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0만 원의 의미(1)
무당집에서 나온 후에도 한참이나 멍했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여긴 또 어디야. 난 왜 이러고 있고. 무당집은 대체 뭐야.’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된다.
‘저승도 이승처럼 현실감이 넘치는구나.’
죽어 본 적은 처음이라 그런가.
신기했다.
누군가 어깨동무를 해 왔다.
“태수야, 너 안색이 영 안 좋다. 무당이 한 말 때문에 그러냐?”
“홀쭉이.”
빼빼 말라서 우린 이놈을 홀쭉이라 불렀다.
어려서부터 볼 꼴 못 볼 꼴 다 보았던 불알친구.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마음 씀씀이 넓은 녀석.
옛날 그대로 히죽히죽 웃는 녀석이 반가웠다.
‘20년 만인가, 30년 만인가. 녀석이 죽고, 허전한 마음에 일에만 매달려 살았었는데.’
다시 보자 가슴이 아려 왔다.
태수 때문에 죽었다는 한일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미안하다, 홀쭉아.”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이래?”
“네가 항상 내 곁에 있다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었어.”
“뭔 소리야?”
“네 빈자리가 너무 크더라. 너 그렇게 가고, 나 술 끊었다. 술만 보면 네 생각이 나서 도저히 못 마시겠더라.”
따악!
홀쭉이가 대차게 태수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성격 좋은 홀쭉이치고는 드물게 화난 기색이었다.
술 사랑이 지극한 홀쭉이가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 섞여 있어서였다.
“뭐? 술을 끊어? 맙소사, 이 새끼가 진짜 돌았네.”
“그래도 고맙다. 친구라고 날 찾아 저승까지······”
“저승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따악.
다시 한번 태수의 머리통을 갈기는 홀쭉이.
그 눈에는 황당함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어이없음이 가득했다.
홀쭉이가 얼굴을 들이밀고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다.
그러더니 코를 부여잡고 몸을 뒤로 홱 뺐다.
“크- 냄새! 어우, 지독하네.”
“냄새?”
태수도 엉겁결에 코를 킁킁댔다.
냄새가 난다.
엄청나게 구린 냄새.
돈 냄새랑 정반대인 이 냄새는 분명,
“가난뱅이 냄새······.”
자신이 입은 옷을 봤다.
낡고 추레하다.
다 떨어진 양말에 고무신까지.
주머니에 남은 돈도 고작 400원뿐이다.
“가난뱅이 냄새가 진동할 만하군.”
따악.
또다시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뭔 헛소리야? 밤새도록 먹은 술 때문에 입에서 똥내 난다고.”
“술 냄새? 내가 어제 술을 마셨다고?”
홀쭉이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어이구, 귀한 술 먹고 헛소리나 해대고. 내가 다 부끄러워서 못 살겠다. 애주가의 수치 같은 놈!”
태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죽기 전에 청일병원 VIP실에 있었는데 술은 무슨 술?
설마.
“누가 내 무덤에 술이라도 뿌렸나? 저승에선 그렇게 술을······”
따악!
“아까부터 재수 없게 자꾸 저승, 저승! 너 진짜 내 손에 황천길로 떠나 볼래?”
“홀쭉아.”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나까지 속 뒤집힐 것 같으니까.”
“넌 죽어서도 똑같구나.”
“맞아 죽는 거로 하자. 그게 제일 빠르겠다.”
따악.
“그래, 때려라. 난 맞아도 싸. 정말 미안하다, 홀쭉아.”
“······.”
홀쭉이는 장난스럽게 치켜들었던 주먹을 내리고 말았다.
눈에는 태수를 향한 걱정이 어렸다.
“안 되겠다. 저기 그늘에서 좀 쉬자. 태수야, 너 오늘 진짜 이상해.”
홀쭉이가 태수를 끌어다가 억지로 그늘에 앉혔다.
그리고 동네 구멍가게에 들어가 병에 담긴 우유를 사 왔다.
“마셔. 이거 먹고 술 깨자.”
“오랜만이네, 병에 담긴 우유는.”
“그럼 우유를 병으로 팔지, 주전자에 담아 팔겠어?”
태수는 주변을 돌아봤다.
2020년 서울 번화가와 다르다.
흙투성이 도로, 드문드문 보이는 논밭과 초가집, 어쩌다 한 대씩 보이는 옛날식 자동차와 버스까지.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도 구닥다리고, 늘어선 1층짜리 가게들도 조잡하다.
기억 속 가난했던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여긴 그대로구나.”
이렇게 보고 있으니 슬슬 생각이 난다.
젊었던 시절, 홀쭉이와 밤새 죽어라고 술을 퍼마시고 근처에 용한 무당이 있다는 말에 찾아갔다.
인생이 하도 답답해서.
그때도 무당에게 똑같은 말을 들었었다. 흙 만지는 사업을 하라고.
“그때가 아마··· 7월쯤이었지? 엄청 더웠는데.”
태수가 중얼거리자 옆에서 우유를 마시고 있던 홀쭉이가 말했다.
“오늘? 7월 17일이야.”
“어? 혹시··· 1972년?”
