아 내놓았다.

세계언론에 대한민국은 보배와도 같은 존재였다.

대한민국은 요즘 거의 매일이다시피 특종을 만들어내고 있었기에 세계언론은 눈만 뜨면 새로운 일이 생겨나는 대한민국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 * *

팡… 파앙. 팡… 파앙… 팡팡팡…….

최강철의 몸에서 강력한 펀치들이 샌드백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그가 전성기 때 주무기로 사용했던 콤비네이션 펀치들이 차례대로 시전되었는 데, 마치 번개가 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정말, 대단하군. 불과 8개월이야. 8개월 만에 전설의 허리케인으로 다시 돌아왔어.”

“겨우 샌드백 두들긴 것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냐?”

“크크크… 그런 소리 나올 줄 알았어. 하지만 말이야, 마이클. 나는 알 수 있다네. 저 펀치가, 그리고 샌드백이 내는 소리가… 너무나 귀에 익숙해. 저 모습은 과거 허리케인이 무적을 구가할 때 냈던 소리들이야.”

“나는 인정할 수 없어. 저런 건 웬만한 선수들이 다 하는 거잖아. 나는 허리케인이 링에서 스파링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도대체 왜 스파링하는 장면은 공개하지 않는 거야? 그걸 봐야 허리케인의 컨디션이 어느 정돈지 알 수 있을 거 아냐!”

“자네 같으면 공개하겠나?”

“으…….”

“허리케인은 옛날에도 훈련장면을 공개하지 않는 거로 유명했어. 그와 상대한 자들이 훈련장면을 공개하며 자신감을 보인 것과 대조적인 행동이었지. 하지만 언제나 승자는 허리케인이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게 무슨 뜻인데?”

“허리케인은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은 채 적을 때려잡는 전략을 마련했지. 상대가 언론에 대고 큰소리를 칠 때도 그는 언제나 적의 숨통을 서서히 조르고 있었던 거야.”

“그 말은 누구보고 들으라는 소리 같구만.”

마이클이 쓴웃음을 지으며 토머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토머스가 웃음을 띤 채 서서히 훈련을 중지하고 호흡을 고르는 최강철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역시 토머스다.

오랜 관록, 그리고 인맥. 특히 허리케인과 그가 쌓아온 인연은 복싱계에서 유명했다.

“이봐 마이클, 저 친구에게서 뭔가 이상한 게 보이지 않아?”

“이상한 거, 뭐?”

“아니 되었네… 이제 우리 돌아 가 볼까?”

“자넨 참 고약하군. 말을 꺼내놓고 그냥 주워 담는 게 어디 있어? 말해 봐. 자넨 저 친구한테서 뭐를 봤단 말인가?”

“마이다스 CKC가 허리케인 소유라는 말을 듣고, 나는 뉴욕 본사에 간 적이 있었어. 거기서 나는 허리케인의 다른 별명인 불사조란 새를 보게 되었지. 정말 기묘한 조형물이었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어떤 것도 부숴버릴 것 같은 패기가 줄줄 흘러나왔는데, 이상하게 그때 이후로 허리케인을 볼 때마다 그 불사조가 겹쳐서 떠올라. 물론 착각일 거야. 불사조란 새가 워낙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진 것이겠지.”

“재밌는 말이군.”

“자, 이만 가세. 디트로이트로 날아가려면 서둘러야 하잖아.”

토머스가 몸을 돌리자 마이클이 그를 따라 문을 나섰다.

디트로이트에서 이틀 후 메이웨더의 인터뷰가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이 경기 때문에 미국의 복싱 전문기자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취재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뿐만이 아니다.

허리케인과 메이웨더.

두 선수의 대결은 금세기 최고의 빅매치로 꼽히고 있었는데, 두 선수가 가지고 있는 전적과 전투력 등이 역대 선수들을 통틀어 지상최강으로 평가되기 때문이었다.

* * *

플로이드 주니어 메이웨더.

