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의 자취방-3화 (3/200)

# 3

3. 그 헌터의 자취방 문은… (3)

대학교 등록금 완납 영수증이 얼굴을 때렸던 그 날.

‘졸업하지 못하면 엄마랑 같이 살 줄 알아!’

잔뜩 화가 난 엄마의 목소리에 집이 쩌렁쩌렁하게 울렸었다.

‘가, 같이?’

지금도 같이 사는데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화난 엄마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그래! 같이! 평생!’

‘평새애앵?!’

일, 이년쯤 함께 살다 독립을 선언하려던 도현의 꿈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한다면 하는 엄마.

그걸 빼다 박은 도현은 엄마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단박에 이해했다.

도현의 눈동자가 불안으로 떨렸었다.

여기에 엄마는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아빠 회사에 말단으로 굴려 버릴 거야!’

‘헉!’

결국, 도현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의 사업이 몬스터 사체로 돈을 버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몬스터 사체를 사들여 분해한 뒤 다시 판매하는 현대판 백정.

일반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직종이었지만, 도현에게는 끔찍한 직종일 뿐이었다.

하루 수면 시간 3시간.

쉼 없이 갈리는 아빠를 보고서 질겁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돌아온 건데!’

그 일 후로 고분고분해진 도현은 효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말 잘 듣는 아들이 되었다.

‘차라리 막 나갈 때가 좋았는데.’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눈치챈 엄마의 계획이 아니었을까?

정말 한없이 뒹굴던 11개월의 기간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입맛을 다시던 도현은 반쯤 감긴 눈으로 저만치 멀어지는 줄을 따라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일명 학교 뒷산으로 불리는 청룡산으로 줄이 길게 이어졌다.

헉헉대는 숨소리가 산을 들썩일 때쯤 나무가 듬성듬성한 공터에 익숙한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달?’

보랏빛 반달을 땅에다 엎은 모습은 무척이나 이질적이면서도 그리움도 함께 들었다.

가로 10미터, 높이 5미터의 크기로 터널을 연상케 하는 이 달은 최하급인 7등급의 워프였다.

짝짝짝.

불독, 구승호 대위는 손뼉을 치며 시선을 모았다.

“이제부터 입장한다. 5열 종대.”

학생들은 잡음 하나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 줄에 20명씩 5줄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도현은 멀리서 지켜보다 끝줄 끝에 남은 한자리로 가서 섰다.

“입장!”

왼발, 오른발! 구 대위의 구보가 붙었다. 헉헉대던 학생들은 어디 가고 구보에 맞춰 씩씩하게 워프로 들어갔다.

[7등급 워프, 사자갈기 늑대굴에 입장하셨습니다!]

종잇장 같은 단면의 달 속에 발을 들이자마자 숲이 사라지고 어두운 동굴이 펼쳐졌다.

“오, 여기가 워프야?”

도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동굴 벽에 박힌 돌들이 어두운 동굴을 은은하게 밝혔다.

뒤꿈치를 들면 머리가 닿을 듯 낮은 동굴은 방과 복도 형식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벽은 무척이나 반들반들했다.

‘말이 실습이지, 피크닉인데?’

축축한 동굴 속 목숨을 위협하는 함정과 독벌레, 부패한 내장의 악취가 익숙했던 도현은 김빠진 콜라처럼 피식 웃었다.

“그래도 지구에 이런 게 있으니 심심치 않겠어.”

긴장감이 가득한 분위기와 다르게 그는 관광이라도 나온 모습이었다.

혼잣말을 들은 몇몇은 수군거리며 검지를 귀 근처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든 말든 도현은 워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말이다.

“이게 워프라니!”

“이것 봐! 코르타니다!”

“발 조심해, 거기 균열로 무너졌어!”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는 앞의 학생들은 워프를 보며 신이 났다.

그저 책으로 배웠던 다른 차원이 눈앞에 펼쳐졌다는 것도, 그 속의 몬스터를 헌터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흥분되나 보다.

