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차원의 벽(1)
누군가가 스킬 생성을 요청했고, 누군가가 그 스킬 생성 요청을 허락했다.
‘여기서 허락한 당사자는 시스템.’
그렇다면 누가 요청했을까?
“차원의 벽과 관련되어 있다.”
차원의 벽과 관련되어 있다.
레스트와 언소월은 그렇게 추측했다.
좌측 끝으로 밀려난 알림창을 빤히 바라보던 한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원 거래 대상자들, 정확하게는 대화를 나눈 레스트와 언소월에게 질문을 던지려고 한 것이었지만, 그의 질문보다 새로운 알림창이 떠오르는 것이 더 빨랐다.
[요청 사항을 확인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확인되었습니다. 능력 차원 거래의 보조 능력 ‘대화’에 거래 대상이 추가됩니다.]
“……!”
한율이 고개를 홱 돌렸다.
직사각형 홀로그램.
메신저 어플을 연상시키는 홀로그램의 우측 상단.
레스트.
에리얼.
언소월.
차원의 벽.
“이게 무슨!”
차원의 벽.
차원의 벽이라는 이름을 가진 누군가가 들어와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인 듯 에리얼은 물론 레스트와 언소월까지 입을 열었다. 한율도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도 잠시, 입을 꾹 다문 채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차원의 벽: 원활한 회의를 위해 요청, 수락을 받았습니다. 한율, 레스트, 에리얼, 언소월은 차원의 문 능력을 사용해 차원, 차원의 벽으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기보다는 시스템에 가까운 말투.
‘아니, 메시지……. 아니지, 말투가 맞지.’
소리를 내어 뱉은 말이 문자로 번역되어 상대방에게 전해진다. 그러니 메시지가 아닌 말투라고 볼 수 있다.
[레스트: 차원의 벽님?]
[차원의 벽: 현재 지구 시스템의 요청을 통해 능력, 차원 거래에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원활한 회의를 위해 한율, 레스트, 에리얼, 언소월은 차원의 문 능력을 사용해 차원, 차원의 벽으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레스트: 대화 능력에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이 1시간이라고 하셨습니다. 차원의 벽으로 이동할 시, 당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까?]
레스트의 질문에 차원의 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생각 이상으로 오랜 시간 침묵하는 ‘차원의 벽’이 갑갑한 한율이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레스트의 메시지가 생성되었다.
[레스트: 정정하겠습니다. 차원, 차원의 벽으로 이동할 시 차원의 벽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까?]
[차원의 벽: 그렇습니다.]
[레스트: 으음, 일단 시간을 맞춰서 차원의 벽으로 이동해야 할 거 같습니다.]
“…….”
한율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에 입대를 한 일반인이 아니다. 그는 초능력을 각성한 헌터였고, 마법사였다.
‘인간이 아닌가?’
레스트가 당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차원의 벽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레스트가 다시 입을 열어 ‘당신’을 ‘차원의 벽’으로 정정해 질문을 던지자 그때 차원의 벽이 레스트의 질문에 대답했다.
한율이 레스트에게 들었던 영혼을 가진 무기, ‘에고’를 언급했다.
“에고일까요?”
[레스트: 에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에고가 맞을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한된 시간에 차원의 벽과 대화를 나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차원의 벽이 능력에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이 1시간이라는 것이다. 즉, 레스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면 차원, 차원의 벽으로 이동할 시, ‘차원의 벽’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언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조급할 필요가 없었다.
레스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한율이 차원 거래 대상자, 아니 대화방에 들어온 이들에게 말했다.
“그럼 날짜를 잡아 모이죠.”
[레스트: 날짜를 잡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예?”
[레스트: 정보가 많을수록, 그리고 그 정보가 빠르게 모일수록 상황을 대처하는 시간이, 작전을 구상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 작전 성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지금 만나자고요?”
[레스트: 예. 그렇습니다.]
***
회식 불참을 선언한 한율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마탑 소속 헌터들과 함께 마탑으로 복귀했고, 작별 인사를 나누자마자 엘리베이터에 올라 4층 버튼을 눌렀다.
“4층입니까?”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김세혁이 한율에게 물었다.
“예. 중요한 일이 생겨서요.”
“그렇군요.”
띵동.
천천히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
김세혁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한율에게 말했다.
“그럼 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천천히 닫히는 문.
완전히 닫히기 직전,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건넨 한율이 몸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호위가 멈추고 문 앞에서 호위가 멈춰 홀로 연구실로 들어가던 한율이 바로 휴게실로 이동했다.
연구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호위들에게 말을 해 놓았다.
방문자를 거절하라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은 한율이 차원 거래 능력을 사용해 대화방을 열었다.
“저 도착했습니다.”
[레스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리얼: 우리도. 아, 한율 씨?]
“네. 에리얼 님.”
[에리얼: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 가지고 오실 수 있어요?]
민초를 사랑하는 바람의 정령왕.
피식 실소를 터트린 한율은 할 수 있다는 대답을 한 뒤에 언소월의 메시지를 기다렸다.
[언소월: 아, 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조금 번거로운 일이 생겨서.]
언소월은 조금 늦는다.
