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26화 (126/230)

126. 별들의 잔치(3)

한청호는 넙죽 엎드렸다.

“청일 아파트 부지는 1만 평 정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한가운데 들어가는 혐오 시설이…….”

그걸 왜 박정환이 모르겠나.

박정환이 태수를 보았다.

“강태수, 잠실에 새로 시작하려는 사업은 접어.”

분뇨를 농업용 퇴비로 바꾸는 사업이다.

만일 이게 들어간다면 아파트 분양이 안 될 것이고, 주민들 원성이 자자할 일이다.

한청호가 미리 박정환에게 말하여 관철한 내용이다.

“공익을 생각한다는 명분으로 내가 사업 승인을 철회할 거야.”

“알겠습니다.”

대통령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이뤄질 것이다.

태수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대통령의 뜻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청일이 잠실에 아파트를 짓기로 했어. 무슨 말인지 알지?”

태수를 보는 박정환의 눈길이 고압적이다.

“청일을 위해 제 땅을 내놓으라는 말씀이군요.”

“그래.”

그제야 한청호가 가슴을 내밀면서 한껏 의기양양해한다.

다 믿을 구석이 있었기에 태수에게 강경하게 나온 것이다.

태수가 짐작했던 그대로였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박정환이 모를 리가 있나.’

굳이 강남 아파트 개발을 빙자해 네 명을 모아 말하는 이유도 잘 안다.

태수를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각하, 저는 그 땅에 태양 랜드를 올릴 작정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래전부터 잠실 땅을 사들이고 있었죠.”

“알아.”

역시.

박정환은 태수가 잠실 땅을 사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태수가 먼저 눈독 들였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소리다.

“청일이 아파트 개발한다고 부지를 사들인 것보다 현재 제가 가진 부지가 더 넓습니다.”

“알아.”

그런데도 박정환은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아파트 올리라고 했다. 강남 개발해야지.”

“만일 잠실에 태양이 아파트를 올린다고 해도 말입니까?”

“안 돼.”

박정환이 한청호를 힐끔 보았다.

“내가 이미 허락한 일이야. 나 보고 말을 번복하라는 뜻은 아니겠지?”

잠실에 청일 아파트를 꼭 지으라는 대통령의 뜻이 강경하다.

박정환은 무심하게 말했다.

“청일이 신문 광고를 때려서 사방팔방 선전했어. 내가 강남 아파트 개발에 대해 독려했고. 그러니 자네가 한발 물러서.”

태수에게 땅을 내놓으라는 소리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자네에겐 선택권이 없어.”

“좋습니다.”

태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각하의 뜻이 그러시다면 잠실 땅, 내놓겠습니다.”

“음?”

이 자리에 앉은 모두가 놀랐다.

‘청일보다 부지를 더 오랫동안, 많이 확보했는데 이렇게 물러난다고?’

‘알박기를 제대로 했어. 그 땅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청일 아파트는 물 건너간 일이야. 그런데 이렇게 쉽게? 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 값을 더 후하게 챙길 텐데.’

박정환이 그것까지는 눈감아 줄 게 분명하다.

어쨌건 박정환 입에서 나온 말을 번복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니 한청호는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바가지를 뒤집어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금산의 장준용이 슬쩍 태수를 보았다.

“자네, 진심인가? 왜 굳이…….”

“진심입니다. 각하의 체면을 상하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손해를 감수해야죠.”

“자네…….”

“여기 있습니다.”

태수가 품에서 뭔가를 꺼낸다.

“문제의 그 땅문서와 집문서입니다.”

모두 깜짝 놀랐다.

품에서 땅문서가 나오다니.

“설마 자네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진즉에 땅문서를 챙겨 왔단 말인가?”

태수는 땅문서와 집문서를 얌전히 박정환에게 내밀었다.

“청일이 원했던 땅입니다. 내놓겠습니다.”

VIP룸에는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모두 태수의 손에 들린 땅문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드디어!’

한청호가 기쁨에 겨워 두 주먹을 꽉 쥐고 감격했다.

‘그것 봐라! 내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두 눈 뜨고 지켜봐라! 각하께서 네 땅을 빼앗아다 내 손에 쥐여 주시는구나!’

한청호의 앞에 놓인 장애물은 박정환이 모두 치워 줄 것이다.

모두 한청호가 의도한 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다.

‘보았느냐, 강태수! 이것이 바로 강태수는 할 수 없지만 한청호는 할 수 있는 일이다!’

바로 박정환을 제 뜻대로 움직이는 것!

알박기한 땅을 구하느라 굴욕을 감수하는 대신 권력자를 움직여 빼앗아 오면 된다.

그것이 한청호가 잘하는 일이었다.

