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무너진 도시
쓰러진 론멜을 구하기 위해서 노리스가 허공을 박찼다. 프라몬드의 꼬리가 날아들었지만, 노리스는 허공을 밟고 재도약하며 그 꼬리를 피한 채 론멜을 잡아챘다.
문제는 호흡하지 않아도 피부로 파고드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론멜을 잡아채고 달려들던 힘을 잃지 않아서 그곳에서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옆 건물의 옥상에 도착한 노리스도 왈칵 피를 토했다.
지독한 독이다.
노리스가 품에서 약병을 꺼내서 론멜과 자신의 입에 하나씩 넣고는 프라몬드를 바라보았다. 프라몬드는 아직도 비늘을 펼친 채 사방으로 무색, 무취의 독을 퍼트리고 있었다.
프라몬드도 그 독을 퍼트리는 동안은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쌍룡사의 해독약을 먹어도 몸을 움직이기 힘들다.
프라몬드는 주위를 돌아보며 뱀의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았다.
“제물로서 충분한 녀석들이구나.”
프라몬드는 무색, 무취의 독을 뿌리는 것을 멈추고 론멜과 노리스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이 독에 당한 이상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대로 다가가 둘 다 삼켜버릴 생각이었다.
저만한 신성력을 품은 녀석들이라면 제물로 충분했다.
다가오는 프라몬드를 바라보며 노리스가 인상을 굳혔을 때 한줄기 푸른 섬광이 날아들었다.
프라몬드가 손을 들어 그것을 막아냈을 때 폭음과 함께 뒤로 주룩 밀려났다. 그만한 거체가 뒤로 밀려날 정도로 강력한 충돌. 그걸 막았던 프라몬드의 팔이 박살 났다.
팔이 으깨질 정도로 강력한 일격.
그리고 마치 유성처럼 날아드는 화살들이 프라몬드의 비늘을 뚫고 퍽퍽 박히면서 프라몬드가 멀찍이 멀어졌다.
프라몬드의 팔을 박살 냈던 방패가 돌아와 아린의 손에 잡혔고, 하늘에서 닉과 퓨리가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닉이 프라몬드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다가 급선회해서 시선을 빼앗을 때 디에고가 아론과 함께 노리스의 곁으로 내려왔다.
아론은 둘의 상태를 보고는 급히 해독 주문을 외웠다.
“큐어!”
하늘빛의 신성력이 노리스와 론멜을 뒤덮었다. 아론도 대악마를 죽일 때 옆에서 함께 기도를 올린 덕분인지 신성력이 눈에 띄게 올라가서 인지 해독 주문으로 단숨에 둘을 치료할 수 있었다.
아론의 치료를 받아서 해독이 됐지만, 지금 당장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론멜이 인상을 굳힌 채 바라보는 가운데 프라몬드는 그 위압적인 등장과 다르게 형편없이 뒤로 밀리고 있었다. 에드와 아린 뿐만 아니라 디에고까지 원거리에서 공격을 퍼붓는 중이었다.
프라몬드가 꼬리를 휘둘러 주변의 집들을 부수며 먼지를 일으켰지만, 그 정로는 에드의 심안을 벗어날 수 없었다.
콰콰쾅!
차례차례 화살을 몸에 박아넣던 에드는 화살이 일정량 박히자 쇄폭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상당한 마력을 사용해야 하지만, 이제는 레벨이 많이 올라서 마력량도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쇄폭시 하나의 폭발 범위는 얼마 되지 않지만, 세 발의 화살이 서로 연쇄적으로 터질 수 있도록 꽂아 넣었던 에드가 화살을 폭발시키자 비늘이 터져 나가며 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프라몬드도 자신이 내몰리는 것을 깨달았다. 한방 한방의 위력은 아린이 던지는 무지막지한 방패와 해머의 폭발이 위험했지만, 바늘처럼 날아와 박혔던 화살들이 폭발하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으로 오던 노르사드는 어떻게 된 걸까?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노르사드도 필요했다. 대악마 둘이 펼치려던 계획. 그 계획에 변수가 생겼다.
“제기랄.”
그렇다고 이대로 죽어줄 수는 없었다.
프라몬드가 바닥을 부수고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콰드드득.
설마하니 대악마가 이렇게 본체까지 드러내놓고 도망갈지는 몰랐다.
지면 아래로 내려간 대악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건물들이 지반이 무너지면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저 거대한 프라몬드를 죽이려면 정확히 핵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에드는 아론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물었다.
“봤습니까?”
아론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핵은 여기 있었어요.”
