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0장 달려라, 대한민국 - 1 >
대통령 일행이 방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미 모든 언론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역사적인 일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온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함이었다.
이걸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생방송으로 국민들에게 전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늙고 지친 모습의 대통령을 향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인터넷에서는 대통령이 구국의 결단을 내려, 한민족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며 금번 공동선언문에 대한 지지 선언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중이었다.
청와대에 돌아온 대통령은 춘추관에서 방북 보고회를 겸한 담화문 발표의 시간을 가졌다.
벌떼처럼 몰려든 기자의 숫자는 춘추관을 전부 채우고 남을 정도였는데, 그중에는 외신기자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담화문의 주 내용은 이번 성과를 도출하기까지의 과정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대한 용기에 대한 감사 인사가 들어있었고 선언문을 이행하기 위한 다짐과 의지들로 채워졌다.
담화문 발표가 끝났음에도 대통령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워낙 힘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기에 기자들 스스로 대통령이 쉴 수 있도록 질문을 자제해야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대통령은 먼저 기자들의 질문을 받겠다며 자리를 지켰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기자들도 손을 들지 않으면 금방 죽을 사람들처럼 일어섰다.
“대통령님, 저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님의 노고에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셨는데요.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사전교감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닙니다.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없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종전선언과 향후의 무력도발, 점진적인 평화통일 의지는 전부 정상회담과정에서 협의된 것입니다.”
“분명 그런 배경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일각에서는 북한 쪽에 막대한 현금을 지불했다는 의혹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죄송합니다만, 그것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십시오.”
불쑥 나선 보수언론의 기자가 소리를 지르자 대통령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태도에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보다 더 화가 난 건 이곳에 몰려 있던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이곳이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장소라는 걸 잊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터트렸다.
“아, 씨발. 그걸 질문이라고 해. 당신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야!”
“고생하고 돌아오신 대통령님께 수고했다는 말은 못 할망정 무슨 개소리야!”
“저 씨발놈들 또 지랄이네.”
웅성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몇몇 보수언론들이 국민들의 알 권리 어쩌구 하면서 반론을 제기했지만, 터져버린 다른 기자들의 분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 소란을 일시에 잠재운 건 바로 대통령이었다.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처음 북한 쪽이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과정에서 지원을 요청한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북한의 사정이 워낙 심각했고 정부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었지만, 선언문과 관련해서 어떤 선지원도 없었다는 걸 지금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그럼 갑자기 북한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뭔가요?”
“바로 최강철 의원의 활약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회담 결과는 최강철 의원이 김정일 위원장과 독대를 통해 이끌어 낸 것입니다. 경제 공동구역의 제안도 최강철 의원의 작품이었으며,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해낸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통령의 폭탄선언에 모여 있던 300여 명의 기자들이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너무 놀란 그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적인 정치적 성과를 이끌어낸 대통령을 칭송하느라 난리가 난 상태였는데, 그 당사자가 자신의 역할이 아니었다며 고해성사를 하고 있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기자다.
그것도 언론 중에서 가장 민완들만 모인다는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었으니 정신을 차리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통령님, 저희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최강철의원은 야당 국회의원으로서 그런 것을 실현하기에는 적절한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열정을 다해 추진해도 성공이 불투명한 경제 공동구역을 최강철 의원이 제안했다고 김정일 위원장이 받아들였다는 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최강철 의원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재계 서열 1위인 피닉스 그룹의 실질적인 총수가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그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자금동원력이 뛰어난 마아다스 CKC의 실질적인 주인입니다. 저는 CKC가 최강철 의원의 영문 이름 약자라 알고 있습니다.”
“허억!”
이번에는 국내 기자들 뿐만 아니라 외신기자들도 비명을 질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세계 복싱사를 뒤흔들어 버린 복싱영웅 최강철이, 세계 경제에서 가장 강력한 자금동원력을 지닌 마이다스 CKC의 주인이란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사실을 말한 이가 바로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기 때문이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란 건 잘 압니다. 하지만, 최강철 의원의 실체는 사실입니다. 최강철 의원이 총선에 나섰을 때 재산내역을 모두 공개하지 않은 건, 모두 제 의견이었습니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최강철 의원이 커다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상황을 국민 여러분께서 이해해 주실 거라고 믿으며 만약 어떤 법적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최강철 의원 대신 제가 모든 책임을 질 것을 약속드립니다.
”
“대통령님…….”
미쳤다. 미친 거다.
대통령도 미쳤고 기자들도 미쳐갔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대한민국을 폭발 직전까지 몰고 갔는데, 최강철에 대한 일들이 대통령의 입으로 직접 나오자 기자들은 완전히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다.
최강철을 통일부장관에 임명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부탁했다는 건 충격에 끼지도 못했다.
그런 건 최강철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충격은 그로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은 현재의 단임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점을 열거하며 조만간 국민투표를 통해 연임제 시행을 위한 개헌까지 언급했던 것이다.
완전히 온 천지가 지뢰밭인 것처럼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오늘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완전히 새롭게 변신시키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고강도 폭탄을 사정없이 터트리고 있었다.
* * *
“하시겠습니까?”
