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84화 (84/308)

[84]

선수들의 소개가 끝날 때마다 관중들의 입에서 벼락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화려하다.

더스틴 브라운의 무패 기록, 최강철의 12연속 KO승은 쉽게 볼 수 없는 전적이었으니 출전하는 전사를 독려하는 것처럼 비장한 장내 아나운서의 외침에 따라 관중들의 환호와 함성이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뒤흔들었다.

“강철아, 우리 3년 걸렸다.”

“참 길었네요.”

“긴 건 아니었어. 난 한국 챔피언 따는 데도 5년이나 걸렸으니까.”

“혹시 놀면서 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었나요?”

“넌 꼭… 어쨌든 이번에 타이틀 따고 내년엔 세계 챔피언 먹자.”

“좋은 생각입니다.”

최강철의 얼굴에 다시 한번 바셀린을 찍어 마사지를 해주던 윤성호의 얼굴은 마치 마른 고목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그건 옆에 있는 이성일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그들의 눈은 살짝 충혈되어 있었는데 어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 같았다.

더스틴 브라운의 소개가 끝나면서 관중들의 함성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레퍼리의 손짓에 따라 링의 중앙으로 나가자 더스틴 브라운이 거친 숨을 뿜어내며 그의 얼굴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훅… 훅…….

이 새끼, 입 냄새 봐라.

뭘 처먹었는지 가까이 다가오자 입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어이, 노랭이. 죽을 준비됐지?”

“닥쳐!”

“저기 네 코너 쪽에 있는 캔버스가 무덤이 될 테니까 잘 닦아놓으라고 그래. 쓰러졌을 때 네 피가 오물에 섞이면 안 되잖아. 알았어!”

“크크크…….”

도발에 웃어주며 놈의 글러브를 강하게 내려쳤다.

놈의 눈에 담겨 있는 냉정한 시선이 독사처럼 자신의 전신을 훑었으나 최강철은 몸을 돌려 코너로 돌아와 목을 좌우로 꺾으며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었다.

윤 관장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는데 마우스피스를 끼워주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기자.”

“예.”

“챔피언 벨트 들고 우리 사진 한번 멋들어지게 찍자.”

“좋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반드시 이긴다. 이겨서 자신의 허리에 벨트를 맬 것이다.

때앵!

시합을 알리는 공이 전투를 개시하는 총성처럼 터지자 달려 나가는 최강철의 뒤로 윤성호의 외침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강철아, 가즈아!”

역시 머리통이 작다.

대충 봐도 다른 놈들보다 삼분의 일 정도가 작은 것 같았다.

거기에 양손으로 가드를 올리고 접근하자 때릴 데가 없어 보였다.

결국 놈을 잡을 수 있는 건 공격을 하기 위해 펀치가 나올 때뿐이다.

더스틴 브라운은 공이 울리자마자 링의 중앙을 점유하며 야금야금 접근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같은 스타일.

분석한 것처럼 놈은 자신의 펀치력을 믿고 인파이팅을 펼칠 모양이다.

놈이 무서운 건 절대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킬 만큼 커다란 펀치를 함부로 날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스트레이트든 훅이든 자신의 어깨 범위를 절대 벗어나지 않았는데 접근전에 최적화된 거리에서 펀치를 뿜어냈다.

쉬익, 쉬익!

리드 펀치가 번개처럼 날아왔다.

놈이 개시를 한 건 레프트 잽에 이은 라이트 훅이었는데 거의 스트레이트성이라 구분이 모호할 정도로 변형된 펀치였다.

그럼에도 공기를 가르며 날아온 펀치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만큼 예리하다는 뜻이다.

최강철은 좌측으로 돌면서 펀치를 피한 후 곧장 뒤로 물러났다.

놈도 자신의 경기 스타일을 분석하며 허점을 찾았을 것이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놨을 것이다.

지금까지 경기를 하면서 줄곧 집요할 정도로 인파이팅을 고집해 온 것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최대한 빨리 궤도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 목적은 12번의 경기를 치르면서 어느 정도 성공한 상태였다.

하지만 시합 횟수가 거듭되면서 점점 그럴 이유가 사라지고 있었다.

북미 타이틀에 도전하는 지금도 그렇다.

더스틴 브라운은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놈이었고, 앞으로 붙어야 할 놈들은 더욱 무서운 짐승들이었으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쇄액!

최강철은 뒤로 물러난 후 거리를 확보한 채 다가오는 더스틴 브라운의 안면을 향해 레프트 잽 더블을 던졌다.

빠르다. 그리고 강력해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워낙 완벽한 가딩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면을 건드리지 못했지만 글러브가 뒤로 밀릴 정도로 강한 레프트 잽이었다.