아론이 가리킨 곳은 미간이었다.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독을 쓴다는 것을 안 이상 쉽게 접근할 수 없다. 그것도 지하에 숨어서 도시의 영주가 지내는 성으로 돌진하고 있는 놈을 잡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아린. 디에고.”
그 외에 인물들은 지금 당장 도움이 안 된다.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없으니까.
아린과 에드는 건물을 뛰어넘으며 달렸고, 디에고는 톰에 탄 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건물들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무너졌고, 성벽도 허물어졌다.
놈이 벌써 성내로 진입했다.
조금 더 속도를 높인 에드는 단숨에 무너진 성벽을 따라 달리면서 심안으로 대악마 프라몬드의 움직임을 읽었다. 땅속으로 움직이는 데도 만만치 않은 속도였다.
문제는 아무리 에드의 화살이라고 해도 지면을 뚫고 그 아래에 있는 프라몬드의 비늘까지 뚫을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아린이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해머를 든 채 높이 도약했다. 그리고 아린의 해머가 바닥을 내리쳤다.
콰앙!
아린의 해머가 내리친 곳이 무너져 내리며 폭발과 함께 커다란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아래를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프라몬드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에드는 곧장 칠채비도를 날렸다.
칠채비도가 차례로 프라몬드의 몸에 박혔다. 프라몬드가 그대로 지나갔지만, 칠채비도가 꽂힌 이상 속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프라몬드도 그걸 깨달았는지 바닥을 부수면서 솟구쳤다. 하필 영주가 사는 성밑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성이 박살 났다.
그렇게 몸을 일으킨 프라몬드도 지하를 지나오면서 준비해 온 공격을 펼쳤다.
촤촤촤촥.
프라몬드의 입에서 쏟아져 날아오는 독액이 마치 창처럼 날아왔다. 에드는 그걸 보고 옆으로 물러나면서 피하다가 독액이 휘어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인상을 굳혔다.
자신이 펼치는 이기어시처럼 움직일 줄은 몰랐다.
“더러운 놈.”
무슨 침을 뱉고 나서도 조종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빠르지는 않아서 충분히 몸을 빼낼 수는 있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첫 공격이 에드를 향한 것이라서.
에드가 그렇게 뛰는 동안 아린의 방패가 날아들었다.
콰앙!
아린의 방패는 본다고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특히 프라몬드처럼 커다란 몸으로는 피하는 것이 요원한 일이었다.
프라몬드의 몸에 있던 비늘이 우수수 떨어지고 그 안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면서 피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성안에서 비명이 들렸지만, 지금 당장은 그곳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도와줄까?]
“방법이 있어?”
[이렇게 해줄 수는 있지.]
마리포사가 손을 움직이자 프라몬드의 눈앞에 안개가 나타났다. 그 순간 뒤를 쫓던 창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독을 흩날렸다. 에드는 날아오는 작은 독액을 보며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마치 비를 피하는 것처럼 움직여 그 모든 공격을 피한 에드는 프라몬드가 괴성을 내지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요정왕! 감히 세계의 흐름에 관여하려는 거냐!”
프라몬드의 전신에서 가공할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나마 남아있던 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에드는 활의 빈 시위를 당겼다.
“아스트론이여! 당신께 영광을!”
에드의 활 위로 빛의 화살이 네 발 만들어졌을 때 톰을 타고 온 디에고도 준비를 마쳤는지 혼령박을 펼쳤다.
바닥에서 솟구친 원혼의 사슬이 프라몬드의 몸을 칭칭 휘감았다. 그렇게 묶인 프라몬드가 괴성을 내지르며 요동칠 때 빛의 화살이 섬전처럼 날아갔다.
프라몬드도 뭔가를 느낀 건지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막힐 에드의 화살이 아니었다.
퍼퍼퍼퍽!
네 발의 화살이 모조리 프라몬드의 팔뚝을 관통해 그 미간에 박혔다. 에드는 그걸 그대로 터트렸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프라몬드의 머리가 사라졌다.
뒤로 넘어가는 프라몬드의 몸이 성을 박살 내는 것을 보면서 에드는 긴 숨을 토해냈다. 또 경험치가 밀려 들어왔다.
두 마리의 대악마를 잡으면서 레벨이 하나 오르고 30% 정도 차올랐다.
이것으로 다섯의 대악마를 죽였다. 비록 혼자 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확실히 대악마 중 절반을 죽였다.
악마의 시대 1에 나왔던 주인공조차도 이루지 못했던 위업이다. 그들은 실력이 되었다고 해도 더는 나타나지 않고 꼬리를 감춘 대악마 때문에 잡을 수 없었을 수도 있지만.
