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99화 (99/200)

# 99

99. 비상 체제 (2)

5년 전, 그날.

세상이 변하던 날.

근처로 떨어졌던 달 조각에 집이 무너졌다. 그 당시 한참 전부터 계속 울어 대던 마루 때문에 잠에서 깼고, 밥을 달라는 말인 줄 알았던 그녀가 주방으로 간 사이 사고가 일어났다.

콰드드득!

건물이 흔들리며 불과 5분 전에 나온 방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그 방에 홀로 남았던 마루는 그렇게 허무하게 고양이 별로 가 버렸다.

이제 막 3살이 된 아주 예쁜 사내아이였는데….

충격으로 각성했다는 것도 몰랐다. 마루가 무너진 자신의 방에서 뛰어나왔으니까.

모두가 슬퍼하는데, 자신만 생글생글 웃었다. 여기 마루가 있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부모님은 입을 다무셨다.

일주일이 지나서였을 거다. 당찬 동생이 언제까지 헛소리를 해 댈 거냐고. 마루는 갔다고.

그제야 외면했던 현실을 깨달았다.

‘말’하는 고양이는 없으니까.

그날 무너진 자신의 방에서 뛰어나온 건 마루의 모습을 빼다 박은 정령이었다.

자신이 누군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정령.

성장도 할 수 없었다. 방법을 모르니까.

그래도 각성자가 되어, 한국대학교의 헌터 사무공무원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할 수는 있었다.

그 덕에 이렇게 일을 하곤 있지만, 좌천당했다.

부정을 못 봐주는 빌어먹을 성격 때문에.

‘여기서 쫓겨나면 이제 정말 갈 곳도 없어.’

그러니 참고 또 참아야 했다.

각성자라지만, 그녀에게 정령인 마루를 빼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으니까.

“하아…….”

인생 참 허망하구나.

현타를 곱씹고 있을 때, 데스크를 스쳐 가는 두 헌터의 이야기가 그녀의 귀를 자극했다.

“야, 너 그 소식 들었어?”

“뭔데?”

목소리만 들어도 무척 앳된 느낌이 나는 두 사람.

많이 쳐줘 봤자 이제 갓 20살이 된 애들이다.

‘저 나이에 헌터라니.’

부럽다.

“우도현 헌터, 1급이래.”

“뭐― 읍?!”

“야, 이 새꺄, 조용히 좀 햇!”

두 헌터는 그대로 구석진 곳으로 갔다. 하필 그곳이 그녀의 옆 화장실 복도라는 것이, 그리고 하필 오늘따라 그녀의 귀에 그 소리가 콕콕 박혔다는 것이 문제였다.

‘새꺄, 말이 되는 소릴 해! 1급은 행방불명된 미국 헌터 하나밖에 없다고! 그리고 1급을 그냥 따냐? 국가급 재앙을 해결해야 줄까 말깐데!’

맞는 말이었다.

그럴 일이라고 해 봤자 5년 전 그날 이후로 벌어지지 않았다.

‘인성 형 알지? 어제 워프파크 워프 던전, 그때 봤대.’

플래티넘 헌터증. 그것도 투명한 색.

……말이 돼?

‘말이 되냐…? 투명이면….’

두근, 두근, 두근!

이정현은 두근거리는 맥박에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았다.

강함. 그 누구도 닿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에 우뚝 선 헌터.

그때 그녀의 귓가에 애옹거리는 마루의 울음과 조 과장의 부름이 동시에 들렸다.

“정현 씨, 이리 와.”

-나, 나 왔어! 화끈하게 한 방 먹여 주고 왔어!

‘미안, 나중에.’

데스크 위에서 꼬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도도하게 걷는 마루에게 신경 쓰지도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 예! 조 과장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오라고 손짓하는 조 과장 옆에는 처음 보는 사내가 자신을 보며 미소 지었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서글서글해 보이는 얼굴.

사내인데, 왜 상큼해 보이는 걸까.

