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91화 (91/308)

[91]

돈 킹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긴장감이다.

레드불스의 관장인 피터는 물론이고 훈련을 하고 있던 선수들은 금방 최강철의 타이틀 도전 소식을 들은 후 흥분에 젖어 전부 몰려들었다.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최강철과 윤성호, 이성일은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이없게도 돈 킹의 이야기가 틀리지 않아다는 걸 그들이 직접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IBF 타이틀전에 도전한다는 것에 대한 실망 대신 엄청난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었는데, 몇 몇 선수는 최강철이 시합을 갖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두 눈을 빛내며 벌써부터 날짜를 헤아리고 있었다.

윤성호가 불쑥 입을 연 것은 최강철, 이성일과 함께 집으로 향해 돌아갈 때였다.

“강철아, 기분이 어떠냐?”

“어떤 기분요?”

“타이틀전에 도전하는 기분 말이야.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나는 아직도 어리벙벙해.”

“사람들은 IBF를 쳐주지도 않습니다.”

“그건 상관없어. 난 돈 킹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아까 레드불스에서 선수들의 반응을 보니까 알겠더라. 넌 허리케인이야. WBA면 어떻고 IBF면 어떻겠냐. 관중들이 네 경기를 기다린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그러고 보면 돈 킹, 대단한 사람이야. 난 그가 돈벌레라고만 생각했는데 확실히 뭔가 달라. 세계 최고의 프로모터가 그냥 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더만.”

“나도 한 수 배웠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처세술은 확실히 다르더군요.”

“성일아, IBF 챔피언 프레디 아두에 대한 자료 가지고 있냐?”

“있습니다. 그놈 꽤 강한 놈입니다. IBF 챔피언들 중에서 독보적이에요.”

“그럼 그 자료 이따가 좀 보자.”

“기본적인 것밖에 없어요. 이제 시합이 결정되었으니까 샅샅이 훑어봐야죠.”

“제프 카터 부를 거냐?”

“부를 겁니다. 그 사람, 아는 게 많아요. 감도 좋고요. 배울 게 많은 사람입니다.”

“좋아, 그럼 너는 최대한 빨리 그놈에 대한 걸 뽑아봐. 이제 두 달 반밖에 남지 않았어. 나는 훈련 스케줄 준비할 테니까 강철이는 내일부터 훈련 시작할 준비해.”

“그러죠.”

“이제 시합 끝날 때까지 뉴욕 나가지 마. 알았어?”

“알았다고요.”

“이 자식아, 네 본업은 권투 선수고 지금은 가장 중요한 때야. 엉뚱한 곳에 가서 힘 빼다가 걸리면 정말 죽여 버릴 거야.”

“나만요?”

“그럼?”

“우리는 한 팀 아닙니까. 관장님도 다른 곳에 가서 힘 빼지 마세요. 그럼 나도 그렇게 할게요.”

“이 자식아, 내가 코치지 선수냐? 왜 네가 나 힘 빼는 걸 신경 써!”

“왜긴 왜겠어요. 배 아파서 그렇죠.”

“아이고, 이런 물귀신 같은 놈을 봤나. 알았다, 알았어… 나도 절대 힘 안 뺀다. 그러니까 넌 시합 때까지 절대 딴 짓 하지 마!”

돈 킹의 수완은 역시 다르다.

그는 최강철과 프레디 아두가 시합에 오케이 사인을 내자 본격적으로 홍보를 때리기 시작했는데 전 언론을 전부 동원하기 시작했다.

WBA 타이틀전과 동시에 벌어지는 시합.

더군다나 시간대도 비슷했기에 최강철의 타이틀 도전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으로 나타났다.

그중 가장 큰 반응은 왜 최강철이 3류 기구인 IBF 타이틀에 도전하냐는 것이었다.

허리케인은 폭풍이다.

그가 북미 타이틀전 방어전을 치를 때마다 구름 같은 관중들이 몰렸고 ABC, NBC, CBS에서 번갈아 가며 생방송을 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끌었으니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금방 사그라졌고 대신 뜨거운 관심이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동시간대에 벌어지는 WBA 챔피언 결정전보다 IBF 타이틀전에 출전하는 두 선수의 인기가 훨씬 더 대단했기 때문이다.

WBA 챔피언 결정전은 아마추어에서 화려한 성적을 거두고 프로에 데뷔해서 승승장구를 펼치며 걸출한 테크닉을 선보인 마크 브릴랜드와 남아공의 들소 헤롤드 볼보레히트의 싸움이었다.

많은 사람은 아주 오래전 일이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마크 브릴랜드는 독일에서 벌어진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최강철에게 통한의 패배를 당한 그 주인공이었다.

