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183화 (183/308)

[183]

* * *

링에서 내려와 라커룸으로 들어왔을 때 돈 킹이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 들어와 최강철을 불렀다.

그의 안색은 하얗게 변해 있었는데 최강철의 폭탄선언을 미리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약속은 한 적이 있다.

진정한 통합 챔피언에 오르면 헌즈와의 대결을 위해 벨트를 벗어 던지겠다는 말을 그의 면전에서 분명히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치기라고 생각했다.

IBF에 이어 WBA 타이틀까지 획득하자 강자들과 대결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그런 치기를 만들어냈다고 판단하며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을 인식할 거라 판단했다.

최강철은 이제 25전을 치른 베테랑이었고 그가 오늘 이룬 영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른 누구보다 잘 알 거라 믿었다.

그랬기에 예전에 했었던 말은 그냥 지나가는 바람 정도로 여기며 마음껏 최강철의 승리를 기뻐했다.

링 아나운서와의 인터뷰를 들으며 기절할 뻔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헌즈를 겨냥하며 싸우자는 말을 하는 순간 마이크를 뺏어 던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안 된다.

그것은 절대 안 되는 짓이다.

“헉헉… 톰슨, 기자들 못 들어오게 해!”

라커룸으로 들어선 돈 킹이 뒤따라 들어온 톰슨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톰슨이 그의 말을 듣고 라커룸의 걸쇠를 부랴부랴 잠근 후에야 숨을 몰아쉬었다.

난리다.

뒤를 따라온 기자들이 문을 열어달라며 두드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으며 돈 킹의 입이 급하게 열렸다.

“허리케인, 자네 미쳤나!”

“왜 그러십니까?”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떡하나. 관중들은 단순해서 자네 말을 믿는단 말이야!”

“돈 킹 씨, 나는 그냥 해본 말이 아닙니다. 이미 말씀드렸던 내용이고 돈 킹 씨도 인정한 내용 아닙니까?”

“자넨 이제 통합 챔피언에 오른 사람일세. 그런데 뭐가 급해서 그리 서두른단 말인가. 일이란 건 순서가 있는 법이야.”

“그 순서가 바로 지금입니다.”

“자네의 인기는 지금 하늘을 찌를 정도라서 방어전을 치를 때마다 천만 달러 이상은 벌어들일 수 있어. 그런데 헌즈와 싸우려는 이유가 뭔가?”

“내가 싸우고 싶으니까요. 그는 강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는 헌즈를 이기고 싶습니다.”

“헌즈와 싸우지 않는다고 해서 자네를 약자라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네. 자네는 웰터급에서 최강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일세. 그것만으로도 자네의 영광은 흘러넘쳐. 그러니 허리케인, 저 문을 열면 나머지는 나에게 맡겨주게. 기자들은 내가 알아서 상대하겠네.”

“아뇨,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돈 킹 씨,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헌즈와 싸울 겁니다. 헌즈와의 경기를 추진해 주십시오.”

“이봐!”

“제 뜻은 명확합니다. 돈 킹 씨, 내가 돈 킹 씨와의 의리를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해주세요. 돈 킹 씨가 계속 반대한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프로모터를 내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설마 내가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죠?”

최강철이 강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얼굴이 잔뜩 붉어진 돈 킹의 얼굴이 윤성호와 이성일에게 향했다.

그는 어떡하든 이 시합을 말리고 싶었던지 물에 빠져 가까이 떨어져 있는 통나무를 애써 잡으려는 사람처럼 간절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미스터 윤, 뭐라고 말 좀 해. 자네들 왜 이러는가? 허리케인을 말리지 않고 왜들 그렇게 가만히 서 있어!”

“돈 킹 씨, 강철이의 뜻이 우리 뜻입니다. 우리는 헌즈와 싸울 겁니다. 져도 좋소. 남자가 한번 야망을 가졌으면 끝장을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강철이 말대로 추진해 주세요. 우린 갈 데까지 가보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응은 누구나 똑같았다.

최강철이 허니건을 KO로 누르고 통합 챔피언에 오른 순간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일 정도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만세를 불렀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흥분해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러닝 차림으로 펄쩍펄쩍 거리를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그러나 경기 후에 가진 인터뷰를 듣는 순간 국민들은 전부 놀라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헌즈와 싸운다는 건 자살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수많은 난관을 뚫어내고 이제 막 통합 챔피언에 오른 최강철이 갑자기 왜 헌즈 같은 놈과 싸운단 말인가.

몇 번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으나 해프닝이라 생각했고 이번에도 그런 차원에서 빚어진 일이라 생각하며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3일 후 돈 킹이 기자회견을 통해 최강철과 헌즈의 경기 추진을 발표하자 대한민국 국민들은 벌 떼처럼 일어나 절대 불가를 외쳤다.

