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 전쟁 공포, 전쟁 준비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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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상의 망망대해에 한 대의 컨테이너선이 떠 있었다.
그 배의 이름은 목왕팔준(權王八驗)
그 외양을 보면 13300TEU급의 평범한 컨테이너선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 공안부에서 비밀리에 보유 중인 원양 작전용 선박으로써, 수백 명의 플레이어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으며 온갖 마법 병기까지 탑재된, 그야말로 ‘해상 요새’였다.
또한, 함선 전체에 항시 ‘은신’ 마법이 적용되고 있기에 육안은 물론이거니와 위성으로도 식별할 수 없었고, 선체에 ‘마나 코팅’이 적용되어서 군사용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았다.
즉,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은밀함을 자랑한다.
"자, 이 지점에서 기동하지 않는다!”
다만, 배가 추진할 때 발생하는 물보라를 숨길 수는 없기에, 완벽한 은신을 위해서는 엔진을 끄고 정지해 있어야 했다.
"제2 공간 도약팀, 본토로의 양방향 포탈 전개는 준비됐나?”
이 배의 함장인 펑티옌은 갑판을 시찰하며 물었다.
"예! 난징 홍도 사옥 행 ‘링크’마법 준비 완료됐습니다.”
"그래, 침투조가 복귀하는 동시에 본토로 가는 포탈은 열어서, 라퓨타 관리자 권한을 대륙으로 안전하고 완벽하게 수송한다! 우리의 손끝에 중화인민공화국의 백년대계가 달려 있다!”
이처럼 이들의 임무는 한국 땅—선박—중국 땅으로 순식간에 이어지는 양방향 포탈 연계의 ‘중간 다리’ 역할이었다.
이내, 그 작전이 시작되었다.
“—서울발 양방향 포탈 ‘링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 전 승무원 정위치! 대륙 간 호송 작전을 시작한다!
갑판 위, 운집해 있던 마법사 플레이어들이 완드와 지팡이를 치켜들자, 푸른 빛줄기가 뻗어 나오며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저격수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라—!”
고—오—오—오——!
이내, 갑판 중심부의 허공에 구멍이 하나 열렸고 그 안쪽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어두워서 자세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 어둠 속에서, 몇 개의 인영이 걸어 나왔다.
저벅— 저벅—
"오— 샤오준, 그가 왔다!”
누군가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정말로, 중국 랭킹 21위, 홍도 길드의 부마스터이자 이번 작전의 핵심 역할인 샤오준, 그가 멀쩡하게 걸어 나왔다.
“크— 좋아, 성공이다!”
“—만세!”
이들은 그 모습에 반가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벅차오름까지 느꼈다. 작전대로라면, 그가 라퓨타의 관리자 권한을 강탈하여 복귀한 것일 테니 말이다.
'그건 라퓨타가 이제는 진짜로 우리의 것이라는 뜻이다!’
이로 인해 꽤 시끄러운 외교 분쟁이 일어나겠지만…….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펑티옌은 그렇게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누가 손에 쥐고 있는가였다. ‘라퓨타의 관리자 권한’이라는 것도 결국은 ‘아이템’이다. 꽉 쥐고만 있다면...... 국제법 따위만으로는 그 소유권을 빼앗을 수 없다.
"그래, 결국은 우리의 승리다!”
그런데, 그들의 축제 분위기는 금방 식고 말았다.
"......응?"
이상하게도, 샤오준이 죽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낯설지만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어!”
펑티옌을 비롯한 목왕팔준의 선원들은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이, 이현욱!”
오늘날,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그 이름…… 서울의 구원자, 검성 구타자라고 불리는 자! 그가, 샤오준과 함께 나타났다.
‘뭐야, 이현욱이 이번 작전의 표적 아니었나?’
펑티옌은 빌런으로서 작전의 세부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바, 라퓨타의 관리자로 가장 유력했던 인물이 바로 이현욱이었다.
즉, 계획대로라면 놈은 죽었어야 마땅했다.
아니, 적어도…… 지금 이곳에 나타나면 안 됐다.
“샤, 샤오준, 이게 무슨 일인가?”
그러자 샤오준이 머리를 푹 숙이며 힘없이 말했다.
“큭— 여러분, 죄송하게 됐습니다.”
"응?”
“……우리가, 처음부터 잘못 짚은 겁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지?”
"이들을…… 하,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됐습니다.”
