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72화 (272/308)

< 제38장 용이 여의주를 무는 방법 - 4 >

“뭐랍니까?”

수화기를 내려놓자 당대표인 정우석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사무실에는 최강철을 따라 정우석과 원내총무인 서정욱이 들어와 있었다.

“축하인사였습니다. 그리고 내일 청와대에서 저를 보자고 하는군요.”

“청와대로요?”

“그렇습니다.”

“이유는요?”

“그냥 들어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최 의원은 이제 일반인이 아니에요. 일국의 국회의원이란 말입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국회의원을 보자고 할 때는 당연히 이유를 밝혀야 되는 겁니다.”

정우석의 언성이 올라갔다.

하지만 목소리만 높아졌을 뿐 음성에는 힘이 없었다.

대통령이 그걸 몰라서 그냥 들어와 달라고 말했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치 10단인 대통령이 최강철을 보자고 했을 때는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표님,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일단 만나서 들어보겠습니다. 당사에 계시면 제가 나오는 대로 보고드릴 테니 기다려주십시오.”

“그래 주시겠습니까?”

“저는 대한정의당 소속의 국회의원입니다. 그런 제가 대통령과 만난 결과를, 대표님께 보고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고맙소.”

“대통령께서는 저를 극비리에 부르셨으니 이 사실은 당분간 비밀로 해 주십시오!”

* * *

다음날.

최강철은 운전기사만 대동하고 청와대로 향했다.

그가 청와대로 간 시간은 정확히 12시였는데, 대통령이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집무실이 아니라 식당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격식을 완전히 파괴한 행동이었는데, 최강철이 식당으로 들어서자 오직 대통령만 자리에 앉아 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통령님, 조금 늦었습니다.”

“늦긴, 내가 일찍 와서 기다렸을 뿐일세. 최 의원 얼굴이 거칠어졌구만. 선거가 원래 그런 거지. 멀쩡한 사람도 환자로 만들어 버리거든. 하여간 당선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자, 앉게.”

대통령이 최강철을 자신의 맞은편에 앉힌 후 눈치를 보내자 비서실장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돌려 식당을 빠져나갔다.

또다시 독대다.

“우리 먹으면서 이야기할까? 청와대 된장찌개가 상당히 맛있다네. 어여, 먹어 봐.”

“예.”

최강철이 대통령의 성화를 받으며 숟가락으로 된장찌개를 떠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된장찌개가 아무리 맛있어도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건 최강철을 부른 대통령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대한정의당이 무려 123석을 차지해서 제1당이 되어 버렸더구만. 우린 보수 쪽보다도 의석수가 적어서 꼴찌고. 그러고 보면 참 인생은 아이러니해. 작년 말까지만 해도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지지율이 무려 60%가 넘었는데, 벤처버블이 터지면서 내 지지율이 30%를 겨우 넘고 있어. 대통령 지지율도 바닥, 국회의원 의석수도 꼴찌. 이래서 국정운영이 제대로 될지 몰라. 안 그래?”

“저는 대통령님이 현명하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봐 최 의원.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대한정의당은 자네 건가?”

대통령의 노안이 최강철을 향해 쏘아졌다.

그동안의 끊임없는 의문을 뒤로 한 채 참고 참았던 그의 인내가 결국 버티지 못한 것 같았다.

삼성 총수의 말을 듣고 비밀리에 최강철과 대한정의당의 관계를 조사했으나 수면 위로 떠 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거의 확신에 가까운 심증이 굳어졌다.

최강철이 그동안 해 왔던 일들을 감안한다면 갑작스럽게 정치판을 흔들고 있는 대한정의당의 존재도 그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최강철은 담담히 대통령의 노안을 마주 보며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대통령의 노안을 바라보자 갑자기 거짓말을 하기 싫어졌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을 이끌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도 워낙 철저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그와 대한정의당의 연관관계를 알아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대통령에게만큼은 사실을 말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정의당을 기획한 것은 제가 맞습니다. 당연히 자금지원도 제가 했지요. 그러나, 대통령님께서 생각하신 것처럼 대한정의당은 제 것이 아닙니다.”

“자세히 말하게.”

