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227화 (227/308)

[227] 제31장 정의란 이름으로

일주일 전 9차 방어전을 KO로 성공한 홀리오 바스케스는 자신의 형이자 트레이너인 홀리오 카라우와 함께 텍사스에서 머물고 있었다.

이제 9차 방어전을 성공시켰기 때문에 복싱 팬들은 그를 4대 천왕에 올려놓으며 영웅으로 칭해주었지만 그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이번 방어전으로 받은 파이트머니가 불과 3백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과 같은 체급에 있는 최강철은 레너드와의 대결에서 3,000만 달러를 벌여 들였으니 그놈은 자신보다 10배에 달하는 돈을 받았다.

억울했다.

실력으로는 자신이 절대 약하지 않았음에도 최강철이 훨씬 커다란 돈을 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물론 전설인 레너드와의 대결이었기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시장의 평가는 놈에게 너무 후했다.

레너드와 싸우겠다고 말한 것은 자신이 먼저였다.

그가 전설로 불린 것은 과거였고 자신은 현재 무적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레너드는 자신을 피하고 최강철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강철이 현재 최고의 기량을 뽐내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에 커다란 파이트머니를 받을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또 한 가지 이유를 든다면 레너드는 자신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덤비는 순간 박살이 날 정도로 자신의 핵주먹은 도전자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그랬기에 바스케스는 최강철이 자신을 향해 통합 타이틀을 제안하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놈을 꺾어 진정한 챔피언이 누군지 보여주고 싶었다.

방어전을 성공시키자 휴식을 취하는 텍사스까지 자신의 프로모터인 챨리 험이 찾아온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챨리 역시 최강철과의 통합 타이틀전에 적극적이었는데 커다란 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형인 카라우는 챨리의 제안을 일거에 뿌리쳐 돌아가게 만들었다.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카라우는 형 이전에 자신에게는 아버지와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바스케스, 세상엔 말이다. 천천히 가야 하는 길과 미친 듯이 달려가야 하는 길이 있어. 네 마음은 알지만 지금 우리는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조급하게 덤빌 일이 아니야. 형을 믿어라. 우리는 반드시 허리케인을 꺾어 바스케스가 최고라는 것을 세상에 알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천천히 가야 해. 조급한 건 그놈이지 우리가 아니야. 우린 최고의 조건으로 놈과 싸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 * *

홀리오 바스케스는 끈질기게 돈 킹의 제안들을 거부했다.

시합을 하기 위해서는 최강철과 동등한 파이트머니를 내놓으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돈 킹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다.

아무리 그가 막강한 챔피언이라 해도 최강철과 같은 조건에서 링에 오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최강철은 그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뤄낸 영웅이었다.

듀란, 헌즈, 레너드를 모두 격파하고 천하를 통일해 낸 영웅에게 겸상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돈 킹의 말을 들은 최강철도 서두르지 않았다.

밥은 뜸이 들면 익는다.

시합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했다. 바스케스의 의중이 정확하게 읽혀졌다.

그의 진영에는 분명 여우 같은 전략가가 숨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상관없다.

그가 자신과의 시합을 피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을 때부터 이 시합은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바스케스는 세계 챔피언이었고 두려움을 모르는 강자 중의 강자였으니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시합이 이뤄질 것이다.

그랬기에 그는 다시 한번 돈 킹의 제안에 따라 6월에 방어전을 치러 상대를 KO로 쓰러뜨렸다.

상대는 파나마의 아미레스였고 세계 랭킹 6위였다.

이번 경기도 그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아미레스는 경기 초반부터 최강철의 공격에 두려움을 잔뜩 지닌 채 제대로 공격조차 해보지 못하고 2라운드 만에 캔버스를 침대 삼아 드러누워 버렸다.

참으로 싱거운 승부였다.

최강철이 방어전을 성공한 후 가진 인터뷰는 또다시 세계 복싱 팬들을 열광시켰다.