이어서, 이현욱의 등 뒤로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나타났다.
“—젠장! 한국군이다! 함정이다!”
"전 승무원, 적들의 침투에 대응한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승무원들이 나타나서 한국군을 포위했다. 현재 이 배에 탑승해 있는 플레이어만 120여 명에 육박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들어온 거냐!”
"저 자식들, 싹 다 수장시켜 버려야 합니다!”
그들은 한국 플레이어들에게 무기를 겨눈 채 으르렁거렸다.
그때였다.
“……전부, 움직이지 마.”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그건…… 웬 마법 스크롤이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뒤로 등장한 ROK AMT 장교 2명이 앞으로 나섰는데, 그들도 마법 스크롤을 쥐고 있었다.
"너희가 우리한테 보낸 물건인 만큼, 이게 뭔지 알겠지?"
그러자 중국의 승무원들은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 저건…… 폭탄 스크롤……."
그건 무려 ‘헬파이어’ 마법 스크롤이었다. 그것에 ‘마나’만 주입하면 누구든지 그 강력한 마법을 발현할 수 있었다.
즉, 이 선박을 통째로 태우고도 남을만한 물건이었다.
"아무래도 배송이 잘못 온 것 같아서, 반품하러 왔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걸어 나왔고, 양방향 포탈을 포위하고 있던 중국 측 탱커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조금이라도 허튼수작 부리면, 다 같이 타 죽는 거야.”
펑티옌은 함장으로서, 앞으로 나가며 그를 마주 보았다.
“……이현욱, 원하는 게 뭐지?”
그는 침착하게 물었다.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나타났다면, 분명히 원하는 게 있을 것일 터였다. 그리고 역시나, 이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요구사항이 하나 있다.”
"좋아, 이 배의 함장으로서, 가능한 한 최대한 수용하겠다.”
그는 이 배를 구하기 위해서 고분고분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 요구는 상식 밖의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이 배다.”
"어, 뭐?”
"그러니까, 너희 전부 다, 당장 내려라.”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함선 밖 바다를 가리켰다.
그 황당한 요구에 펑티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씨발, 이 빵즈 새끼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는 속에서 끓는 분노를 억지로 억눌렀다.
‘그래, 당장은 저자세로 나서야만 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저자세일 생각은 없었다.
‘이 자식들, 제압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끝에 마나를 흘렸다.
‘헬파이어, 분명 강력하지만…… 여기는 바다다.’
물론, 바다에 떠 있다고 해도 배는 불타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A등급의 정령술사, 그것도 물의 정령술사라면 다르다.
제아무리 ‘헬파이어’라고 하더라도 그가 바닷물을 끌어 올려서 배를 통째로 감싸버린다면, 이 배를 살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걸, 저놈은 나에 대해서 모를 거다.’
펑티옌은 공식적으로 랭킹이 없었다. 왜냐하면, 공안부 출신의 비밀 요원으로서 은밀하게 성장해온 케이스였기 때문이었다.
부글— 부글—
그는 아주 은밀하게, 바닷물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파도를 일으켜서, 쓸어버린다.’
그가 가장 강력한 순간은 바로 지금, 바다에 있을 때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니—펑티옌, 허튼수작하지 마 ”
"뭐? 너 …… 나를…… 알아?”
쉭—!
그러나 대답 대신 이현욱의 왼손의 팔찌가 뱀처럼 날아들었고 미처 반응하지 못한 펑티옌의 몸을 칭칭 동여매 구속해버렸다.
“컥! 이, 이건—!”
아무리 힘을 줘도 꼼짝하지 않았다.
- 당신은 ‘굴레이프니르’에 속박되었습니다!
* 10분간 자력으로 해제할 수 없습니다.
* 10분간 모든 ‘능력’이 봉인됩니다.
‘젠장, 하필이면 글레이프니르라니!’
이현욱을 제압하기 위해서 그들이 준비했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역으로 이용당한 것이었다.
촤—아—아.......
이에, 끓어오르던 물기둥들이 허무하게 내려앉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서 , 양방향 포탈에서부터 무언가 쏟아져 나왔다.
웅—! 웅—! 웅—! 웅—!
그건 AD-1, 총 12대였다.
그것들이 하늘로 비상하며, 재빠르게 함선을 포위했다.
"헉! 저것들은 강철비를 쏟아내는 아이템이다!”
"젠장…… 모두 머리 위를 조심해!”