“아시겠지만 대한정의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정치적 소신이 뚜렷하고 부정부패와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제가 가지고 있는 자금 때문에 대한정의당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당의 이념에 동조했기에 기꺼이 참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대한정의당은 제 것이 아니라 당원들 전체의 것입니다.

“음…….”

최강철의 대답에 대통령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시작된 침묵.

그게 그 이야기다.

그러나 당연한 그 이야기가 최강철의 한 마디에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변했다.

주인이 주인행세를 하지 않겠다면, 주인이란 존재의 가치가 희미해지기 때문인데 대통령은 최강철의 표정을 한참 살피다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최 의원, 자넨 나를 많이 비웃었겠구먼.”

“그게 무슨… 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이번 선거에서 나는 아픈 손가락들을 잘라내지 못하고, 또다시 그들을 의원으로 만들어 국회로 보냈네. 이제 곧 죽을 늙은이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게지. 이번 선거에서 진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욕심도 거기에 한 몫 단단해 했을 거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집권당의 공천 파동을 직접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욕심과 실수를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가 세 가지 있네.”

“말씀하십시오.”

“나는 자네가 대한 정의당의 주인이 아니라 해도 결정권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그렇지 않은가?”

“말씀을 듣고 대답하겠습니다.”

“역시 대단해…. 그리고 신비로워.”

대통령의 노안에서 눈웃음이 떠올랐다.

불과 37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눈앞에 있는 최강철은 노회한 정객처럼 자신의 질문을 교묘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우리 집권당은 82석에 불과하네. 그 인원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그래서 말인데, 최 의원. 대한정의당과 우리가 통합을 하면 어떻겠나?”

어이없는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집권당에서 통합을 요청한다는 것은, 많은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차기 대권에 대한 향방도 대한정의당 쪽으로 유리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컸다.

그랬기에 대통령의 통합제의는 파격적이었고 전격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잠시 놀란 얼굴을 만들었던 최강철은 천천히 허리를 펴면서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통합은…. 그건 안 됩니다.”

“왜 안 된단 말인가?”

“저희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과 집권당의 이상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람된 말씀이나 집권당의 국회의원중 상당수가 저희와 같이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저희는 그런 자들과 결코 함께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더러운 물과는 가까이하지 않겠단 말이구먼.”

“죄송합니다.”

“아니… 이해해. 어차피 그런 욕을 얻어먹어도 될 만했으니까. 그렇다면 최 의원, 나를 도와주기는 할 텐가?”

“대통령님께서 국가를 위해 바르게 추진하는 정책이라면 대한정의당은 언제든지 협조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잖습니까.”

“고맙구먼.”

아쉬움이 남았지만, 마지막 대답을 들은 대통령의 얼굴에서 웃음이 돌아왔다.

그가 대한정의당을 부러워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지금까지 대한정의당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야당답지 않게 정부가 추진하는 일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왔다.

물론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칼날 같은 비난과 반대를 서슴지 않았지만, 민생과 관련된 현안 사항들은 그들의 도움으로 무리 없이 추진할 수 있었다.

당리당략보다는 국가를, 개인의 욕심보다는 사회의 이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대한정의당의 행동은 집권당을 오랫동안 이끌던 대통령으로서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속의원들의 출신성분에서 차이가 났고, 당의 기반과 태생이 한정되어 있기에 만약 그가 그런 이상향을 추구했다면 당은 사분오열로 찢어졌을 것이다.

“그럼 이제 두 번째 이야기를 하지.”

“예, 대통령님.”

“두 달 후에 미국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양해각서를 변경할 생각이네. 내가 요청했어. 현재의 180km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주장했네. 그랬더니 실무협상 과정에서 이 자들이 300km까지는 용인해 주겠다고 하더구만.”

“마치 적선이라도 해주는 태도군요.”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어.”

“무슨 복안이라도 계셨습니까?”

“아닐세, 내가 대답을 하지 않은 건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야. 비룡의 주인은 자네 아닌가. 그러니 자네의 의견을 들어야지.”

“대통령님, 비룡의 주인도 제가 아닙니다. 비룡의 주인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허허…. 이 사람. 무슨 소린지 알겠어. 그러니 말해 봐. 얼마가 적당한가?”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무턱대고 우리가 원하는 바를 주장하면 미국이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리, 그리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합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그 거리가 바로 800km입니다.

