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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을 먹는 플레이어-103화 (103/221)

103화.  < 오키나와, 언럭키 이벤트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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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의 최대 화력이 하늘에 전개하며 그림자가 드리웠다. 무려 30개의 공중투하장치,

그곳에 담겨 있는 무기의 총합만 3,000개였다.

그게 쏟아져 내린다면 결코 피할 수 없었다.

그러자, 가토 신이치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어, 왜, 왜……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가토 신이치, 그건 네 이름이 아니잖아?”

이 남자가 등장한 순간부터 이현욱은 모든 걸 눈치챘다.

이미 도플갱어가 나오는 이벤트라는 걸 알고 있는 만큼, 혼자 접근하는 누군가가 도플갱어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아니 완벽한 ‘근거’는 따로 있었다.

- 정체불명의 존재 (LV:98)

그건 바로 시스템 메시지였다.

‘역시 <인사이트 렌즈>다.’

이처럼 NPC나 몬스터는 그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무려 전설 등급의 아이템인 ‘호루스의 눈’을 삼킨 결과물이니 말이다.

그때, 나가노 타이가 이현욱의 어깨를 붙들었다.

"어? …… 자, 잠시만요!”

"나가노 씨, 비키세요.”

"그게 진짜예요? 이현욱 씨가 잘못 준 거 아니고요?”

그녀 역시 도플갱어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조금 전의 대화로서 가토 신이치는 진짜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 아주 영리하게 둘러대긴 했다.’

이현욱이 보기에도 그랬다.

그녀가 도플갱어로 의심하고 있던 탈출자—시즈오코 코가의 이름을 꺼내자, 이 자식은 기다렸다는 그는 '죽었다’라고 말했다. 그로써 돔 밖의 시즈오코 코가를 도플갱어로 확신하게 만듦과 동시에 자신은 도플갱어 아니라고, 무의식중에 각인시킨다.

이는 사실 아주 단순한 원리였다.

어떤 사건에서 용의 선상에 오른 사람이 다른 용의자의 죄를 증언할 시에, 알게 모르게 의심을 덜 받게 되는 것과 같다.

‘사람을 이용하는 놈인 만큼,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본다.’

이현욱이 놈을 향해 걸어갔다.

"저, 자, 잠깐,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고……."

이현욱은 대답 대신, 허리춤에서 페일노트를 쏘아냈다.

쉭—!

푹!

웃기게도 놈은 그 화살을 그대로 맞아버렸다.

"끄아아아— 제, 제발……."

그러더니, 바닥으로 나동그라진다.

그리고 보란 듯이 끙끙거리며 무력한 모습을 연출한다.

"—이것 봐라?”

이현욱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이에 지켜보던 이들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마요! 아무런 저항을 안 하잖아요!”

"이봐요! 막무가내로 그렇게 하면……."

하긴, 이 장면만 본다면 이현욱이 생사람 잡는 것처럼 보였다.

‘이놈은 그걸 노리는 거다.’

그러나 이현욱은 멈추지 않았다.

"그럼 어디, 이걸로도 연기해 봐.”

후—웅——!

이번에 날린 건 무려 ‘모글레이’였다.

그걸 몸으로 받았다가는 반 토막이 날 터,

터—엉——!

역시나, 놈은 그러지 않았다.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죽고 싶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지지지지——!

웬 붉은 방어막이 놈을 감쌌고, 모글레이가 튕겨 나갔다.

“……거봐, 막을 수 있잖아?”

그로써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어……."

이현욱을 말리려고 하던 이들은 멍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가토 신이치는 궁수 플레이어다. 저런 마법을 쓸 리가 없었다.

즉 저건…… 가토 신이치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직후, 놈이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 씨발— 인간 새끼들, 죄다 쉽게 잡아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난데없는 개 같은 상황이람......."

어느새 그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손과 다리가 길어지고 손톱이 자라났다.

이제 확실했다. 저건, 인간이 아니었다.

- 보스 몬스터 ‘트릭스터의 하수인-1’이 등장했습니다!

"젠장, 보스 몬스터다!”