복싱광인 변호사 피터와 샘이 IBF 세계 타이틀전 소식을 본 것은 점심을 먹은 후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실 때였다.

텔레비전에서는 프레디 아두와 최강철의 시합이 결정되었다는 것을 알리며 앵커가 침을 튀기고 있었는데 흥미진진한 대결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었다.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고 있던 두 사람의 표정이 급박하게 변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자 그들은 어이가 없었던지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이런 젠장, 우리가 예매해 놓은 WBA 결정전하고 날짜가 겹치잖아.”

“환장하겠네. 허리케인이 이렇게 빨리 시합을 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런데 저 자식 갑자기 왜 IBF에 도전하는 거지?”

“열 받아서 그런 걸 거야. 레너드와 한판 승부를 벌이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은퇴를 해 버렸으니 화가 많이 났겠지. 그래도 저놈 대단해. 레너드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잖아.”

“우와, 미치겠네.”

샘이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며 인상을 잔뜩 썼다.

피터와 샘은 최강철의 데뷔전을 본 다음부터 도시락을 싸가며 그의 경기를 따라다닌 광팬들이었다.

피가 끓었다.

허리케인의 시합은 지켜볼 때마다 극도의 흥분과 전율을 선사해 줬기 때문에 그들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최강철을 응원해 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난감한 상황이다.

라스베이거스 MGM 특설 링에서 벌어지는 WBA 타이틀 결정전을 이미 예매를 해놨는데 최강철의 경기는 뉴욕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상황이 복잡했다.

“피터, 지금 결정해야 해.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당연한 걸 가지고. 난 죽어도 ‘고’야.”

“최강철한테 간단 거냐?”

“응.”

“그럴 줄 알았다. 다른 건 몰라도 최강철 경기는 무조건 봐야지. 그럼 서둘러야겠구만. 예매했던 거 일단 취소부터 하자. 그런데 뉴욕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전날에는 출발해야 돼. 마누라가 또 잔소리를 잔뜩 할 텐데 걱정이네.”

“우리가 뭐 그런 거 한두 번 겪냐? 그나저나 지금부터 막 기대가 된다. 프레디 아두도 보통 놈이 아닌데…흐으, 프레디 아두와 허리케인의 대결이라 끝내주겠어.”

“야, 그 말 들으니까 마누라 잔소리가 하나도 안 무서워진다. 아이고,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냐.”

“아우, 살 떨려. 허리케인 이 자식, 이번에는 어떤 경기를 보여줄까?”

피터가 자신의 양어깨를 손으로 문지르며 한껏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 모습을 보며 샘이 활짝 웃었다.

피터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이었고 그 역시도 벌써부터 경기장에 가 있을 생각을 하자 가슴이 벌렁벌렁했기 때문이다.

* * *

-시청자 여러분, KBS 스포츠 뉴스입니다. 먼저 미국에서 연승 가도를 달리고 있는 최강철 선수가 IBF 세계 타이틀전에 도전한다는 소식입니다. 최강철 선수는 17전 17KO승을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IBF 랭킹 1위에 올라 있습니다. 시합은 약 두 달 후인 8월 19일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벌어집니다. 챔피언인 프레디 아두 선수는…….

텔레비전에서는 앵커가 최강철의 세계 타이틀 도전 소식을 전하며 신나게 떠들고 있었는데 자료 화면까지 보여주며 5분이나 잡아먹었다.

저녁 9시 뉴스가 끝나갈 무렵에 보도하는 스포츠 뉴스의 평균 시간은 5분 정도가 할애되었으나 오늘은 최강철에 관한 것만으로도 5분을 넘기고 있었다.

1987년 6월.

뜨겁고 뜨거웠던 민중들의 봉기가 연일 계속되며 거리를 휩쓸고 있을 때였다.

영구 집권을 꾀하며 대통령 간선제를 통과시키려는 전두환의 전략에 맞서 국민들은 맨주먹으로 들고 일어나 호헌철폐를 외쳤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시위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의 고문치사 사실을 폭로하면서 직장인들로까지 확산되어 저녁이 되면 넥타이 부대가 거리를 장악한 채 자유를 외치기 시작했다.

땡전 뉴스로 시작되는 9시 뉴스는 그 어디에도 국민들의 저항을 보도하지 않은 채 잡다한 사건 사고들만 나열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뉴스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상태였으나 식당에 있던 사람들은 최강철의 소식이 나오자 두 눈을 번뜩이며 시선을 고정시켰다.

대일물산에 근무하는 김영호와 류광일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꽃다방 멤버인 그들은 오늘도 퇴근하고 시위 대열에 참여해서 목이 터져라 자유를 외치다가 최루탄을 실컷 들이마신 후 뒤늦게 감자탕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강철이다…….”