“워픈데, 헌터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야, 7등급 워프에 뭘 바라냐?”

한 학생의 바람은 바로 이루어졌다.

동굴이 끝나고 커다란 방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오오오!”

헌터 3명이 목에 털목도리를 두른 늑대 몬스터 5마리와 대치중이었다.

왼손에는 동그란 방패를, 오른손에는 대검을 든 사내가 선두에 서서 몬스터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뒤에는 활을 든 여자와 양손검을 든 남자가 치고 빠지며 차근차근히 한 마리씩 줄여갔다.

크와와왁!

“들어간다! 미나 대기, 영훈은 내가 살짝 빠졌을 때 치고 들어가!”

“알았어!”

“오케이!”

투두둑! 쾅, 쾅! 케엑!

양손검의 시원한 풀 스윙에 늑대 2마리가 목숨이 끊기며 동굴 벽에 처박혔다.

남은 늑대는 셋. 늑대들의 시선이 양손검을 든 영훈에게 쏠리려면 방패를 든 사내가 다시 사이에 끼어들어 시선을 끌었다.

사선을 두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전투에 학생들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무슨 아이돌 공연장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도현의 눈에는 재롱잔치였다.

그저 크고 화려한 동작들로 채워진 싸움. 그 증거로 여유로운 목소리와 동작,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크큭,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구 대위는 도현의 혼잣말을 받아치며 그 옆에 섰다.

도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 자꾸 주위에서 알짱거려?’

곱지 않은 시선을 뿌려대도 구 대위는 혼자 팔짱을 낀 채 말뚝처럼 사냥중인 헌터들을 구경했다.

크, 크르르릉…

어느새 늑대는 한 마리만 남았다. 4마리가 순식간에 죽은 탓인지 기세가 한풀 꺾인 모습이었다.

뒷걸음질 치는 늑대를 따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헌터들의 모습에 학생들은 이미 열광의 도가니다.

“5년간 행방불명 됐다고 들었다.”

무심한 얼굴로 지켜보던 도현 귀에 구대위의 목소리가 꽂혔다.

“요즘 학교에선 학생 사생활에도 관심이 있나 보네요.”

“보통은 관심 없지. 단지 특이한 이력은 필수 기재라서 말이다.”

도현은 구대위의 호기심에 인상을 찌푸렸다. 20대 초반의 풋풋한 얼굴로 대하기에는 그가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요?”

“헌터, 너도 그쪽 아니냐.”

아.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군.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귀찮음이 잔뜩 묻은 얼굴로 대답했다.

“아닌데요.”

무표정으로 뚫어지라 쳐다보던 구 대위는 왼쪽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그렇군.”

그러곤 쿨하게 돌아섰다.

정말 자랑하고 싶어 튕긴 거라면 이쪽이 아쉬울 정도였지만.

그게 아님에도 도현은 왠지 찜찜함을 느꼈다.

“아 참. 헌터 사무공무원 학과는 시험이 없다.”

별것 아닌 말투였다. 이 말 만큼은 도현의 귀가 쫑긋했다.

“대신, 각성 테스트와 리포트만 있을 뿐이지.”

구 대위가 고개만 뒤로 돌려 씨익 웃는다.

익숙한 눈빛이었다. 진지하게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도현은 이 눈빛을 이렇게 정의했다.

‘맛이 간 눈빛.’

“그때 다시 보자.”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훑고 가는 진득한 시선에 도현은 몸서리쳤다.

‘엄마! 여기 변태 불독이 있어! 변태 불독이 있다고오오오!’

쿵!

우오오오!

마지막 늑대가 쓰러지자 헌터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함성을 질렀다.

분위기에 심취한 학생들도 주먹을 허공에 내지르며 함께 함성을 질렀다.

패닉에 빠진 도현만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

도현은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도현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너무 피곤한 하루였어.”

푹신한 소파에 안정을 취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정신 건강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은 그는 너덜너덜해진 머리 위로 +10이라는 숫자가 주기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헌터들의 사냥 구경이 끝난 뒤로 이어진 워프 견학은 그저 신기한 동굴 답사였다.