"헉! 진짜잖아!”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육중한 발걸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길 끝에서 함정을 파고 있던 엘드요툰의 화신들이었다. 이번에는 무려 예순 마리 정도, 그것들이 사방에서 조여 들어왔다.

"전투 준비—!”

나가노 타이가 그렇게 소리치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

“큭— 미안하지만, 우리는 이제 마나도 없습니다……."

현재 움직일 수 있는 건 ‘황혼의 클로버 물약’을 복용한 전사 계열들뿐…… 나머지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다.

"이현욱 씨, 퇴로를 뚫어줄 수 있겠습…… 어?”

그런데, 상대해야 할 존재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왜—애—애—애—애——!

이 지역의 하늘을 날아다니던 벌레 떼— 꽁무니에서 플라스마를 발산하는 그 괴물들이 사방팔방에서 몰려오기 시작했다.

‘마그마 말파리 떼, 번거로운 놈들이다.’

머리부터 꽁무니까지 1.5m에 이르는 거대한 벌레,

그것들은 체내에서 농도 짙은 마그마를 분출한다.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마그마를 흩뿌릴 것이다.’

이현욱은 그 즉시 ‘프리드웬’을 방패로 바꾸었다.

이게 고장나면 아직 수리할 기술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AD-1들의 고도를 낮춰서 머리 위를 보호했다.

"모두 가운데로 모여서 마법 방어막을 전개하세요.”

“……저걸 막아낼 방법이 있을까요?”

나가노 타이의 물음에 이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 번에 쓸어버릴 겁니다.”

"예?”

"그때, 마그마가 튈 수도 있으니까, 가운데로 모이세요.”

텅— 텅— 텅— 텅—

그때, AD-1의 아공간 속에 철제 상자들이 떨어졌다.

총 6개, 그것들은 철컥—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 안에는 웬 십자 모양의 수리검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리고 이현욱의 손짓에 따라서 하나둘 비상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아다만트 스타 (고급)

- 효과

1) 자전 : 회전력 부여 시 자동으로 가속도가 붙습니다.

2) 박멸 : 소형 몬스터 대상 ‘관통력’이 상승합니다. (+50%)

레드홀 산 아다만트과 던전강 합금을 바탕으로, 헤파이스토스의 망치로 두들겨서 만들어낸 최고의 경도의 수리검들이다. 또한, 저런 벌레 떼를 쓸어버리기에 탁월한 옵션까지 붙어 있다.

"김 팀장 ‘바람의 검’을 최대한 소환하세요,”

“……네? 아, 네!”

"그리고 내 공격에 맞춰서, 바람의 검을 따라 붙이세요. 그렇게 하면…… 경험치가, 아주 비처럼 쏟아질 테니까요.”

직후, 이현욱이 천천히 양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몸 주변으로 떠올랐던 아다만트 스타들이 회전을 시작했다.

1초, 2초, 시간이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왱—왱—왱—왱—왱——!

그것들이 고속 회전하며 위협적으로 울부짖었다.

그 주변부의 공기가 뒤틀리며 돌풍이 일어난다.

김세희도 그에 맞춰 바람의 검을 일으켰다.

쉬—쉬—쉬—쉬—쉬——

그녀의 어깨 위에서 바람의 정령 하늬가 춤을 춘다.

그러자 허공에서 작은 회오리바람이 십여 개가 일어나고,

그 안에서 바람이 응집—반투명한 칼날 모양을 형상화한다.

"이야아아—!”

이어서 그 옆에 서 있던 박준모도 역시 10개의 손가락에서 전류 다발을 쏟아내더니, 그물망 형태로 만들어 들어 올렸다.

쿠—구—구—구—구——!

강철, 바람, 전류,

그 모든 것들이 한 대 뭉쳐서 회전하고, 요동치고, 번뜩인다.

“……기다려요.”

그리고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거칠게 뒤엉키기 시작한다.

이내 머리 위, 마그마 말파리 떼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전부, 갈아버려!”

세 사람의 양손이 동시에 하늘을 향했다.

그들이 연계하여 만들어낸 폭풍이 마그마 말파리 떼를 덮쳤다.

콰—다—다—다—다—다—!