“저놈 오랜만이네. 북미 챔피언 되고 난 후부터 전혀 뉴스가 나오지 않더니 홍길동처럼 나타나는구만.”

“군사정권에서 저 자식 관련해서 보도를 못하게 했다잖아.”

“왜?”

“그때 최강철이 챔피언 되고 나서 인터뷰한 걸 가지고 전두환이 길길이 뛰었단다. 그래서 그다음부터 쟤 얘기가 전혀 나오지 못했어.”

“씨발, 지랄했고만. 그때 쟤가 무슨 말을 했는데?”

“우리 국민들 힘내라고 말했지. 그런데 정부에서는 그 이야기가 반정부 정서를 키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저놈이 미국에 있어서 다행이었지 한국에 있었으면 아마 잡혀갔었을 거야.”

“어이구, 미친 새끼들. 지들 욕한 것도 아니고, 데모 열심히 하라고 떠든 것도 아닌데 그랬단 말이냐. 하여간 뒤가 구린 놈들은 병신 짓만 골라서 한다니까.”

“잔대가리도 잘 돌아가지.”

“그건 또 뭔 소리냐?”

“생각해 봐. 지금 이런 마당에 갑자기 최강철 소식을 전한 게 뭣 때문이겠어.”

“관심을 돌리려는 수작질이란 뜻이구만.”

“당연한 거 아니겠어. 지금 시위가 그냥 시위냐. 우리 같은 직장인들까지 나섰으니 그자들 입장에서는 커다란 위기라고 생각했을 거다.”

“…개새끼들…….”

“그나저나 답답해.”

“왜?”

“넌 쟤 경기 보고 싶지 않냐? 난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저런 빅 이벤트를 왜 보고 싶지 않겠어. 난 최강철 왕팬이라고!”

“그러니까 말이지. 그 새끼들 장난질에 놀아나는 걸 뻔히 알면서 경기를 보고 싶어 하는 나는 뭐냐. 씨발, 내가 바본가?”

“쩝… 일리가 있네. 하아, 그래도 보고 싶은 건 보고 싶은 거지. 쟤가 무슨 죄가 있고 복싱 좋아하는 우리가 무슨 죄가 있냐. 지랄 같은 놈들에게 놀아나는 불쌍한 나라와 국민들이 무슨 죄가 있냐고!”

* * *

보름 정도 피지컬 훈련이 끝나자 완벽하게 체력이 살아났다.

피지컬이 완성되고 난 후부터는 보름 정도만 훈련해도 온몸의 세포가 최상의 상태로 회복되었다.

하루의 훈련 강도는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으로 짜여 있었다.

예전에 비하면 훨씬 줄어들었는데 이렇게 훈련 시간을 줄인 것은 북미 챔피언에 오른 후부터였다.

충분했다.

체력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시합 일에 맞춰 테크닉과 실전 감각을 끌어 올리면 경기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저녁이 되면 최강철과 윤성호는 거실에 모여 앉아 프레디 아두의 경기 영상을 보면서 이성일이 분석한 내용을 들으며 회의를 했다.

철저하게 준비한다는 것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그것도 2, 3일에 한 번씩 하는 것이었고 나머지 시간은 휴식을 취했다.

한국에 대한 뉴스가 속보로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 것은 저녁을 먹고 거실에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실 때였다.

화면에서 보이는 한국의 상황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었다.

수십만에 달하는 군중들.

그들은 천지를 가득 채울 것 같은 최루탄의 포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울분에 찬 모습으로 자유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이러다가 전쟁 나는 거 아냐?”

“그러게요. 이럴 때 북한에서 쳐들어오면 큰일인데… 왜들 저러는지 모르겠네.”

윤성호가 불쑥 입을 열자 이성일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국의 정치 상황을 모르니 그들의 대화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생각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많은 국민과 한국동란을 겪으며 피눈물을 흘렸던 우리의 부모들, 군사정권에 달라붙어 잘 먹고 잘살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었기에 최강철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저게 뭐야. 사람들한테 왜 저래? 저 새끼들 미친 거 아냐!”

“어, 어… 야, 이 새끼들아, 그걸로 때리면 어떡해!”

걱정을 하면서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윤성호와 이성일이 주먹을 치켜들면서 흥분을 했다.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사람들, 머리를 맞아서 피를 흘리며 비틀비틀 걷는 사람들, 산발한 여자의 눈물.

미국 특파원이 보낸 자료라 그런지 화면에서는 잔인한 장면들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화면에는 전경들의 무지비한 폭행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자신들의 정권 수호를 위해 국민들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놈들이 무슨 대통령이고 정부란 말이냐.

결과를 뻔히 알고도 분노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이게 나라냐…….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이 개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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