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79화 (279/308)

< 제40장 달려라, 대한민국 - 2 >

대한민족당이 긴급 의원총회를 연 것은 대통령이 북한에서 터트린 폭탄의 파괴력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그런 긴장감과 위기감이 의원총회에 참석한 대한민족당의 국회의원들 얼굴에 가득 담겨 있었다.

대한정의당의 약진으로 인해 직전 집권당의 위력이 대폭 축소된 상태에서, 이번 일로 여당까지 약진한다면 추후의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아 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특히, 김태진과 그 추종세력들의 반발은 강력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대한민국에 가했던 폭력과 무시, 그리고 끝없는 증오가 어디 한 둘이었단 말인가.

이번 일은 북한의 정치쇼에 다 늙어빠진 대통령이 속아서 벌어진 일에 불과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북한은 언제 어느 때 뒤통수를 쳐서 또다시 대한민국의 숨통을 죄어 올지 모르는 놈들이었다.

지금은 아사 상태에 있는 인민들을 구한다는 구실로 손을 내밀고 있지만, 만약 경제공동구역의 활성화로 인해 경제가 살아난다면 거기서 번 돈으로 군사력을 증진할지도 몰랐다. 그런 뒤 언제든지 무력도발을 해 올 놈들이었다.

평화통일?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김일성이 주창했고, 정권을 이어받은 김정일의 입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왔던 말이 적화통일이었다.

그런 놈들이 한순간에 평화통일을 한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그랬기에 발언권을 얻은 김태진은 위원들을 향해 울분을 쏟아냈다.

“대통령이 북한에서 한 짓은 반역행위입니다. 우리의 주적이 북한이란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 막대한 돈을 들여 도와주다니요. 이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북한은 괴수와도 같은 놈들입니다.

불과 몇 해 전에 서해에서 총격을 가해와 무고한 장병들이 15명이나 산화했습니다. 이런 놈들과 무슨 평화통일을 한단 말입니까? 안 됩니다.

속으면 안 됩니다. 우리당은 그들이 하는 짓에 강력히 반대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또한, 지금 우리가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지 않으면, 우리 당은 고립무원에 빠지게 됩니다. 믿을 수 없는 북한, 그리고 우리 대한민족당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공동선언을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한참 잘 나가는 경제에도 문제가 생길 겁니다. 만약 북한이 변심을 해서 일순간에 경제공동구역을 폐쇄라도 한다면, 우리 경제는 파탄지경에 빠져들 겁니다. 이런 사실들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한 위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김진태에 이어 의원들이 들고일어나 떠들었다.

당연한 말들이고 너무나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그들의 말 중에서 의원들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만든 것은 현재의 정치 상황이었다.

남북공동선언으로 인해 국민들의 지지율이 치솟고 있는 걸 보면서 대한민족당 국회의원들은 모두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선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차기 총선에서 대한민족당이 설 수 있는 근거지까지 무너질 수 있었다.

그랬기에 대부분 의원은 침묵 속에서 그들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대한민족당을 이끌고 있는 김호명이 천천히 단상으로 나갔다.

그는 이전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 총선참패 후 이전 지도부가 사퇴하면서 이번에 당대표에 오른 사람이었다.

한동안 정치판에서 떠나 야인으로 살다가 명동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그가 국회로 돌아오자, 대한민족당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만큼 거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국민들에게 보여준 정치적 능력과 행동 그리고 철학은 충분히 존경받고도 남았는데, 대한민족당 국회의원들도 상당수가 그를 따랐다.

대권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일신상의 사정을 핑계로 정계를 떠났던 그가 다시 돌아온 건, 대한민족당의 처참한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의원 여러분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씀들이었기에, 저는 앉아 있는 동안 가시방석에 몸을 눕힌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족당 의원 여러분. 여러분도, 저도 그리고 지금까지 상황을 이끌어 온 대통령도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란 사실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께서도 아시다시피 현재 대부분 국민은 대통령의 평화통일 추진방안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반대라니요. 정치는 큰 틀을 보고 원대한 꿈속에서 해야 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야당이라 해서 무조건 반대만 한다면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것은 국가와 국민, 그리고 우리 당에도 치명적인 독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제가 오늘 급히 의원총회를 연 것은 대통령의 공동선언에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도 동참해야 되기에 회의를 연 겁니다. 적극적으로 정부를 도와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나갈 수 있도록, 우리도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께서 우리당을 인정해 줄 것입니다. 집권당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대한정의당이 국민들께 지지받는 이유를,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배워나가야 합니다.

