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 오키나와, 언럭키 이벤트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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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이제 살 것 같다.”
한동안 ‘지옥 폭염’에 시달렸던 플레이어들은 쉘터에 돌아온 이후 ‘성소’를 방문하여 모든 디버프를 씻어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 작전을 시작해야겠지?”
“그래, 내일 공략 작전 때, 그놈을 죽인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아이언 이글>길드원들이었다.
그들은 미국 텍사스 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 길드였다.
그런데 그들의 진짜 일은 ‘공략’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청부를 받고 플레이어 암살을 전문적으로 하는 것,
그게 바로 이 팀의 실질적인 주 수입원이었다.
이 언럭키 이벤트 공략에 지원한 것도 '청부’ 때문이었다.
“이 작전은 솔직히 실수만 안 하면 성공할 수밖에 없잖아?”
“그래, 그 서울의 잘난 놈은 오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지금까지 빌런 측에서 이현욱을 여러 차례 노렸다.
그런데, 매번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자신들은 다르다고, 이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놈은 우리의 정체를 꿈에도 모를 테니…… 흐흐—”
자신들이 이현욱을 노린다는 건 그 누구도 모를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정확 순간에 놈의 등을 확실하게 쏴야 한다.”
또한, 지금 이 대화는 ‘사일러스’ 스킬 속에서 이루어진다.
즉, 3X3m 범위 밖에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 ……이 탄환이라면, 놈이 막을 수 없을 거다.
'……흠, 어떻게 보면 참 안타깝군.’
이현욱, 그의 귓속으로 놈들의 목소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디버프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릴 때 놈들의 장비에 심어 놓은 ‘플라이 아이’의 도청 기능이 활성화된 상태였다.
또한…….
- ‘플라이 아이(V1)’의 '클로킹’
* 초당 마나 소모 : 50
그리고 업그레이드 결과 ‘클로킹’ 기능까지 탑재되었다.
즉, 몰래 넣어둔 걸 들킬 염려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물론, 클로킹을 유지하는 데 마나 소모가 적지 않지만,
이현욱의 마나 회복력으로는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았다.
'저것들을 깔끔하게 처리할 방법을 고민해야겠군.’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은 만큼, 신중하게 처리해야 했다.
***
- 전 플레이어, 공략 집합합니다!
해가 뜨기 무섭게 쉘터 내부 방송이 울렸다.
1차 구조대와 2차 구조대가 쉘터의 홀에 모였다.
"흐—암—”
그들 사이로 1차 구조대장 코도 코지로가 나타났다.
그는 전혀 긴장이 안 된다는 듯 하품을 크게 해 보였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을 쭉 둘러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모두 잘 알겠지만, 오키나와를 씌우고 있는 이 돔을 뜯어버리기 위해서는 보스 몬스터를 공략해야만 합니다.”
그의 손가락이 창문 밖, 나지막한 산봉우리를 향했다.
"저기, 저기에 마지막 보스 몬스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니까…… 저길 쳐야 하는데, 우리는 저 산을 포위할 겁니다."
그는 이어서 4개의 방향으로 산을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즉, 4개의 팀으로 나뉘어서 공략을 펼치겠다는 소리였다.
“……혹시, 이의 있으신 분?”
그렇게 다른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태도까지 보였다.
그러나…….
‘코도 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할 거다.’
‘뭐, 어차피 우리 의견을 들어줄 리도 없고…….'
이들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랭킹 2위의 S등급 플레이어와 65레벨 미만 플레이어, 그사이에는 감히 넘나들 수 없는 초격차가 있었다. 그리고 코도 코시로의 성격이 독불장군이나 다름없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었다.
"음, 아무도 이의가 없군요? 좋습니다!”
이현욱 역시 잔말 않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혀를 찼다.
‘정말 바보 같고 속 보이는 전략이다.’
전 병력이 고작 98명…… 이렇게 적은 플레이어 숫자로 산 하나를 포위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보스 몬스터가 그 포위망을 빠져나가기로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몬스터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다면……
‘……전력이 약한 팀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랭킹 2위가 바보도 아니고 왜 그런 작전을 펼칠까?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보스 몬스터를 치겠다는 생각이다.’
