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4. 그 헌터의 자취방 문은… (4)
도현은 소파에 앉아 떨떠름한 얼굴로 서 있는 두 여자를 봤다.
또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제브라드 인간이.
“하, 무슨 내 집이 만인의 쉼터도 아니고.”
“무례하군요.”
짜증이 가득 담긴 혼잣말에 태클이 들어왔다. 딱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여자 쪽이었다.
평소라면 인상만 찌푸렸을 그 말이, 오늘은 불독으로 인내심은 바스라 진 상태였다.
순간 도현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드드드드드!
“죽고싶냐?”
“꺄아아악!”
그의 한마디에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으며 거실을 넘어 건물째 흔들렸다.
언젠가 일어났었던 7.0의 지진처럼, 싱크대 위 식기 건조대에 엎어진 그릇들이 펑펑 터져나갔다.
‘아차, 그릇!’
지구에 돌아오고 얼마 동안 차원의 갭 때문에 힘 조절이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힘이 약해져 적응하는데 힘들었는데, 그때 엄마의 잔소리가 이젠 환청으로 들릴 지경이었다.
도현은 빠르게 힘을 흩쳤다.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던 건물이 뚝 멈추며 숨이 턱턱 막힐 것 같던 공기도 본래대로 돌아갔다.
현관문 밖에서 희미한 사이렌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일으킨 힘 때문에 작동한 듯 했다.
깨진 그릇까지 사라지자, 도현은 짜증으로 가득한 한숨을 뱉으며 이마를 쓸어 올렸다.
“니들 뭐냐?”
“노, 노르세아스 백작가의 여식 헤미오르… 쥬 노르세아스라 합니다.”
“아, 아가씨의 전속 시녀 데, 데린입니다.”
금발에 보랏빛 눈을 가진 여식과 진갈색의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시녀. 그렇게 2명이었다.
헤미오르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아랫입술을 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두려움에 절로 낮춰지는 시선을 오기로 들어 도현의 얼굴 뜯어보던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틀림없어! 책에서 봤던 그 ‘악’이야!’
아카데미 도서관 깊숙이 꽂혀있던 낡은 책, 그 첫 장에서 본 초상화와 꼭 닮은 얼굴이었다.
독서광인 그녀는 새로운 지식 습득하는 걸 좋아했다.
얼떨결에 자신의 지식으로 영지가 발전하게 되자, 그녀는 영지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더 큰 지식이 필요해.’
제브라드의 지식의 보고로 알려진 아도노스 아카데미.
허락해주실 거라 생각했던 아버지는 여자란 이유로 반대하자 아카데미 입학을 위해 가출을 결심했다.
그렇게 2년이 흘러 아버지의 병마 소식에 서둘러 집으로 가던 길에 발견 한 문.
빽빽한 나무 사이에 이질적으로 떠 있는 문에 홀린 듯 다가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문 안으로 들어가 도현을 발견한 뒤였다.
떨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킨 헤미오르는 그제야 주위를 살필 수 있었다.
낯선 공간. 밀실이라기보단 방이란 걸 깨닫자마자 방을 채운 신문물에 눈이 반짝였다.
흠칫!
그녀의 행동에 적나라하게 불쾌감을 내비치는 도현을 보고 울컥했다.
전설의 인물이 눈앞에 있다는 묘한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말이다.
‘악마….’
아카데미 도서관의 낡은 책, ‘악의 근원 일대기’.
그 주인공이 여기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무엇보다 그 책이 발행된 해가 떠오르자 헤미오르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으로부터 300년은 더 된 책.
‘정말 드래곤…?’
설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 전 그 힘은 인간의 것이라기엔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었다.
인간이 천재지변을 일으킬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 그 기억이 떠오르자 겨우 참았던 요의가 다시 정신력을 시험하려 했다.
강한 정신력이 자신을 살릴 줄이야.
무가(武家)의 피가 이런 데서도 힘을 발휘할 줄 몰랐다.
헤미오르는 얼굴이 화끈거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당신… 우도현 맞죠?”
“악… 읍!”
그녀는 경기를 일으키는 시녀, 데린의 입을 다급하게 막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손가락으로 제국도 날린다는 전설의 주인공이었다.
