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협회장, 김환성(2)
실드 밖에는 김환성과 임지혜.
실드 안에는 이상민과 한율, 그리고 배희연.
“입 가리고.”
이상민이 손으로 입을 가린 후, 한율도 똑같이 손으로 입을 가리자 바로 질문을 던졌다.
“필요한 재료는?”
“마나를 품은 도구, 그러니까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종이랑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볼펜이요.”
“또.”
“없는데요.”
“……끝?”
“넴.”
“마나를 품은 종이는 뭐, 종이 제작 중에 마석을 뿌려야 하나?”
“게이트에서 벌목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하! 펜은?”
“그건 구입하면 되죠. 선물용으로 판매된다고 하던데요. 마나펜이라고 하던가?”
이상민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시선을 받은 배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로 대답했다.
“부회장님께서 아끼시는 만년필이 마나펜입니다.”
“아, 그래?”
“예.”
“관심이 없어서 몰랐군.”
마나펜은 구하기 쉽다.
문제는 마나를 품은 나무인데…….
“율아.”
“……예.”
어색하다.
친근하게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어색하다.
“몇 명을 고용할 생각이냐?”
“고용이요?”
“그래. 용병을 고용해 나무를 구해야 할 거 아니냐.”
“마법으로 자르고,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서 가져오면 되는데요?”
“……인건비도 안 드는구나.”
한율은 중요한 일이 아니면 주 5일마다 게이트에서 몬스터를 토벌한다.
“주문서로 제작 가능한 마법은?”
“3서클까지요.”
“구체적으로.”
“으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 파이어 스피어.”
“……화염의 창?”
“네.”
“그것도 하루에 서른 장?”
“아뇨. 그건 힘들걸요.”
3서클 마법진이 2서클 마법진보다 더 크고 복잡하다.
“1서클 마법 주문서는 30분, 2서클 마법 주문서는 1시간?”
“더럽게 기네.”
“제가 경지가 좀 낮아서…….”
개인의 마법, 그리고 마나 이해도가 너무 떨어지는 것도 있다. 5서클을 넘어 6서클, 7서클에 오르면 제작 속도가 빨라지겠지만 현재로서는 1서클 마법 주문서도 30분은 잡아야 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거 맞지?”
“네. 문제는…….”
“문제는?”
“마나를 품은 종이가 얼마나 오랫동안 마나를 보관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
“즉, 유통 기한이 있다?”
“아마도?”
게이트에서 벌목한 나무를 종이로 만들고, 그 종이를 이용해 주문서를 만든 적이 없다.
“몇 차례 시험이 필요하다는 거군. 사용법은?”
“그냥 찢으면 돼요. 주문서를 사용한 사용자의 의사에 따라 마법이 움직이니까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했지?”
“네.”
“흐으음…….”
고민에 잠긴 것처럼 입을 가리고 있는 이상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율아.”
“옙. 부회장님.”
“길드 만들면 생산성 높아지냐?”
“높아지죠. 마법사가 주문서를 만드는 거니까.”
마법사가?
“3서클에 올라야 가능한 거 아니었냐?”
“아닌데요.”
“……근데 왜 안 만들었냐?”
“이번에 경지에 오르면서 스킬로 등록되고, 스킬로 등록되면서 만드는 방법을 깨달은 거여서요.”
“아하!”
***
“상황을 보아하니.”
“……?”
“아직 계약 전이었던 거 같지?”
김환성이 실드 안쪽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한율과 이상민을 훔쳐보며 복화술을 펼치자 임지혜 또한 복화술을 사용해 대답했다.
“예. 그런 거 같습니다.”
“……문제는 계약 전이었다는 것을 알아도 청일 그룹과 손을 잡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는 건가?”
막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청일 그룹의 부회장이 직접 병문안을 올 정도로, 한율이 위기에 처하자 경호팀 팀장인 배희연을 출동시킬 정도로 청일 그룹과 한율의 관계가 매우 돈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매 계약은 가능하겠지?”
“……구입하실 생각이십니까?”
“누구나 쓸 수 있잖아. 일반인은 물론 게이트에서 활동하는 헌터까지.”
헌터의 안전성이 높아지는 일이었고, 헌터가 지켜야 하는 일반인들의 안전이 강화되는 일이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니, 당연히 범죄자들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
“그런 거 일일이 따지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임지혜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순간, 돔 형태의 실드가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는 세 사람.
김환성이 그런 그들을 향해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대화는 잘 끝나셨습니까?”
“예.”
“그래서…….”
어디까지 했더라.
잠시 고민하던 김환성은 임지혜가 복화술로 ‘가격’이라는 단어를 뱉자 짧은 탄성을 흘리고 말했다.
“가격이 어떻게 됩니까?”
“일단 재료비, 인건비.”
한율과 배희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상민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두 사람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환성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기술료, 유통망 형성에 따른 유통 비용,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신분 확인을 철저히 하며,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점을 만들면 경호팀도 따로 두어야…….”
“주문서 상점은 당연히 청일 백화점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닙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범죄자의 활동이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범죄자들이라고 해도 청일 백화점을 공격할 정도로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유비무환이라고 하죠.”
“그래서 얼마입니까?”
“1서클 마법은 50만 원.”
“……싸군요.”
생각보다 싸다.
“1서클 마법 주문서 중 주로 판매하게 될 마법서, 실드는 목숨을 한 번 구할 수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국가 지원 차원으로 판매할 생각입니다. 판매 수량은 하루에 20장.”
“…….”
실드.
한율과 백색 가면의 전투에서, 그리고 방금 자신의 눈앞에서 목격한 푸른 막.