평소 강의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끝난 건 좋았지만, 반대로 정신적인 피로는 배로 심했다.

“불독….”

특히 끝날 때까지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구 대위 때문에, 도현은 수명이 갈리는 것 같았다.

“학교 가기 싫다….”

그 덕에 택시 드론을 다고 집으로 오는 길에 걸려온 엄마 전화는 평소와 달리 도현의 하소연으로 가득했다.

‘엄마, 학교에 불독 변태 군인이 있어! 날 위아래로 훑으며 흐흐흐 웃었다니까?!’

‘아, 구승호 대위님 말하는 거니? 호호호, 카리스마 넘치고 사내다우시지?’

‘아니, 엄마 날 변태 눈깔로 봤다니까?! 그리고 헌터 사무공무학과인데 왜 각성 테스트가 있어?’

숨도 안 쉬고 쏟아내는 말을 받아주던 엄마가 정색하고 물었다.

‘응? 너 각성자 아니었니?’

‘으응?’

‘너 각성자니까 넣었는데?’

‘아―닌데?’

‘어머, 얘, 각성자 아니면 워프 못 들어가. 어디서 엄마 놀릴려구.’

‘…….’

졸지에 커밍아웃을 한 그는 지구의 공기가 불편해졌다.

‘하필 워프란 게 생겨서는! 달은 또 왜 없어지고 지랄이야?’

차라리 제브라드가 나았…

“아니, 무슨 끔찍한 생각을!”

오랜만에 겪는 크리티컬 데미지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안 되겠다. 오늘은 특식을 먹어야겠어.”

마침 밥도 반찬도 똑 떨어졌으니.

“치느님. 너로 정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무 많이많이.

[안녕하세요, 드론의 민족입니다. 고객님이 주문하신 음식이 40분 이내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바로 전송되는 알림톡에 깎인 정신이 좀 더 빨리 회복됨을 느꼈다.

‘아아, 정화된다.’

조금 정신을 차린 도현은 늘 그렇듯 발을 뻗어 테이블 위 리모컨을 쥐었다.

고민 없이 채널을 돌렸다. 종착역은 지구에 돌아와서 절대 질리지 않는 먹방 채널.

왕동원의 3대 천왕! 갈비의 왕을 찾아라!

성우의 웅장한 목소리와 함께 화면이 바뀌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주먹만 한 갈빗대 6개 눈에 들어왔다.

“헉!”

시뻘겋게 달아오른 숯 위 불판에 진한 갈색의 양념을 바른 갈비가 자글자글 익어갔다.

뿜어지는 연기 사이로 그은 듯 아닌 듯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소리는 그렇지 않아도 허기진 위장을 더 요동치게 만들었다.

야들야들하게 굽힌 갈비가 가위에 서걱서걱 잘려 이리저리 구르자, 도현은 뒤로 넘어가 소파 위를 뒹굴었다.

“아아… 고문과 동시에 힐링이라니!”

가뜩이나 정신적인 데미지를 받은 탓에 더 심각한 허기를 느꼈지만, 그와 반대로 스트레스는 점점 사라지는 중이었다.

“헌터니 워프니 해도, 실상 현실은 변한 게 없네.”

도현이 느끼기에는 그저 연예인이 두 부류로 나눠진 정도였다.

아무래도 몬스터와 싸우는 헌터 쪽이 생동감 있고 자극적이다 보니 인기가 더 많단다.

시청 등급이 15세인데도 말이다.

“아, 배고파. 치느님은 언제 오는 거야?”

눈으론 TV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시선을 못 떼던 도현은 배를 움켜쥐머 TV 위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겨우 15분밖에 안 흘렀다니!’

극심한 허기짐에 다리를 달달 떨던 그의 귀를 긁는 소리가 있었다.

끼이익.

“어… 어?”

여행자 옷차림의 여자 2명이 당황한 얼굴로 들어왔다.

“또냐…?”

도현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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