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환생-40화 (40/308)

[40]

“강철아, 아프지 않어?”

“괜찮아요.”

어머니의 손길이 눈으로 다가왔다.

부어오른 눈은 윤 관장이 계란으로 그렇게 문질렀는데도 아직 붓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따뜻한 손길. 어머니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세계를 제패한 것보다 다치고 돌아온 것이 더 마음 아픈 모양이다.

천천히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 아버지를 향해 인사를 했다.

아버지를 안지 못한 것은 그 높은 존경의 마음 때문이었다. 비록 아버지는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분이었으나 그에게는 태산 같은 믿음과 사랑을 주셨으니 대할 때마다 항상 조심스러웠다.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그려, 고생했다.”

“저 잘했죠?”

저 잘한 거 맞죠.

어머니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아버지를 향해 최강철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칭찬해 달라는 듯 물었다.

얼마나 하고 싶었던 짓이었던가.

그럼에도 그 오랜 세월을 아버지께 걱정과 고통만 드렸으니 보내 드릴 때의 회한이 아직도 가슴속에 박혀 잊히지 않는다.

“장허다, 우리 아들. 정말 장혀.”

아버지가 은근슬쩍 다가와 최강철을 안았다.

항상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사셨어도 밖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셨던 분인데 오늘 만큼은 사람들이 전부 보는 앞에서 아들을 안아주셨다.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안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기자들이 정신없이 그 모습을 찍었는데 내일 아침이면 이 모습이 대문짝만 하게 신문에 나올 것이다.

부모님과 잠시 정담을 나누다 뒤늦게 옆으로 다가온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학교 측에서는 그가 우승하자 교장이 직접 나왔는데 목에 거는 화환까지 직접 들고 나왔다.

“강철아, 학교의 명예를 빛내줘서 고맙다.”

교장선생님이 직접 격려했고 담임선생님의 축하 인사를 받은 후에 기다리고 있던 이성일의 몸을 끌어안았다.

“성일아, 잘 있었지?”

“이 자식아, 보고 싶어 뒈지는 줄 알았다.”

“하여간 엄살은. 이제 매일 볼 텐데 뭘 그래.”

“잘했어.”

“그래.”

“내가 꼭 지켜봤어야 했는데 억울해 죽겠어.”

“다음엔 꼭 봐. 네가 없어서 나도 심심했다.”

놈과 함께 있으면 언제나 마음이 편하다. 평생을 같이했던 친구였기에 아직 어렸어도 그 마음은 변치 않았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유광호가 슬며시 끼어든 것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철아, 이제 그만 가자. 아직 공식 행사가 남아 있잖아. 높은 분들이 기다리고 계셔.”

그의 말을 듣고 눈을 돌리자 협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멀뚱멀뚱 서 있는 게 보였다.

모든 기자가 옆으로 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닭 쫓던 개처럼 헛기침을 하면서 이곳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급하게 몸을 돌렸다.

감정에 격해져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잠시 잃었지만 실수를 지속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랬기에 그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오늘 복싱 협회에서 축하연을 열어준다고 해요. 같이 돌아갔으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먼저 돌아가 계시면 제가 축하연 마치는 대로 갈게요.”

“그려, 중요한 일인디 가봐야지. 우린 걱정하지 말고 얼릉 가.”

“예.”

오늘의 스케줄은 공항 환영 행사에 이어 복싱 협회가 마련한 축하연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협회장 남인구는 아예 작정한 듯 최강철의 세계 선수권대회 제패를 홍보하기 위해 대대적인 축하연을 마련해 놓았다.

어련하겠어.

단숨에 눈치를 챘지만 절대 자신의 마음을 밖으로 내놓지 않았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문제가 발생한 것은 공항 행사를 마무리 짓고 로비를 빠져나올 때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한 무리의 검은 양복 사내들이 협회장에게 급히 다가가더니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남인구의 얼굴이 허옇게 질리는 게 보였다.

사내들에게서 물러난 그는 마치 저승사자를 만난 것처럼 허둥대며 일행들의 발걸음을 정지시켰다.

