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81화 (181/202)

#181

잘 됐어요

에드가 쏘아낸 화살이 펜드래건의 바스타드 소드에 잘려나간다. 펜드래건은 그 화살을 잘라내는 순간 깨달았다.

그 짧은 시간 이렇게 강해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강해졌다. 고작 화살 하나 잘라내는데도 손이 저릿거릴 정도의 힘이 담겨 있는 데다가 자칫 잘못하면 화살에 맞을 정도로 빨랐다.

게다가 거리가 좁혀질수록 화살은 더욱 빨라진다.

진심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펜드래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이거다!

악마들과 싸우면서 순간순간에 목숨을 걸었던 그 짜릿함. 대악마를 죽이고 나서 왕국에서 그를 두려워한 나머지 계속 마물 사냥을 보냈지만,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그 수준까지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없었다. 그런데 한 번 붙어보니 알겠다.

에드는 자신도 진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는 세 발의 화살.

펜드래건은 그 화살들을 모조리 베어냈다. 그리고 한 걸음을 내디뎠다.

거리를 내준 상태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한 걸음 좁히고 들어가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른다.

스악.

허공을 가르고 지나가는 일검. 진심을 담아 휘둘렀음에도 상대를 베지 못한 것이 얼마 만인가?

그리고 곧장 반격이 들어온다. 이번에 날아온 것은 세 발의 화살. 궤적이 심상치 않다.

검을 휘둘러 쳐낼 겨를이 없다. 그리고 그럴 공간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어깨를 앞으로 하고 돌진했다.

지척에서 펼친 돌진이었는 데도 그걸 피해냈다. 확실히 에드의 민첩함은 상식을 초월했다.

이 정도라면 대악마의 움직임을 연상케 했다.

어차피 이 한 번으로 결착내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몸을 틀면서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러 뒤를 노리고 날아오던 화살 셋을 모조리 잘라냈다.

에드도 마찬가지였다. 에드는 옆으로 달리면서 계속 화살을 날렸다.

카카카카카캉!

화살을 잘라낼 틈도 없어 쳐내기 급급할 정도의 연사다. 펜드래건은 그렇게 화살을 쳐내면서도 거리를 좁히고 들어가 검을 휘둘렀다.

스악.

에드는 날아드는 검을 보면서 이제야 알았다. 펜드래건과 자신의 간격이 보인다.

예전에는 간격을 봐도 피할 수 없었지만, 레벨이 오를 때마다 민첩을 챙긴 덕에 이제는 가능해졌다.

그래서 싸울 수 있다.

어쩌면 이길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펜드래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너 보이는군.”

에드가 대답하기 전에 펜드래건의 검이 날아들었다. 간격이 닿지 않을 거리에서 활의 시위를 당기던 에드는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급히 고개를 뒤로 젖히지 않았다면 위험했다.

분명 닿지 않는 간격이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순간적으로 간격이 날아들었다.

에드가 뒤로 젖히면서도 용케 화살을 날리지 않았다면 연격에 당했으리라.

그렇게 뒤로 물러난 에드가 바라보자 펜드래건이 씨익 웃으며 바스타드 소드를 어깨에 걸쳤다.

“간격이 보이나 본데 그것만 맹신하면 안 되지.”

고작 그 짧은 시간에 그걸 읽어낸 건가?

하긴 펜드래건 정도 되면 언제든 검기를 이용해 간격을 조절할 수 있다. 검에서 검기가 뿜어져 나오는 속도가 경이로워서 에드도 간신히 피해냈다.

에드는 괜히 더 시간을 끌지 않고 본격적으로 싸우기로 했다. 에드가 쏘아낸 화살이 줄지어 날아가자 펜드래건이 다시 검을 휘둘러 그것들을 쳐냈다.

그리고 성큼 한발을 내디딜 때 그를 향해서 일곱 개의 비도가 날아들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비도는 아까와 다르게 그의 전방위를 노렸다.

앞으로만 날아들던 것과는 달랐다.

펜드래건은 날아드는 비도를 보고 그것들이 보통 물건이 아님을 알았다. 그리고 에드가 진심으로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그걸 뽑아 들었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자신도 전력을 다한다.

펜드래건의 마력이 그의 몸에서 방사된다.

카카카캉!

일반적인 호신강기라면 관통 효과가 있어서 뚫었을 텐데 저건 3중첩 호신강기다. 그것도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호신강기라 쉽게 뚫기 어려운 호신강기다.