96년 프로 데뷔를 한 지 10년 만에 오스카 델라 호야를 무너뜨리고 슈퍼웰터급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무려 5체급을 석권한 영웅이다.

5체급을 석권한 선수들은 많았으나 전승으로 위업을 달성한 건 그가 유일했다.

41전 41승 28KO승.

그중 반 이상이 세계타이틀전이었는데 방금 언급한 오스카 델라 호야를 비롯해서 알바레스, 바스케스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그의 펀치 아래 쓰러져갔다.

압도적인 실력 차.

그는 도전자들을 맞이해서 거의 타격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방어력을 선보이며 타이틀을 지켜왔다.

그의 레프트 숄더롤을 깨트린 도전자는 전무했으며 크로스 암브로킹에 이어지는 카운터 펀치는 역대 최고 수준이라 알려져 있었다.

수많은 복싱전문가가 그를 현존하는 금세기 최고의 복서라 손꼽으며 이미 전설이 되어 있는 최강철과 동급으로 평가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특징은 완벽한 방어막을 가동하며 회피기동을 통해 적의 체력을 저하시키고, 후반전에 야금야금 숨통을 조여가며 처참하게 무너뜨린다는 것이었다.

아웃복싱에도 능했고 인파이팅에도 발군의 실력을 지녔다.

가벼운 입놀림으로 상대를 경멸하는 행동을 수시로 보였으나 복싱 팬들이 그를 미워하지 못한 것은 그의 실력이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상대에 대한 자신의 폭언과 망언을 현실로 만들어내며 복싱 팬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다가도 경기가 끝난 후에는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를 사랑한 것은 그의 복싱이 예술로 승화될 만큼 아름답고 완벽했으며 놀라울 정도로 화려하기 때문이다.

* * *

메이웨더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붉은 입술 사이로 이를 드러냈다.

오늘 그가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은 훈련을 하는 동안 언론에서 떠드는 걸 지켜보며 열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언론에서는 그와 최강철을 비교하며, 언제나 전성기 시절이었다면 최강철이 이길 거란 전망을 하고 있었다.

최강철이 지닌 무시무시한 콤비네이션 펀치와 전승 KO를 거둘 만큼 뛰어난 펀치력, 강력한 인파이팅 능력, 스피드 등을 전부 조합했을 때 충분히 메이웨더를 꺾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최강철은 7년이란 긴 공백 기간을 가졌기 때문에 현재 복싱 전문가들은 그의 우세를 확실하게 점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분이 나빠 견딜 수 없었다.

복싱을 시작하며 최강철이 전설을 써 내려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봤지만, 5체급이란 위업을 달성한 후에는 허리케인이란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그가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만약 전성기 시절의 그와 붙는다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자신에게는 그 누구도 깨트릴 수 없는 방어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허리케인의 강력한 공격력은 완벽한 아웃복싱과 방어력을 지닌 자신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가 인터뷰 장소에 나가자 100여 명의 기자가 미친 듯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메이웨더는 여유 있게 웃었다.

나는 이런 게 좋다.

나를 영웅시하며 찬사를 터트리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환희를 느낀다.

“메이웨더 선수, 이제 시합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훈련은 열심히 하셨습니까?”

“다 늙은 호랑이와 싸우면서 훈련을 하다니요? 물론 시합이 코앞에 있으니 기본적인 훈련은 했지만 나는 그동안 아름다운 미녀들과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겼습니다.”

메이웨더의 말에 기자들이 웃었다.

아니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메이웨더는 최강철과의 시합이 잡힌 이후 디트로이트의 황무지에 캠프를 차리고,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훈련을 해 왔다.

그럼에도 기자들이 웃으며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준 건 그가 흘려 낼 다음 말이 더욱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허리케인 선수는 오래전부터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너무 자만하고 계신 것 아닌가요?”

“자만이라고요? 기자님, 나는 말입니다. 오히려 당신의 그 질문이 자만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허리케인은 아까 말한 것처럼 늙어빠진 종이호랑이에 불과합니다.

