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145화 (144/200)

# 145

145. 신 제브라드를 찾아서 (2)

여기는 제브라드의 아도노스 제국.

제국의 최고 교육기관인 아도노스 아카데미와 주거지의 사이에 위치한 상업 지구에는 제국의 명물이라 일컬어지는 한 음식점이 있었다.

이오르 식당.

식당의 주인인 이오르는 귀공자라고 오해할 정도로 잘생긴 외모에 무척이나 젊은 사내였다.

제국의 여인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사랑앓이를 했을 정도로.

하지만 그런 외모와 달리 성격은 개차반이었다.

괴팍한 건 기본이요, 무엇이든 즉흥적이고 말투는 배우지 못한 평민처럼 걸걸했다.

그럼에도 모두가 입을 모아 극찬하는 게 있었으니, 하나는 왕실 기사도 찜 쪄 먹는 강한 힘이었고, 두 번째는 그의 요리 실력이었다.

‘제브라드의 모든 음식을 먹어 보고 싶다면 이오르 식당을 찾아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십, 수백 가지의 요리부터 들어 본 적도 없는 특이한 요리까지, 모든 걸 취급하는 곳.

그만큼 유명했기에 찾는 사람도 많았으나, 음식점의 명성에 비해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100평의 3층짜리 건물.

1층은 조리실로, 실제 손님을 받는 건 테이블석으로 된 2층과 룸으로 된 3층이 전부였다.

건물 주변은 창고 부지나 야외 테이블로 꾸며져 있지만, 손님을 받는 곳이 아닌 대기자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그렇게 하루에 받는 손님은 총 300명.

심지어 점심시간 이후 3시간은 브레이크 타임이라는 휴식 시간까지 있는 곳이었다.

손님들은 불만이 높았으나, 요리사나 직원들에게는 복지가 좋은 직장으로 손꼽혔다.

단점이라면 배움을 요청하는 요리사들과 직원으로 뽑아 달라며 무작정 찾아와 생떼를 부리는 이들이 많다는 걸까.

그나마 식당 옆에 우도현교가 건설되면서 그런 이들은 엄청나게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신도들의 식사를 책임지게 되었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이오르의 식당 직원들은 브레이크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각자 요리 연습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함께 수다를 떠는 등의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 그때, 식당 주인인 이오르는 우도현교의 연무장에 있었다.

“이 새끼야, 다리가 비었잖아!”

퍽! 퍼벅!

“그렇게 움츠린다고 막아지냐? 앙? 가드 안 올려? 뚝배기 깨 줘?”

험악한 말을 아무렇게나 쏟아 내며 가볍게 주먹을 날리는 이오르의 샌드백은 노아 이선이었다.

제국의 땅이 된 전 노아국의 왕, 노아 말이다.

“크흡! 억!”

키는 비슷했지만 호리호리한 이오르에 비해 두 배나 큰 체격임에도 그의 주먹이 꽂힐 때면 맥을 못 추고 몸을 움츠리기 바빴다.

결국, 머리를 한 대 맞은 노아는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고작 그 실력으로 개겨? 언제 한 대라도 쳐 볼래? 씨불여 줄 이야기도 조온나 많은데, 하나도 못 듣겠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는 노아의 얼굴은 처참히 일그러졌다. 붉고 푸른 멍과 오른쪽 눈덩이가 부어오른 게 안쓰러워 보였다.

연무장 가장자리에서는 청색으로 염색한 가죽 바지와 흰색의 반팔 티 신도복을 입은 수십 명의 신도들이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대부분 입을 꾹 닫은 채 눈을 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반적인 신교와 달리 우도현교는 신성력 대신 끝없는 강함을 추구하는 곳이었다.

어떻게 보면 용병 집단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착용한 신도복 때문일까, 그나마 통일감은 주었기에 수긍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자리를 비운 에놀드 아드노타를 대신해 임시로 이오르가 훈련을 맡고 있었다.

그 훈련을 빙자한 구타가 이어지는 상황이었고.

그렇다면 노아도 우도현교의 신도일까?

그건 아니었다. 3년 전 제국의 여황, 헤미오르 쥬 노르세아스의 첩으로 거론됐던 노아를 이오르에게 맡긴 이후로 가끔 일어나는 훈련이었다.

며칠 전, 어떠한 이유로 노아가 이오르에게 악을 쓰며 달려든 뒤로 지옥 같은 훈련이 시작된 것이었다.

연무장에 모인 신도들은 그런 노아가 부러우면서도 화가 났는데, 소문에 제국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함께 모여 이오르의 부재를 축하하는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그 중심축이 노아였다는 말이 있었다.

즉, 제국에 반하는 집단 모임이라는 말.

모두가 쉬쉬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저렇게 맞는 거로 끝나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제아무리 왕이었다 해도, 소드마스터라 해도, 이 우도현교에서는 그렇게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지도 않았다.