“바스케스, 당신은 예전에 나와 싸우겠다는 말을 했지만 갖은 변명으로 일관하며 대결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진정한 뜻이라면 나는 더 이상 당신과 시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나는 두려움을 가진 자와는 싸우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제안합니다. 이번에도 당신이 나와의 시합을 피한다면 나는 웰터급으로 체급을 내려 휘네커 선수와 싸울 겁니다. 그러니 조만간 대답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최강철의 제안에 언론은 그냥 있지 않았다.

마지막 선포.

이대로 바스케스가 계속 시합을 피한다면 최강철은 정말 체급을 내려 휘네커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언론 전체가 들고일어났다.

만약 바스케스가 끝까지 최강철과의 시합을 피한다면 4명의 히어로가 갖게 될 2차 세계대전의 구도가 헝클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세계 복싱 팬을 위해서도 식구들의 밥줄이 달린 기자들을 위해서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랬기에 전 세계 언론들은 바스케스의 비겁함을 비난하며 거세게 최강철의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을 이어나갔다.

* * *

중앙일보의 정찬수는 여의도에 있는 대한정의당 당사에 들어서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은 바빠서 야근을 밥 먹듯 했기 때문에 그의 눈에는 피곤함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두뇌가 돌아가는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당사 브리핑실에 들어서자 30여 명의 기자가 몰려 있는 게 보였다.

거기에 양대 방송사의 카메라까지 대기하고 있는 걸 보니 제법 큰 건인 모양이었다.

다시 한번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대한정의당에서 중대 발표가 있다고 했지만 집권당과 제1야당 쪽에서도 계속 커다란 뉴스거리들이 쏟아졌기 때문에 이 정도의 기자들이 몰려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어젯밤 야근하고 늦게 일어났는데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부장은 사정을 빤히 알면서 방방 소리를 지르며 무조건 빨리 가보라는 지시만 내렸기에 자세한 내용조차 모르고 왔던 것이다.

그랬기에 정찬수는 동아일보의 전준택의 옆구리를 슬며시 찔렀다.

“야, 뭐래?”

“몰라. 어쨌든 큰 건인 것 같다. 흘러나온 정보로는 엄청난 인물이 대한정의당에 가입하다는 거야.”

“겨우 그거냐? 난 또 뭐라고. 엄청나 봤자 얼마나 더 대단하겠어. 설마 전임 대통령이 당적을 옮겨서 이쪽으로 온다면 모르겠다.”

전준택의 대답을 들은 정찬수가 하품을 길게 뿜어냈다.

아직도 계속된 피로가 풀리지 않았나 보다.

하긴, 사우나장에서 새우잠을 자고 나왔는데 무슨 피로가 풀렸겠는가.

하도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서 와봤더니 요즘 각 당에서 유행하고 있는 인사 영입에 관한 얘기였다.

그 정도는 뉴스거리도 안 된다.

지금은 각 당에서 공천 결과가 속속 나오는 중이라 국민들의 시선은 전부 그쪽에 쏠려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연신 하품을 하던 그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진 것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고함이 터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문이 열리며 대한정의당의 수뇌부가 들어왔는데 그들의 뒤를 따라 최강철이 들어서는 걸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30여 명의 정치부 기자의 고함 소리는 국민 영웅 최강철의 등장에 따른 단순한 놀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고함 소리는 곧 비명으로 변해갔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기자들이 전부 일어나 카메라를 찾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기 때문에 브리핑실은 금방 난장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대사건이자 특종 중의 특종이다.

국민 영웅 최강철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가 이번에 대한정의당에서 새롭게 영입했다는 인물이란 뜻이었다.

* * *

집권당의 사무총장 황규철은 중진들과 모여 앉아 공천을 마무리하느라 저녁까지 함께하고 다시 당사로 들어왔다.

치열한 각축전.

이번 선거는 4파전이 될 가능성이 컸다.