그리고 이 공격은 '난사’가 아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AD-1 사이에 섞여 있는 ‘후긴’과 동기화했다.

- 당신의 감각이 ‘후긴’과 ‘일치화’됩니다.

그의 감각이 50배로 확장된다. 그로써 175개의 ‘아다만트 스타’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섬세하고 명징하게 체화(體化)하고, 그 쇠붙이들이 마치 살아 있는 맹금이 된 것처럼 노련하게 적을 추격한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갈아버리고 또 갈아버린다.

저 수백 마리의 마그마 말파리 떼를 휩쓸어버리기까지…….

콰—다—다—다—다—다—!

—단 15초면 충분했다.

하늘에서 붉은 살점이 흐드러지며 마그마가 쏟아져 내렸다.

그것들이 아스팔트에 닿아 피어오르는 메케한 연기 속, 이현욱을 비롯한 한국 팀 세 명이, 전장을 휩쓸고 있었다.

이어서 엘드요툰의 화신까지 하나씩 고꾸라뜨리고 갈아버렸다.

"......."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 장면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아이템, 능력, 적절한 공략법까지…… 완벽하다.’

레이드에 필요한 삼박자가 어우러지는 하모니 같은 공세였다.

"이런 미친! 감히, 이, 인간 주제에—!”

보스 몬스터, 트릭스터의 하수인-1은 분노하며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놈 역시 세 사람의 총공세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것들이, 놈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으으으—!"

놈은 몸 주변에 붉은 방어막을 겹겹이 생성했다.

하지만 어느새 놈의 머리 위로 모글레이가 낙하하고 있었다.

쩌——어——엉——!

그 묵직한 거검의 끝이 방어막에 제대로 직격하는 순간 ‘쇼크웨이브’가 일어나며 엄청난 충격파가 일대를 짓이겼다. 붉은 방어막에 쩍— 하고 금이 갔고, 다음 순간 부서져 내렸다.

"안 돼!"

그 균열 사이로 모글레이가 머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놈의 몸뚱이를 내리찍어 꿰뚫었다.

"—컥!”

파—지—지—지——!

이어서 박준모의 전류가 채찍처럼 변해서 놈을 휘감았다.

"이현욱 병장님, 제가 꽉 잡아 뒀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이현욱이 놈의 머리 위 허공에 떠 있었다.

샷건, 블랙라이노의 총구를 놈에게 드리운 채로…….

콰—앙——!

조준 사격, 놈의 몸뚱이가 바닥에 내리박혔다.

콰—앙——!

재차 사격, 아스팔트가 움쭉 파이고 놈의 몸이 으스러졌다.

콰—앙——!

마지막 사격, 놈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증발해버렸다.

그게 끝이었다.

- 보스 몬스터 ‘트릭스터의 하수인-1’을 처치했습니다!

그것의 몸뚱이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웬 검은 돌 하나만이 그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이템 정보]

- 이름 : 정체불명의 검은 코어

- 효과 : 알 수 없음

‘이건, 도플갱어를 만드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연금술이 필요했다.

'……언젠가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게 이 언럭키 이벤트의 끝이 아니었다.

- 축하합니다! 탈출 조건을 ‘갱신’하셨습니다.

* 보스 몬스터 처치 (1/2)

* 무스펠항의 ‘지옥 폭염’이 중화됩니다. (-80%)

‘그래, 여기 보스 몬스터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이현욱은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 아직 안 끝난 건가요?”

"예, 아마도요.”

그래도 상황이 훨씬 나아진 건 확실했다.

"어, 디버프가 확연하게 가셨습니다!”

"후…… 좀 살만한데?”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면서, 돔 안의 열기가 확연하게 가셨다.

"와…… 우리가 산 건 전부 이현욱 씨 덕분입니다!”

"예, 맞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들은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이 현욱에게 감사를 표했다.

"음, 인사는 됐고 제 일이나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예? 어…… 뭘 하면 되겠습니까?”

이현욱은 말없이 몬스터 사체들을 가리켰다.

서걱—서걱—

그렇게 또다시, 심장 갈무리를 시작했다.

"아니, 대체 이걸 왜……."