그것들의 위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나는 두 번 말 안 한다.”
이현욱이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죽기 싫으면, 아무 짓도 하지 마.”
그의 한 마디에 선상에 정적이 흘렀다.
현시점, 최고의 해상 요새라고 불릴 만한 목왕팔준,
그것이 순식간에 통째로 제압당하는 순간이었다.
***
그 직후, 에밀리아 뮐러가 등장했다.
"오, 이 새끼도 빌런이에요?”
그녀가 빌런—펑티옌의 머릿속 잠재 마법을 정화해버렸다.
그리하여 멍한 표정이 된 펑티옌에게 이현욱이 말했다.
"펑티옌, 지금 당장 양방향 포탈을 전개한다.”
“……뭐?”
"여기에서 너희 땅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양방향 포탈이 준비되어 있잖아? 다 알고 왔으니까, 그냥 여는 게 좋을 거야.”
그러자 펑티옌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자신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당한바, 여기에서 막아야 한다는 생각일 터였다
"안 돼! 이 새끼들 말,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듣지 마!"
아무래도 자기 역할에 꽤 충실한 놈인 듯했다.
"이 친구도 ‘내장 두루치기’ 맛 좀 보여줘야겠는데요?”
에밀리아 뮐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음,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쪽에서 눈치챌 겁니다.”
이현욱은 포탈 전개를 담당하는 마법사들의 목덜미에는 ‘구속구’를 채운 뒤, 금속 하나를 파쇄하는 걸 보여주었다.
"헉……."
그러자, 생각보다 고분고분하게 ‘링크’ 마법을 시작했다.
“큭, 안 된다, 이런 매국노 새끼들아……."
펑티옌의 좌절 속에서 중국행 포탈 전개가 시작되었다.
이현욱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5장의 폭탄 스크롤을 준비했다.
‘이건 진짜로 되돌려줘야겠어…….'
그때, 이현욱의 의중을 눈치챘는지, 펑티옌이 소리쳤다.
"너, 이 미친 새끼, 설마! 네가 지금 뭘 하려는 건지 알아?”
"응?"
"지, 지금…… 우리 땅에 그걸 날리려는 거잖아! 그곳은 난징시의 홍도 길드 본사다! 넌 많은 사람을 죽이려는 거야!”
그 말에 이현욱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어이가 없군……."
그는 주먹에 강체화를 걸고 펑티옌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뻑—
“컥!”
갑판 위로, 선지피가 후두두 떨어졌다.
"너희가, 이걸 어디에다가 쓰려고 했는지 잊었나?”
이현욱은 이렇게 필요할 때만 발휘하는 도덕적인 세계 시민 행세가 역겨웠다. 안하무인의 억지 논리…… 빌런의 특징이었다.
"큭......."
"내가 처음부터 말했던 것처럼, 그저 반품하는 것뿐이야.”
결국, 양방향 포탈이 열렸다.
웅—
그것은 난징 지역에 있는 홍도 길드 본사와 연결된 것이었고,
그 포탈 너머, 안쪽에 서 있는 중국인들과 눈이 마주쳤다.
"어? 뭐야, 펑티옌! 거기에 무슨 일이……."
그쪽에서 당혹감에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직후, 이현욱이 마나를 부여한 포탈 스크롤을 던졌다.
총 5장이었다.
“—젠장!”
퍼—어—어—엉——!
시뻘건 화염이 포탈 너머로 치고 나왔다. 포탈 입구를 해상 쪽으로 돌려놨기에 배에는 타격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나 강력한지, 백여 미터에 이르는 불기둥이 뿜어지며 배가 출렁거렸다.
여기가 이 정도이니, 홍도 길드의 본사는 무너졌을 것이었다.
'……홍도 길드는 중국 내 대표적인 빌런 세력이다.’
물론…… 이로 인해 관련 없는 이들이 죽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고려할 수는 없다.’
이현욱은 빌런에 의해서 무너지는 세계를 목격했다.
그건, 적당히 해서는 막을 수 없는 최악이 미래였다.
"아......."
펑티옌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포탈이 닫히는 걸 바라보았다.
그런 펑티옌에게 이현욱이 문득 물었다.
"펑티옌, 이 배, 엔진실이 어디지?”
"어, 뭐?”
"거기에 있는 물건을 좀 구경하고 싶은데?”
목왕팔준(權王八驗)이라는 이름의 진정한 가치가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