허공에서 한청호와 태수의 시선이 마주쳤다.

태수는 웃고 있었다.

‘기고만장하구나. 이제부터 한청호는 할 수 없지만 강태수가 할 수 있는 일을 보여 주지.’

한청호가 뇌물과 로비로 윗선에서 압박을 할 거라는 건 누구보다 태수가 잘 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을 전부 예상하고 함정을 만들어 둔 게 아닌가.

‘한청호, 내가 아까 말했지. 박정환이 네 땅을 빼앗아 내 손에 쥐여 줄 것이라고.’

다 이겼다며 의기양양한 한청호.

태수는 의미심장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박정환이 이렇게 나온 이상 한청호는 절대로 뒤로 물러날 수 없어. 그러니 결과는 정해져 있다. 드디어 벼랑 끝이다.’

스스로 올라선 벼랑 끝이다.

태수가 가볍게 밀어 버리면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한청호가 태수를 보며 이죽거렸다.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나. 세 배 값이나 후하게 챙겨 줄 때 내놓으라고. 그게 마지막 기회라고.”

참을 수 없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한청호는 땅문서에 손을 내밀었다.

“이 땅은 청일에서 잘 쓸 테니 걱정하지 말…….”

“공짜로 내놓겠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태수가 땅문서에 손을 뻗는 한청호의 손목을 잡는다.

대신 박정환 앞으로 땅문서를 더 깊숙이 밀어 넣는다.

“청일이 아니라 각하께 바치는 겁니다. 각하께서 중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박정환이 흥미로운 얼굴로 태수를 본다.

“자네는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날 놀라게 하는군.”

박정환이 땅문서를 보면서 웃었다.

“공짜로 내놓지는 않겠다고 했지. 원하는 게 뭔가?”

박정환이 땅문서를 받았다.

“내 중재에 따라 내 앞으로 땅문서를 내놓았다. 그러니 내 중재가 필요한 일이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척하면 척이다.

박정환이 판을 깔아 주었다.

태수는 냉큼 말했다.

“땅문서는 땅문서로 바꾸고 싶습니다.”

바로 이 말을 꺼내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알박기한 땅과 집을 가지고, 신문 광고까지 내가며 한청호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은 이유.

절대로 한청호가 거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은 이유였다.

박정환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어디와 바꾸고 싶은가?”

“을지로. 청일 호텔 근처에 남은 상가부지와 바꾸고 싶습니다.”

을지로 상가부지라면 대로를 따라 쭉 뻗어 있는 3,200평의 금싸라기 땅이다.

무릎 꿇고 있던 한청호가 게거품을 물며 발작적으로 튕기듯 일어섰다.

“안 돼!”

그게 대체 얼마짜리 땅인데!

지금도 을지로는 번화가 중의 번화가, 도심 한복판이다.

“그곳은 쇼핑센터와 면세점이 들어가 청일 타운이 될 곳이란 말이다!”

한청호가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그 금싸라기 같은 땅을 고작 잠실의 농가 주택이랑 바꾼다는 게 말이 돼?”

죽어도 안 된다!

이건 절대로 바꿀 수 없는 땅이다!

한청호는 문밖에서 태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 역시 똑똑히 지켜볼 생각입니다. 각하께서 당신 땅을 빼앗아다 내 손에 쥐여 주실 그 순간이 기다려지는군요.

-내기할까요? 오늘 이 VIP룸을 나올 때 웃는 자가 누군지. 이번에도 내가 웃을 겁니다.

강태수가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있었다.

한청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강태수!”

“제겐 선택권이 없었지만 한청호 회장님껜 선택권을 드리죠.”

태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결정하시죠. 을지로 땅을 내놓을 건지, 청일 아파트를 포기할 건지. 전 이렇게 이미 땅을 내놓았습니다.”

“강태수!”

한청호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태수가 한청호를 차가운 눈길로 보았다.

“어차피 그 땅은 처음부터 당신 땅도 아니었습니다. 샤를롯 앞으로 떨어진 땅을 당신이 가로챘을 뿐이지. 그런데 뭘 그리 아까워하십니까?”

원래는 샤를롯의 샤를롯 호텔 서울이 들어갈 부지였다.

미래 백화점이 될 샤를롯의 쇼핑센터와 면세점, 갖가지 명품관이 들어서며 샤를롯 타운이 되었던 곳이다.

그걸 청일이 가로챘다.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만 선택하면 됩니다. 청일 타운이냐, 청일 아파트냐. 그리 어려운 선택지도 아니잖습니까?”

“강태수! 이 날도둑놈 같은 새끼가!”

그때 박정환이 손을 들었다.

“그만.”