특히 그런 반감을 품었다는 점에서 신도들에게 험한 꼴을 보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제국의 여황께서 섬기는 분이자, 유일한 공작 직위를 받으신 분.

그리고 추앙을 넘어 신이라 불리는 우도현의 비호를 받는 나라였다. 그리고 이곳은 그런 우도현을 섬기는 우도현교다.

직위가 있는 신도들의 시선에 감정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직위가 낮은 신도들은 노아가 부러웠다. 대신관인 에놀드 아드노타나 이오르는 가르침을 내려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얻어터지는 게 다라고 해도, 그들은 감사히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런 질투심과 첫날에 비해 맞은 흔적이 깨끗한 모습은 또다시 질투심에 불을 지폈다.

저놈을 키워 봤자, 반란을 일으키기만 할 테니까.

주위 시선이 어떤 의미가 있든 상관없는 이오르는 헐떡이는 노아를 발끝으로 쿡쿡 찌르며 성질을 긁었다.

“야, 왜 말이 없냐? 옥수수 다 털려서 말 못해? 아니면 벌써 포기했냐? 앙?”

노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를 악물고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부릅뜨며 살기까지 쏟아 냈다.

“씨… 바아아알!”

이오르의 다리를 낚아채 부술 기세로 역으로 꺾었지만, 손에 잡힌 다리는 꺾이기는커녕 반대로 자근자근 밟혔다.

빠각! 우드득! 퍼억!

꺾이고 부서진 건 노아의 갈비뼈와 팔다리였다.

“그래, 이렇게 발악 좀 해야 흥이 나지. 어? 힘 풀린다? 좀 꺾였다고 힘을 풀어? 팔다리 잘려 나갈까 봐 칼도 안 들었……!”

기절한 노아의 몸을 농락하며 빈정대던 이오르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러더니 발을 빼며 눈이 마주친 신도 한 명을 불렀다.

“거기.”

“예! 이오르 님!”

“헤나지그 불러서 치료시켜.”

“어… 헤나지그 님이라도 완치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알아서 해. 그 시간 동안 머리 좀 식히라 하고.”

마지못해 대답한 신도는 우물쭈물하다 상업 지구와 아카데미 경계에 있는 제일 화려하고 높은 탑인 제6마탑으로 달려갔다.

지켜보고 있던 다른 신도들도 의아해했다. 훈련이 끝나면 치료까지 도맡았던 그가 마탑주에게 넘기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궁금함을 못 참고 상급 신도 에이거가 이오르에게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어. 좀 걸릴지도 모르니까 식당에도 알려 줘.”

“예, 다녀오십시오!”

이오르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지막에 한 번이라도 가르침을 받으려 했던 신도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흩어졌다.

***

모르달은 멍하니 넋을 잃고 제브라드를 보다 눈물을 왈칵 쏟으며 달려갔다.

“제, 제브라드 니이이임!”

하지만…….

모르달의 짧은 앞발은 제브라드를 통과해 허우적거리다 바닥에 넘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사가가 습기 가득한 목소리로 탄식했다.

“기억 보존 마법…….”

“아님다요! 그럴 리 없씀다욧! 제브라드 님은… 제브라드 님은…….”

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질끈 감은 모르달은 머리를 흔들었다.

[모르달.]

“예, 제브라드 님! 소인 말이 맞지 않슴까요?”

얼굴을 번쩍 든 모르달의 시야에 눈높이를 맞춘 그녀가 보였다.

따뜻하고 한없이 자상한 미소를 짓는 얼굴.

언제나 모르달이 그리워하던 제브라드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는 표정을 흐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해요.]

모르달이 눈을 휘며 웃었다. 눈꼬리를 따라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방정맞게 벌어진 입에서 헤픈 웃음이 튀어나왔다.

“헤헤, 소인은 제브라드 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슴다요. 잠시 여행이라도 가신 검까요? 늘 소인을 데리고 다니시지 않으셨슴까요. 아님 디오니소스 님과 잠시…….”

[미안해요, 모르달. 말없이 보내서. 못난 저 때문에 구박 많이 받았죠……?]

모르달은 눈만 끔뻑였다. 흐린 시야에 그리운 주인이 있는데 다가갈 수도, 안길 수도 없었다.

[모르달만큼은 살리고 싶었어요. 저에게 있어서 모르달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

혼잣말처럼 천천히 말을 읊을 때마다 모르달의 고개는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도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결국 모르달은 끅끅대며 울기 시작했다.

제브라드는 그런 모르달을 처연히 바라보다 묵묵히 지켜보는 사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가는 한숨처럼 말했다.

“정말 영면에 드신 겁니까?”

그녀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올 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저도 신이 되고서 첫 일탈은 여행이었답니다. 의미는 조금 다르겠지만요.]

그녀는 잠시 회상에 젖었다.

