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71화 (271/308)

< 제38장 용이 여의주를 무는 방법 - 3 >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자 민강호는 화려하게 포문을 열었다.

종로를 근거로 무려 4선에 성공했고 차기 대선주자라는 프리미엄을 지녔기에 그를 돕는 자들은 부지기수였다.

인맥과 조직, 그리고 자금력이 뛰어나다.

민강호는 종로에 있는 사거리란 사거리에 전부 홍보부스를 설치하고, 아르바이트생들을 동원해서 율동과 춤 그리고 노래를 선보여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더불어 제1야당의 간판답게 당차원의 지원도 대단했다.

당대표는 물론이고 당의 수뇌부가 전부 동원되어 종로를 찾았는데, 반드시 이곳을 수성해야 된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만큼 종로가 이번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컸기에 제1야당은 전력을 다해 민강호를 도왔다.

지금 이대로의 기세라면 천하의 최강철이라 해도 충분히 이길수 있을 것 같았다.

* * *

최강철은 자신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벽보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유세장으로 향했다.

그의 나이 37살.

이제 정치에 입문해서 경륜을 쌓아야 할 나이였으나 곧바로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니, 적들에겐 호적등본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는 소릴 들을 만했다.

그러나 최강철은 자신의 나이에 대해서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정치를 잘한다면 국회에 전부 노인네들을 데려다 놔야 할 것이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유세장으로 들어서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이번 유세장은 호원중학교 운동장이었는데, 사람들로 가득 차서 남은 사람들이 도로까지 밀려날 지경이었다.

옛날이라면 몰라도 최근 들어 국회의원선거에서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유세장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총선에 출마한 사람들의 지지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운동장의 절반을 채우기도 어려웠고, 그마저 한 사람씩 유세가 끝날 때마다 우르르 사라졌다. 결국, 마지막엔 텅 빈 운동장에서 유세하는 목소리만 공허하게 맴돌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최강철은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숫자는 대충만 봐도 5,000명을 훌쩍 넘었고 거의 모든 언론사가 취재를 하기 위해 달려왔다. 그 때문에 호원중학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제일 먼저 유세를 시작한 집권당 후보부터 현 국회의원인 민강호, 다른 후보들은 정해진 시간을 전부 활용하며 종로의 발전에 대해 침을 튀겼다.

국회의원이 되면 종로가 더 잘 살 수 있도록 갖가지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각오를 새기며,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간절히 호소했다.

하지만 최강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단상에 올라 이런 말을 했다.

“종로구민 여러분, 저는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는 왜 아직도 한심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나라의 정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국회의원은 단순히 지역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한 몸을 과감히 희생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로구민 여러분. 사대주의가 뭔지 아십니까? 사대주의는 자신보다 강한 자를 숭배하고 따르는 썩어빠진 정신을 말합니다. 저는 정치를 시작하면서 절대 사대주의의 달콤함에 빠져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싸우겠습니다. 강한 자들을 향해 옳은 일을 주장하고, 그들의 압박에 견디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노동자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고통받아 온 서민들, 그리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울 것입니다. 이것이 저와 대한정의당이 추구하는 정치의 모습입니다.

종로구민 여러분. 그리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정치를 바꿔야 합니다. 당리당략을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정치는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저를 국회에 보내주신다면 그 선봉에 제가 서겠습니다. 선거 때만 국민을 모시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진정으로 봉사하는 국회의원의 참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설이 끝난 후 잠깐 정적을 유지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벼락같은 연호가 터져 나왔다.

허리케인, 허리케인…….

5,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함성.

마치 경기장에 들어온 관중처럼 그들은 최강철을 향해 끝없이 함성을 보내고 있었다.

* * *

최강철은 민강호의 끊임없는 네거티브 전략에 대응하지 않았다.

그의 더러운 전략에 맞서 싸우면 똑같이 개똥밭에서 뒹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최강철과 대한정의당 후보들은 다른 정당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전략을 수립해서 총선의 판도를 이끌어나갔다.

