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산 찍고 건설 재벌-1화 (1/230)

1. 회귀:1972

태수는 죽어 가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살해되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진이 포진해 있는 서울 청일병원 VIP실에서.

“컥!”

쿠당탕탕.

이름도 알지 못하는 병원 기계들과 함께 바닥에 자빠져 버렸다.

환자복을 입은 태수는 꿈틀거렸다.

“그 주사-! 큭!”

“그래, 그 주사가 문제였지. 근육이 이완되고, 장기가 멈추고, 그러다 편안히 가게 될 거야.”

“한일권-!”

어지럽다.

70대 노인인 강태수는 원흉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간신히 그 소맷부리를 부여잡았다.

“치워, 더러운 새끼가 감히 어디에 손을 올려.”

경호원 둘이 달라붙어 태수의 손을 떼어 낸다.

태수를 벌레처럼 보던 70대 노인 한일권은 소맷부리를 툭툭 털었다.

오물이라도 묻은 것처럼.

“쯧, 비싼 양복 다 구겨졌네.”

그는 태수의 직속상관이자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인 청일 그룹 총수이며 태수와 사돈을 맺은 자였다.

“태수야, 우리 청일 그룹이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란다. 이게 다 네가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은 덕분이다.”

“너 지금, 큭! 무슨 말을······!”

태수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바로 돈 냄새 맡는 능력이었다.

문자 그대로 돈이 될 만한 사업의 냄새를 코로 맡을 수 있는, 기이한 능력.

<자본주의 시대 최고의 능력- 돈 냄새 맡기>

갓 재벌 반열에 오른 청일 그룹을 태수가 이렇게까지 키워 낼 수 있었던 비밀이다.

돈 냄새 나는 일만 골라 벌였으니 어찌 승승장구하지 않으랴.

“태수야, 넌 끝까지 나한테는 숨기는구나. 이래도 내가 네 친구였냐?”

“너, 어떻게······.”

“전해 들었다. 근데 그게 누구였을까? 클클클.”

태수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저 새끼에게 내 비밀을 알려 준 사람?’

한일권은 키득댔다.

그러면서 구둣발로 태수를 차기 시작했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부모, 형제, 마누라에 아들, 딸, 친구까지 전부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했다, 이게 평범한 일은 아니잖아. 클클클.”

“어- 으으- 어-!”

“이제는 혀도 굳었나 보지? 하하하!”

태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주먹을 꽉 쥐었다.

바득바득 이를 갈며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저 한일권에게 주먹 한 방이라도 먹여 주고 싶었다.

“네가 미워서 하나씩 죽였어. 네 눈에서 피눈물 나라고.”

한일권은 태수의 가족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소상히 읊조리기 시작했다.

태수는 귀를 막고 싶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는 말, 알지?”

퍽.

“그러니까 재주나 실컷 부리고 진작 꺼져 줬으면 좋았잖아. 미련 곰탱이가 눈치 없이 버티고 있으니 내가 미쳐 버리잖아!”

퍽퍽. 퍽. 퍽.

친일파였던 한청호가 세운 경성 미곡에서부터 시작한 청일 그룹.

청일 그룹은 정치권과 야합하여 재벌의 반열에 들어섰다.

다만 후계자인 한일권은 ‘호부(虎父) 밑의 견자(犬子)’라 불리는 인물로, 한청호는 늘 아들을 못미더워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태수였다.

-태수야, 넌 청일 그룹을 대한민국 1등 기업으로 키워 낼 수 있는 인재다!

-내가 베푼 은혜를 생각해다오. 내 아들을 잘 부탁한다.

한청호의 안목은 대단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당시 망나니에 불과했던 태수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전력으로 밀어줬다.

‘은인인 줄 알았다.’

태수의 아버지가 사채업자에게 끌려간 후 야산에 암매장당했을 때 그 시체를 찾을 수 있도록 사람을 풀어 도와줬던 사람이 한청호다.

아버지가 남긴 사채를 대신 갚아 주고, 어머니께 일자리를 내어 줬다.

싹수가 있다며 동생을 안기부에 넣어 주고, 태수는 아들의 비서로 입사시켰다.