랜덤 티켓으로 가게 된 지구. 그곳에서 도깨비 휘와 엄마를 잃은 새끼 족제비 모르달을 만났던 것까지.

물론 모르달은 제브라드에서 큰 줄 알지만.

제브라드의 입가에 피어난 희미한 웃음이 씁쓸했다.

다시 말을 이었다.

[신 린 아니사, 마지막으로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녀의 검지에서 은빛 구슬이 만들어지더니 사가의 이마에 닿자 사라졌다.

멍한 눈빛이 되었던 사가는 조금 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제브라드는 고개를 돌려 모르달을 바라봤다.

[모르달, 행복해야 해요.]

“제브라드 니임…….”

떼쓰며 울고불고 매달릴 줄 알았던 모르달은 서럽게 눈물만 흘려 댔다.

그래서 더 슬퍼진 제브라드는 만질 수 없음에도 손을 뻗어 모르달의 머리를 쓰다듬듯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며 모르달의 몸에 손을 넣었다.

밖으로 빠져나온 손엔 은색 빛을 발하는 물방울이 딸려 나왔다.

주인의 증표이자, 신성력의 원천.

경악한 모르달이 펄쩍 뛰었다.

“아, 안 됨다욧! 제브라드 니이이임! 이건, 이건 정말 안 됨다요옷!”

이것마저 사라진다는 건 신과 이어졌던 모든 걸 끊는다는 의미였다.

힘뿐만이 아닌, 모든 추억조차.

제브라드가 환하게 웃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모르달, 안녕.]

짝!

얇은 비명이 울렸다.

“아, 안 됨…….”

동시에 부르짖던 모르달이 축 늘어졌다.

[린 아니사, 잘 부탁드려요.]

기절한 모르달의 몸이 허공에 둥실 실려 사가의 양팔에 착지했다.

싱긋 웃는 그녀의 입꼬리를 따라 떨어지는 눈물을 봤을 때, 둘은 처음 발을 디뎠던 드래곤의 레어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금발에 푸른 눈의 사내가 사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오르였다.

“이게 누구신가?”

빈정거림이 가득한 이오르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사가는 뒷걸음질 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도 못했던 사가는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지, 지나가던 여행자…….”

“지나가던 여행자가 텔레포트로 드래곤 레어에 들어왔다고? 그 정도로 실력 좋은 놈은 내가 아는 한 반쪽짜리 검둥이랑 교리 설파에 미친 대신관 놈밖에 없는데?”

움찔, 움찔!

사가는 양심을 후벼 파는 이오르의 말에 식은땀을 줄줄 흘려 댔다.

평소라면 자주 찾던 좌표가 바로 떠올랐을 텐데,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 듯 떠오르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다시 아무 말이라도 해 보려는데 이오르가 차분하게 말했다.

“아버지, 맞지?”

“…….”

사가는 맥이 탁 풀렸다.

긴장으로 굳었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마나의 품으로 돌아갔던 거 아니었어?”

미약하게 떨리는 목소리.

차라리 화를 냈으면 덜 불편할 텐데, 아무래도 마지막에 크게 싸웠던 걸 계속 후회하고 있었나 보다.

“어… 떻게 알았냐?”

“내가 아버지 유희를 모를까 봐? 그중에서도 희대의 마녀라 불리는 린 아니사를?”

사가는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몸엔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걸까.

한창 피가 끓던 젊은 시절, 골드 드래곤의 위엄이라며 늘 바르고 지혜로운 드래곤을 연기해야 했던 그는 참다못해 계획을 짰다.

수면기에 든다는 뻥을 치고 꾹꾹 참아 왔던 본성을 전부 드러내는 유희를 즐긴 것이다.

유희 중에 친해진 마족 나태한 레이지와 함께.

그놈과 짜고서 온갖 악행을 일삼는 왕국을 박살 낸 적이 있었는데, 레이지가 흥에 취해 제브라드의 절반을 삼키고 몬스터 지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때문에 제브라드의 역사 속엔 도현만큼이나 악마로 기록되었고…….

신 제브라드를 처음 만나 남은 일생을 제브라드의 평화를 위해 봉사하기로 약속하며 덮을 수 있었던 흑역사였다.

드래곤들 사이에서도 유일하게 알았던 친우도 이오르가 태어나기 전에 먼저 마나의 품에 돌아갔기에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가 찬 웃음이 들렸다.

“하,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아무리 마나의 품에 돌아간다 해도 그렇게 대뜸 사라질 수가 없잖아! 로드인데, 로드가 다음 대를 정하지도 않고 간다고? 로드가 나오지 않으면 무를 수도 없는 게 로드 아냐?”

이상하게 머리가 비상한 녀석인 걸 알았지만, 그 비밀을 어떻게 알았지?

끄응, 앓던 사가는 숨기기를 포기했다. 마른세수라도 하고 싶었지만, 품속의 정신을 잃은 모르달을 보며 제 아들에게 말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자리 좀 옮기고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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