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스포츠서울의 김도환은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최강철이 미국의 떠오르는 태양 마크 브릴랜드를 꺾고 우승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들고 있던 노트를 책상 위에 내동댕이쳤다.
복싱 전문 기자인 그로서는 반드시 따라가서 취재해야 할 대회였다.
그럼에도 그놈의 88올림픽 홍보에 열을 올리느라 데스크에서는 그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어 지금까지 엉뚱한 기사만 써댔다.
복싱 전문 기자보고 경기장 건설 계획과 차기 올림픽 국가의 준비 사항을 취재하라는 게 말이 된다 말인가.
하지만 참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정권의 눈치를 잔뜩 보고 있는 데스크에서 밀어붙이는 일 가지고 반기를 들었다가는 모가지가 열두 개라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편집부장이 뒤늦게 특집 기사를 만들라며 지랄 발광을 하자 두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부장님, 전 서독이 어디 있는지 구경도 못 했어요. 그놈이 어떻게 싸워서 이겼는지 알아야 기사를 쓸 거 아닙니까. 그거야 대충 사기 친다고 해요. 사진은 어쩔 겁니까? 사진 없이 소설만 잔뜩 늘어놓을 수는 없잖아요!”
“김 기자,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야?”
“아이고, 대들긴요. 사실이 그렇다는 거죠.”
계급이 깡패다.
불현듯 열이 받아 소리를 질러댔지만 편집부장이 인상을 우그러뜨리며 반격을 가해오자 꼬리를 바짝 말고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야, 이 자식아. 우리나라 언론 중에 그 대회를 직접 취재한 놈이 어디 있냐? 조선과 동아가 복싱에 문외한인 특파원을 보낸 게 전부야. 그런 동태 눈깔들이 경기가 어땠는지 제대로 알기나 해. 넌 윤성호하고 안면이 있잖아. 윤성호나 유광호에게 들어보면 현장에 있었던 특파원들보다 더 사실적으로 쓸 수 있어.”
“사진은요?”
“우리 좀 센스 있게 살자. 너 저번에 국가 대표 선발전 때 그놈 사진 찍어놓은 거 잔뜩 있잖아.”
“그걸로 쓰자고요?”
“그놈 얼굴만 대문짝만 하게 나오도록 만들어. 주변이 나오지 않도록 손질하면 거기가 서독인지 장충체육관인지 독자들이 어떻게 알겠냐.”
“대단하십니다.”
“내일 돌아온단다. 지금 전화하지 않으면 통화도 안 될 거야. 전화번호 있지?”
“협회에서 받았습니다.”
“얼른 해. 우리가 단독으로 취재한 것처럼 특종으로 터뜨려.”
“부장님은 왜 신문사에 계시는 겁니까. 밖에 나가면 돈 많이 벌 텐데요.”
“무슨 소리냐?”
“사기 치는 기술이 하늘을 찌르잖습니까!”
* * *
오늘따라 사무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밖에서도 들려왔다.
최우용은 일을 마치고 덤프트럭을 주차장에 세운 후 운행 일지를 작성하려고 들어가다가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시간이면 사무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야 했다.
직원들을 관장하는 김근조의 성질머리가 워낙 더러워 일과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언제나 적막강산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떠들고 있던 사람들의 눈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먼저 박수를 치기 시작한 것은 가장 친한 박 반장이었는데 그를 따라 모든 직원이 뜨겁게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너무 놀라 급히 사무실을 확인했다. 어쩐지 김근조의 책상이 자리를 덩그렇게 비운 채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뭔 일이래요?”
“이 사람아, 자네 아들이 우승했데. 금메달 땄다고!”
“그게… 정말입니까?”
“여기 스포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강철이 얼굴 나왔잖아. ‘자랑스러운 대한의 건아 최강철, 세계를 제패하다’. 어우, 강철이 이 자식 정말 잘생겼구먼.”
“우리 최 씨 전생에 무슨 복이 그리 많아서 이렇게 잘난 아들을 뒀데. 부럽네, 정말 부러워.”
옆에서 윤 씨가 거들자 최우용이 뒤늦게 박 반장이 들고 있는 신문을 건네받았다.
거기에 아들의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들어 있었다.