장점을 최대한 살린다.

최강철은 레프트 잽으로 놈의 접근을 차단한 후 다시 거리를 확보하고 뒤로 돌아나갔다.

인파이팅이 아니라 아웃복싱이었다.

브라운의 눈에서 언뜻 의아함과 당황스러운 눈빛이 흘러나왔다가 금방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아웃복싱을 할 수도 있다는 것까지 감안해서 준비했다는 걸 의미하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너는 모른다. 내가 진짜 아웃복싱을 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를…….

쉬익, 쉬익, 쉬익!

최강철의 레프트 잽이 더스틴 브라운의 선공을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화살처럼 날아다녔다.

워낙 강한 잽이었기에 스토핑으로 막을 수 있는 펀치들이 아니었다.

스토핑으로 막지 못한다는 것은 공격이 원활치 못하다는 걸 의미한다.

더군다나 위빙과 더킹, 그리고 스웨잉과 패링으로 펀치를 흘리며 반격을 시도할 때 최강철의 신형은 이미 전권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더스틴 브라운은 1라운드가 중반을 지날 때까지 제대로 펀치조차 내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살 떨릴 만큼 강력한 주먹들이 시시때때 뒤따라 들어오면서 계속 안면을 노리는 바람에 가딩을 풀기도 어려웠다.

이건 뭐야.

마치 유령처럼 링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최강철의 움직임을 보면서 더스틴 브라운의 입이 슬쩍 벌어졌다.

빠른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빠를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강철은 발을 잠시도 고정시키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링을 돌며 더스틴 브라운을 괴롭혔다.

놈을 잡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격렬한 난타전을 통해 놈의 펀치가 나오는 순간 때려잡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렇게 아웃복싱을 하면서 놈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방법뿐이다.

인파이터의 본능은 강렬한 공격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더스틴 브라운은 상대를 끝까지 쫓아다니며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인내심도 뛰어난 편이었다.

이런 자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완벽한 아웃복싱으로 주먹조차 내밀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본격적인 공격을 하지 않았지만 놈의 입에서 짐승 같은 신음이 흘러나오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1라운드 내내 최강철은 펀치를 쏟아부으며 더스틴 브라운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했는데 브라운은 겨우 20여 차례의 펀치만 뻗어냈을 뿐이었다.

그 역시 충격을 주는 펀치는 성공시키지 못했지만 충분히 화려하고 압도적인 쇼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관중들은 실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웃복싱의 정수.

이 정도의 아웃복싱은 레너드도 하지 못한다.

레너드를 보고 아웃복싱의 귀재라고 부르지만 그는 완벽한 아웃복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레너드는 자신이 가격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기회가 날 때마다 인파이팅으로 전환해서 접근전을 펼치는 스타일이었지 이렇게 완벽한 아웃복싱을 펼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어떠냐?”

“상당히 냉정한데요. 가딩도 좋아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우리 예상이 맞았구만. 저 새끼 진짜 쇼를 한 거였어.”

“하지만 곧 걸려들 겁니다. 이렇게 계속 경기를 진행하면 진다는 걸 알 테니까요.”

“절대 무리는 하지 마라. 맞으면 한 방에 골로 갈 수 있어!”

“무리는 저놈이 하게 될 겁니다. 나는 여우거든요.”

“네가 어디 그냥 여우냐. 백년 묵은 여우지.”

1라운드 경기 내용이 작전대로 완벽하게 진행되자 윤성호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줄어드는 게 눈으로 보였다.

결국 이 경기는 기다림의 싸움이다.

강렬하고 뜨거운 시합을 관중들은 원하고 있겠지만 그건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나타날 테니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심리전.

그래, 맞다. 최강철 진영이 준비한 것은 완벽한 심리전과 인내의 싸움이었다.

3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경기는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더스틴 브라운은 계속 압박 전술을 펼쳤으나 최강철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더스틴 브라운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최강철의 레프트 잽을 무시한 채 돌진을 시작한 4라운드부터였다.

펀치가 커졌다.

그동안 꾸준하게 각도를 지켜왔던 더스틴 브라운의 펀치 각도가 커지면서 안면이 노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최강철의 레프트 잽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양 훅을 구사하며 돌진해 들어오는 더스틴 브라운의 펀치를 더킹으로 피한 최강철이 뒤로 빠져나가며 번개처럼 레프트 잽을 가동시켰다.

덜컥.

걸렸다.

고개가 들리는 순간, 따라 들어간 최강철의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번개처럼 더스틴 브라운의 턱을 향해 날아갔다.

콰앙!

