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25화 (125/230)

125. 별들의 잔치(2)

도저히 넘길 수 없는 소리가 나왔다.

전두호는 발작하듯 외쳤다.

“헛소리하지 마!”

화가 난 전두호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던졌다.

태수가 재빨리 장서연의 팔을 끌어 뒤로 잡아당겼다.

“조심.”

쨍그랑.

유리잔은 장서연이 서 있던 발치에서 깨어졌다.

태수가 뒤로 잡아끌지 않았더라면 다쳤을 터였다.

장서연은 놀랐음에도 비명 하나 내지 않는다.

“괜찮습니까? 다친 곳은?”

장서연이 태수의 팔을 꽉 잡았다.

그녀의 눈동자엔 고마움이 서렸지만 곧 차기범과 전두호를 향해 눈을 고정한다.

“차기범, 모함도 정도껏 해!”

차기범은 더욱 고압적으로 전두호를 노려봤다.

“내가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 둬. 월권이건 아니, 건은 상관없어. 내겐 각하를 위협하는 불순분자, 반동분자를 색출하고 처단하는 일이 최우선 순위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지금 그 말은 내가 각하를 위협하는 불순분자 반동분자란 소린가?”

“스스로가 잘 알 텐데.”

“각하께 직접 물어봐야겠군. 보안 사령관이 되어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어찌 불순분자 소리를 듣는 일인지.”

둘 사이에 스파크가 튀었다.

“각하께 정식으로 건의해야겠어. 호가호위를 일삼으며 각하의 귀와 눈을 어지럽히고, 사사건건 이간질을 일삼는 간신배를 곁에 두어서야 하겠나?”

“간신배? 지금 나더러 간신배라고 했나?”

“스스로가 더 잘 알 텐데.”

“그럼 나 역시 각하께 직접 물어봐야겠군. 각하의 안전을 위해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어째서 간신배 소리를 듣는 일인지.”

태수는 최악으로 치닫는 둘을 보며 묘한 감상에 빠졌다.

‘박정환을 사이에 둔 권력 암투가 이런 것인가.’

여자의 질투는 화를 부르고, 남자의 질투는 피를 부르는 법이다.

“그만! 이게 뭣들 하는 짓입니까?”

그때 중앙 정보부 부장 신지수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각하께서 아시면 경을 치실 겁니다. 우리끼리 얼굴을 붉혀서야 하겠습니까?”

신지수가 가운데서 팔을 벌려 둘 사이의 거리를 넓힌다.

“사람들 많은 데서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각하의 체면을 떨어뜨리면 크게 노하실 일입니다.”

박정환이 언급되자 차기범이 먼저 등을 돌렸다.

“적당히 까불어, 전두호.”

전두호 역시 등을 돌렸다.

“네까짓 게 언제까지 날뛰나 두고 보지, 차기범.”

반대편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두 사람.

그때 VIP룸에서 장준용이 문을 열고 나왔다.

“왜 이리 밖이 시끄럽냐며 각하께서 한 소리 하십니다. 모두 조용히 해 주시길 바랍니다.”

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이 많은 사람이 숨조차 참아 가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기괴하리만치 정적이 흘렀다.

박정환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그때 7층 홀로 들어서는 익숙한 인물이 정적을 깨뜨렸다.

한청호였다.

“강태수.”

한청호는 곧장 태수에게 걸어왔다.

정적이 흘렀기에 모두 한청호에게 집중했다.

더불어 그 앞에서 한청호를 피하지 않고 마주 선 강태수까지도.

“알박기를 제대로 했더군. 내 아들에게 헛소리를 지껄였고.”

한청호의 눈이 분노로 넘실댄다.

“얼마면 돼?”

원빈 같은 소리 하네.

얼마면 되길 뭘 얼마면 돼?

“세 배 값을 쳐주지. 더는 안 돼. 눈 뜨고 땅 뺏기기 싫으면 돈이라도 두둑이 받고 떨어져.”

한청호는 의기양양했다.

“마지막 기회다. 선택해. 그 땅 팔래, 말래?”

아주 같잖은 허세였다.

땅 팔아 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때인데, 아들이나 아버지나 끝까지 고압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한다.

“고작 세 배? 누구 코에 붙인다고. 그 땅, 안 팔아.”

한청호는 그럴 줄 알았다며 코웃음 쳤다.

“넌 마지막 기회를 버렸다. 난 다시는 너한테 그 땅을 후하게 사 주지 않을 테니까.”

대체 뭘 믿고 이리 자신만만한 걸까?