거기다 분위기는 자신보다 어른 같은데, 얼굴은 자신보다 어려 보였다.

어색하게 다가가자 평소와 달리 사람 좋은 웃음을 걸친 조 과장이 과장되게 사내에게 소개했다.

“우리 헌팅 보고 팀 에이스, 정현 씨입니다.”

‘에이스는 개뿔, 싸움닭이겠지.’

대체 저 사람이 누구길래 저 조 과장이 굽실거릴까.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부터 가까워질 때까지 자신에게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던 그는 다가온 그녀에게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정현 씨. 저는 P팀 팀장 서재현입니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이 애즈펌과 함께 어우러지며 후광이 비추는 듯했다.

멋있다.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정현!’

그녀는 한 박자 늦게 악수를 하며 물었다.

“……이정현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사무적인 말투였지만 떨림은 감출 수 없었다.

뭔가 촉이 왔다. 불안하다.

‘이거 또 좌천 아냐?’

이정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씹었다.

이번 달 들어 2주기 워프 때문에 날 선 헌터들이 많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너무 나대 버렸다.

‘월급 반 토막 나면 큰일인데…!’

일주일 전 길가에서 주워 버린 다섯째 토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지금이라도 죄송하다고 헌터와 안 싸우겠다고… 철판 깔고 자리로 돌아가…?’

혼자였다면 1초의 망설임 없이 박차고 나갔다. 하지만 다섯이나 되는 주인님들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다.

‘월급쟁이에게 남는 건 현실과 타협할 철판 두께뿐이지….’

그래, 싹싹 빌고 제자리로 돌아가서 빵긋빵긋 웃으면서 일하자! 주인님들을 위해! 간식 하나 더 조공하기 위해!

그래서 조 과장에게 말하려고 하는데, 어째서인지 그가 악수한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당황해 쳐다보니 아직도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얼굴이 화끈거려 다급하게 손을 빼자 가볍게 놓아주며 그가 싱긋 웃었다.

“이정현 씨를 P팀으로 스카우트하고 싶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이야? P팀은 뭐고, 왜 사람을 보고 계속 웃기만 하는 건데?

설마… 가지고 노는 건가?

그런 결론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조 과장이 이정현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정현 씨, 뭐 하나? 감사합니다, 해야지? 스카우트라니,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긴 하구만! 아무튼 축하해?”

저 꼬이다 못해 탈장 날 새끼.

말이 스카우트지 다시 좌천행이 분명했다.

실습 때 박 터지게 싸웠던 헌터 협회 부장 새끼가 그랬다. 저가 물러날 때까진 어떻게든 굴려 버릴 테니 감당할 수 있으면 들어오라고.

대답 없이 가만히 서 있으니, 서재현이 미소 띤 채 부드럽게 말했다.

“자리를 옮길까요?”

이정현은 움찔했다. 소음이 일상인 헌팅 보고 팀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아서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단 한 사람. 그녀의 옆자리 이영은만이 주먹을 쥐고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이정현은 그녀를 보고 굳은 입술을 풀었다.

아까 전하지 못했던 인사를 더해 입을 달싹였다.

고마워. 힘낼게.

***

고요한 헌터 협회장실.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만 가득한 이곳에 문이 벌컥 열렸다.

쾅!

“아저씨! 이게 무슨 말이에요?!”

씩씩대며 들어온 차도식이 강혁의 책상을 손으로 내려쳤다.

놀란 토끼 눈으로 문 앞에서 서성대는 비서들과 달리, 강혁은 평온했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비서들이 문을 닫고 나가자 다시 협회장실은 침묵이 감돌았다.

강혁이 무슨 말이라도 할 줄 알았지만, 자신의 시선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모니터만 보고 있자, 차도식은 다시 소리를 빽 질렀다.

“아저씨!”

“왜?”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요!”

차도식은 손에 쥔 종이를 들이밀었다.

2, 3급 헌터의 헌팅 목록이 일괄로 적힌 것으로, 도현이 헌팅할 워프가 노란 형광펜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부분을 빤히 보던 강혁은 눈동자만 굴려 차도식을 바라봤다.