“그럼 1972년이지 1982년이겠냐. 얘가 진짜 왜 이래.”
그 말에 태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자신이 날짜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었다.
아무리 저승이라도 꼭 이날을 보여 줄 이유가 있나?
엄청나게 특별한 날도 아닌데.
이거 설마······.
진짜 과거로 돌아왔나?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미치겠네.”
태수는 한참이나 멘붕 상태로 허우적대야 했다.
* * *
확실히 저승은 아니다.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하고, 현실이라기엔 믿기지 않고.”
딱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1972년 7월 17일 월요일.”
태수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몇 번을 물어도 결과는 같다.
결국 태수는 인정했다.
“과거로 돌아왔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정녕 신이 있어서, 내게 다시 기회를 주신 건가?”
한일권의 집안에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다른 말로는 설명 불가능하다.
걷다 보니 익숙한 판잣집이 보인다.
“우리 집이다.”
헐리기 전까지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달동네 판잣집이다.
기억 속 그대로라 울컥했다.
‘여기가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섰던 때가 언제더라? 그 탓에 우리는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됐다고 기억한다.
그게 이맘때였던가.
‘월셋집을 전전하고, 사채업자들이 행패를 부렸었어. 그 덕에 야반도주를 밥 먹듯이 하게 됐고.’
아무리 벌어도 사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었다.
갚고 또 갚아도 끝이 없었고, 급기야 아버지는 사채업자들에게 끌려갔다.
그 후 아버지는 야산에서 시체로 발견되셨다.
‘막아야 해! 이번엔 아버지를 비참하게 돌아가시게 두지 않겠어.’
그때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어머니였다.
태수는 40년 만에 어머니를 만났다.
“태수야, 네가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니?”
“어머니······!”
태수는 달려가 어머니를 꽉 껴안았다.
어머니에게서 그리운 냄새가 풍겼다.
늘 태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줬던 포근한 냄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죄송해요. 제가 못나서 어머니 고생만 시키다가······. 호강 한 번 제대로 못 시켜 드리고.”
토닥토닥.
어머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를 느끼셨는지 가만히 태수의 등을 두드려 주신다.
태수는 눈물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겨우 삼켰다.
‘이번에는 제가 지켜 드릴게요. 호강시켜 드릴게요.’
태수는 두 손을 꽉 쥐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태수가 떨어지자 어머니가 다급하게 말했다.
“태수야,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이 일을 어쩌면 좋으니. 우리 식구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
“벌써 헐려요? 우리 집 철거, 좀 남은 줄 알았는데.”
“보름 내로 나가 줘야 한다. 그런데 보상금을 죄다 아버지 친구에게 빌려주셨단다.”
기억났다.
아버지가 사채에 엮이게 된 이유.
사채를 쓴 친구와 연대 보증으로 묶였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야반도주를 하고, 채무는 아버지가 뒤집어쓰셨다.
‘오춘식.’
그 이름은 잊을 수 없다.
우리를 사채업자 아가리에 밀어 넣고, 본인 가족들은 호의호식했던 배은망덕한 놈.
‘사채업자에게 끌려가야 할 놈은 바로 네놈이다.’
아버지와 오춘식 사이에 작성된 차용증이 있다.
사채업자들이 우리를 얽어맸던 문제의 그 차용증이.
‘그래, 그 차용증 때문에 불행이 시작됐어.’
아버지 지장과 연대 보증 책임이란 단어가 제대로 박혀 있는 차용증.
지난 생에선 제대로 구경조차 못해 보고 사채업자에게 빼앗겼었다.
일단 그 문서부터 찾아야 한다.
“어머니, 혹시 아버지 차용증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차용증?”
“돈을 빌려 주고 받은 뭔가가 있을 텐데요.”
“아! 그거.”
어머니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태수는 어머니의 손에서 차용증을 빼앗아 읽어 보기 시작했다.
“우리 집 철거 보상금을 전부 친구에게 빌려줬다는구나.”
차용증에 적힌 금액은,
“10만 원.”
1970년대 물가가 2020년 대비 1/30 정도라 쳐도, 10만 원이면 회사원 한두 달 월급이다.
집이 철거되는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싼 보상금이다.
하지만 무허가 판잣집이란 걸 감안하면 이마저도 감지덕지했다.
“아버지 40년 지기 친구잖니. 광산을 매입한다면서 은행 빚에 곗돈에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더라.”
“그랬군요. ···음?”
그때 차용증을 읽던 태수가 눈가를 좁혔다.
<원금과 이자를 수금하는 조건으로, 강철수는 오춘식의 채무에 대해 연대 보증 책임을 지기로 합의했습니다.>
“뭔 개소리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똑같다.
돈 빌려주고도 연대 보증을 떠안는, 말도 안 되는 사기 계약.
‘사채업자들이 이래서 차용증을 제대로 안 보여 줬었구나.’
사채업자들은 항상 아버지와 친구의 지장, 연대 보증 책임 문구 같은 것만 보여 주곤 했었다.
태수는 차용증을 구겨 쥐었다.
“오춘식, 이런 쳐 죽일 놈!”