“분뇨 시설을 짓는다고 했나? 농업용 퇴비를 만든다고 했나? 관계 공무원의 허가를 받아서 사업 승인을 취소할 수 없을 거라 여기나? 천만에!”

한청호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미 끝난 일이라 관계 공무원들이 뒤집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나? 오만방자하게 군 값은 톡톡히 치러야 할 거다. 세상엔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는 법이야.”

“세상엔 제 맘대로 되는 일이 더 드문 법이죠.”

태수는 한청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뇌물이면 다 될 것 같습니까? 윗선을 움직이면 제 뜻대로 전부 될 것 같습니까? 착각하지 마시죠.”

태수는 제 가슴을 툭툭 쳤다.

그러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을 위해 미리 준비한 선물이다.

“당신이 움직일 수 있는 윗선, 나는 못 움직일 것 같습니까?”

한청호가 주먹을 꽉 쥔다.

태수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말했다.

“당신이 공무원을 움직인다면 나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각하를 움직일 수 있다면 나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있는 돈, 내게도 있습니다.”

태수 역시 이제는 꿀릴 것 없는 재벌이 되었다.

태수의 기세가 대단하다.

하지만 한청호는 더욱더 자신만만했다.

“이거 보이나?”

한청호는 초대장을 들어 올렸다.

금테가 둘린 초대장이었다.

“난 각하께서 직접 이리로 부르셨지.”

태수 역시 초대장을 꺼냈다.

똑같이 금테가 둘린 초대장이었다.

“그 자리엔 아마 저도 함께 있겠죠.”

한청호가 태수를 노려보았다.

“각하께서 직접 승인하신 일이야. 네까짓 게 감히 각하의 뜻을 뒤집을 수 있을 줄 알아? 어림없지!”

한청호가 자신만만한 이유였다.

박정환은 한청호에게 잠실 아파트 공사를 허락했다.

그러니 무조건 일이 되어야 한다.

방해하는 건 박정환이 전부 치워 줄 것이다.

“내가 오늘 똑똑히 지켜봐야겠다. 각하께서 네 땅을 빼앗아다 내 손에 쥐여 주실 그 순간이 벌써 기다려지는구나.”

“글쎄, 그게 당신 마음대로 될까?”

태수는 피식 웃었다.

“나 역시 똑똑히 지켜볼 생각입니다. 각하께서 당신 땅을 빼앗아다 내 손에 쥐여 주실 그 순간이 기다려지는군요.”

“말 같잖은 소리는 하지도 마!”

한청호는 눈을 부라렸다.

“오늘 똑똑히 보여 주지. 한청호는 할 수 있지만 강태수는 할 수 없는 일!”

“저 역시 똑똑히 보여드리죠. 강태수는 할 수 있지만 한청호는 할 수 없는 일.”

둘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태수는 쐐기를 박았다.

“내기할까요? 오늘 이 VIP룸을 나올 때 웃는 자가 누군지. 이번에도 내가 웃을 겁니다.”

“웃기지 마!”

“최후의 승자만 웃는 게 아닙니다. 매번 웃는 자가 최후까지도 웃는 거지. 오늘 웃는 자도 바로 나, 강태수가 될 겁니다.”

태수는 손가락을 들어 꼽는다.

“몰리브덴 광산, 사우디 고속 도로, 청일 정유와 중장비, 주베일 산업항, 그리고 이번 잠실 땅까지. 전부 제가 웃었다는 걸 당신은 기억해야 할 겁니다.”

그 살벌한 대치에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오늘 분위기 진짜 왜 이래?’

‘장난 아니다. 몸을 사려야겠는데?’

중앙 정보부 부장인 신지수는 잠시 고민했다.

이들을 뜯어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달칵.

그때 VIP룸 문이 열렸다.

장준용이 고개를 돌려 사람을 찾는다.

“태양의 강태수 회장과 청일의 한청호 회장, 한국 주택 공사의 김방식 사장은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강남 아파트 개발의 빅4를 한 자리에 부르는 것이다.

“흥!”

한청호가 제일 먼저 VIP룸으로 들어간다.

장서연이 태수를 보았다.

“다녀오세요.”

그녀는 남자들의 살벌한 기세 싸움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 살기에 눌려 새하얗게 질려 있으면서도 꿋꿋하게 몸을 바로 한다.

태수는 괜히 자신 때문에 곤란해진 그녀가 안쓰러웠다.

“밑에 내려가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안색이 안 좋습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말고 들어가세요.”

장서연이 휘청거린다.

태수가 그녀의 팔을 잡아 주었다.

“아래층까지 바래다줄까요?”

“괜찮아요. 조금 놀란 것뿐이니까요.”