“이게 왜?”

“왜 처남님이 2주기 3등급 워프를 전부 헌팅 해야 하는 건데요?!”

“못 할 건 없지 않냐.”

“2급인 저도 있고! 3급인 지현이도 있다고요! 아직 2주기 전이잖아요. 세 팀으로 2주면…….”

“도현이 못한댔냐? 너한테 따져 달라더냐?”

차도식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3급이잖아요.”

“1급이다.”

“아저씨가 직권 남용한 거잖아요! 헌터 총협회에서 인정한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 12개를 한 달 만에 파괴하라고요? 그러다 1급으로 변이하면요? 여태 1등급 워프 헌팅한 헌터는 없었다고요!”

강혁은 말없이 차도식을 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났다.

세상이 변했을 때.

떨어진 달 조각에 삶의 터전을 잃었고, 그 자리를 되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헌팅을 해야 했던 헌터들.

힘을 가졌기에 의무만 종용당했고 그 의무에 짓눌려 목숨을 잃은 이들만 30만 명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달 조각에 뺏긴 땅을 겨우 절반 좀 넘게 되찾았지만, 희생된 헌터를 기리는 이들은 형식적인 추모가 끝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잇속만 챙긴다며, 헌터를 손가락질하는 이들만 늘 뿐.

그런데 지금 그 상황이 다시 반복되려 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위험하다.

방치한 2주기 워프는 시한폭탄과 다름없었으니까.

그것도 1등급 워프.

성공한 적도 없고, 정보도 없는 워프다.

그럴 위기의 워프가 12개. 1개만 터져도 수도권을 포기해야 할 판인데, 12개면 대한민국은 끝이라 볼 수 있었다.

말로만이 아닌, 정말 초비상 사태를, 단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니.

그것도 죽마고우라는 친우의 아들에게!

반대로 자신과 아내인 하지현은 4급 워프 45개가 끝이었다.

모두 2주기가 한 달 이상 남은 안전한 워프들로만.

“아저씨, 이건 아니잖아요? 아무리 절 자식처럼 생각하신다 해도, 다른 헌터들이 보면 뭐라 하겠냐고요!”

“다른 헌터들은 못 본다. 2급 이상부터 열람 가능해.”

그 말뜻을 이해 못 할 차도식이 아니었다.

강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비록 피가 안 섞였지만, 넌 내 자식이야.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게 부모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저 일방적인 감정이 얼마나 숨 막혔던지.

누구든 막론하고 보이기만 하면 주먹질하거나 욕을 퍼붓고 혀를 차던 차도식은 미혼모의 아들이었다.

엄마는 늘 돈을 벌기 위해 바빴고 고된 일로 아팠다. 그의 상처나 사춘기를 보듬어 줄 수 없었다.

골은 깊어졌고, 서로가 서로를 의무로만 대하던 일상 중 하루. 차도식의 나이 19살.

성인을 한 달 앞둔 그날 엄마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흘러 강혁이 찾아왔다.

엄마의 첫사랑이자 결혼까지 약속했던 사이라고 소개한 아저씨.

프러포즈를 받고 잠적해 버린 엄마를 찾아 이제야 자신 앞에 나타난 아저씨.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는 아저씨. 동시에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며 입양을 거론하던 아저씨.

싫었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지만 거부했다.

거기에 자신은 없었으니까.

엄마에 대한 속죄만 있었으니까.

‘더는 못 하겠다.’

차도식은 지쳐 버렸다.

지현이가 이 사실을 모를까?

큰장인, 장모님은?

처남님은……?

더는 폐를 끼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눈을 감았다 떴다.

눈앞엔 자기 연민에 빠진 사내만 보였다.

차도식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겁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비상 체제 이후.”

“……?”

“헌터 차도식은 헌터계를 떠나겠습니다.”

“도식아!”

경악한 강혁이 벌떡 일어나 그를 잡으려 했지만, 차도식이 먼저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협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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