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협회장, 김환성(1)
[레스트: 조금 질투가 나는군요.]
“하, 하하…….”
60일,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4서클에 올랐다. 그래서 한율은 같은 마법사의 길을 걷고 있는 레스트의 말에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레스트: 그래도 5서클은 다를 겁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3서클에 올라 4서클을 바라볼 때, 벽이라는 게 보였다.
조금만 더 마법을 이해하면 벽에 가까워질 것 같았고.
조금만 더 마나를 이해하면 벽에 가까워질 것 같았고.
조금만 더 경험을 쌓으면 벽에 가까워질 것 같았다.
“벽이 보이질 않네요.”
처음 3서클에 올라 수련에 매진할 때에도 벽이 보였는데, 5서클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는지 벽이 보이질 않았다.
[레스트: 60일도 채 안 돼서 4서클이라…….]
“…….”
[레스트: 질투 나는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두죠.]
“동의합니다.”
화제가 돌아가는 것은 한율도 원하는 바.
한율은 대답하기 무섭게 떠오른 거래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스트가 거래창에 올린 것은 직사각형 종이.
이름: 매직 미사일 주문서(80).
설명: 1서클 마법, 매직 미사일이 담긴 마법 주문서.
1회용이지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지 생각보다 가치가 높았다.
[레스트: 그대로 따라 하시면 됩니다. 한율 님에게 마법을 가르치면서 마법진을 그리는 법도 알려드렸으니 다른 마법 스크롤을 보낼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네.”
마법진은 마법을 배우면서 함께 배우지 않았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마법 강의를 들으면서 레스트가 일반 종이에 작성한 마법진을 전달받아 마법진에 대해 배웠다.
한율은 바로 준비해 둔 영초를 자신의 거래창에 올렸다.
거래 확인란을 터치하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종이 한 장.
“견본 잘 받았습니다.”
[레스트: 네,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옙! 몸조심하세요.”
짧은 작별 인사를 끝으로 메시지창은 갱신되지 않았다.
한율은 메시지창을 닫고 허공에 나타나 아래로 떨어지던 종이를 들었다.
“……복잡하네.”
커다란 원 안에 마법 문자, 룬어가 적혀 있다.
“이걸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게 아니라 직접 써야 한다라.”
[레스트: 아, 참고로 작성은 염동 마법, 사이코키네시스를 사용하시면 수월하실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레스트: 아닙니다.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한율이 다시 메시지창을 닫았다. 그는 다시 자신만 볼 수 있는 메시지창이 아닌 마법진을 빤히 바라봤다.
“연습이나 해 볼까?”
퇴원하면 가족의 안전을 위해 스크롤 제작, 그리고 아티팩트 제작에 집중하려고 했다.
“사이코키네시스.”
침대 옆, 탁상 위에 놓여 있던 손바닥만 한 크기의 노트와 볼펜이 한율의 앞으로 날아왔다.
“어디 보자.”
레스트는 말했다.
마나를 담아 큰 원을 그린 후, 매직 미사일 주문을 외우면서 마나펜을 움직인다.
당연히 마나펜으로 원 안에 채우는 글은 마법 문자, 룬어.
한율이 노트 한 장을 찢은 후, 찢은 종이 위로 볼펜을 이동시켰다.
큰 원을 먼저 그린다.
룬어를 적는다.
한율에게 있어 1서클 마법, 매직 미사일은 3서클에 오른 이후에도 주요 마법으로 사용하는 마법.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된 건가?”
레스트의 견본을 바라보며 작성하니 크기의 차이는 있지만 똑같은 마법진을 노트에 그릴 수 있었다.
노트, 즉 종이에는 마나가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마나를 품은 종이가 아니라면, 마나를 주입하면 그만이다.
한율은 바로 마나를 주입한 후, 마법진을 그린 종이를 찢어 버렸다.
찌이익.
“……음?”
주문서의 사용법은 간단하다.
“왜 안 되지?”
완성된 주문서를 찢는다.
한율은 고민했고, 이내 둥둥 떠 있는 볼펜을 확인하고 짧은 탄성을 흘렸다.
“아……. 마나를 품은 펜.”
마나를 품은 펜을 이용해 마나를 품은 종이 위에 마법진을 그린다.
사이코키네시스 마법을 사용해 ‘일반’ 볼펜으로 마법진을 그렸으니 마법이 제대로 발동될 리가 없었다.
한율이 손을 뻗어 공중에 떠 있는 펜에 마나를 주입한 후, 다시 사이코키네시스 마법으로 스크롤을 만들었다.
찌익.
이번에도 실패.
“…….”
슬슬 열 받는다.
이번에는 양팔을 뻗어 노트와 펜을 손에 쥔 한율이 동시에 마나를 주입하고 사이코키네시스 마법을 사용해 공중에 띄웠다.
하지만 바로 마법진을 그리지 않고 기다렸다.
“……아. 이래서였구나.”
분명 노트와 펜에 마나를 주입했다. 하지만 손에서 떼기가 무섭게 주입한 마나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주입한 모든 마나가 배출되었다. 제작 도중에 주입한 마나가 전부 배출되어 주문서가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이래서 마나를 품은 나무와 마나를 품은 펜이 필요하다는 거구만.”
마나 종이와 마나 펜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퇴원 후에나 스크롤 제작 연습을 할 수 있는 건가?
그건 아니다.
다시 손을 뻗어 노트와 펜을 가져온 한율이 두 준비물에 마나를 주입하면서 주문서 제작에 들어갔다.
“사이코키네시스.”
펜과 종이에 마나를 주입하고 있는 양팔에 염력 마법을 건다.