공격 루트를 다양화함으로써 잡몹 숫자를 최대한 분산 시키고,
자신의 화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일점돌파—
이현욱보다 보스 몬스터를 먼저 처리하려는 속셈이었다.
“아, 그리고……."
그는 말꼬리를 흘리며 싱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멋진 승부가 걸려 있다고 해서, 한눈팔지 마시고요.”
그는 하하 웃었고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금 저 말은 '대결’을 한다는 걸 은근히 강조한 것이었다.
앞으로, 세상이 나갔을 때 이 이야기가 더 널리 퍼지도록…….
‘진짜 이 상황을 자신을 위한 쇼로 보고 있군?’
이현욱은 그런 모습을 볼수록 한심함을 느꼈다.
그런데, 쉘터의 피난민들도 이 대결 소식을 접한 뒤, 옹기종기 모여서 누가 이길지 베팅을 벌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런 걸 보면, 코도 코지로의 말이 맞긴 맞단 말이야.’
세상은, 이 현상을 유희로서 즐기기도 한다. 그건 사실이다.
그리고 베팅은…… 압도적으로 코도 코지로 쪽으로 쏠렸다.
잠시 후, 플레이어들은 무장을 마치고 쉘터 밖으로 나왔다.
"자, 목표 지역인 게이트까지는 약 30분 거리입니다.”
그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게이트 쪽으로 행군했다.
이내, 곳곳에서 지축을 울리는 발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사방에서 엘드요툰의 화신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마법사들이 ‘마법 드론’을 통해 관측 결과를 보고 했다.
그런데 그것들은 다짜고짜 다가오지는 않았다,
마치…… 플레이어 일행을 포위하듯 움직였다.
“어, 아무래도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챈 것 같은데요?”
이미 한차례 목격했듯, 이곳의 보스 몬스터는 지능적이다.
이들이 게이트 쪽으로 가는 걸 파악하고 저지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이대로라면 산 초입에 도달하는 순간, 공세가 시작된다.
그것도, 모든 방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치고 들어올 터—
'이거, 바보 같은 작전을 펼쳤다가는 꽤 많이 죽겠는데?’
그런 느낌을 받은 건 이현욱뿐만이 아니었다.
“저…… 대장님, 이런 상황에서 팀을 나눠도 되겠습니까?”
코도 코지로의 부하들도 불안함을 느낀 듯했다.
이 상태에 함부로 전력을 분산하는 건 위험했다.
하지만…….
"그래, 속행한다.”
"그런데…… 그러다가 화력 부족으로 고립되는 팀이—”
"어이— 신지, 너는 63레벨 주제에 뭘 안다고 그래?”
“아…… 죄송합니다!”
코도 신지로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 남자의 어깨를 팡팡 쳤다.
"아니, 아니야. 괜찮아. 용기 있게 네 의견을 말해 준 거잖아? 저것들이 정 신경 쓰이면…… 내가 쓸어버리면 되겠나?”
“……예?”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니샤, 나한테 스킬 강화 버프 좀 걸어줄래?”
그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여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바로 인도에서 고용된 용병인 S등급 플레이어였다.
‘니샤 카이프는 유일무이한 S등급의 버퍼(Buffer)다.’
그녀의 버프는 무려 ‘스킬’을 강화하여 그 등급을 1~2단계 상승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즉, 최고 수준의 플레이어들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것, 그건 엄청난 차이를 자아냈다.
그렇기에 최상위의 공략 팀들이 고난도의 게이트를 공략할 때라면, 그녀를 기용하기 위하여 돈을 아낌없이 쏟아붓곤 했다.
웅——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온 붉은 기운이 코도 코시로의 심장에 닿았다. 그러자 그는 쾌감을 느끼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 좋아, 신지— 네 불안감, 내가 지워주지......."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비상이라도 걸릴 듯 혼비백산했다.
"헉! 대, 대장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려고 한다!”
"전원, 지금 당장 토네이도에 대비한다!”
이어서 코도 코시로가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찍는 순간—
콰—아—아—아——!
그의 몸 주변에서 순식간에 돌풍이 일어났다.
직후, 하늘에서부터 토네이도가 굽이쳐 내려오기 시작했다.
지면과 가까워질수록 더욱 두껍고, 더욱 요란하게— 마치 한 마리의 용이 강림을 하듯, 웅장한 모습이었다.
콰—아—아—아——!