단순히 출마지역의 작은 일들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하는 커다란 정책들을 개선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대학입시제도, 병역제도,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방안, 외국자본의 투자유치, 대통령 중임제 등 대한민국에 산재되어 있는 문제점들을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각오였다.

신선함.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대한정의당의 행동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오랜 세월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뭔가를 얻어왔던 사람들은, 대한정의당이 내세운 국가발전전략에 대해 차가운 냉소를 보냈다.

* * *

최강철이 가는 곳마다 몰려든 인파로 인해 차량정체가 일어났다.

그만큼 최강철이란 존재는 대중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종로구민들의 최강철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다른 출마자들이 목이 터지라고 소리를 질러도 꿈쩍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최강철만 움직이면 환호를 지르며 몰려들었다.

이곳에서 4선을 지낸 민강호는 물론이고, 5명이나 되는 출마자들은 그런 현상을 보며 아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국민영웅이라 불렸지만 막상 선거판에 들어서면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정치는 사람들의 야망, 이익, 호의, 증오 등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 괴물이었으니. 최강철이 지닌 복싱영웅이란 단순한 사랑과 환상 정도는 깰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사랑과 환상은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 이젠 어떻게 해 볼 도리조차 없었다.

거기에 정치초년병이기 때문에 조직과 인맥 쪽에서 상대가 안 될 것이란 판단도 완벽하게 빗나갔다.

총선을 맞아 최강철을 돕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숫자가 1,000명을 훌쩍 넘었다.

엔젤 재단에서 성장해 성인이 된 청년과 대학생이 주축이 되었고, 서울대 경영학과 동문회에서도 그를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사회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 거의 매일 찾아와 지원 유세를 했기 때문에 종로는 최강철의 지지자들이 입은 파란 옷들로 넘쳐났다.

가히 압권이다.

어디에도 최강철이 있는 것 같았다.

단순히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아니었으니, 최강철을 부르짖는 목소리와 행동에서 진심이 담겨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붙들었다.

정우석을 비롯해서 정치권 그리고 전문가들이 걱정했던 당초 예상과 완벽하게 다른 최강철의 일방적인 페이스였다.

* * *

민강호는 측근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선거캠프에 모였다.

지치고 나른한 모습.

정치에 들어선 후 민강호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한편으로는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고, 한편으로는 너무 지쳐 힘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었다.

언제나 개기름이 흐르던 얼굴도 초췌하게 변해 있었다.

그만큼 현재의 선거 판세는 뒤집을 수 없을 정도로 불리해진 상태였다.

공식선거운동 직전에 발표된 조사에서 자신은 최강철 보다 11% 뒤진 27%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가 현저하게 벌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였다.

그럼에도 그는 앞에 앉은 유종득과 측근들을 향해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동안 수고했어.”

“아직 선거는 안 끝났습니다.”

“물론 안 끝났지. 하지만, 미련을 미리 버리는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편해진다네. 그러니 자네도 그만 편하게 생각해. 우린 최선을 다했잖아.”

“의원님!”

유종득의 표정이 마치 울 것처럼 변했다.

그도 안다. 지금의 상황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그럼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민강호는 동아줄이었고, 대권을 잡는 순간 그의 인생을 활짝 피워줄 발판이었다.

최선을 다했다.

그러한 꿈이 현실로 다가온다는 것을 느꼈기에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최강철만 아니었다면, 최강철…….

하지만 민강호의 얼굴을 보자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민강호의 얼굴은 이미 체념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게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이봐, 유 교수. 나는 이런 선거는 처음이었어. 유세를 다니면서 계속 느꼈지만, 마치 철벽에 부딪힌 느낌이 들더군. 정치 생활 20년 동안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버티고 이겨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넨 안 그랬나?”

“…그렇습니다.”