북한 전역을 미사일 사정권에 둘 수 있는 거리를 제안한다면 미국도 끝내 반대하지 못할 겁니다.”

“중국은? 그놈들은 자기네 영토가 사정권에 들어가는 걸 극히 싫어할 텐데?”

“중국마저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양해각서는 우리가 스스로 미국에 바친 조공입니다. 그러니 미국만 설득시키면 됩니다.”

“중국이 나선다면?”

“버텨야죠. 중국은 ICBM까지 가지고 있는 놈들입니다. 자기들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만 안 된다는 이유가 뭡니까. 대통령님, 이번에 붙을 때 확실하게 붙어야 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우린 또다시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할 테니까요.”

“음… 알았네. 내가 무슨 수를 쓰든 관철시키지. 미국에 있는 내 친구들을 전부 동원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리고 클린턴 불알을 잡고 흔드는 한이 있더라도 800km로 변경시키겠네.”

“대통령님 그러기 위해서는 보수세력을 먼저 설득시켜야 합니다. 야당의 총재를 미리 만나실 필요성이 있습니다.”

“자네는 그들이 반대할 거라 생각하는가?”

“야당이니까요. 그들은 대통령님의 정책이 호전적이라며 국민들의 불안을 조성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음…….”

“대통령님, 국가를 위하는 일인 만큼 대국적으로 접근하셔야 됩니다. 야당 총재에게 미리 상황을 설명해주고 부탁을 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그들도 받아들일 겁니다.”

“알겠네. 내 그렇게 하지.”

“의견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사람아. 고마운 건 난데, 자네가 왜 고마워해.”

“하하, 저는 엄연히 야당 의원이잖습니까. 정권의 수장인 대통령께서, 일개 야당 의원의 의견을 들어주셨으니 당연히 고마워해야죠.”

“험….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구만.”

대통령이 짐짓 어깨를 으쓱하며 최강철의 인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들어 있는 웃음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천천히 대통령의 얼굴이 변한 것은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였다.

“자네 벤처버블 사태 때 엄청난 돈을 쓸어 담았더구만?”

“조금 벌었습니다.”

“얼마나 벌은 건가?”

“9조 정도 됩니다.”

“허어, 이 사람은 화폐단위가 다르구먼. 코스닥에서 돌고 돌았던 돈이 전부 자네 수중으로 들어간 모양일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돈도 비룡에 쏟아부을 작정인가?”

“아닙니다. 그 돈은 피닉스의 미래사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들었어. 그런데 난 하나도 모르겠더구만. 실무자들 얘기로는 그중 하나만 성공해도 세계를 놀라게 할 거라던데 사실이야?”

“예, 그렇습니다.”

“휴우… 도대체 자네는 그 끝이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일세. 정말 대단해.”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미래사업에 대한 구상은 피닉스 그룹의 연구진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아, 내가 귀머거린 줄 아나. 대부분 전략이 자네에게서 나왔다던데 그럼 그게 거짓 보고란 말이야?”

“저는 그냥 아이디어만 줬을 뿐입니다.”

“쯧쯧쯧… 말이나 못 하면…….”

“그런데 갑자기 제 사업 이야기는 왜……?”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내가 떠들었기 때문에 번 돈이니, 자네가 번 돈의 절반은 내 것일세. 그렇지 않아?”

“마지막 하고 싶은 말씀이 그거였습니까?”

“맞아, 왜 놀랐나?”

“더 듣겠습니다.”

최강철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표정이 자신보다 먼저 눈에 띄도록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절대 먼저 입을 열지 않겠다는 듯 최강철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금년 안에 나는 북한의 국방위원장 김정일을 만날 거야. 그때 나는 자네를 데리고 갈 생각일세.”

“저를 말입니까?”

“김정일이 원하는 게 많더구만. 지금 물밑에서 실무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니 곧 일정이 잡힐 걸세. 최 의원! 자네, 내가 벌게 해준 돈으로 그자에게 선물을 준비해 주게.”

“어떤 선물 말입니까?”

“북한이 스스로 개방할 수 있는 빌미. 방법은 자네가 알아서. 이해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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