“으으—!”
“큭, 조심해!”
그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그 토네이도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바닥에 엎드리거나 무언가를 붙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탄생한 회색의 토네이도는 코도 코지로의의 지팡이를 따라서 마치 거대한 문어의 촉수가 된 듯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흡사 외계 괴수가, 지구를 유린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
콰—드—드—드—드——!
그것이, 지면을 짓이겼다.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 몬스터는 물론이거니와…… 건물, 가로수, 전신주, 도로 등 모든 것을 깡그리 휩쓸어버렸다.
단 십여 초 만에, 2층짜리 주택 건물 7채가 으스러져 내린다.
헉! 거, 건물이 다 날아간다!”
"윽! 모두 머리 조심해!”
그걸 지켜보는 이들은 황망한 표정이었다.
“너, 너무 다 부수는 거 아닌가……."
플레이어로서 몬스터를 잘 잡는 건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한 이렇게까지 큰 피해를 만들며 하는 공략은 옳지 않았다. 방금 그 스킬 한 방으로 수백 명이 집을 잃은바, 오히려 민간인들의 삶을 흔드는 것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건 공략이 아니다.’
최적의 수를 찾아서 최소한의 피해를 받고 하는 게 공략이다.
'제힘에 심취한 플레이어만큼 위험한 재앙도 없지…….'
이현욱은 다시 한번 혀를 찼다.
그러는 동안, 일대를 폐허로 만들어버린 코도 코시로,
그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플레이어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현욱과 눈이 마주친 뒤 싱긋 웃었다.
"자, 이제 걱정되는 건 없겠지?”
“내가 길도 뻥 뚫어놨으니까, 다시 전진한다.”
코다 코지로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고,
플레이어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의 뒤를 쫓았다.
"아니, 저걸…… 이길 수 있겠어요?”
김세희가 다시금,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가 방금 선보인 화력은 솔직히, 이현욱의 몇 배에 달했다.
***
산 초입, 작전대로 플레이어들은 4개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럼 모두 행운을 빕니다!”
"그래요! 살아서, 밖에 나가서 보자고요!
한국팀은 제 4루트, 산의 남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 외에도 19명의 플레이어가 동행했다.
"이현욱 씨,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들 대다수는 <아이언 이글>길드원들이었는데,
그들은 이현욱과 한 팀이 되기를 적극적으로 자원했다.
"저희 저격팀이 저기, 산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위에 있습니다. 그쪽에서 엄호 사격을 할 테니, 믿고 퍼부어주십시오.”
그쪽 팀장이 그렇게 말했다.
자신들이 사수 계열 플레이어가 많은 만큼, 이현욱이라는 화력을 엄호하기에 적합하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들러붙은 것이다.
“예, 그렇게 하시죠.”
"아, 그리고 그, 날아다니는 박스들 있지 않습니까?”
"네, 공중투하장치 말씀이시군요.”
"그게 저희 저격수들 시야를 가릴 수도 있어서요.”
"잘 조절해보겠습니다만, 제 딜이 우선이죠.”
"아! 그건 지당한 말씀이죠. 예, 감사합니다!”
그는 그렇게 이현욱에게 몇 마디를 걸고는, 뒤로 빠졌다.
그리고 마나 메신저를 켜고는 작게 속삭였다.
"......역시, 당연하지만 놈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
그의 귀로 후방에 빠져 있는 저격 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마도 죽는 순간에도 꿈에도 모를 거다.
"흐흐— 저승에서 왜 죽었는지 고민하게 되겠군?”
그때, 저 먼 곳의 하늘에서 토네이도가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 거대한 토네이도는 산 반대편인 남면에서도 보였다.
콰—가—가—가—가——!
그것이 산을 갈기갈기 으스러뜨리며 희뿌연 먼지가 치솟았다.
“……와, 벌써 저기까지 갔다니, 엄청 빠르잖아!”
이곳, 4루트 쪽은 이제야 산 초입에 들어서며 기껏해야 몬스터 십여 마리를 상대했거늘, 코도 코지로의 1루트 쪽은 흡사 전차 군단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가는 것만 같은 진입 속도였다.
“……진짜 아끼지 않고 마나 쏟아붓고 계신 것 같은데?”
"하긴 ‘버퍼’도 있으니까 마나 수급도 빠를 거야.”