한마디가 심기를 거스른다면 자신들의 목숨도 위태롭다.
계급을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죽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헤미오르는 데린을 끌어안고 눈을 질끈 감았다. 곧 닥칠 고통을 준비했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그저 네모난 액자의 움직이는 그림에서 나오는 소리만 거실을 울렸다.
살며시 뜬 눈에는 악마가 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자신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니, 저, 저렇게 경박할 수가!’
저지른 사람은 저기 있는데. 그녀는 자신이 왜 부끄러워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치를 떨던 헤미오르가 주먹을 꽉 쥐고 한마디 하려던 때 도현이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몇 마디 덧붙였다.
“그래, 이번엔 뭔데? 빨리빨리 하고 가라. 나 치느님 영접해야 돼.”
치느님? 영접?
앞의 단어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마지막 단어는 완벽하게 이해했다.
‘세상에! 저 악마가 모시는 신이 있었단 말이야?’
어질.
세상이 핑 돌았다.
곧 신이 온다 했다.
‘그렇다면 여긴 신을 모시는 신전?!’
하지만 특이한 구조지만 이 좁은 곳에 신전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너무 밝고 깨끗하다고 해야 할까.
‘좀 더 어둡고 음습하고 괴기스러워야 맞지 않나…?’
“설마, 니들도 밥 먹으러 왔냐?”
심각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갈 때쯤 튀어나온 식사 이야기는 헤미오르조차 벙 찌게 만들었다.
갑작스레 악마의 태도가 변했다.
좀 전처럼 힘을 실어 두려움을 주는 건 아니었다.
잔뜩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마치 뭔가 뺏기지 않기 위한 몸짓 같달까?
띵동!
때마침 벨이 울렸다.
“아, 이런 젠장.”
도현은 구겨진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 현관문을 열었다. 성인 남자의 상반신만 한 드론이 조용히 허공에 떠 있었다.
워프에서 얻을 수 있는 ‘마나석’으로 움직이는 배달 드론이었다.
그는 익숙한 손길로 드론의 몸통 뚜껑을 열어 치킨을 꺼냈다.
뜨끈하고 기름진 치킨의 향이 풍겼다.
‘으음―’
까칠한 도현의 기분을 누그러뜨리기엔 충분했다.
[잘 받으셨나요? 맛있게 드시고 리뷰 부탁드립니다!]
상큼한 여성 목소리가 드론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뚜껑을 닫자 드론은 드론 전용 도어를 통과해 건물 밖으로 사라졌다.
덜컹.
묵직한 현관문이 닫히자 3명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하아. 이번만이다 이번만.”
좁쌀의 인내심이 치느님 덕에 한발 양보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모르는 그녀들은 멍청한 얼굴로 의아해할 뿐이었다.
도현은 헤미오르에게 시선을 한 번 던지고 식탁 위에 치킨 봉지를 풀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노르세아스가(家) 자신이 첫 친우의 성이자 친우의 가문.
천재 검사로 소드마스터에 올라 150년을 살았지만, 도현에 수명에 비하면 턱없이 짧았던 삶이었다.
그에 비해 저 여자는…
‘뭐, 직계라기엔 시간이 너무 흘렀고 방계려나.’
친우는 친우였을 뿐, 그의 가문을 돌봐준 적은 없었다. 친우의 유언이기도 했고, 살아생전 친우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기도 했다.
‘은혜는 노르세아스 제국만으로도 넘친다.’
정말 최악의 고생은 다 했던 시절이기도 했고, 친우가 떠난 뒤의 슬픔으로 100년 넘게 방황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 신경 쓸 여유가 없어 기억에서 잊어버렸다.
그 후 450년 만의 만남.
세팅이 끝난 도현은 머릿수대로 앞 접시와 수저를 챙기다 멈칫했다.
‘아, 과도밖에 없었지.’
식칼로 눈동자가 굴렀다.
과도보단 잘 들지만 크기부터가 좀 아니었다.
진짜 나이프를 사 둬야…
“아씨, 내가 왜 이런 걱정까지 해야 해?”
역시 제브라드 놈들. 신이나 인간들이나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든다.