신문에는 아들이 최고의 테크이션이라는 미국 선수를 KO로 꺾고 세계를 제패했다는 기사가 잔뜩 적혀 있었는데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경기 장면들이 세세하게 들어 있었다.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어제 결승전이 있었지만 아들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기에 졌다고 생각했다.
국제전화 비용이 엄청 비싸니까 다신 전화하지 말라고 엄포를 놨지만 막상 전화가 오지 않자 밤새도록 한숨도 자지 못했다.
어쩌면 커다란 부상을 당해서 전화조차 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미어져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까짓 돈이 뭐라고 아들에게 전화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이 기쁜 소식을 직접 전하지 못해야 했던 아들의 마음이 떠오르자 기쁨 속에서도 슬픔이 몰려왔다.
애비가 못나서 그렇다.
모든 것은 이렇게 잘난 아들을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못한 애비 탓이다.
“최 씨, 당신 아덜이 내일 돌아온다는데 가봐야지. 어쩌면 카퍼레이드 할지 모른다는데.”
“그려그려. 당연히 가봐야지. 맴 같아서는 우리도 가보고 싶은데 최 씨는 오죽하겄어. 내일 휴가 내고 댕겨오랑께.”
“암만, 그려야지.”
박 반장이 먼저 운을 뗐고 나머지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
당연히 가고 싶었다. 그랬기에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향해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김근조가 문을 벌컥 열며 들어온 것은 직원들이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최우용을 향해 한턱내라고 협박할 때였다.
“뭐야, 또. 이 사람들이 내가 잠시 자리만 비우면 이 모양이야. 박 반장, 이번엔 또 뭐요!”
“김 주사님, 우리 사무실에 경사가 생겼어유. 최 씨 아들이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네요.”
박 반장이 눈치를 보면서 최강철의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나온 신문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김근조가 휙 낚아챈 후 대충 읽어보더니 탁자에 집어 던지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게 사무실 경사요? 최 씨 아들이 권투 경기에서 우승한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사무실 경사란 말을 해. 틈만 나면 이상한 소릴 하고 있어. 뭐 해요, 운행 일지 안 쓸 거요!”
아무리 생각해도 김근조는 성격이 개차반이다.
웬만하면 축하 인사라도 건네련만, 그는 사나운 눈초리로 직원들을 자리에 돌아가게 만든 후 중앙탁자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감시하듯 앉았다.
그런 김근조의 눈치를 보면서 최우용이 슬금슬금 다가갔다.
때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지금 말하지 못하면 내일 휴가 가겠다는 말을 할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기, 김 주사님…….”
“뭐요?”
“우리 아덜이 내일 귀국한다고 해서요. 그래서 말인데… 내일 하루 휴가를 내면 안 되겠남유.”
“아들 귀국한다는데 휴가는 왜?”
도끼눈을 부릅뜨는 김근조의 태도에 말문이 막힌 최우용이 한숨을 길게 내리쉬었다.
그때 용기를 낸 박 반장이 거들고 나왔다.
“그래도 금메달을 따고 오는 아들인데 마중은 해야지유. 웬만하면 하루 휴가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디유.”
“어허, 이 사람들이 정말. 곧 청에서 추계 검열 나온다는 거 알아, 몰라? 이렇게 바쁜 때 휴가를 간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래도…….”
이왕 나선 김에 박 반장도 이번만큼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던지 말을 이어나가려는 순간,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섰다.
소장과 보수과장이었다.
김근조가 저승사자라면 두 사람은 하나님과 동기 동창인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계약직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과 20m 정도 떨어진 본관에서 정규직 공무원들과 함께 근무를 했기 때문에 이곳에 올 일이 거의 없었다.
“최우용 씨, 축하합니다!”
머리가 반쯤 빠져 앞머리가 훤한 소장이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최우용의 손을 붙잡아 왔다.
보수과장은 소장의 행동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었는데 그가 최강철에 관한 뉴스를 보고했던 모양이었다.
“얼마나 좋습니까. 세상에, 아들이 세계를 제패했으니 집안에 경사가 났네요. 아니지, 우리 토목광구 전체의 경사지. 정말 대단합니다.”
“고맙습니다, 소장님.”