“대표님 생각이 어떠신지 물어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최강철의 대답에 정우석 대표가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북한에서 돌아온 최강철은 대통령 일행과 헤어져 대한정의당 당사로 들어와 대통령의 담화문을 같이 지켜보는 중이었다.
당 대표 사무실에는 원내총무를 비롯한 당의 지도부가 전부 모여 있었는데 최강철을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은 귀신을 보는 것 같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최강철이 피닉스 그룹을 통제하고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가 마이다스 CKC의 실질적인 지배자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 정우석 대표가 유일했다. 그래서 방에 있는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연속적으로 통일부 장관 제의와 개헌까지 터트리자, 분위기는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졌다.
“최 의원님께서 통일부 장관을 맡으면 지금의 화해 무드를 잘 이끌어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집권당에 너무 많은 힘이 실린다는 것이죠. 이제 대선이 2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정우석 대표의 말에 최강철이 머리를 끄덕였다.
무슨 소린지 안다.
대한정의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정당으로서 정권을 잡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권을 잡아야 당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고, 당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지금 대통령이 만들어 낸 대단한 성과로 인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폭발적으로 올라가는 상황이었고, 집권당의 인기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정우석 대표를 비롯해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머릿속은 무섭게 돌아가고 있었다.
당장 정우석 대표만 해도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중이었다.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대한정의당을 5년이나 이끌었기 때문에 대부분 국민은 그를 가장 강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최강철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면 그는 대권의 꿈을 내려놓고 2선으로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가 아무리 신망이 있다 해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할 뿐만 아니라, 통일부 장관이 되어 평화통일의 기틀을 다져가는 최강철과 싸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분열이 생길 가능성이 컸다.
정우석 대표는 그 특유의 강직함과 청렴성으로 많은 의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장 이곳에 모인 지도부에도 그를 추종하는 사람이 세 사람이나 있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정우석 대표의 최측근인 박정환이 결연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다음 대선에서는 반드시 우리 당이 정권을 잡아야 합니다. 벌써 잊으셨습니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싸워나간다는 우리의 의지를 말입니다. 최 의원님께서 통일부 장관이 되어 경제 공동구역을 직접 이끈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그러니 절대 대통령의 제의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안될 게 뭐가 있습니까. 대한정의당의 의지는 창당 이래 오직 하나였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할 뿐, 당리당략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것이란 말입니다. 최 의원님께서 통일부장관이 되어 일하는 것은 분명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입니다. 나는 최 의원께서 대통령의 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나선 건 최강철의 최측근인 이병창이었다.
그가 나선 것도 한가지 생각에 대한 연장선에 있었다.
바로 최강철이 차기 대통령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공식화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최강철 스스로 정치의 전면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 속에 숨겨 놓았던 말들을 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바뀌었으니 이제 마음껏 치고 나갈 필요성이 있었다.
정우석 대표가 당원과 국민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으나, 최강철이 나선다면 상황은 백팔십도로 변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정우석 대표는 주인 없는 곳에서 주인행세를 한 손님이나 다름없었다.
대한정의당을 만든 사람은 최강철이었고 대부분 의원이 그를 추종하고 있으니 이건 싸움 자체도 안 된다.
더군다나 국민들의 호응도 또한 마찬가지다.
최강철은 이제 단순한 복싱선수 출신의 국민 영웅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경제인으로서 대한민국을 발전시켜나갈 최적의 적임자였다. 그러니 국민들은 최강철에 대한 선택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병창이 드디어 포문을 열자 최강철의 최측근인 허윤회, 지석훈, 박훈도 등이 벌떼처럼 일어나 그 당위성을 역설했다.
중간에 정우석 대표 계열의 인사들이 반론을 제기했으나 숫자에서 한참이나 부족했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격렬한 토론이 이어지는 걸 보며 최강철은 침묵을 지켰다.
그건 정우석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정우석 대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표정이 편안하게 변해갔는데,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 그는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직접 말을 하지 않았지만, 여기 모인 상당수의 의원이 자신을 보곤 부끄러운 줄 알라며 질타를 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었던 그에게 거대정당의 대표까지 오르게 만들어 주었고, 평소의 소신대로 정치를 할 수 있게 해준 사람이 바로 최강철이었다.
그런 거지.
주인 없는 곳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자신이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정치를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을, 괜한 욕심으로 분란을 일으켰다는 자괴감이 그의 얼굴에 담겨 있었다.
언제까지나 침묵을 지킬 것 같았던 최강철의 입이 열린 것은 이병창이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이 의원님 자리에 앉으십시오. 이곳은 싸우기 위해 모인 자리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의견이 갈린 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핵심을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정치는 말입니다. 개인의 욕심과 당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순간 국민들에게 외면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진정으로 국민에게 존경받는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희생과 배려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통일부 장관을 맡는다고 해서, 차기 대선을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향후 무섭게 발전해 나갈 대한민국을 구태의연한 집권당의 능력으로는 이끌어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약속한 것처럼 연임제가 시행되면 무조건 대한정의당이 정권을 가져와야 합니다. 그래야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적임자로 정우석 대표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직과 청렴의 대명사인 정우석 대표님이 차기 대통령직을 맡고, 유능한 인재들이 뒤를 받친다면 21세기는 대한민국의 것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영광스러운 그날을 꿈꾸며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정우석 대표님을 도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