승리의 축제에 빠져 있던 대한민국은 그때부터 혼란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이 먼저 광분했고 언론이 그 뒤를 이었다.

체급이 차이 나는 상태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경기라며 거품을 물었고, 만약 한다 해도 공정한 시합을 위해 헌즈가 체급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압박이다.

만약 헌즈와의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절대 불리한 조건에서는 경기를 할 수 없다는 국민들의 소망을 담아 언론은 최강철과 돈 킹을 압박했다.

그들의 논조는 간절하면서도 강경했다.

어떤 신문에서는 최강철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실렸는데 모든 사람이 기사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당신은 우리의 영웅입니다. 영웅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영웅이란 존재는 모든 사람의 존중과 사랑을 받기에 사회적 동의를 얻은 후에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최강철 선수, 헌즈와의 대결은 절대 불가합니다…….

이런 논조였다.

물론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국민들의 의견을 담아 보도하는 그들의 행동은 여러 각도로 분석되고 판단되는 정치 기사와 판이하게 달랐다.

결론은 하나.

절대 헌즈와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이 모든 국민의 뜻이었다.

“머리에 쥐 난다, 쥐나!”

“이걸 어쩌면 좋냐, 최강철 이 자식 잠수를 타버렸다네.”

“설마 정말 하겠어. 주변에 있는 놈들이 전부 말릴 텐데?”

“야, 그럼 돈 킹이 왜 그런 기자 인터뷰를 했겠냐. 뭔가 상의를 했으니 그런 인터뷰를 했을 거 아냐?”

일간스포츠의 김동영과 스포츠조선의 조규성이 커피를 마시면서 한숨을 길게 흘려냈다.

미국 현지까지 날아가 최강철의 통합 타이틀전을 취재하고 돌아온 다음 날 돈 킹의 폭탄선언이 터져 나왔다.

박살이 났다.

데스크에서는 그런 낌새도 눈치 못 채고 돌아왔냐며 방방 떴는데 말로는 안 했지만 나가죽으라는 시선이 국장의 눈에서 레이저 빔처럼 쏘아져 나왔다.

이런, 젠장.

원래 출장 계획이 그렇게 되어 있었고 비행기 표도 이미 예약된 상태였는데 돌아오지 않으면 거기서 굶어죽으라고!

속으로는 변명할 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복싱 담당 기자가, 그것도 미국에 있으면서 그런 것도 모른 체 돌아왔다는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씨발, 우리 대빵은 지금 당장 짐 싸서 가란다. 아무래도 내일 넘어가야 될 것 같아.”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가. 그래도 우리 국장은 그런 소린 안 하던데?”

“허이구, 그게 좋은 거냐? 당분간 그것 때문에 난리도 아닐 텐데 차라리 넘어가는 게 낫지. 눈치 보면서 사무실에 어떻게 앉아 있어. 보내달라고 그래, 거기서 죽겠다면서 전의를 불태우면 혹시 아냐 논개 대우 해줄지?”

“안 돼, 이번 주 금요일에 우리 딸 생일이야. 작년에도 못 챙겨줘서 이번에는 반드시 같이 있어줘야 한다고.”

“맘대로 하세요.”

“그런데 가면 뭐 하냐? 어차피 최강철 그놈 몸을 감췄다잖아. 가서 손가락만 빨고 오면 더 묵사발 나는 거 아냐?”

“그래도 가야 해. 아까 말했잖아. 죽어도 거기서 죽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거참, 우리 신세가 왜 이 모양이냐.”

김동영이 한숨을 길게 내리쉬면서 창밖을 멀건이 바라보았다.

딸 생일 때문에 안 가겠다고 버텼지만 막상 조규성이 당장 내일 떠난다고 하자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기자의 생명은 취재다.

취재를 하지 못하는 기자는 숨이 끊어진 시체에 불과하고 그런 시체를 위해 월급을 줄 회사는 없다.

그랬기에 머릿속이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복잡해졌다.

조규성의 입이 슬그머니 열린 것은 김동영이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커피를 마실 때였다.

“야, 김 기자. 정말 헌즈랑 붙으면 어떨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지금 국민들 분위기 알면서 그런 소릴 하냐. 누가 들으면 맞아 죽어!”

“최강철이 하고 싶다잖아. 아닌 말로 못 할 게 뭐 있어. 헌즈는 뭐, 사람 아니냐?”

“너 걔가 쿠에바스랑 싸우는 거 보고 하는 소리냐?”

“봤지.”

“그런데도 그런 소리가 나와? 그때 쿠에바스가 어떤 놈이었냐. 내리 열 놈을 쓰러뜨리면서 그중 두 놈의 턱을 박살 내고 있었을 때야. 그런 놈이 쪽도 못 쓰고 헌즈한테 맞아 죽었어. 그것뿐이냐? 레너드하고 싸울 때 그놈이 14라운드만 버텼으면 이긴 경기였어. 두 번째 경기는 무승부였지만 헌즈가 이긴 경기였는데 심판들 장난질에 이상한 판정이 난 거고. 헌즈가 듀란 때려 부술 때 기억 안 나?”