“여러분 오늘 축하연은 취소해야겠소. 사무장, 빨리 사무실에 전화해서 행사 취소한다고 전해.”

“회장님 왜 그러십니까?”

“각하께서 최강철을 보고 싶어 하신단다. 지금 곧바로 들어가야 해.”

각하라고?

우리나라에서 각하라고 불리는 사람은 단 하나밖에 없다.

현재 공포정치를 펼치며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는 전두환, 바로 그 사람이다.

회장의 말을 들은 유광호의 안색도 허옇게 질렸다.

하긴 유광호뿐만 아니라 모여 있던 사람 전부가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 직접 보자고 했다면 축하연이 아니라 축하연 할애비를 계획하고 있어도 취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각하라는 말이 나오자 당황함을 숨기지 못했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사내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협회장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시계를 자꾸 바라보며 서두르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회장의 행동이 빨라졌다.

“자, 다들 들어가고. 강철이하고 동길이, 그리고 코치들은 같이 가는 거로 하지. 가면서 주의 사항을 전해줄 테니까 절대 실수하면 안 돼. 알겠어?”

혹시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현실로 발생하자 긴장감이 훅 몰려들었다.

현재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는 전두환은 신군부 세력을 이끌고 쿠데타를 성공하여 정권을 틀어 쥔 사람이었다.

피가 흐르는 숙청의 연속.

5.18 민주화운동을 총탄으로 박살 내며 수많은 인명을 사살했고, 그 당시 영향력 있던 지도자인 김영삼과 김대중을 내란 음모로 엮어 구속과 자택 연금 시켜 정치판을 초토화시킨 후 언론을 장악해서 대통령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의 한마디는 법위에 군림하는 절대명령이었으니 협회장이 사시나무 떨 뜻 벌벌 떠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전두환은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특히 복싱을 좋아해서 중요한 권투 중계가 있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것으로 유명했다.

최강철은 대통령 경호실에서 보낸 승용차를 타고 청와대로 향했다.

그 차에는 운전사 외에도 두 명의 경호원이 동승하고 있었는데 마치 범죄자를 끌고 가는 것처럼 말 한마디 붙이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잘못한 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자신을 보고 싶어 하기에 들어가는 길이었으니 전혀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긴장은 된다.

멀리서 푸른 기와가 눈으로 들어오며 정문에 선 위병들의 위압스러운 모습이 보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수도 없이 본 곳이었으나 직접 와보기는 처음이었다.

청와대에 도착하자 대기실에서 경호원들에게 몸수색을 당했다.

공항에서 바로 납치하듯 끌고 와놓고도 위험한 무기가 있을지 걱정된 모양이다.

검색이 끝났지만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경호원들이 나간 후 대체해서 들어온 비서관들이 지루하고 긴 주의 사항들을 일행들에게 교육시켰기 때문이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참 더럽고 치사하다.

총칼로 정권을 잡은 자들은 자신의 안위에 대해서 결벽적으로 의심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일행이 접견실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청와대에 도착하고도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접견실 의자에 앉아서 대통령을 기다리는 일행들의 모습이 마치 군대에 막 입대해서 바짝 졸아 있는 신병들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 협회장은 부동자세로 연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커다란 권세를 가진 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

접견 의자 주변에는 10여 명의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과 5명의 비서관들이 호위하듯 서 있었다.

그들 역시 긴장되기는 마찬가진 모양이다.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빤한 공간을 살피고 있는 게 금방이라도 적이 침투할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중앙에 서 있던 비서관 중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의 행동이 빨라지며 일행들에게 일어서서 도열하라는 신호를 급하게 보냈다.

무전기로 대통령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연락받은 게 분명했다.

잠시 후, 이윽고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반쯤 벗겨진 대머리,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익숙한 얼굴들.

전두환과 신군부 쿠데타의 주인공들이었다.

“대통령 각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접견실로 들어선 전두환은 일행들 앞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협회장부터 천천히 일행들의 손을 잡았는데 손아귀에 힘이 담겨 있었다.

“자네가 최강철인가?”

“예, 그렇습니다, 각하.”