당리당략, 이런 거 과감하게 포기합시다. 지역주의, 빈공, 우익, 이런 거로만 지지자들을 규합해선, 절대 대한민족당이 작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우리, 국가를 위한 정책으로 승부합시다. 잘한 건 도와주고 잘 못 한 건 과감하게 비판하며 국민들께 신뢰를 얻어갈 때, 대한민족당은 건전한 보수를 대표하는 정당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의원 여러분, 새롭게 마음을 되새기고 미래를 향해 전진해 나갑시다!”

* * *

편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그래 맞아.

평범한 인간은 평범한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거야.

나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지.

퇴근하고 돌아가면 마누라가 지어준 따뜻한 밥을 먹고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생에 실패했고 루시퍼의 도움으로 다시 이 자리에 돌아왔잖아.

나는 이제 평범하지 않았고 평범하게 살려 해도 그리될 수가 없어.

이미 나는 괴물이 되어 있었으니까…….

* * *

남북공동성명에 대한 대한민족당의 지지선언은 의외였으나 국민들의 여론을 통합하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반공과 보수, 우익을 대표하는 대한민족당의 행동에 국민들이 두 팔을 벌려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들이 반대했을 경우 보수언론과 상당수의 국민이 동참하면서 여론이 분열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과 언론에서는 대승적인 행보를 걸은 대한민족당의 지지선언을 특종으로 보도했다.

물론 그 와중에 김태진을 비롯해서 7명의 골수 우익의원들이 탈당을 결행했지만, 대한민족당은 향후 당리당략을 생각하지 않으며 오로지 국가를 위해 일할 것이란 당의 의지를 거듭 밝혀 국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최강철은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여 통일부 장관에 올랐다.

일복이 터졌다.

그가 해야 할 일은 한둘이 아니었는데, 대통령이 전권을 맡겨놓았기 때문에 각 부처의 장관들과 수시로 협의를 하면서 경제공동구역에 관한 일들을 추진해 나가야 했다.

별도로 여러 개의 전담팀을 만들었다.

먼저 경제공동구역 추진을 위한 마스터플랜 작성팀을 만들었고 북한과의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서울과 평양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팀, 추진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북한과의 실무협상팀, 경제공동구역 참여기업을 모집하는 테스크포스팀 등이 속속들이 구성되었다.

양측이 경제공동구역을 만든다는 원칙에 합의했지만, 선행되어야 할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병력의 철수가 우선되어야 했다.

후퇴한 부대의 주둔지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방어전략들도 새롭게 준비되어야 했기에 국방부는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강철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국방부 장관의 문제 제기를 단칼에 끊으며, 무조건 1년 안에 철수해야 된다는 것을 거듭 주장했다.

그것은 북한 쪽에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다시 북으로 올라가 김정일을 만난 최강철은 난색을 표하는 그에게 약속을 지키라는 엄포를 놓았다.

김정일은 웃었다.

그리고는 최강철은 향해 자신보다 훨씬 추진력이 좋다며 술을 권해왔다.

1년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양국의 병력이 완벽하게 휴전선에서 물러난 지 꼭 일주일 되는 날, 피닉스 건설팀이 각 천만 평으로 구성된 5개 경제공동구역으로 진입했다.

서해와 중부 쪽에 4개의 지구가. 동해 쪽은 1개의 지구가 계획되어 있었는데 양쪽에서 샅샅이 지뢰 제거작업을 했지만, 위험이 상존했기에 극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당연히 발주는 정부에서 했고 피닉스 건설이 단독으로 수의계약에 참여했다.

일종의 특혜였지만, 그 이면에는 피닉스 그룹계열사가 먼저 경제공동구역에 공단을 세운다는 조건이 있었고, 이것이 특혜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모험을 하는 피닉스 그룹의 희생에 대해 정부는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도 그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정부에서도 언론을 통해 이런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렸기 때문이었다.

언제든지 참여하라.

참여하는 기업에는 엄청난 특혜를 줄 테니 망설이지 말고 참여하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선뜻 참여하겠다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업은 이익이 우선되어야 움직이는데 경제공동구역으로의 입성은 이익보다 위험과 불안이 훨씬 컸기 때문이었다.

피닉스 건설팀의 공단부지 조성작업은 6개월 만에 끝났다.