다 늙어서 허리를 펴기도 어려울 정도란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훈련을 한다고 나처럼 되겠습니까? 나는 이 시합이 성사된 것 자체를 어이없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정치나 하고 있던 허리케인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내가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이야기했던 건 전성기 시절의 허리케인을 말했던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인터뷰를 자청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언론에서 알고 있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세기의 빅매치라고요?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정말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으니까요.”

“메이웨더 선수는 승리를 장담하시는군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미안하지만 허리케인은 6라운드가 지나는 순간 서 있기도 힘들 겁니다. 아시는 것처럼 저와 상대했던 선수들 대부분이 6라운드가 지나면 기진맥진한 상태로 변했습니다. 그러니 허리케인처럼 늙은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는 이 시합에 출전한 것을 죽는 순간까지 후회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파이트머니는 허리케인 선수가 메이웨더 선수보다 훨씬 많은 1억 2천만 달러를 받습니다. 그만큼 복싱 팬들은 아직도 그의 실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겁니다.

허리케인 선수는 지난 8개월 동안 전성기의 기량을 되찾기 위해 지옥훈련을 해 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메이웨더 선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싸가지 없이 떠드는 메이웨더의 행동에 참지 못하고 토머스가 고함을 질렀다.

허리케인 최강철은 영웅이다.

그가 현역으로 활동하던 20년의 세월 동안 그는 무적이었고 적들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허리케인을 비하한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고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자들의 얼굴을 확인한 후 연이어 소리를 질렀다.

“허리케인 선수는 메이웨더 선수의 뛰어난 방어력을 부술 수 있는 전략도 완성했다고 합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링에서 쓰러지는 건 메이웨더 당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푸하하… 나와 상대했던 자들은 시합 전에 언제나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얼굴을 건드린 자는 아무도 없었소. 두고 보면 알 겁니다. 허리케인 또한 수많은 자중의 하나가 되어 캔버스를 엉금엉금 기어 다닐 테니 말이요.”

* * *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며 걸었다.

이성일의 어깨를 짚은 채 걸었기 때문에, 눈을 감았어도 아무런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광란의 함성.

이 복도를 걸어 나갈 때마다 언제나 들려왔던 관중들의 고함은 심장박동수를 증가시키며 피가 들끓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지난 9개월 동안 대통령은 자신과의 약속을 충실히 지키며 많은 일을 했는데, 지금은 지역균형발전방안을 추진하며 코너에 몰린 상황이었다.

서울과 수도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강력한 반대와 각종 이권에 연루되어 있는 수많은 국민이 대통령의 제안에 반대하며 정책의 철회를 주장했다.

역시 그 선봉에 서 있는 건 야당인 ‘민주연합’이었다.

그들은 제2차 경협안과 군사감축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정부를 도왔지만, 지방분권정책에는 강력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지금은 여론을 등에 업은 채 반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종의 차별화 전략.

국가의 거대한 정책에 대해서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반기능에 대한 날 선 비판을 가함으로서 국민들에게 야당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미국에서 훈련하는 동안 대통령에게서 두 번이나 전화가 왔었다.

아직 시기가 아닌 것 같으니 잠시 철회했다가 다음 정부 때 추진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었다.

시합이 끝나는 대로 돌아가겠다고 대답했다.

끝나는 대로 돌아가서 국민들의 반대여론을 잠재우고 쾌도난마처럼 지방분권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대통령이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는 걸 알지만, 이대로 물러선다면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발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며 광란의 열풍이 고스란히 얼굴로 다가왔다.

“와아, 와아… 허리케인, 허리케인, 허리케인!”

자신을 부르는 소리.

전사의 영혼을 일깨우는 진군가처럼 관중들의 함성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눈을 떴다.

그리고 걸음을 멈춘 채 거대한 빛 속에 들어있는 링을 바라보았다.

“링, 그동안 잘 있었나? 정말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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