***

"―여기입니다!”

우라소에 제2 쉘터, 그 근처에서 진짜 1차 구조대와 조우했다.

그들은 근처에서 벌어지는 전투 소리를 들었고, 2차 구조대가 도착했다는 걸 직감하여 급하게 지원을 나오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플갱어가 아니겠죠?”

나가노 타이가 속삭이듯 물어왔다. 이현욱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지만, 인사이트 렌즈에 걸리는 건 없었다.

이어서 쉘터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피난민이 모여 있었다.

“……저기 봐, 또 구조대가 온 거야?”

"그러면 뭐해? 똑같이 고립되는 신세잖아?”

그들은 여전히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하긴, S등급 플레이어들조차 자신들과 같이 갇힌 신세였으니 비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날카로운 인상이 남자,

그는 일본 플레이어 랭킹 2위인 코도 코시로였다.

"하, 당신이 2차 구조대로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그는 이현욱을 발견하고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코도 씨, 반갑습니다. 일본은 안전하다고 해서 언젠가 일본 여행을 해야지 했는데, 저도 이렇게 오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현욱의 말에 코도 코시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건, 그가 돔 시작 전 인터뷰에서 이현욱을 비꼬면서 했던 "일본은 안전합니다.”라는 말을 한 번 더 비꼰 것이었다.

"큼—”

하지만 기분 나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애초에 시비를 먼저 건 코도 코시로 자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상황을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두 사람은 신경전을 마무리하고 짧게 악수를 했다.

“……그나저나 무슨 보스 몬스터 한 마리를 처치했다고요?"

"네, 그러나 시스템 메시지 상, 한 마리가 남았습니다.”

"음…… 보여 드릴 게 있어서 그런데 저와 같이 가시죠.”

코도 코시로는 쉘터 건물 옥상으로, 이현욱을 인도했다.

"저기, 보이십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망원경을 내밀었다.

"저 산과 저 산, 포탈이 총 두 개입니다. 이중 게이트죠.”

그의 말처럼 나지막한 산자락의 두 봉오리에 게이트가 있었다.

이는 지난 ‘서울역 언럭키 이벤트’때도 벌어졌던 현상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관찰한 결과, 지금까지 모든 몬스터는 저 왼쪽에서만 출현하더라고요. 즉, 하나는 아직 대기 상태죠.”

"그렇다면 우측 게이트에 나머지 보스 몬스터가 있겠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 폭염이 잦아들었으니 우리도 공략을 재개할 겁니다. 곧 해가 질 테니, 날이 밝는 대로 움직이려는데, 어떻습니까?”

그의 제안에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현욱 씨……."

"예?”

“……제가 한 가지 요청할 게 있습니다.”

그는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쓱 둘러보며 목소리를 한층 높이기 시작했다. 그들 대다수가 일본인 플레이어들이었다.

"우리가 겪는 이 인류의 시련은 일종의 게임이지 않습니까?”

그는 무슨 의도인지 다소 거창하게 운을 뗐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게임을 오락거리로 즐기고 있죠. 우리 같은 플레이어는 물론이거니와 그걸 지켜보는 민간인들도요.”

“……뭐, 그런 사람도 있긴 있겠죠.”

이현욱의 대답에 그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대부분이죠. 여기에 갇혀 있는 오키나와 주민들은 절망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뭐, 겉으로는 걱정하고 슬퍼하지만, 실상은…… 이 불구경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TV 앞에 모여서 주변 사람들과 떠들어대고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코도 코시로는 이런 괴짜였다. 이 끔찍한 재앙이 결국 유희 거리라면서 그저 즐기라는 주장을 펼치곤 했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저와 당신이 이 TV쇼의 주연으로서, 시청자들에게 한 가지 재밋거리를 더 제공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지옥 폭염’이 없다면 공략은 어렵지 않을 테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씩 웃으며 이현욱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신과 나의 승부죠. 멋지지 않습니까?”

"......."

"특히, 한일 양국에는 상당한 자극이 될 겁니다."

"지금, 보스 몬스터를 누가 먼저 잡는지—”

예, 내기를 해보자는 겁니다. 서로의 아이템을 걸고요.”