재벌 총수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만들었던 야당은 지리멸멸해진 상태로 절단이 났고 대신 대한정의당이란 떨거지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졌던 야당의 총재가 돌아와 제1야당의 전권을 틀어쥐었고 군부 정권에서 총리까지 지냈던 거물이 충청권의 맹주를 자임하며 새로 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영남의 의석수가 호남을 압도하는 현 상황에서는 지역 구도로 몰아가면 무조건 집권당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군다나 아직까지 보수의 깃발이 국민들에게 먹혀 들어가는 상황에서 최근 발생한 북한의 도발이 어울려지며 이번 선거는 유리한 국면이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당내의 각축전이 치열하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공천에 참여하겠다는 선언을 한 상황이었기에 벌써 공천 명단이 5번이나 청와대에 들어갔다 나왔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영남의 공천권에서 마지막 각축전을 벌이던 5명의 명단을 작성해서 넘겨주면 공천 작업은 마무리가 되기 때문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강릉을 지역구로 하고 있는 3선 의원이자 공천추천위원회의 한 명인 정유화가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온 것은 마지막 남은 대구 수성구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을 때였다.

“총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물 빼러 갔다 온다더니 무슨 일이에요?”

정유화의 호들갑에 사무총장 황규철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지막 남은 한 자리 때문에 가뜩이나 골치 아파 죽겠는데 화장실을 간다고 나갔던 정유화의 행동에 토론이 중지되었기 때문이다.

“최강철이… 최강철이, 대한정의당에 입당했답니다.”

“뭐라고요!”

정유화의 말에 그를 바라보던 5명의 공천추천의원이 전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특히 사무총장 황규철은 버럭 소리까지 질렀는데 정말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정의화의 입이 급하게 열렸다.

“오후 5시에 대한정의당 기자실에서 입당식을 가졌답니다. 지금 언론에서는 그것 때문에 난리가 아닙니다.”

“어이구…….”

비명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황규철은 공천 심사가 모두 끝나면 당 대표인 하영일을 도와 선거 전략 본부장을 맡기로 되어 있었는데 최강철이 대한정의당에 입당했다는 소리를 듣자 안색이 허옇게 변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최강철의 대한정의당 입당은 단순한 복싱 선수의 가담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지닌 무게는 현재 대통령보다 더 파괴력이 크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였으니 최강철의 입당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텔레비전을 켜시면 나올 겁니다. 일단 보시고 의논하시죠.”

정의화가 사무실에 놓여 있던 텔레비전을 켜자 마침 MBC에서 최강철의 입당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침묵.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도열되어 있는 대한정의당 수뇌부의 얼굴에서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은 자신감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제가 대한정의당에 입당한 것은 대한정의당이 가지고 있는 정치관이 저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대한정의당은 창당 이래 지금까지 당리당략을 떠나 오직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뛰어왔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 최강철은 그동안의 구태의연한 정치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정의로운 대한정의당의 새정치 문화에 감명을 받았기에 결연한 마음으로 입당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한 올의 부끄러움 없이 희생할 수 있다는 정신, 그 정신을 가진 대한정의당을 위해 이 한 몸 최선을 다해 봉사할 생각입니다.

정신이 멍해졌다.

선거 전략실에서는 제1야당보다 대한정의당이 오히려 더 까다로운 상대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었는데 제1야당은 호남에서 기세를 올리는 게 전부였지만 대한정의당은 서울, 경기는 물론이고 충청권까지 폭넓은 지지율을 가지고 있어 여러 곳에서 접전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특집 뉴스가 끝나자 공천심사위원회에 참석했던 의원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들 역시 최강철이 지닌 파괴력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거 큰일 났구만. 내가 지금 청와대에 들어가야겠소. 일단 대구 수성은 마영찬으로 갑시다. 비록 현역인 신문수 의원이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코드원의 뜻이 우선이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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