얼떨결에 고등학생답지 않은 대답이 나왔다.

비서가 미리 주의를 주었지만 너무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던지 전두환의 얼굴에서 미소가 그려졌다.

“아직 어린데 대단해. 잘했어, 아주 잘했어.”

그가 손을 올려 어깨를 두드렸다. 그 손길이 너무 낯설어 나무토막으로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 다들 앉아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우리나라의 명예를 높여준 분들을 일부러 모신 거니까 우리 편하게 대화를 나눕시다.”

전두환이 손짓하며 먼저 자리에 앉자 뒤쪽에 서 있던 비서실장 장세동이 일행들을 향해 부지런히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사람들이 모두 착석하자 연예인 뺨치게 예쁜 여비서들이 정확한 타이밍에 차와 다과를 가져와 일행들의 앞에 놓았다.

“차들 마십시다. 협회장께서는 일을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성과를 낸 게 전부 선수 관리를 잘해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각하. 저희 복싱 협회에서는 유망주를 발굴해서 집중 육성하는 시스템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번 성과는 그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새빨간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오면서부터 이 대답을 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바보다.

전두환의 정보 팀은 국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으니 여기서 벌어진 일은 곧 조사되고 분석되어 보고될 것이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전두환은 그를 죽이지 않을 테지.

그의 성격상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 이벤트를 만들어냈으니 가벼운 거짓말 정도는 넘어가 줄 것이다.

“허허, 남 회장께서 그렇게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니 놀랍군요. 앞으로도 복싱 발전을 위해 잘 좀 노력해 주시오.”

“예, 각하.”

전두환은 대화를 주도하며 이번 세계 선수권대회에 대한 것들에 대해서 물었다.

대회 방식은 어땠으며 어떤 경로를 통해 결승까지 올라갔고, 최강철이 우승했을 때 서독 현지의 반응들에 대해서 물었다.

대답은 주로 선수단을 이끌었던 유광호가 했다. 그는 잔뜩 긴장했던지 처음에는 목소리가 떨렸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을 찾아갔다.

전두환이 최강철을 향해 직접 질문을 시작한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최강철 군, 여기 들어오기 전에 보고 받았는데 자네 공부도 잘한다면서. 복싱 선수가 전교 수석까지 하다니 나는 그런 경우는 처음 보네.”

“저희 관장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뜬금없는 대답에 윤성호가 머리를 빳빳이 세우고 있다가 사시미가 된 눈으로 최강철을 쳐다봤다.

저 미친놈이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전두환은 최강철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못 봤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가 깜짝 놀라는 것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무슨 말인가?”

“관장님께서는 복싱 선수도 학업에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저를 채찍질하셨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권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인성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공부에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어허, 거참 훌륭한 스승이구만.”

“제가 배운 기술들은 모두 관장님께 배운 것입니다. 저희 관장님은 복싱에 관한 한 국내에서 최고의 코치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대답에 전두환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서 최강철은 속으로 웃었다.

이젠 됐다.

그가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윤성호가 국가 대표 코치로 발탁되는 건 이제 시간문제일 것이다.

같이 생활하면서 협회 사무장인 유광호로부터 국가 대표 코치 자리가 하나 더 만들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슬쩍 복싱 협회장의 얼굴을 보자 전두환이 칭찬하는 모습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그래, 최강철. 내 마음을 기쁘게 해줘서 내가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은데 뭘 해줬으면 좋겠나?”

“저는 조국을 위해 열심히 뛰었을 뿐입니다. 바라는 건 없습니다.”

“이 사람아 괜찮아. 아무거나 말해봐.”

“정말입니다. 각하, 생각해 주신 마음만 기쁘게 받겠습니다.”

속으로는 할 말이 태산 같았으나 꾹 참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이 자리에서 서툴게 병역에 대한 제약 조건을 풀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놈이나 하는 짓이다.

전두환의 눈 속에는 웃음에 가려진 호기심과 시험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도 기회는 많다.

민감한 병역 문제는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고 더 럼블에서 움직여 준다면 무난하게 해결될 수 있으니 지금은 전두환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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