투덜대며 도현은 창고 방에서 의자 두 개를 꺼내 와 멀뚱히 서 있는 둘을 향해 턱짓했다.
“와서 앉아.”
치느님은 일인일닭이 생명이거늘.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만사가 귀찮다.
멘탈붕괴의 주범 변태 불독.
치킨 한 조각을 오물오물 씹던 그는 변태 불독이 불쑥 떠오르자 난폭하게 치킨을 씹었다.
그놈 때문에 오늘 하루가 평탄치 못한 것 같았다.
‘설마 그놈을 졸업까지 봐야 하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왔다.
끔찍했다.
‘그냥 학과를 옮겨?’
일생일대가 걸린 고민을 하던 도현은 숨죽인 채 자신만 보고 있는 둘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이게… 뭐죠?”
조심스럽지만 목소리는 당당했다.
백작가의 영애치고는 꽤 드세다.
바스라진 인내심 탓에 조금 과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았다.
‘썩 나쁘지 않은데.’
역시 피는 흐른다는 건가.
“치킨.”
“치킨?”
“닭 튀긴 거. 먹어 봐.”
생각보다 부드러운 말투 탓일까, 둘은 서로 시선을 마주친 뒤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데린이란 시녀가 놀란 얼굴로 포크를 보다 후라이드 한 조각을 찍어 접시에 덜었다.
과도를 갖고 한입 크기로 자른 뒤 독약을 먹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입속에 밀어 넣었다.
“아…!”
눈이 번쩍 떠진 그녀는 황홀한 얼굴로 감탄을 연발했다.
그 모습에 헤미오르가 침을 삼키며 포크를 들었다.
나이프를 찾던 손이 멈칫했다.
“칼 없어. 어차피 순살이라 그냥 먹어도 되는데.”
도현은 그렇게 말을 던지며 양념치킨 하나를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어댔다.
입 주변에 묻은 양념이 피처럼 붉다.
헤미오르는 흠칫 몸을 떨며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아가씨, 정말… 정말 맛있어요! 어서 드세요!”
데린이 자신이 쓰던 나이프를 건넸다. 서로 격 없이 지내는 사이라 이런 행동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녀의 양보에 미안해졌다. 델린의 눈은 아직도 저 치킨이라는 것에서 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미안. 하나만 먹어보고 돌려줄게.’
눈빛 대화를 끝낸 헤미오르는 비장한 모습으로 후라이드를 크게 씹었다.
바사사삭!
“……!”
입안에 거친 껍질이 이 사이사이로 부서져 내렸다. 그 안의 촉촉하고 탱글탱글한 살이 씹히며 감춰있던 육즙이 흘러나왔다.
‘어, 어떻게 이런 맛이?!’
세 박자가 한데 어우러져 입안을 희롱했다.
아찔한 치킨의 향미에 취한 그녀는 하나만 먹고 넘기겠다던 말을 잊었다.
두 개, 세 개, 네 개.
와작와작!
‘아아. 데린이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알겠어!’
그녀의 가문은 소박하고 정갈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가문이었다.
의식주 모든 게 그러했지만, 유독 식사시간엔 더 엄격했다.
과하지 않게, 약간 부족한 듯.
18년이란 세월 동안 지켜온 그 삶의 습관 때문에 치킨의 맛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쾌락으로 다가왔다.
부르르.
엄청난 쾌감에 몸이 떨렸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것만 같은 느낌.
금단의 열매 맛이 이러할까?
여운이 가시지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은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왜 귀족들이 먹을 것에 욕심을 내는지 알겠어….’
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을 끼니마다 챙기던 귀족들이 꼴도 보기 싫었는데.
하지만 이렇게 먹어보니 그 심정이 이해됐다.
지식 습득만큼이나 높은 쾌감.
‘아니 어쩌면 더.’
그녀는 황홀한 표정으로 포크를 놀렸다.
턱, 턱.
“아?”
하얀 상자 안에 가득했던 후라이드가 어느새 밑바닥을 보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옆 상자의 양념을 지그시 바라봤다.
턱!
색 때문에 살짝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제는 이것이 피가 아님을 안다.
그녀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한 입 베어 물 때였다.
“그거 매운 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