한청호는 입을 다물었다.

박정환이 한청호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강태수의 말이 맞다. 한청호, 선택해라. 을지로냐, 잠실이냐?”

“가, 각하!”

믿었던 박정환이 제 편을 들어 주지 않는다.

“선택해.”

박정환의 압박이 거세다.

한청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태수는 그런 한청호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한청호, 어차피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애초에 하나였어.’

아무리 아까워도 을지로 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을지로 땅을 내놓지 않고 청일 아파트를 포기한다면?

박정환의 체면을 구기게 된다.

아까부터 박정환은 태수에게 못 박았지 않았나.

-내가 이미 허락한 일이야. 나 보고 말을 번복하라는 뜻은 아니겠지?

-청일이 신문 광고를 때려서 사방팔방 선전했어. 내가 강남 아파트 개발에 대해 독려했고.

-그러니 자네가 한발 물러서.

박정환이 태수가 먼저 잠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압박했던 이유다.

태수가 보유한 부지가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태수가 잠실에 대신 아파트를 올리겠다고 말함에도.

박정환이 굳이 청일 아파트를 올리도록 하겠다는 이유는 하나다.

-나는 말을 번복하지 않겠다.

박정환의 고집이자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말은 언제나 무거워야 한다는 신념이기 때문이다.

‘한청호, 당신이 박정환의 자존심을 정면에서 뭉갤 수 있을까?’

절대 못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한청호의 선택지는 오로지 하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남 아파트, 꼭 성공시켜.

박정환이 말한 대로 따르는 것뿐이다.

한청호는 울화통이 터졌다.

‘을지로 땅이 아깝다고 아파트를 포기한다면 내겐 다음의 기회란 없다. 박정환의 눈 밖에 나면 끝이야. 이런 빌어먹을!’

한청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막다른 길. 외통수다. 빠져나갈 길은 없어. 눈 뜨고 을지로 땅을 빼앗겨야 한다니.’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얼마나 억울했던지 입술이 덜덜 떨린다.

“으, 을지로 땅. 내, 내놓겠습니다.”

“좋아. 이거 가져가.”

박정환이 태수가 건넨 땅문서와 집문서를 한청호 발치 앞에 집어 던졌다.

툭 하고 한청호의 다리를 맞고 떨어지는 땅문서.

한청호가 청을 올렸고, 박정환은 제 말을 지켰다.

“청일 아파트, 내일 당장 착공해.”

“…예.”

박정환이 태수를 돌아본다.

“태양 랜드를 못 올리게 됐군. 내 이 점은 염두에 두지.”

태수에게 일말의 부채를 느낀다는 뜻이다.

“자네가 감수하는 손해, 자네가 세워 준 내 체면, 모두 말이야.”

한청호는 속이 뒤집혀 죽을 것 같았다.

‘강태수가 감수하는 손해가 어디 있어! 모든 손해는 내가 감수하고, 내가 억지로 체면을 세워 주게 생긴 판에!’

뒷목을 잡을 일이었다.

그런데 태수는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잠실 황무지의 땅 1,800평과 을지로 땅 3,200평을 바꾸었다.

태수는 분을 못 이겨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한청호를 보았다.

‘전생엔 샤를롯 타운이었던 곳, 이번엔 청일 타운이 될 뻔했던 곳, 태양 타운으로 잘 써 주지.’

을지로 땅 3,200평이라면 대체 얼마짜리인가.

도심 속 백화점과 명품관을 아울러 샤를롯의 든든한 자금줄이 되어 주었던 그 노다지 땅을 손에 넣었다.

‘곧 청일 호텔까지 야금야금 먹어 치워 주지.’

태수는 웃고 있었다.

그는 오늘 땅 전쟁의 승자였다.

* * *

박정환은 손을 흔들었다.

“한청호만 남고, 다들 나가 봐.”

한청호와 독대하겠다는 뜻이다.

‘한청호에게만 따로 이를 말이 남았다는 뜻인가?’

강남 아파트 개발에 대해서 태수의 완승으로 끝났다.

‘박정환 성격에 한청호를 위로할 것도 아닐 테고.’

차라리 질책할지언정 위로할 사람은 아니다.

한청호 역시 감히 박정환에게 위로를 원할 주제가 안 되고.

‘무슨 일일까?’

호기심이 든다.

하지만 박정환이 원하지 않는 이상, 알아낼 도리는 없다.

딸깍.

VIP룸 밖으로 나왔다.

문 앞에는 두 손을 꼭 쥔 채 잔뜩 긴장한 장서연이 있었다.

그런데 장서연 뒤로 보이는 남자가 문제다.

“자네가 강태수인가?”

전두호가 문 앞에서 태수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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