태수를 보면서 장서연이 속삭였다.

“고마워요. 아까 태수 씨가 아니었으면 크게 다칠 뻔했어요.”

태수가 끌어당겨 주지 않았더라면?

유리 조각에 다리를 다치기라도 했다면?

그랬다면 무용은 당장 그만둬야 할지도 몰랐다.

그 생각만 하면 아찔했다.

장서연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정말 고마웠어요.”

“별말씀을.”

태수는 등을 돌려 VIP룸으로 향했다.

“저, 저기…….”

장서연이 비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고 들어 올렸다.

“파이팅! 한청호는 할 수 없지만 강태수는 할 수 있는 일! 응원할게요.”

금산의 장준용과 청일의 한청호는 앙숙이었다.

아버지가 한청호를 불구대천의 원수 취급하니 자연히 장서연도 한청호에게 반감이 컸다.

그런데 한청호와 맞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태수를 코앞에서 지켜보지 않았나.

장서연이 VIP룸 문을 쏘아보며 말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러니 꼭 이기고 돌아오세요.”

지금 안에서 격투 시합이 열리는 줄 아 나.

황당했다.

“파이팅! 어깨 펴고! 가슴 펴고! 당당하게, 파이팅!”

하지만 그녀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져서 기분은 좋다.

덕분에 혈관을 타고 날뛰던 승부욕과 투지가 차분히 가라앉는다.

마음이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태수는 피식 웃으며 장서연이 했던 것과 똑같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태수는 등을 돌려 VIP룸 안으로 들어섰다.

따로 힘을 주지 않는데도 어깨와 가슴이 반듯하게 펴져 있다.

자신만만한 그 각오는 등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등이 꽤 넓네. 당당하고.’

장서연은 태수의 등을 물끄러미 보았다.

꺾이지 않을 의지가 느껴지는 등이었다.

* * *

VIP룸은 담배 연기가 자욱해서 꼭 너구리굴 같았다.

박정환은 입에 담배를 문 채로 소파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눈썹이 찌푸려진 게 지금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문을 닫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태양의 강태수입니다.”

장준용이 제 옆에 앉으라고 손짓한다.

“이리 와서 앉게.”

태수가 장준용 옆에 자리 잡자 박정환이 네 명을 둘러보았다.

강남 아파트 개발을 맡은 빅4가 한자리에 모였다.

“자네들을 왜 따로 불렀는지는 다들 알고 있겠지?”

굳이 강남 아파트 개발에 나선 네 명을 콕 짚어 불렀다.

그러니 그 의도를 모를 리가 있나.

“신문에 전면 광고를 내고. 다들 아주 의욕이 대단해. 마음에 들어.”

박정환이 밀어붙이고 있는 강남 개발이다.

그 가운데엔 주거지 개발, 즉 아파트가 선봉을 맡았다.

사람들이 들어서면 장차 상권이 발달하고, 업무용 건물도 속속 들어오게 될 것이다.

“태양은 생각보다 일찍 아파트가 올라갈 것 같은데. 최고급 아파트를 지을 자신 있나?”

“자신 있습니다.”

“좋아.”

자신만만한 대답이 마음에 든다.

이번엔 금산이다.

“금산은 직원용 아파트와 사원 복지를 표방했다지. 신입 사원 모집에 지원자가 미어터졌다던데.”

“신문 광고를 일찍 낸 것이 주효했습니다. 게다가 각하께서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라고 미리 언급해 주셨으니 당연히 이리될 일이었죠.”

“1단지부터 순차적으로 올린다고?”

“자금이 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주베일 산업항 입찰에서 미끄러져 하청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돈은 오일 쇼크 때 무너지는 기업들 인수하느라 잔뜩 끌어 다 썼다.

그래서 여유 자금이 조금 부족했다.

“한국 주택 공사는 개포동 주공 아파트 부지, 매입 완전히 끝났어?”

“현재 80% 정도로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좋아.”

박정환의 눈이 한청호에게로 향했다.

“잠실을 맡은 청일이 문제로군.”

“면목 없습니다.”

이게 다 강태수 때문이다.

한청호가 태수를 매섭게 노려봤다.

“악의적으로 알박기를 해서 사업을 방해하는 못된 무리가 있어서 말입니다.”

박정환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봐주는 건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지.”

박정환이 담뱃갑을 테이블 위로 툭 던지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남 아파트, 꼭 성공시켜.”

박정환이 이 자리를 만든 이유기도 하고.

그가 한청호를 본다.

“아파트 지을 땅, 몇 평이나 사들였어?”

매서운 눈빛이었다.

“내 말이 우습게 들렸어?”

한청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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