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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70화 (170/202)

#170

부탁

에드는 인질이 된 달리아 왕국군의 팔마르를 자신의 앞에 태운 채 이동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협곡 위를 따라 활을 겨눈 채 쫓아오는 이들이 있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겁이 없는 자들이군. 내가 정찰대장이긴 하지만 군에서 내 가치는 그리 높지 않다. 그리고 그곳에는 본대가 있어. 아무리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다.”

에드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이 자들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사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저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하나가 대장군급의 인물들이다. 이만한 전력은 어떤 왕국에서도 가지지 못한 것들.

하지만 에드는 굳이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곳에 모인 이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마음만 먹는다면 모조리 죽일 수 있다. 그저 그러고 싶지 않을 뿐이다.

과연 팔마르의 말처럼 협곡 깊숙이 들어가니 점점 불어나 협곡 위쪽에 늘어서서 활을 들고 준비하는 이들이 천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행은 에드를 믿고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항아리처럼 생긴 곳으로 나가는 길이 없는 막다른 곳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협곡 중앙에는 동굴이 있었고, 동굴에 나와 있는 이들이 있었다.

에드의 기억에는 없지만 테인은 그들을 알아보았다.

“낯익은 얼굴들이군. 특히 잭스 대장군까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달리아 왕국 출신인 테인은 그들을 알아보았다. 잭스 대장군은 직급이 대장군이었던 거지 실력이 대장군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에드는 그런 그들의 뒤에서 나오는 여인을 알아보았다.

갑옷을 입고 나오는 여인. 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그녀를 에드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에스터라고 소개했던 여인.

그녀 덕분에 빠져나갈 수 있었다.

과연 그녀는 자신을 기억할까?

잭스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대들은 누구기에 팔마르를 인질로 잡고 이곳까지 온 건가?”

에드는 이곳까지 온 이상 팔마르를 붙잡고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저들이 결단을 내린다면 결국 모두 죽여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고, 그게 아니라면 네프사엘만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감히 인간들의 뒤에 숨어 있는 대악마를.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잭스는 멀쩡한 눈빛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에스터도.

“할 말이 있어서 왔다.”

에드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에스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앞으로 나섰다.

“위험합니다. 물러나십시오.”

잭스 대장군이 그녀의 앞을 막았지만, 그녀는 그의 팔에 막힌 상태로 에드를 검지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당신이죠? 왕궁에서 만났던.”

“에드라고 합니다. 에스터 공주님.”

에스터는 그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제 이름 기억하시네요.”

에드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청이 있습니다.”

에스터는 잭스 대장군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를 만나겠어요.”

“공주님.”

에스터는 잭스 대장군이 당황해서 부르는 소리에 단호하게 답했다.

“명령이에요.”

잭스 대장군은 그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에스터는 달리아 왕국군의 대의를 알리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달리아 왕국이 무너지고 그 왕족 중 유일한 생존자.

클리프 왕자의 변덕 덕분에 살아남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찾아서 왕위를 되찾겠다는 대의를 기치로 내걸자 패잔병에 불과했던 달리아 왕국군에 후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왕국의 복권을 꿈꾸는 이들이 후원하고 병력들을 내보낸 것에 그치지 않고 의용군들이 모였다.

사냥꾼들이 활 하나 들고 모여들었지만, 덕분에 빠르게 군세를 키울 수 있었다.

점령군과 트라비아 왕국에서 올라온 정벌군이 전쟁을 벌인다면 결국 누가 이겨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때를 대비해서 이렇게 병력을 모아왔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병력들이 모인 앞에서 그녀가 공주의 직책으로 명령을 내린다면 그걸 무시했을 때 자신을 따르던 이들은 상관없지만, 왕국을 되찾겠다는 대의를 쫓아 모인 의용군들은 떠날 수도 있다.

아직 그들을 온전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기에 잭스 대장군은 한숨을 내쉬고는 답했다.

“그리하겠습니다.”

에스터는 미소를 지은 채 에드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봐요.”

에스터는 갈색 눈에 굉장한 미녀다. 전에 만났을 때와 비하면 반 년 정도 지났을까?

그런데 그녀는 전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에드는 일이 잘 풀렸기에 팔마르를 풀어주었다. 팔마르는 에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공주님을 알고 있었나?”

에드는 담담히 답해 주었다.

“같이 생사의 고비를 넘긴 사이지.”

에드의 대답을 들은 팔마르의 눈에는 의혹이 가득했지만, 에드는 그 눈빛을 무시했다.

잭스 대장군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팔마르. 그들을 안으로 안내해라.”

트라비아 왕국과 시트라 왕국에서 일행은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각 왕국에서 해낸 일이 워낙에 많았으니.

비공식적이지만 대악마까지 잡지 않았던가?

하지만 달리아 왕국군에서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점령군과 정벌군을 주시하느라 바빴을 테니.

일행은 무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서로를 돌아보았다. 저 안에는 네프사엘이 있을 수 있는데 무기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는 상대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에드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와 아린, 드레드만 가도록 하죠. 나머지는 이곳에서 무기를 지키고 있도록 해요.”