스으윽.
“허어.”
미술에는 소질이 없는 자신이 완벽한 원을 그렸고, 글씨체가 더러운 자신이 ‘바탕체’로 룬어를 적었다. 그렇게 5분쯤 흘러 마법진이 완성되었을 때, 한율이 사이코키네시스 마법을 취소하고 양손으로 종이를 잡았다.
시간이 흘러 주입한 마나가 배출되며 주문서의 효과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나가 전부 배출되기 전에 찢으면 그만이다.
드르륵.
찌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먼저 퍼지고, 그 후에 종이 찢는 소리가 퍼졌다.
“……어.”
“우, 우와.”
“어머나.”
“허어.”
착각이라 생각해 아직 고개를 돌리지 않은 상태였다.
귓속을 파고드는 두 남성과 두 여성의 목소리.
한율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봤다.
안면이 있는 두 사람이 보였고, TV에서나 보았던 두 사람이 보였다.
중요한 것은 네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닌, 종이를 찢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머리 위에 생성된 푸른 화살로 향해 있다는 것.
“노크는?”
“……했습니다.”
이상남, 또는 이상민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것인지, 딱 한 단어만 뱉었던 배희연이 어색한 미소로 대답했다.
“했어요?”
“네.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도 보았습니다.”
“그래요?”
“네.”
집중해서 못 들은 것 같았다.
한율은 눈만 깜빡이며 배희연을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틀어 TV에서나 보았던 두 남녀를 확인했다.
두 남녀의 시선은 여전히 종이를 찢는 것과 동시에 머리 위에 떠 오른 푸른 화살을 향해 있었다.
“제압 가능하세요?”
“……아뇨.”
“쩝.”
***
다섯 남녀가 모인 VIP 병동.
“하아…….”
청일 그룹 부회장, 이상민이 깊은 한숨을 내쉴 때, 헌터 협회 협회장, 김환성이 한율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헌터 협회 협회장, 김환성이라고 합니다.”
“에……. 한율입니다.”
“감사 인사를 전할 겸, 좋은 제안을 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전도하시나?
초인종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나가 ‘누구세요?’라고 물었을 때, 좋은 말씀 전하러 왔다고 대답하던 남성이 떠올랐다.
“그런데…….”
“……?”
“그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방금 그거.”
“넵.”
“주문서입니까?”
“아닌데요.”
“종이를 찢는 순간, 종이 안에 담겨 있던 마나가 공중으로 떠올라 푸른 화살이 되었습니다만?”
“헛것을 보신 것이 아닌지?”
“하하하. 그럴 리가요.”
“하하하하.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
“…….”
한참 웃음을 터트리다 정색하는 김환성.
어찌할까.
밀어붙인다고 통할까?
‘안 통하지.’
김환성이 이상민처럼 눈 밑에 다크서클이 가득하고, 잠에 취한 채 들어왔다면 모를까.
“맞습니다.”
한율이 가슴을 쭈욱 펴고 대답하자 김환성이 눈을 반짝였다.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있습니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도?”
“네. 주문서 자체에 마법을 발동시키는 마나가 담겨 있는 거니까요.”
“한율 님.”
헌터도 사용할 수 있고,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다.
일반인도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는 몬스터 전용 무기가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그 무기는 하급 몬스터에게만 통한다.
“헌터 협회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없는데요. 거기다.”
김환성을 바라보며 대답하던 한율이 고개를 돌리자 질문을 던지던 김환성뿐만이 아니라 그 뒤에 서 있던 여성도 고개를 돌렸다.
한율이 바라보는 사람은 청일 그룹의 이상민.
“율이는 우리 청일 그룹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아이입니다.”
한율 군에서 율이가 되었고, 은인에서 아이가 되었다.
이해 못 할 행동은 아니었다.
그들은 보았다.
주문서라는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 도구를.
그렇다면 주문서만이 한율의 장점일까?
아니다.
한율은 각성을 한 지 60일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A급 각성 범죄자와 싸웠다. 방어에 집중하는 싸움이었지만, A급 각성 범죄자와 싸워 살아남았다.
즉, 미래가 유망한 인재라는 것.
또 하나, 헌터 협회는 모르지만, 청일 그룹을 알고 있는 사실.
한율은 마법사를 양성할 수 있다. 그러니 헌터 협회를 상대한다고 해도 절대 밀려날 이유가 없다.
청일 그룹으로서는 한율은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빼앗겨서는 안 될 인재였으니까.
“끄으응……. 그럼 한율 군?”
“예?”
“그 주문서라는 것은 판매하실 생각이십니까?”
“…….”
한율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이상민을 훔쳐봤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는 이상민.
“어, 네.”
“하루에 생산할 수 있는 주문서는 몇 장입니까?”
“적은데요. 으음, 한 서른 장?”
“하루에?”
“네.”
“가격은?”
“가격은…….”
한율이 다시 이상민을 훔쳐봤다.
“청일 그룹에 물어보셔야 할 것 같은데?”
“끄으응.”
다시 한번 신음을 흘린 김환성, 그가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이상민을 돌아봤다.
“부회장님.”
“예.”
“가격을 알 수 있겠습니까?”
“흐음, 일단 우리 율이가.”
또 우리 율이란다.
“주문서 제작 스킬을 최근에 얻어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우리 율이가 익숙해지면 하루에 서른 장까지 제작할 수 있다고 하니.”
“하니…….”
손가락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톡톡 두들기던 이상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율에게 다가갔다.
“실드가 소리 차단도 가능하냐?”
“네.”
“해.”
“실드.”
한율이 이상민의 요구에 바로 돔 형태의 실드를 생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