"그리고 최상급 마나 탱크도 2개나 가지고 있으시잖아.”
"그러면 운용 가능한 마나가 한…… 4만은 되시려나?”
이현욱은 등 뒤, 일본 플레이어들의 대화를 들었다.
정확히는 그들의 마나 메신저를 해킹—도청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저들은 코도 코지로가 심어 놓은 감시책이었다.
"이거, 어차피 보나 마나 한 대결이잖아?"
“그러게 이현욱은 무슨 생각으로 이걸 받았으려나?”
“아무리 봐도 머리는 좋은 사람인데……."
그들은 이현욱을 인정하면서도 코도 코지 로가 한 수위 라는 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꽤 객관적인 평가였다.
"아! 알겠다. 결국은 반일 감정 때문 아니겠냐?”
"하하— 역시 그런 것 때문에 객기 부른 거려나?”
"뭐, 애초에 화력으로 코도 씨를 어떻게 이겠어? 한국 애들 특유의 우리에 대한 라이벌 의식, 그런 게 도진 게 분명해.”
이렇듯 모두가 ‘화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한 명이 플레이어가 발휘할 수 있는 데미지의 총량— 그 부분에서는 인페르노와 더불어 최고라고 평가받는 코도 코지로다.
그러나 화력이란 ‘파워’ 외에도 ‘지속 가능함’이 필요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지속 가능함’은 그저 탄환이 많아서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쏘아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공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일종의 전천후(全天候)성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강력한 대포를 단 전차라고 해도 진창에 처박히거나 눈길에 미끄러진다면 결국은 그 화력은 전력 이탈인 셈이다.
‘코도 코지로, 놈의 화력도 마찬가지다.’
이현욱은 산을 조각내고 있는 토네이도를 바라보았다.
‘저건 곧, 멎고 만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가 시작되었다.
- 해당 지역에 <무스펠헤임>의 영향권이 해제됩니다!
"어? 뭐야? 끝난 거야?”
그와 동시에 아직 공기 중에 남아 있던 ‘지옥 폭염’의 열은 열기가 저 멀리, 다른 산에 열린 게이트로 빨려 들어간다.
"어, 설마 벌써 보스 몬스터 잡으신 거 아니야?”
"이야— 역시 코도 씨야!”
그러나…….
이들이 향하는 산의 산봉우리에 있는 게이트가 요동친다.
그곳에서, 무언가 뿜어져 나온다.
화—아—아—아—아——!
그건, 눈보라였다.
그리고 엄청난 냉기였다.
이 세상을 통째로, 급랭시켜버릴 만한 광범위한 재앙이다.
- 주의! <니플헤임>의 ‘지옥 한파’에 노출됩니다!
* 급속도로 ‘상태 이상’ 및 ‘능력치 감소’가 시작됩니다!
산봉우리에서부터 공기가 얼어붙고 나뭇잎에 서리가 낀다.
"—윽! 뭐야!”
"너무 추, 추워!”
이로써, 마지막 로키의 장난이 시작되었다.
'……페이즈 2, 무스펠헤임이 니플헤임으로 대체된다.’
즉, 강력한 폭염이 한순간에 끔찍한 혹한으로 뒤바뀐다.
이는 말도 안 되는 기후 재앙이었다. 지구 생태계선 잠깐의 이상 기후만으로도 수많은 생명체가 죽는다. 그런데 이렇게 한순간에 극단에서 극단으로 바뀐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없다.
“윽! 소, 손가락이 깨질 것 같아!”
- 주의! ‘저체온증(1단계)’에 빠집니다.
* 모든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10%)
* 모든 회복력이 대폭 감소합니다.
* 신체 기능이 대폭 하락하고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 주의! ‘동상(1단계)’에 빠집니다.
* 모든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10%)
* 모든 공격의 명중률이 대폭 하락합니다.
* 주의! 생명력이 지속해서 하락합니다.
겨우 견뎌낸 디버프 지옥이, 새로운 버전으로 찾아왔다.
"……아, 안 돼! 그 지옥이 반복이야!”
“젠장,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벤트야!”
그런 절규는 이곳에서만 울리는 게 아니었다.
4방향 모든 루트—코도 코지로가 있는 곳에서도 울렸다.