“내가 듣기로 내일 아들이 귀국한다고 하던데 가봐야죠?”
“그게…….”
“자, 이거 받아요. 가서 아들 맛있는 거 사주고 돌아오는 길에 옷이라도 하나 해 입히세요.”
최우용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소장이 흰 봉투를 불쑥 내밀었다.
그러고는 껄껄 웃으며 최우용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몸을 돌렸다.
“휴가는 안 내도 됩니다. 내가 직권으로 처리할 테니 잘 다녀오세요. 나중에 기회 되면 잘난 아들 꼭 좀 구경시켜 주시고요.”
소장은 바람처럼 왔다가 김근조의 인사도 받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하긴, 워낙 바쁜 사람들이니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을 것이다.
붉어진 얼굴.
소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김근조의 얼굴은 새빨간 단풍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소장이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가자 직원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씩씩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오는 것도 힘들었다.
우승을 했다고 해서 그 비싼 비즈니스석을 탄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일이었으니 또다시 18시간을 쭈그린 채 오랜 시간을 날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랑스러운 스승님은 여전히 스튜어디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 갈 때의 경험을 살려 틈틈이 음료수를 시키며 아름다운 몸매를 감상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피곤에 절은 육체는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에도 천근같이 무거워진 눈꺼풀을 치켜세우지 못하고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최강철은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일행들의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눈을 뜨고 나면 비행기는 여전히 하늘을 날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와인을 한 잔 마신 후 숙면을 취하고 싶었으나 보는 눈이 많아 그러질 못했다.
다시 돌아왔다는 건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길고긴 여행.
드디어 서울의 전경이 나타나자 긴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관장님, 일어나세요.”
“아, 왜?”
“서울 왔어요. 이제 곧 내릴 거예요.”
“정말?”
최강철의 목소리에 윤성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소음에 유광호를 비롯해서 일행이 주섬주섬 일어나는 게 보였다.
“좋으시죠?”
“그럼, 아이고 이게 얼마만이냐. 서울이 이렇게 예뻤어. 예쁘다, 예뻐.”
정신을 차린 윤성호가 너스레를 떨자 최강철이 빙그레 웃었다.
“하하하… 저 누나보다 더 예뻐요?”
“이 자식아, 비교할 걸 비교해. 대상이 다르잖아. 자연과 사람. 물론 난 아름다운 저 스튜어디스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이제 더 이상 못 볼 텐데 아쉬워서 어쩐답니까. 내가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까요?”
“또 지랄한다. 너 정말 이번에도 삽질하면 죽어. 정말이야. 하지 마… 정말 하지 마!”
윤성호가 작은 목소리로 협박을 한 후 순식간에 두 눈을 감았다.
마침 스튜어디스가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행기의 안내 멘트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곧 서울에 도착하니 안전벨트를 꼭 매달라는 주문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일행과 함께 출구를 향해 걸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들 속에 이번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최강철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일행을 놀라게 만든 것은 로비로 나가는 게이트가 열렸을 때였다.
빰빠라 빰…….
우렁찬 밴드 소리.
최강철 일행이 로비로 나오는 순간 길게 늘어선 악대가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팡파르를 울렸다.
그런 후 양복을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꽃다발을 들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축하하네, 축하해.”
“강철아, 협회장님이시다. 인사드려.”
유광호의 소개로 그가 복싱 협회장인 남인구라는 것을 알았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기념 촬영에 회장의 축사가 이어졌고 벌 떼처럼 몰려든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리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회장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업적을 홍보라도 하려는 듯 최강철과 김동길을 끼고 사진을 찍었는데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두 사람이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데리고 다녔다.
최강철은 사진을 찍으면서 주변에 가득 몰려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기자들이 20여 명이나 되었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기 때문에 금방 숫자가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사람들을 보던 최강철의 눈이 번쩍 빛난 것은 멀리서 다가오지 못하고 꽃다발을 든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엄마!”
사진을 찍다 말고 부모님을 향해 달려갔다.
놀란 협회장과 간부들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최강철의 눈에는 오직 부모님의 초라한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한달음에 달려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어머니를 가슴에 꼭 안았다.
“엄마, 그동안 잘 계셨죠.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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