아무리 맷집이 좋고 반사 신경이 뛰어나도 이런 펀치를 맞고 견딜 놈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충격도 충격이지만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맞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펀치에 당한 더스틴 브라운이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뒤로 넘어지자 그동안 화려한 쇼를 감상하는 것처럼 말없이 지켜보던 관중들의 입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최강철이 완벽한 아웃복싱을 펼치면서 기대했던 난타전이 사라지자 긴장감이 풀려 있던 관중들의 눈이 뒤늦게 빛나기 시작했다.

더스틴 브라운은 레퍼리가 다가가 카운터를 세자마자 벌떡 일어났는데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커다란 대미지는 받지 않았는지 몰라도 정신적인 충격은 꽤나 컷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턱을 맞고 다운당한 적이 없었으니 벌떡 일어난 더스틴 브라운의 눈은 분노로 인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건 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레퍼리가 시합을 다시 진행시키자 더스틴 브라운은 마치 미친놈처럼 최강철을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그동안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자제하면서 기회를 노리던 더스틴 브라운은 이번 라운드에서 끝장을 보기라도 하려는 듯 거칠게 밀고 들어오며 펀치를 난사했다.

위잉, 위잉… 우웅……!

복싱 경기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한쪽에서 목숨을 내놓고 접근전을 벌이면 아웃복싱의 의미가 사라진다.

그것은 스피드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인데, 일방적인 도주라면 모를까 결국은 난타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바로 목숨을 건 자가 엄청난 위험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바로 더스틴 브라운처럼 말이다.

최강철은 놈이 방어선을 무너뜨린 채 돌진해 들어오자 몇 차례 피하다가 비어 있는 옆구리를 향해 강력한 레프트 훅 을 작렬시켰다.

바로 이 순간을 기다리기 위해 지금까지 참아왔다.

짜릿하게 느껴지는 감촉.

정확하게 옆구리를 가격한 왼손 주먹에서 찌릿한 감각이 느껴지며 더스틴 브라운의 몸이 경직되는 것을 확인한 최강철이 후퇴를 멈추고 전진을 시작했다.

계속되는 복부 공격.

옆구리에 충격을 받은 브라운의 가드가 내려오면서 안면이 노출되었으나 최강철은 바짝 붙어 놈의 양쪽 옆구리와 복부를 향해 십여 발의 펀치를 꽂아 넣었다.

뒤로 물러난다.

그만큼 옆구리에 당한 충격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놈은 대미지를 숨기기 위해 거친 반격을 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죽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패링에 이은 라이트 훅, 더킹과 함께 터지는 레프트 훅, 그리고 어퍼컷.

모든 펀치는 놈의 옆구리와 복부를 노린 것이었다.

펀치를 맞을 때마다 더스틴 브라운의 몸이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최강철은 짐승의 목 줄기를 물어뜯은 맹수처럼 집요하게 복부를 노리며 따라붙었다.

“와아, 와아!”

어느샌가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을 치고 있는 게 보였다.

최강철의 전매특허. 바로 불꽃 인파이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계속 날카로운 펀치들이 복부에 꽂히자 더스틴 브라운의 펀치가 줄어들면서 발이 느려졌다.

맹수의 날카로운 이빨이 무너지고 있었다.

브라운, 챔피언 벨트를 내놓아라!

폭풍 같은 진격.

그동안 아웃복싱으로 시간을 보내던 최강철의 진격은 한 번 시작되자 거침이 없었고 무서우리만치 강력했다.

비장의 무기 콤비네이션 펀치들이 터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펀치들이 더스틴 브라운의 전신을 무차별적으로 두들겼다.

복부에 충격을 받은 브라운의 가드가 옆구리를 커버하기 위해 내려오면 안면에 작렬했고 다시 안면을 가리면 복부를 향해 날아갔다.

한 번으로 그친 공격이 아니었다.

옆구리에 펀치가 들어가는 순간부터 최강철은 몸통으로 적의 가슴팍을 밀며 전진하면서 무려 100여 발의 펀치를 쏟아부었다.

뒤로 물러나는 브라운.

지옥의 입구.

바로 자신이 최강철을 쓰러뜨리겠다고 공언했던 코너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더스틴 브라운이 사력을 다해 반격을 해왔다.

얼마나 많은 펀치를 맞았는지 이미 동공이 누렇게 떠 있던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숨통이 끊어지기 전 마지막 발악을 하는 맹수의 힘없는 이빨에 불과했다.

콰앙, 콰앙!

더스틴 브라운의 펀치가 빠져나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최강철의 양 훅이 그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턱에 펀치를 맞으면 앞이나 뒤로 쓰러지지만 옆구리에 충격을 맞으면 옆으로 쓰러진다.

바로 지금의 더스틴 브라운처럼 말이다.

잘 가라,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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