"씨발,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코도 코지로가 그렇게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눈에도 온갖 경고성 시스템 메시지가 반복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제대로 된 화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큭! 니샤, 어떻게 좀 해 봐! 상태 이상 해제 스킬 없어?”
"아니, 이런 건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잖아요!”
이건, 처음 돔 안에 들어왔을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씨발, 당신이 우리 길드한테 받은 돈이 얼마인지 알지?”
"하…… 그러니까 내가 신중하게 움직이라고 했죠! 갑자기 무슨 대결에 내기에, 도대체 어린애처럼 왜 그러는 거예요?”
그녀가 역으로 성을 내자 코도 코지로는 고개를 돌렸다.
“2차 구조대장, 나가도 타이! 거기에 있나?”
"네! 여기 있습니다!”
"냉기에 대비하고, 아이템들을 가지고 왔다고 했지?”
"아, 네! 그런데…… 돔 입구에 두고 왔습니다.”
아이스 트롤 가죽으로 만든 3중 방한복…….
그게 쓸모가 있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젠장! 그거 당장 다시 회수해 와!”
“……예? 아, 예!”
그녀가 서둘러 자신의 팀을 이끌고 돌아섰다.
"여기에 우리의 명예가 달렸다! 최대한 빨리 갔다 와!”
그는 그렇게 고함치며, 얼어붙는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아니, 산봉우리 너머의 이현욱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사뭇 조급해졌다. 어떻게든, 놈을 이기고 싶었다.
‘하지만 어차피, 놈도 똑같은 상황이다.’
그는 이를 갈았다.
"그저 조금 늦춰진 것뿐이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
산봉우리에 열린 게이트에서 온갖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다.
북극곰 같은 체구의 백색의 늑대들,
익룡처럼, 거대한 날개를 가진 괴물 새들,
전부, 전설 속의 설산을 지배하는 야수들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두려운 건 그것보다 추위였다.
"흐허허— 추, 추워서— 모, 몸이……."
그리고 그건 저 멀리 옥상에 있는 저격수들도 마찬가지였다.
- 젠장— 보, 보스! 손가락이 굳어서 명중률이 하락 중이야!
아이언 이글 길드의 리더의 귓속으로 그런 무전이 들어왔다.
"......."
- 내 생각에는 지금 바로 작전에 드, 들어가는 게 좋겠어! 여기에서 사,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저격에 실패할 거야!
계획대로라면, 전투가 시작되고 확실하게 방심하는 순간을 노려야만 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하며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지금이 아니면, 이현욱을 처리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한다.”
- 롸저 댓—
그런데 그때였다.
- 삑—삑—삑—삑—
"……응? 이게 무슨 소리야?"
- 어? 이게 무슨…… 맥, 네 가방 어디에서 갑자기—
콰—앙——! 콰—앙——!
……어디선가 폭음이 연달아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건물 옥상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아이언 이글 길드의 저격수들이 잠복하고 있던 곳이었다.
“뭐야! 윌! 맥! 거기 무슨 일이야!”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으아아아.......
이렇게, 고통에 찬 비명만 울릴 뿐…….
그러나 진짜 재앙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꾸아아아——!
그 폭음에 ‘어그로’가 끌렸는지, 산봉우리에 앉아 있던 괴물 새들이 떼거리로 비상했다. 그리고 폭발 지점으로 날아간다.
꾸아아아——!
그 숫자가…… 족히 백여 마리는 되는 듯했다.
"헉! 젠장, 몬스터들이 간다! 당장 거기에서 탈출해!”
그러나 대답이 없는 걸 보아하니 탈출할 여력이 없는 듯했다.
이제 곧 저 괴물 새들이, 옥상에 내려앉을 것이었다.
이현욱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현욱 씨! 제 동료들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합니다만, 늦었습니다.”
"아, 아니 늦은지 어떻게 압니까!”
그는 그렇게 외치고, 등 돌려 동료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가방 안에도 ‘플라이 아이’가 있었다.
‘이걸로, 방해꾼은 사라졌다.’
너무나 손쉬운 처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 김세희가 벌벌 떨면서 다가왔다.
“젠장, 이대로는 다 죽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뭐 없나요?"
이제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먼저 기대하는 듯했다.