주로 평야 지대를 지구로 선정했고, 피닉스 건설 쪽에서 전력을 다해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피닉스 그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자를 비롯해서 20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피닉스 그룹은 공단마다 그룹사를 배정해서 공장을 지었다.

피닉스 그룹의 계열사는 단순히 1개의 기업이 아니라 그 자체가 움직이는 공룡이었다.

당장 피닉스 전자만 해도 그 휘하에 100여 개의 협력사가 있었고, 자동차와 중공업 그리고 조선과 화학들도 마찬가지였다.

피닉스 그룹 사장단들의 행동은 일사불란했다.

경제공동구역를 추진하는 사람이 실질적인 그룹 회장, 최강철이었기에 그들은 통일부에서 계획한 마스터플랜을 맞추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였다.

문제는 북한 근로자들이 머물 아파트를 짓는 것이었다.

워낙 거대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부 예산이 부족했다.

그때 최강철이 그것을 해결했다.

피닉스 건설이 먼저 건설한 후 정부에서 여력이 생겼을 때 갚는 방안이었다.

다른 건설사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신도시 규모의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에, 외상으로 짓게 된다면 살아남을 건설사가 한 군데도 없을 것이다.

피닉스 건설의 최기문 사장이 장관실로 찾아온 것은 북한 근로자들이 살게 될 아파트 신축계획을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사장님, 어서 오세요. 요즘 고생이 많으시죠?”

“아닙니다. 장관님.”

“차는 뭐로 드릴까요?”

“시원한 거로 주십시오. 워낙 급하게 뛰어 왔더니 목이 마릅니다.”

“하하… 그러시죠.”

그를 따라 들어온 비서는 최기문 사장의 말을 듣고 바로 나가더니 시원한 주스를 가지고 들어왔다.

주스를 순식간에 마셔 버리는 걸 보니 목이 말랐긴 말랐던 모양이었다.

“그래, 총 소요금액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도시별로 1조씩은 잡아야 할 겁니다. 그리니 총 5조는 봐야지요.”

“정부에서는 올해 얼마나 줄 수 있다고 하죠?”

“어제 들어가 보니 1,000억 정도는 가능하다고 하네요. 터무니없는 돈입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들어보니 내년부터는 5,000억 수준은 편성할 수 있다더군요.”

“그러면 뭐합니까. 저희가 잡은 건 이윤을 전부 제외하고 산정한 금액입니다. 이윤까지 따지면 정부는 우리한테 매년 5,000억씩 15년을 줘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래도 사장님은 남는 장사잖습니까. 대금 지불은 마이다스 CKC에서 나가는데 뭘 그러세요.”

“하하…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니까요.”

“어디 봅시다.”

최기문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자, 최강철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사실이다.

피닉스 건설은 마이다스 CKC에서 자금지원을 받기 때문에 건설 자체에서는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는 말도 맞다.

어차피 건설에서 번 돈은 다시 마이다스 CKC로 들어가게 되어 있으니 그 돈이 그 돈이다.

최강철이 손을 내밀자 최기문 사장이 가지고 온 도면을 펼쳤다.

거기엔 설계사가 만든 단지 계획도와 아파트 구조도가 담겨 있었는데 초안 수준이었다.

도면들을 살펴보던 최강철의 표정이 슬그머니 굳어진 건 아파트 구조가 너무 형편없기 때문이었다.

북한 근로자가 산다는 선입감 때문에 최대한 싸게 설계한 것이 분명했다.

“사장님, 이건 안 됩니다.”

“안 되다니요?”

“아파트의 구조가 형편없고 단지 조성계획도 엉망입니다. 다시 준비하세요.”

“장관님, 그러면 금액이 올라갑니다. 근로자들이 살 건데 무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도 정부는 한계에 부딪힌 상황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린 돈을 받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요. 생각해 보세요. 앞으로 고속도로에도 예산이 들어가야 하고, 철도도 계획하고 있잖습니까. 거기에 항만과 추가적인 공단조성도 필요할 겁니다. 대통령이 장관님을 볼모로 잡은 건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장관님께서 모르고 승낙한 건 아니겠지만, 마이다스 CKC의 자금 여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너무 희생이 커집니다.”

“이 아파트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꿈의 궁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꿈과 희망을 키워나가며 자유를 몸에 익혀 나가야 되니까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음…….”

“사장님, 돈이 더 들어도 좋습니다. 그러니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세요. 이곳이 그들에게 낙원이 되도록 만들어 줘야 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