“다시 한번 느꼈지만, 최강철은 단순한 복싱선수가 아니야. 우리는 놈이 영웅이란 걸 애써 외면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니 최강철은 복싱 때문에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야. 국민들은 그가 해온 일들을 잊지 않고 있었어. 다른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는 그의 마음을 말이야. 그걸 알고 나니 내가 얼마나 하찮은 사람이었는지 알겠더군. 내 정치 인생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한 게 아니라, 나와 당을 위해서 일한 것이었어. 종로구민들은 그걸 이미 알고 있었던 거고.”

“아닙니다. 의원님 잘못이 아닙니다. 만약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재기하시면 됩니다. 의원님은 국가를 위해 일하셔야 될 분입니다.”

“날개 잃은 독수리는 살아도 산 게 아닐세. 괜히 다시 날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순간 병신이 되는 법이지…….”

“의원님!”

“나는 이제 정계 은퇴를 할 생각이야.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남아서 유령처럼 살고 싶지 않아. 그동안 정말… 고마웠네. 자네들을 끝까지 챙기지 못해서 미안할 뿐이야.”

* * *

다음 날.

총선의 결과가 나온 것은 밤 9시가 지나기 전이었다.

종로는 전국 지역구 중에서 가장 빨리 당선 확정이란 문구를 내보냈는데, 불과 총 유효투표수의 65%를 개봉했을 때 이미 최강철의 승리가 확정된 상태였다.

최종 득표율은 무려 63%로 나머지 출마자들을 전부 합한 수치보다 월등히 많은 것이었다.

최강철은 자신의 선거캠프에서 당선 확정 소식을 들은 후, 기쁨으로 격렬하게 축하를 해온 신규성과 김도환 그리고 지지자들의 손을 일일이 붙잡았다.

마치 모든 언론사가 최강철의 선거캠프에 몰려든 것 같았다.

그들은 최강철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미친 듯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역사적인 순간을 화면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후보자님, MBC의 정은혜 기자입니다. 먼저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막강한 상대자인 민강호 의원을 누르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소감 한마디 해주세요.”

정은혜가 묘한 시선을 보내며 마이크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을 인터뷰를 하기 위해 온 게 아니라, 잘생긴 연예인을 취재하는 것처럼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 저의 당선은 국민 여러분이 그만큼 새로운 정치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거에 임하면서 누차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강한 자에게 아첨하고 굴복하는 사대주의를 타파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저를 선택해주신 종로구민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반드시 실망시키지 않는 일꾼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 * *

총선결과는 대한정의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대한정의당은 집권당과 다수당이었던 제1야당을 완벽하게 제치고, 무려 123석을 차지했다.

호남을 근거지로 삼은 집권당은 83석, 영남이 배경인 제1야당이 87석, 무소속이 6석이었다.

이번 총선의 특이점은 예전처럼 대한정의당이 지역감정을 타파하면서 호남과 영남에서 상당수의 의석을 확보했고, 수도권과 서울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었다.

총선에서 승리한 대한정의당은 당선자들을 전부 여의도 당사로 불러들여, 정우석 대표 주재하에 축하 만찬을 가졌다.

압도적인 다수당이 되면서 정국을 이끌어갈 힘을 얻게 되자, 대한정의당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최강철은 만찬의 중심에서 움직였다.

이번 선거의 핵심인 종로에서 승리했다는 점도 있었지만, 정우석 대표를 비롯해서 당의 핵심 수뇌부가 그의 주변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강철이 움직이면 수뇌부가 따랐기에 그의 발걸음에 따라 무리가 움직였다.

당연한 일이다.

이중 상당수가 누구의 지원 아래 자신이 당선되었는지 몰랐지만, 수뇌부를 비롯해서 핵심인사들은 지금의 결과가 최강철로부터 얻어진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최강철은 당선자들과 인사하며 겸손과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힘을 내세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수하가 아니라, 같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일궈나갈 소중한 동료들이었다.

행사를 실질적으로 준비했던 이석환 의원이, 최강철이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달려온 것은 만찬이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최 의원님, 사무실로 전화가 왔습니다. 대통령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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