분위기가 가라앉자 어머니 얼굴에 걱정이 드리웠다.
“뭐가 잘못된 거니? 분명 10만 원 숫자도 맞고, 지장까지 찍는 걸 아버지가 직접 봤다 하셨는데.”
이걸 보고도 뭐가 문젠지 모른다고?
“내가 까막눈이잖니. 너희 아버지도 그렇고.”
‘아, 그러셨지.’
부모님은 글을 모르신다.
일제 시대, 6.25 전쟁을 거치느라 제대로 교육 못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럼 이건 누가 썼어요?”
“당연히 너희 아버지 친구가 썼지.”
이 차용증은 한문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아마 알아보기 힘들게 일부러 그랬으리라.
그냥 숫자 대충 맞고, 친구가 직접 지장을 찍으니까 아버지는 믿었겠지.
“이자를 많이 준다던데? 40년 지기 친구는 역시 다르다며 아버지 흐뭇하게 웃으시더라.”
40년 지기는 얼어 죽을!
‘친구가 까막눈인 걸 이용해서 사기를 쳐? 그것도 어려울 때 돈 빌려준 친구를?’
친구란 단어를 운운하며 태수의 가족을 어떻게 죽였는지 읊조리던 한일권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저히 못 참겠다.
“거기가 어딥니까?”
“거기라니? 어딜 말하는 거니?”
“오춘식이 집이요.”
아버지한테까지 빚이 넘어오기 전에 해결 봐야지.
갑자기 어머니가 불안한 얼굴로 태수의 팔을 잡았다.
“안 된다. 가지 마, 태수야. 반병신 만들어서 네가 감옥 가는 거, 엄만 죽어도 싫어.”
“반병신 안 만듭니다.”
“지금 사람 죽일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어!”
“약속할게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어머니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태수는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 애써 웃어 보였다.
“어머니께 드릴 게 있습니다.”
“응?”
태수는 창고를 뒤져 숨겨 뒀던 작은 상자를 꺼냈다.
“식구들 길바닥에 나앉게는 안 만듭니다, 제가.”
“태수야?”
모았던 비상금을 꺼냈다.
동전까지 탈탈 털어서 어머니 치마폭에 폭 안겨드렸다.
“10만 원쯤 됩니다.”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틈틈이 좀 모았습니다.”
태수가 조금씩 모은 돈.
이건 장가갈 밑천이었다.
“그걸로 월셋집은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치마폭에 묵직하게 감겨 오는 돈의 무게.
어머니는 말없이 치마를 싸맸다.
“고맙다, 태수야.”
“고맙긴요. 두고 보세요. 앞으로는 백배, 천배 많은 돈을 매일 드릴게요.”
태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남의 회사 대신 내 회사를 키우고, 남의 가족 호의호식시키는 대신 내 가족 호강시켜 줄 테다.’
젊은 시절 태수는 망나니처럼 속 편하게 살았었다.
집안 형편상 일찍 학업을 그만둔 후론 항상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빴다.
돈 냄새 맡는 특별한 능력을 도박, 술집, 내기 등 시시한 일에만 썼다.
‘그땐 부모님이 천년 만년 함께 살 줄 알았으니까.’
불과 몇 년 만에 두 분이 돌아가실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을.
호강 한 번 제대로 못 시켜 드렸다.
이번 생은 다를 것이다.
“돈 벌면 좋은 집을 지어 드릴 겁니다. 길바닥에 나앉는 일, 남의집살이에 서러워서 눈물짓는 일, 야반도주하는 일, 앞으로 다시는 없을 겁니다.”
“태수야.”
“이딴 판잣집보다 몇 배는 더 큰, 비바람에 끄떡없는 튼튼한 아파트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강남.
지금은 개발되지 않아 버려진 황무지 같은 땅.
그곳에 아파트를 올릴 거다.
머지않은 미래에 청일 그룹을 재벌가로 만들어 준 그 황금의 땅.
그곳에 먼저 깃발을 꽂을 것이다.
“아파트?”
“네,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튼튼하고 높은 아파트 말입니다. 승강기가 있는 부자 아파트.”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터지고, 부르트고, 거칠다.
요 앞 국밥 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어머니 가게를 여는 게 꿈이라 하셨죠? 아파트 앞에 상가도 짓겠습니다. 열 개, 스무 개를 지어야죠. 제일 목 좋은 자리는 어머니 겁니다.”
어머니는 말없이 잡은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오늘따라 유난히 거칠어 보이는 손이 부끄러웠다.
벌컥.
태수의 동생, 강한수가 문을 열었다.
‘짜식, 변한 게 없구나.’
태수는 몇십 년만에 보는 동생이 정말 반가웠다.
당장 가서 끌어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있었다.
태수는 냉큼 신발을 신었다.
“마침 잘 왔다. 앞장서.”
“뭐?”
“아버지가 계신다는 곳, 어딘지 안다며.”
태수는 한수의 팔을 잡고 질질 끌었다.
어머니가 못 들으실 만큼 작게 속삭였다.
“오춘식, 그 새끼 족치러 가자.”
그 새끼 집이 어딘지 몰라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