저걸 사용하는 것을 보면 역시 펜드래건도 전력을 다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그렇지 칠채비도마저 통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역시 만만치 않다.

자유 기사의 정점. 대륙 최강의 기사.

펜드래건이 전력을 다하는 것을 보고 에드는 이걸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원거리 공격에 대한 절대 방어에 가까운 호신강기까지 꺼내 든 것을 보면 아주 끝장을 볼 생각인가 보다.

그렇다면 에드도 그냥 당해줄 수는 없다.

쉬아악!

펜드래건의 검을 간격을 보는 눈이 아닌 본능으로 피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심안으로 그의 호신강기가 움직이는 방향을 읽어낸다.

그리고 그 방향을 읽어낸 에드가 세 발의 화살을 날렸다. 이게 승패를 가르리라.

에드가 날린 화살을 펜드래건은 방어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의 절대 방어에 가까운 호신강기를 믿은 것이리라.

촤아악!

에드가 쏘아낸 세 발의 화살이 펜드래건의 호신강기에 닿는 순간 한 겹을 관통으로 뚫어내고 반대편으로 움직이는 호신강기의 면을 타고 흐르면서 뚫었다.

그리고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방향의 호신강기를 따라 비스듬히 흘렀다.

펜드래건이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호신강기 세 개를 모두 뚫은 후였다.

그리고 펜드래건의 검이 에드의 목에 닿은 후였다.

펜드래건의 검이 에드의 목에 닿고 에드의 화살 세 개는 펜드래건의 급소 앞에 멈췄다.

펜드래건이 방심하지 않았다면 호신강기만 믿고 달려들지는 않았을 터.

그랬다면 에드가 패했을 싸움이다.

하지만 그는 방심했고, 에드의 화살이 그의 급소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펜드래건은 자신의 앞에 떠 있는 화살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하.”

이렇게 짜릿했던 적이 없었다. 특히나 호신강기까지 일으키고 이렇게 몰린 적은 처음이다.

펜드래건은 검을 거두고는 한발 뒤로 물러났다. 에드도 허공에 띄워놨던 화살을 돌려서 무한의 화살집으로 돌려보냈다.

그걸 바라보던 펜드래건은 씨익 웃고는 성큼 다가와 에드를 끌어안았다.

“왜! 왜 이러세요!”

“고맙다. 오랜만에 살아있는 것 같았다!”

시원하게 웃으며 소리치는 펜드래건을 보며 에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조금 비벼볼 만한 수준이 됐다.

펜드래건의 방심 덕에 간신히 체면치레는 한 수준이었다.

펜드래건이 씨익 웃을 때 불쑥 끼어든 것은 덱스였다.

“나랑도 붙읍시다!”

펜드래건은 그 말에 호쾌하게 웃으며 바스타드 소드를 들어 올렸다. 덱스도 놀라울 정도로 성장한 것이 보였으니까.

동시에 여럿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지만, 한 명씩과 지쳐 쓰러질 때까지 어울릴 생각이었다.

“좋다!”

펜드래건이 덱스와 어울리는 것을 보며 에드는 자리에서 물러나서 숨을 골랐다.

지치지 않는 펜드래건이 덱스와 싸우다가 그의 전투 예측을 읽고는 연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건 피하기에는 무리인 공격이었다. 알면서도 막아내는 것이 전부인 공격. 알면서도 피하지 못할 공격만 이어갔다.

그렇게 덱스를 몰아치는 것을 지켜보던 에드의 곁으로 세실리아가 다가왔다. 세실리아는 에드의 옆에 앉아서는 펜드래건이 결국 덱스를 때려눕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세실리아는 에드에게 술잔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네.”

“그랬습니까?”

“나 때문에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마물 사냥이나 하고 살고 있으니까. 이만큼이나 쟁쟁한 이들과 칼을 맞대는 즐거움은 없지.”

“그만큼 공주님을 사랑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세실리아는 의외라는 듯 에드를 돌아보았다.

“그런 말도 할 줄 알았어?”

대체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둘의 사랑 이야기는 질리도록 봤으니까.

에드는 태연하게 말을 돌렸다.

“그보다 아칼란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칼란? 이제 깔끔하게 정리됐어. 다만 잘려나간 녀석들이 많아서 타국에 대한 정보 수집은 예전만 못하게 됐어. 다시 회복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그럼 왕국 내에는 제대로 작동합니까?”

“그런 편이지.”

“왕국 내에 뭔가 이상한 낌새는 없습니까?”

“이상한 낌새?”