에드의 말을 들은 덱스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신호해.”

에드는 미소를 지은 채 일행만 들을 수 있게 답했다.

“저와 아린의 무기가 움직이면 그때는 무력으로 돌파해서 무기를 가지고 오면 돼.”

덱스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지.”

드레드는 강했고, 아린과 에드의 무기는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부를 수 있으니 그들만 들어가기로 했다. 사실 에스터를 만나는 것은 네프사엘로 의심되는 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려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렇게 결정한 에드는 아린과 드레드의 무기를 모두 일행에게 주고는 달리아 왕국군의 검사를 받고 동굴 안의 한 방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에스터와 잭스 대장군. 그리고 무표정한 수호 기사 한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심안으로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것이 없었다. 잭스도 수호 기사도 상당한 실력을 지닌 것으로 보였지만, 그들 정도는 굳이 드레드나 아린이 나설 것도 없이 에드 혼자 맨손으로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니 에스터가 손짓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잭스 대장군은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굳이 따지지 않았다.

에드는 일행에게 눈짓하고 모두 자리에 앉았다. 에스터는 잠시 에드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제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오신 건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에드의 물음에 에스터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행동하지는 않으셨을 테니까요. 아닌가? 충분히 그럴만한 분인 것 같기도 하고.”

에스터는 당시의 일을 떠올렸는지 뭔가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긴 둘 만의 추억일 수 있었을 터.

에드는 옆에서 아린의 따가운 눈빛을 애써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공주님이 달리아 왕국군과 함께 한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에스터가 손뼉까지 치며 기뻐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잭스 대장군은 뭔가 탐탁지 않아 보였지만, 에스터는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청이 있다고 하셨죠?”

“예.”

“개인적인 청인가요?”

에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악마로 추정되는 네프사엘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지만 공적인 일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웠으니까.

에스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독대하도록 하죠.”

“공주님!”

당황한 잭스 대장군을 에스터가 내려다보며 물었다.

“개인적인 청이라는데 대장군이 함께할 이유가 있나요?”

“공주님은 이제 개인이 아니십니다.”

에스터의 눈빛이 일렁였지만, 그녀는 표정을 태연하게 한 채 답했다.

“그 청이 어차피 제가 들어줄 수 없는 것이라면 대장군도 자연히 알게 될 테니 그 말은 수긍할 수 없군요.”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잭스 대장군이 입을 다물었다.

“수호 기사는 함께 해야 합니다.”

“물론이죠.”

에스터는 싱긋 웃고는 에드를 보며 말했다.

“따라와요.”

에스터가 먼저 앞장서기에 에드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라갔다. 아린의 따가운 눈빛에 움찔했지만, 태연히 걸음을 옮긴 에드는 곧 동굴을 개조해서 만든 문을 열고 들어간 에스터를 볼 수 있었다.

“누가 오는지 잘 지키도록 해요.”

“예.”

짧게 대답한 수호 기사가 문옆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에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무기를 내주었다고 해도 에드는 외부인이다. 그 실력을 짐작하지 못한다고 해도 남자인 그가 에스터와 단둘이 방에 들어간다는 데도 수호 기사가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않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에드는 사내를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에스터는 찻잔을 테이블에 놓고 있었다. 달리아 왕국군이 왕국을 되찾기 위해 싸운다고 하지만 그녀가 머무는 공간은 무척이나 열악했다.

동굴 안쪽이다 보니 창문 하나 없는 곳이었으니까.

마치 감옥 같아 보였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에드는 그녀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 에드의 앞으로 끓인 차를 따라준 에스터는 자신의 잔에도 차를 따르고는 그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가슴에 손을 얹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에드도 드물게 당황했다. 에스터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생긋 미소를 지었다.

“클리프 왕자를 죽여 아버지의 복수를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이제야 드리네요.”

당시에는 정신이 없었다. 에드도 클리프 왕자를 죽이고 몸을 빼내느라 시간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막바지에 암살자를 만나기까지 했으니.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화살 하나 없어도 모조리 죽이고 나올 자신이 있었지만, 그때는 에드도 꽤 애를 먹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에드를 안내한 그녀도 감사 인사나 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에드는 담담히 답했다.

“전 그저 제 일을 한 것뿐입니다.”

“어떤 이유에든 감사는 전해야 할 것 같아서요.”

에스터는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그런데 제가 어떤 것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에드는 그녀가 자신이 원하던 질문을 해준 것에 미소를 짓고는 답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여인이 참모이자 후원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붉은 손톱을 지닌 여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에스터는 그 질문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엘님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이름은 밝혔습니다. 잭스 대장군과 저만 알고 있지만.”

에드는 에스터의 대답을 듣고 확신했다. 저렇게 당당히 이름을 줄여서 말했을 줄은 몰랐지만, 그녀가 네프사엘이다.

“어디 있습니까?”

에스터는 잠시 에드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녀를 죽여야 하는 건가요?”

에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터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이유가 있겠죠. 대신 저도 부탁이 있어요.”

에드가 빤히 바라보자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저를 이곳에서 빼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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