“2서클 마법 주문서 중에 주로 판매하게 될 4대 공격 마…….”
“6대 공격 마법.”
“……6대냐?”
“불, 물, 바람, 땅, 빛, 어둠.”
“빛과 어둠?”
“살상력이 약해서 안 쓰는데요. 상성이 있잖아요. 어둠 속성, 그러니까 언데드는 빛에 약하고, 빛 속성 몬스터는 어둠에 약한 식으로.”
“아하. 그렇게 6대 공격 마법은 150만 원.”
싸다.
E급 마석 한 개 값이니까.
“3서클 마법은 오백만 원.”
2서클 마법 주문서는 D급 마석 한 개 값.
3서클 마법 주문서도 C급 마석 한 개 값.
“그렇다면 4서클 마법 주문서는 일천만 원이겠군요.”
“아뇨.”
“아닙니까?”
“예. 4서클 마법 주문서는 오천만 원.”
김환성과 임지혜가 몸을 흠칫 떨었고, 한율과 배희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매우 비싸군요.”
“4서클 마법 주문서는 수량이 매우 적은 것도 있지만 광역 마법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광선 마법이라면.”
“파이어 캐논, 아이스 캐논.”
“……허어, 캐논 마법이 4서클이었습니까?”
어렸을 때, 판타지 게임을 하며 자랐는지 마법의 효과를 묻지 않고 서클에 대해 묻는다.
“예. 그 파이어 캐논이 4서클 마법이라고 합니다.”
“5서클 마법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율의 말에 따르면 4서클 마법이라고 하더군요. 5서클 마법이 스톰이고.”
“호오호오.”
김환성이 이해가 되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 후, 이상민이 아닌 한율에게 물었다.
“한율 군.”
“예. 협회장님.”
“언제부터 생산이 가능한가?”
“……3개월 후?”
“석 달이라.”
생각보다 짧다.
“석 달 후에도 서른 장인가?”
“네.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면 수량이 늘어나겠지만, 현재로서는 서른 장이 최대입니다.”
“하루 종일 제작에만 집중해도?”
“그럼 늘어나겠죠. 하지만 저는 헌터여서…….”
“게이트 활동 때문에 제작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거군.”
“네.”
“…….”
게이트 활동 때문에 제작에 집중할 수 없다.
헌터들의 게이트 활동을 지원하는 헌터 협회의 협회장으로서 시간을 줄여 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 대신 주말에는 게이트 활동 안 하니까.”
“안 하니까?”
“쉰 장?”
“조금 더 쓴다면?”
“칠십.”
그렇다면 한 주에 제작할 수 있는 주문서는…….
“평일은 하루에 서른 장이니 백오십에다가 주말에는 칠십 장이니까. 백사십. 총 이백이십 장인가.”
총 220장.
“네.”
“딱 맞춰서 이백오십은 안 되겠나?”
“삼십 장 추가요?”
“1서클 마법으로만.”
1서클 마법 주문서를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이다. 즉, 30장을 추가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900분, 15시간이나 써야 한다.
하지만…….
‘석 달 동안 수련하면서 제작할 주문서를 생각하면…….’
이유리를 위한 마법 수업을 제외하면 폐인처럼 집 안에만 틀어박혀 제작에 집중할 생각이다.
벌목?
청일 그룹에 요청하면 된다.
‘아니면…….’
레스트에게 제작 의뢰를 하거나 대리 구매를 요청할까?
한율이 고개를 흔들었다.
‘대리 구매는 손해다.’
마법 주문서는 선택받은 자, 즉 마법사들만이 제작할 수 있는 고가의 상품이었는데, 하필 귀족들이 전쟁을 대비한다는 이유로 주문서를 대량 구매하면서 가격이 더욱더 뛰었다고 했다.
“3서클 주문서 제작 수량을 줄이면 가능해요.”
“끄응. 그럼 그냥 이백이십 장이 낫겠군. 그러면…….”
김환성이 다시 고개를 돌려 이상민을 바라봤다.
“헌터 협회에서 구입할 수 있는 주문서는 몇 장입니까?”
“……칠십 장. 1서클 사십 장, 2서클 스물다섯 장. 3서클 다섯 장.”
“적습니다.”
“저는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
이상민의 말이 맞다.
헌터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주문서다. 당연히 자신의 안전을 위해 주문서를 찾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
헌터 협회, 협회장실.
“……뭔가 까먹은 거 같은데?”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김환성의 혼잣말을 들은 임지혜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안이요.”
“아.”
제안하려고 했다.
청일 그룹과 관계있는 사람이니 빼앗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해 ‘용병’, 의뢰를 받아 일을 해결하는 ‘용병’을 제안하려고 했다.
“지혜야.”
“네, 협회장님.”
“왜 지금 말하냐?”
“저도 까먹었습니다.”
“……하긴.”
헌터는 물론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주문서의 등장.
용병과 관련된 이야기를 잊어 먹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 다시 가 봐야 하나.”
“제가 직접 한율 님의 자택에 찾아가 보겠습니다.”
“……네가?”
“네.”
“그냥 다른 사람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아뇨. 한율 님은 미래가 기대되는 헌터입니다. 용병 제안이라고 해도 협회에서 끗발……. 흠흠, 협회장님과 관계있는 분이 찾아가 제안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김환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자 임지혜는 짧은 인사를 건넨 후에 협회장실을 빠져나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업무?
아니다.
그녀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바탕 화면, 아주 귀여운 강아지가 방긋 웃고 있는 바탕 화면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