세실리아는 고개를 내젓고는 답했다.

“아직까지는 그런 보고 없었는데?”

에드는 아직 대혼란이 일어나지 않은 건가 싶었다. 제대로 대혼란이 일어났다면 아칼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

“무슨 일 있어?”

“있을 겁니다. 아스트론의 예언이었습니다. 대혼란이 일어나고 잠들었던 것들이 깨어난다고. 대악마들도, 그리고 대악마의 빈자리를 노리는 자들도, 그리고 역사 속에 잊혔던 잠든 자들까지 나설 대혼란이 예상됩니다.”

세실리아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정말로?”

“예. 그래서 드레드도 고대 정령들을 만나러 가본다고 했습니다. 고대 정령이 깨어났을 때 그들의 적이 되지 않도록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에드는 세실리아를 바라보다가 오싹함을 느꼈다. 그녀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건 감추지 못한 미소였다.

펜드래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악마를 잡기 위한 여정을 보냈던 그들에게 지금의 삶은 무료하기 짝이 없을 터였다.

그랬던 그들에게는 대악마를 만났을 때처럼 살 떨리는 전투가 그리웠나 보다.

대혼란이 일어난다는데 이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면.

세실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헬버드를 들고는 앞으로 나섰다.

“나랑도 붙자!”

세실리아의 외침에 나선 것은 아린이었다.

“언니! 제가 할게요.”

아린과 세실리아가 들이받는 것을 보면서 에드는 픽 웃고 말았다. 언제 저리 친해졌는지 모르겠다.

에드는 왕도의 먹자 골목에 있는 가게를 보았다.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

그곳의 간판을 보면서 에드는 픽 웃음을 흘렸다.

“장사 잘되네.”

“그러게요.”

에드의 옆에는 아린을 시작해서 일행 모두가 모여 있었다. 그중 가장 기대감을 품고 있는 것은 눈을 반짝이고 있는 디에고였다.

“형! 이거 다 줄이에요?”

“그러게. 기다려야겠는데?”

다른 가게들에 피해를 준다고 할 만큼 많은 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먹자 골목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게.

“으으.”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렇다고 힘으로 밀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

일행은 차분히 기다렸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힘찬 목소리와 함께 한 소년이 다가왔다. 주근깨 가득한 디에고 또래의 소년.

“일행이 함께할 자리 있니?”

“물론이죠. 그런데 저희 메뉴가 하나뿐인 건 아시죠?”

“그래. 그러니 자리 안내해주고 하나씩 줘.”

“알겠어요!”

소년은 일행을 2층 창가의 자리에 안내해주고 주방을 향해 뛰어가며 소리쳤다.

“엠마! 라면 8개!”

“라면 8개. 접수!”

주방 안에서 들리는 기운찬 목소리에 디에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부글부글하는 디에고를 보고 에드가 픽 웃었다.

“왜? 불안해?”

“형. 괜찮겠죠?”

“질투하냐?”

모두가 디에고를 보며 미소를 짓고 키득거릴 때 씩씩거리던 디에고는 곧 라면 8개를 들고 오는 이를 보고는 표정을 풀었다.

“아저씨!”

브란트는 일행을 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언제 왔어?”

“달리아 사절단이랑 같이 왔어요. 안 바쁘면 얘기나 나눌까 했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네요.”

지금도 사람들이 시끄럽게 소리치며 주문하고 그것을 받아서 엠마가 라면을 끓이는 중이었다. 브란트도 주인이면서 직접 서빙을 하는 중이니 얼마나 장사가 잘되는지 알 수 있었다.

디에고는 슥 가게를 돌아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무슨 남자애들이 이렇게 많아요?”

브란트는 그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전쟁고아들이야. 구걸하러 왔던 녀석들 제구실하라고 일 준 거다.”

디에고가 입을 비죽 내밀었을 때 브란트가 디에고의 머리를 슥슥 문질러주며 말했다.

“엠마가 많이 보고 싶어 했는데 주방으로 가보지 않을래?”

“그래도 돼요?”

“그럼. 온 김에 일도 좀 도와주고.”

“예!”

힘차게 답한 디에고가 주방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일행 모두가 웃었다.

브란트는 디에고가 비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래서 갔던 일들은 잘됐어?”

에드는 브란트를 바라보았다. 왕도에 자리 잡고 힘을 봉인한 그는 바쁜 와중에도 행복에 한 걸음 다가간 것이 보였다. 그런 그에게 사실을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에드도 웃으며 답했다.

“잘 됐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