“알겠습니다. 그럼.”
한율이 답변을 기다리듯이 메시지창이 떠오르지 않은 대화방을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죠.”
[에리얼: 차원의 벽!]
레스트와는 다르게 거래창을 없애지 않아 에리얼의 말이 그대로 글자로 번역되어 대화방에 올라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린 한율이 거래창을 닫고 새로운 능력을 사용했다.
“차원의 문.”
우우웅.
파아앗!
빛의 폭발과 함께 나타난 차원의 문.
“……음?”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려던 한율이 ‘차원의 문’을 바라봤다.
회색 페인트로 칠해진 문.
유리 창문이 달려 있다.
한율이 고개를 돌려 휴게실 문을 확인했다.
회색 페인트로 칠해진 문.
유리 창문이 달려 있다.
“외형은 무의식 또는 상상하는 형태에 따라 달라지나.”
확인을 해 봐야 알겠지만 휴게실 문과 똑 닮은 문이 나타났으니 의심할 만했다.
“뭐, 그건 나중에 확인해 보고.”
한율이 다시 고개를 돌려 차원의 문을 바라봤다.
글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과 직접 만난다는 기대감 때문일까.
그저 가설에 불과했던 차원의 벽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며, 그 차원의 벽이 지성을 갖췄다는 가설이 가져온 기대감 때문일까.
제자리에 서서 작게 심호흡을 한 한율이 발걸음을 뗐다.
***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인조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바닥을 빤히 바라보던 한율이 고개를 들었다.
하늘.
지구의 하늘처럼 푸른 하늘과 태양, 그리고 구름.
“……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한율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구름이 움직이지 않았다.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는 게 가능했다.
“허. 신기하네.”
태양을 직시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 멍하니 붉은 태양을 바라보던 한율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
거대한.
아주 거대한 타원이 보였다.
“게이트.”
게이트를 무척이나 닮았다.
그때였다.
[차원의 벽: 한율 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차원의 벽: 레스트, 에리얼, 언소월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홀로그램.
“…….”
이번에는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율이 건빵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찰칵!
너무나 자연스럽게 카메라 어플을 실행시켜 홀로그램을 찍은 한율이 다시 눈앞에 떠 있는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기본적으로 헌터들이 볼 수 있는 홀로그램은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헌터라도 타인의 홀로그램을 확인할 수 없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찍혔네.”
하지만 차원의 벽의 메시지창은 찍혔다.
“즉, 헌터들이 보는 알림창 같은 홀로그램이 아니라는 건데.”
[차원의 벽: 원활한 대화를 위해 차원 거래 능력을 모방했습니다.]
“대화방?”
[차원의 벽: 그렇습니다. 아직 레스트, 에리얼, 언소월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차원의 벽: 예. 가능합니다.]
“저게 차원의 벽입니까?”
손가락으로 유일한 게이트를 가리키는 한율.
[차원의 벽: 그렇습니다. 참조, 차원의 벽과 게이트는 정식 명칭이 아닙니다.]
“아니다?”
[차원의 벽: 차원의 벽, 게이트는 정식 명칭이 아닙니다.]
“그러면요?”
[차원의 벽: 정식 명칭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지구 차원, 차원 거래 능력 각성자 한율을 관찰해 임의로 지정한 명칭입니다.]
“……어, 간단하게 해석하면?”
[차원의 벽: 최초 방문자는 차원 거래 능력 각성자 한율. 그렇기에 정해진 명칭은 없습니다.]
“……최초 방문자?”
[차원의 벽: 그렇습니다.]
“…….”
조금, 아니 매우 긴 대화가 필요할 것으로 추측됐다.
간단하게 말하면 회의 주제에 언급할 정도.
“알겠습니다. 다른 질문은 다른 분들이 도착하면 물어보겠습니다.”
[차원의 벽: 알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초 후, 레스트가 도착합니다.]
“아…….”
레스트.
최초의 거래 대상이자 자신의 스승.
서로의 이익이 되는 ‘거래’를 했기 때문에 스승이라는 호칭을 거부했지만 한율은 그를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우웅.
마나의 유동.
파아앗!
빛의 폭발.
태양을 직시할 때에도 눈을 감지 않았던 한율이 눈을 감았다.
갑작스러운 빛의 폭발에 의해 눈을 감고 말아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거대한 마나를 품은 마법사.
같은 마법사의 길을 걷고 있는 마법사.
같은 마나 호흡법을 습득한 마법사.
천천히 눈을 뜬 한율이 눈앞에 나타난 사내를 확인하고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그렸다.
기다란 막대기 끝에 작고 푸른 구슬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는 회색 로브를 두른 금발의 사내.
그도 한율을 따라 작은 미소를 그렸다.
“어, 안녕하세요.”
잠시 고민하던 한율이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인사를 건네자 금발의 사내, 레스트도 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인사를 건넸다.
저벅저벅.
“예. 대화는 많이 나눴지만 만나는 것은 처음이군요. 레스트입니다.”
천천히 걸어오며 자신을 소개한 금발의 사내, 레스트가 손을 내밀자 한율이 그 손을 잡고 대답했다.
“한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