‘그 모든 게 한청호의 계략인 줄도 모르고.’

바보처럼 은혜를 갚기 위해 태수는 그의 아들 한일권을 보필해 회사를 이만큼 키웠다.

왕좌를 바라보는 일가친척들을 모두 밀어내고, 한일권을 왕좌 위로 굳건히 안착시켰다.

‘한청호, 한일권, 두 놈 손에 가족들이 차례차례 죽어 가는 것도 모르고!’

태수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한일권의 눈에는 증오가 흘렀다.

태수를 볼 때면 간혹 숨기지 못하던 질투와 증오.

이제는 숨길 필요가 없다.

“이건 내 회사야, 내 회사! 아버지가 나한테 물려준 회사! 청일 그룹은 내 거란 말이야! 강태수가 아니라! 나, 한일권이 총수라고!”

쾅!

“우-으! 어-!”

“잘 가라, 태수야. 그동안 회사 잘 키워 줘서 고마웠다.”

스윽.

한일권은 바닥에 떨어진 두툼한 서류를 집어 들었다.

태수가 작성한 <금산 그룹 인수 합병 계획서>다.

그걸 훑어보던 한일권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내게 좋은 선물을 주다니, 정말 아낌없이 주는 친구라니까. 병-신. 클클클.”

한일권은 50년 가까이 묵혔던 비밀을 털어 내 버리고, 개운한 표정으로 등을 돌려 병실을 나갔다.

‘한청호! 한일권! 청일 그룹! 복수한다! 부숴 버린다! 이렇게는 못 죽어!’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태수는 몸부림쳤다.

주사약이 퍼지면서 자꾸 눈이 감긴다.

‘한일권!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 지옥 끝까지 따라간다! 너희 가족도 전부 죽여 버리겠다아아!’

그렇게 강태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생각한 단어는 ‘복수’였다.

* * *

죽기 전에 본다던 인생의 주마등을 보았다.

50년간 있었던 일을 지켜보며 태수는 회한의 눈물이 주룩 흘렀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제대로 잘살아 볼 텐데. 우리 가족, 내가 지킬 텐데.’

짝.

누군가 눈앞에서 손뼉을 쳤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디서 정신을 팔고 있어! 다 큰 놈이 왜 쳐 울고 지랄이야? 신내림이라도 받았냐!”

웬 무당이 노려보고 있다.

“어?”

“내 영험한 신기에 넋이 나갔구나! 봤소? 내가 이 정도요! 알겠소?”

“아이고, 알다마다요.”

빼빼 마른 남자가 넙죽 엎드려 인사한다.

무당은 의기양양하게 방울을 마구 흔들었다.

“잘 들어라. 장군 신께서 말씀하시길······.”

무당이 방울을 흔들다 말고 이쪽을 가리켰다.

“넌 흙 만지는 사업을 해야 해. 그럼 장차 대한민국을 쩌렁쩌렁하게 울릴 태양 같은 인물이 될 거라 하신다.”

황당했다.

하지만 이미 겪었던 일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안이 벙벙했다.

그때 누군가 태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빼빼 마른 남자였다.

“하품했냐? 콧물이나 닦아.”

손수건이었다.

엉겁결에 손수건을 받게 된 태수는 무당 앞에 엎드린 남자의 옆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홀쭉아······.”

태수의 절친이자 언제나 함께했던 믿음직한 동료였다.

한일권의 손에 교통사고로 위장 살해당했던 녀석.

20년 만이던가, 30년 만이던가.

너무 반가워서 덥석 껴안았다.

“저승에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고맙다, 나 만나러 와 줘서.”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이래?”

그때 무당이 요란하게 방울을 흔들며 외쳤다.

“장군 신께서 말씀하신다! 넌 재벌 잡는 재벌 사냥꾼이 될 것이라 하신다!”

태수는 그 뜬금없는 말에 씨익 웃었다.

“재벌 잡는 재벌 사냥꾼이라. 그거 좋지.”

결론만 말하자면 믿기지 않게도, 과거로 돌아왔다.

1972년, 24살의 그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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