“그만해라.”

“절대 헌즈랑 붙으면 안 돼. 최강철이 무시무시한 놈이란 건 알지만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과 헌즈는 격이 달라.”

“쳇, 그냥 해본 소리였어. 나라고 최강철이 지기를 바라겠냐. 하도 답답하니까 해본 소리지.”

“그만 일어나자. 너 내일 떠나야 한다며?”

“그렇잖아도 일어날 생각이었다.”

헛기침을 두 번 한 조규성이 남아 있는 커피를 원 샷으로 때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면 김영호의 얼굴은 오랫동안 보지 못할 것이다.

미국으로 가는 순간, 최강철이 시합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거기서 죽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시끄러웠다.

돈 킹의 발표가 있었던 그날부터 기자들은 최강철의 행적을 쫓느라 온 사방을 헤매고 다녔다.

뉴욕에 남아 있던 윤성호와 이성일은 기자들에게 최강철의 행적을 알려주지 않으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때 최강철은 서지영과 함께 하와이로 날아간 상태였다.

그는 돈 킹의 별장에서 머물렀는데 거기서 서지영으로부터 마이다스 CKC의 추진 내역을 보고받으며 휴식을 취했다.

한국에서는 헌즈와 싸우면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며 난리가 났기 때문에 수많은 기자가 그를 쫓는다는 걸 알았지만 그는 기자들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만나봐야 같은 이야기만 반복할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이제 남은 것은 돈 킹이 얼마나 열심히 움직여서 헌즈와 경기 일정을 잡는냐는 것뿐이었다.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진다는 생각도 가져본 적이 없다.

헌즈가 대단한 선수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우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싸운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싸운다.

서지영의 보고에 따르면 그의 자산은 4천만 달러를 빼서 한국에 투자했음에도 또다시 늘어 7억 달러를 돌파하고 있었다.

가장 무서운 건 시스코였다.

시스코는 91년 한 해 동안 무려 2억 달러의 순수익을 올렸는데 매출액은 무려 7억 달러를 돌파하고 있었다.

거기에 윈도우의 약진도 시작되었다.

최강철의 도움을 받아 비약적으로 진화된 윈도우는 출시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500만장이 팔려 나가는 기록을 달성했다.

워낙 큰 투자액이 들어갔기에 장당 30달러라는 높은 가격을 책정했음에도 멀티태스킹 기능과 마우스 기능이 대폭 진화한 윈도우는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최강철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윈도우는 몇 년 후 그에게 원하는 대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델 컴퓨터의 매출액도 시간이 갈수록 증가했고 주가의 상승 역시 폭발적으로 움직였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의 자산은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날 수밖에 없다.

하와이의 평균 기온은 23도다.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와 비슷했기에 최강철은 수영복 차림으로 서지영과 함께 선 베드에 누워 맥주를 마셔며 시간을 보냈다.

파란 하늘, 그리고 넓은 수영장이 주는 여유로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까지.

이런 편안함이 얼마만인지 모른다.

다시 돌아온 후 정신없이 사느라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고민과 불행이 있다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주변의 모든 것을 잊은 채 이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란 괴물은 상황을 변하게 만들어 어쩔 수 없이 하와이에서의 꿈같은 시간을 중단해야 했다.

한 달여가 지나자 헌즈와의 대결 때문에 들끓었던 언론과 국민들의 여론은 잠잠해졌으나 이번에는 대형 정치 비리 사건이 터지며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다.

하지만 대어들은 전부 빠져나갔고 잔챙이들만 이름이 거론되었다.

김도환은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나머지를 처리한다고 했으나 언론에 이름이 거론된 것은 단 두 명뿐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왜 두 명뿐이죠?”

-정부에서 움직였어. 우리가 보낸 자료가 전부 통제가 되었단 말이야. 그나마 두 놈을 칠 수 있었던 것도 야당에서 난리를 쳤기 때문에 겨우 죽인 거야.

“자료를 전부 보냈는데도 그렇게 되었단 말입니까?”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던 야당이 손을 뺀 게 치명적이었어. 그자들은 자신들 쪽에 원내 대표와 유력 인사가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손을 빼더군. 그러고는 곧바로 여당 쪽과 거래를 했어. 이 개새끼들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작정한 것 같아.

최강철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김도환이 이를 갈았다.

친일파를 제거하는 것보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무슨 얘긴지 대충 알겠습니다.”

-언제 들어올 거냐?

“곧 들어가겠습니다. 가서 할 일은 해야죠.”

-네가 들어오면 난리가 날 거다. 각오 단단히 하고 들어와.

“알겠습니다.”

-그런데 끊기 전에 하나만 묻자. 그거 정말 할 거냐?

“합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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