그럴 것이, 이현욱의 표정이 평소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걸 느꼈는지 김세희와 박준모, 둘 다 꽤 침착했다.
"뭐, 있긴 있죠.”
"흐어어— 그럴 줄 알았어요.”
이현욱은 AD-1 몇 대를 소환한 뒤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무스펠헤임의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쉬지 않고 갈무리했던 붉은 보색 형태의 재료 아이템 ‘이글거리는 심장’이었다.
그걸 꺼내 들자 강렬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 체내에 스며든 냉기가 해소됩니다.
"어…… 따뜻해요!”
[아이템 정보]
- 이름 : 이글거리는 심장
- 효과 : 일대에 강렬한 열기를 방출합니다. (주의! 큰 충격을 가하면 폭발할 수 있으며 일대를 ‘마그마 필드’로 만듭니다.)
"이게 이렇게 쓰일 거라는 걸 알고 모은 거예요?”
이현욱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속임수가 있는 함정과 퍼즐에는 언제나 그 해결 방법이 같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건 역시……."
“……몬스터를 잡고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이군요?”
"네, 맞아요. 그러니까 루팅을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이현욱은 이어서 쇠 구슬을 잔뜩 꺼냈다.
“그러나, 이걸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천차만별이죠.”
쩌저저저——
쇠 구슬 하나가 십자 형태로 변형하며 이글거리는 심장의 표면을 감쌌다. 마치 과일을 포장할 때 쓰는 망 같은 모양새였다.
그 상태로 금속 통제력을 부여하니, 그게 통째로 비행했다.
‘그리고, 여기에 힘을 주면 폭발한다.’
즉, 마치 뇌관을 심은 듯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이로써 그럴싸한 폭탄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시험 대상들이 나타났다.
크아아아——
산의 오르막길 위, 거대한 늑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니플헤임 프로즌 울프 (LV : 75)
- 니플헤임 프로즌 울프 (LV : 77)
- 니플헤임 프로즌 울프 (LV : 78)
이현욱은 ‘이글거리는 심장’을 그놈들을 향해 날려 보냈다.
그리고 놈들의 머리 위에서, 뇌관을 작동시킨다.
퍼—엉——!
시뻘건 화염이 치솟으며 웬 붉은 액체가 사방으로 쏟아졌다.
깽! 깽! 깽! 깽!
그건, 마그마였다.
그걸 뒤집어쓴 냉기 속성 생명체들이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부글— 부글—
그리고 그 지점에 '마그마 필드’가 형성되어 열기를 뿜는다.
“와…… 확실한 공략법이네요?”
김세희의 말처럼, 가장 효율적인 공략 방법이었다.
이현욱은 총 46개의 이글거리는 심장에 뇌관을 심었다.
그리고 AD-1의 아공간에 그것들을 탑재했다.
‘좋아, 끝났다.’
칙—
"아, 여기는 4번 루트입니다. 전 루트 잘 들으십시오.”
칙—
"지금부터, 이 산을…… 통째로 날릴 겁니다.”
칙—
"……그러니까, 모두 물러나 계십시오.”
이어지는 그의 마지막 말은, 가관이었다.
“……조금, 뜨거울 수도 있습니다.”
이 끔찍한 냉기 속에서, 뜨거움을 이야기하다니…….
그 말에, 모두가 의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우우우우——!
30대의 AD-1가 175개의 아다만트 스타의 엄호를 받으며 나아간다. 그 장면은 흡사 ‘폭격기 편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직후, 산봉우리에서 괴물 새들이 날아들어 요격을 시도한다.
하지만—
30개의 AD-1들이 마치 공격 헬기가 된 것처럼, 수천 개의 발사체를 내뿜으며 화망을 형성, 그것들의 견제를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산봉우리 위에 도달했고,
30개의 AD-1 중, 단 2개만이 고도를 낮추면 하강한다.
그것들이 바로 ‘폭격기’ 역할이었다.
이내 그것들의 하단부—아공간이 개방되며 융단폭격이 쏟아져 내리듯, 수십 개의 ‘이글거리는 심장’이 와르르 낙하한다.
이곳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그 시뻘건 화약의 꿈틀거림—
그때, 그가 마나 메신저를 들어 올려 짧은 메시지를 송신했다.
“……폭파한다.”
세상이, 주홍빛으로 층층이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