에드는 다가온 아린을 돌아보았다.
“다친 곳은 없죠?”
“원거리에서 공격만 해서 괜찮아요.”
에드의 충고가 없었다면 분명 아린은 돌진부터 하고 봤을 터였다. 에드가 전방위로 뿜어내는 무색, 무취의 독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분명 돌진했다가 중독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원거리에서 공격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해봤던 일이지만, 막상 해보니 못할 것도 없었다.
덕분에 대악마를 무리 없이 잡을 수 있었다.
에드는 디에고의 상태도 살펴보았다. 디에고는 무리해서 지쳐 보이기만 할 뿐 중독된 부분은 없었다.
에드는 모두가 멀쩡한 것을 보고는 쓰러진 프라몬드에게 다가갔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독을 사용하는 대악마. 그 독이 얼마나 유용할지는 짐작이 갔다.
아마 같은 대악마라고 해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리라.
그러니 이걸 테인에게 보내준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에드는 프라몬드의 독을 추출했다. 성화로 태워버리고 나면 건질 수 없으니 미리미리 챙겼다.
독샘을 뽑아내고, 피까지 받아냈다. 치명적인 독이라 프라몬드의 가죽을 잘라서 그 안에 담았다. 에드가 그렇게 독을 채취하는 사이에 마스터 팔라딘 다리온을 필두로 성기사들이 일행과 함께 다가왔다.
다리온은 아린을 만나서는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구나.”
“마스터 팔라딘을 뵙습니다.”
예언에 따라서 성기사단을 나설 때만 해도 아린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신입 성기사였는데 지금은 후광을 등에 업은 성기사가 됐다.
마스터 팔라딘인 다리온 조차 저절로 무릎을 꿇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신성력.
“과한 예는 됐다. 그보다 고생했다. 덕분에 대악마를 잡았구나.”
마스터 팔라딘의 공격조차 가볍게 받아내던 대악마가 잡혔다. 도시가 반파되기는 했지만, 대악마 둘이 여기 모여서 벌이려던 일을 생각하면 이 정도에서 막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는 시민 구조부터 시작하겠다.”
“저도 돕겠습니다.”
아린이 나서서 돕겠다는 말을 할 때 에드가 그녀를 말렸다.
“이 녀석을 성화로 태우는 게 먼저입니다. 지금도 줄줄 흘리는 피로 지하수라도 오염되면 그때는 도시를 버려야 하니까요.”
다리온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다. 그리하도록 해라.”
다리온은 아린을 한마디 말로 물러나게 한 후에 에드에게 다가갔다. 말로는 들었지만, 실제로 총본회에 있는 어떤 성유물보다 뛰어나 보이는 성유물을 가진 이였다.
아스트론의 총애를 받는 영웅.
자신의 어린 동생 같은 아린을 이만큼이나 끌어 올려준 이다.
“마스터 팔라딘 다리온 갈브리아스라고 하네.”
“에드라고 합니다.”
“고맙네.”
에드는 웃으며 말했다.
“시민들 구조는 제가 아린 경 대신 돕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겠군. 먼저 가겠네.”
다리온이 성기사들과 수사들을 데리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서 사람들을 구하러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에드는 론멜과 덱스를 바라보았다.
“숲에 대악마 하나 잡아 놓은 것이 있어요. 가서 성화로 제물로 바쳐요.”
론멜은 그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은 이번에 독에 중독 되면서 제대로 한 것이 없었으니까.
“내가 한 것도 없는데 그건 무리야. 차라리 아린 경이···.”
“시간을 끌어주지 않았다면 아스트론 성기사단은 전멸을 면치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 그렇게 해요.”
에드의 단호한 목소리를 들은 론멜이 입을 다물었을 때 덱스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나는 왜?”
론멜과 아린은 품고 있는 신성력을 체화하는 것만으로 성장이 가능하다. 반면 덱스는 이번에 신성력이 갑자기 몸으로 들어와 강해진 상태.
그렇다면 이번에도 제물로 바칠 때 옆에 있어 보는 것이 좋다. 운이 좋다면 또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냥 가.”
덱스는 어깨를 가볍게 풀며 말했다.
“가자. 론멜.”
“제가 안내할게요.”
퓨리를 소환한 디에고의 도움으로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본 에드는 노리스를 돌아보았다.
“같이 구조하러 갈까요?”
“그러죠.”
심안을 가진 그 둘이 가세한다면 구조는 한결 수월해질 터였다. 대악마 프라몬드가 푸른 성화에 휩싸이는 것을 등 뒤로 하고 에드와 노리스는 구조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