이런 상황에서 내기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뭐, 하기 싫으시다면 저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일본의 자존심이 잔뜩 구겨진 상태였다.

야심차게 출발한 1차 구조대가 실패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한국의 이현욱이 2차 구조대로 참여했다.

심지어 그가 놀라운 활약을 펼쳐서 모두를 구했다.

‘……이대로 끝나면, 개망신이다.’

코도 코시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이후로 아무리 자신이 실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그래서 기여도 1위를 달성한다고 해도, 맥락상 이현욱이 주목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일본의 명예는 확연하게 추락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희석할만한 방법은 무엇일까?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나 만드는 거다.’

일단, 코도 코시로가 이현욱에게 어떤 대결을 제안한다.

그것의 결과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그는 자신이 없어서 꼬리를 말고 거절했다.

둘째,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결과적으로 처참하게 패했다.

그가 이 제안을 하는 순간,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성립한다.

‘유희를 즐기는 대중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건 누가 영웅적인지가 아니라, 누가 누구를 어떻게 이겼는가, 바로 그거다.’

사람들이 PVP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는 영웅들 간에 ‘VS’를 붙이는 것,

그것만큼 재밌는 가십거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즉, 이렇게 제안하는 것만으로도 이현욱의 활약상 뒤에 “코도 코지로와의 대결에서 진 자”라고, 자신의 이름이 달린다.

‘이현욱, 내가 네 이름 뒤에 영원히 남아주마!’

코도 코지로는, 이 게임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남자였다.

“……뭘 걸고 내기를 하죠?”

"서로 가지고 있는 영웅 등급의 무기 아무거나, 어때요?”

"......."

"저는, 그 거대한 검이, 가지고 싶더라고요.”

그러자 주변에서 ‘헉—’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려 영웅 등급의 무기가 걸리는 내기라니, 수준이 달랐다.

"......."

이현욱은 고민하는 척하다가, 손을 내밀었다.

“으하하! 이현욱 씨, 역시 배포가 크시군요?”

그렇게, 난데없이 미니 게임이 시작되었다.

***

"......아니, 진짜 자신 있어요?”

김세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현욱이 엄청난 기지와 화력으로 보스 몬스터를 한 마리 공략했다지만, 순수한 화력으로는 코도 코지로를 이길 수 없었다.

"저 남자는, 단일 화력 하나만큼은 최상급인 거 아시죠?”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 통제 능력의 S등급 플레이어 ‘허리게인’ 코도 코지로.

그는 그 별명답게 허리게인을 일으켜서 모든 걸 쓸어 버린다.

2년 전, 훗카이도의 아칸 국립공원 열린 게이트를 공략하던 도중, 단 10분 만에 100헥타르의 산지를 짓이겨 버렸던 장면— 그 파괴적인 광기로 ‘허리게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이었다.

"제가 바람의 정령사라서, 저 남자에 대해서 조사를 많이 해봐서 아는데요, 괜히 허리게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의 화력은 인페르노 못지않아요. 힘들 거예요.”

그런데, 이현욱은 그저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내기를 왜 받아요?”

이현욱은 어깨를 으쓱할 뿐,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우리 사장님, 오랜만에 답답하네……."

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코도 코지로, 그가 가지고 있는 영웅 등급이 뭐가 있었지?’

그는 이 황당한 내기에서, 질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로키의 장난, 그 기만의 함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래 역사상, 2차 구조대는 도플갱어에 농락당해 실패한다.

그 이후로 3차 구조대로 권왕(孝王) 한태산이 투입된다.

그때는 ‘도플갱어’의 존재를 눈치챘을 때였지만…….

‘하지만 그런 한태산 팀조차도 고전하고 만다.’

그 이유는, 또 한 번의 ‘기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지옥 염화’가 잦아들면서 방심하게 되는 순간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함정, 대규모 함정이 열린다.

이현욱은 바로 그 순간을 위해서, 이 돔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계속해서 ‘어떤 대비’를 해나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때마침 내기를 걸어오다니…….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아무래도 일본 열도에,

이현욱이라는 이름이 악명으로 새겨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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