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단서
에드와 드레드의 사이는 여전히 선을 긋고 있었지만, 그 둘의 대화를 모두가 들었기에 일행들은 오히려 어색함이 없어졌다.
드레드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고, 에드도 그것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았기에 편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
드레드도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에드에게 넘기고는 마음 편히 일행을 대했다. 굳이 에드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모든 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행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드루이드는 굉장히 다재다능했다. 문신을 받은 것은 제라드 뿐이었지만, 다른 이들도 그에게 버프가 되는 포션을 받을 수 있었다.
드루이드는 약초학에 있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다 보니 연금술을 익힐 수도 있었는데 드레드는 연금술을 익혔나 보다. 문신술과 원래는 하나만 익힐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건 게임일 때의 이야기고 긴 시간 동안 그는 연금술까지 익혀서 포션을 지급했는데 그 포션의 효능을 확인해 보니 상당했다.
신과의 연결을 어떻게든 끊으려고 하는 대악마와의 싸움에서 포션을 이용해서 조금이라도 전력을 올리는 것은 굉장한 이점이 있었다.
에드는 자신은 포션을 받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포션을 권장했다.
드레드가 멀쩡해 보이지만 안에 깃들어 있는 네비로스가 수작을 부렸다고 해도 알아보지 못할 테니 만약을 위해서 포션을 받지 않았다.
일행은 다시 가까운 도시로 이동했다. 도시에서 더그가 짐마차와 식량을 구하는 사이에 아린은 신전을 찾아갔다.
아스트론의 예언에 따른 퇴마행을 성공한 아린은 예전과는 입지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솔직히 지금은 아스트론 교단의 마스터 팔라딘이라고 해도 지금의 아린을 감당하지 못할 것도 있었지만, 아스트론의 총애를 받는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린은 신전의 주임 사제 에이든과 마주 앉아서는 그가 건네는 찻잔을 앞에 놓고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에이든은 아린에 대한 연락을 총본회로부터 받았다. 그녀는 아스트론의 예언에 따른 퇴마행을 성공적으로 완수했기에 차기 마스터 팔라딘으로 내정된 이였다.
게다가 새로운 예언이 내려와서 다시 퇴마행을 떠난 그녀에게 총본회에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하라고 했다.
그런 그녀가 이곳에 찾아왔기에 긴장한 에이든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시를 책임지는 신전의 주임 사제임에도 미약한 신성력 밖에 다루지 못하는 에이든이었지만, 그녀가 품고 있는 후광과 같은 신성력은 느낄 수 있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주눅이 들 것 같았다. 한참 어린 성기사임에도.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새로운 대악마를 추격 중입니다.”
대악마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았기에 에이든은 삐질 식은땀이 흘렀다. 대악마를 이곳에서 추격 중이라는 것은 가까운 곳에 대악마가 있다는 걸까?
“지원해 드릴 병력은 없습니다만···.”
신전 정도 되면 자체적으로 신전을 지킬 수사는 두고 있지만, 그 수가 그리 넉넉한 것은 아니다.
“병력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린은 에이든이 자기 보신에 능한 이라는 것을 대화를 나누면서 깨달았다. 이것도 처음 교단을 나설 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가 어떤 이들인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보급 지원을 요청합니다.”
“보급 지원이요?”
에이든은 병력을 내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안도하며 답했다.
“얼마든지 해드려야죠. 골드로 지원해드릴까요? 아니면 현물로 지원해드릴까요?”
아린은 고개를 내젓고는 답했다.
“북부에 있는 마을에 들렀다 오는 길입니다. 북부에 있는 마을들이 모두 젊은이들을 징병한 탓에 헐벗고 굶주리고 있습니다. 평상시라면 교회에서라도 그들을 구휼하고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교회의 사제들도 자리를 비웠더군요.”
에이든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깨닫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것 때문에 찾아오셨군요. 북부의 달리아 왕국에서 넘어온 이들에게 교회에 도둑이 들었던 사건이 있어 일단 사제들을 불러들였습니다.”
“도둑이 든 교회의 사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아린도 그런 사건이 있는 줄은 몰랐기에 그의 안전을 물었다. 에이든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식량과 돈이 될만한 것을 훔쳐갔을 뿐. 그는 상처 하나 없이 풀려났습니다.”
아린은 에이든의 대답에 미간을 살포시 찌푸렸다. 트라비아 왕국 내에서 지내는 사제들은 일단 지원을 아낌없이 받는다. 도둑이 들어서 교회의 물건을 빼앗긴다고 해도 총본회에 연락하면 지원과 함께 도둑들을 잡을 이들을 보내준다.
도둑들도 그것을 알았기에 사제를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한 것 같은데 지금 이 인간들은 자신들의 보신을 위해서 교회에서 몸을 빼낸 것이다.
“총본회에 지원을 요청했어야 할 일인 것 같은데요?”
“그랬다가 사제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일단 선조치 후에 총본회에서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아린은 에이든을 이해했다. 도시의 주임 사제라면 마을의 사제들을 관리도 해야 하니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서 사제들이 다치기를 원하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
관리할 사제들이 다치게 되면 아마도 주교로 올라가기 힘들 거라 여겼을 터.
이렇게 보신하는 자에게는 그에 걸맞게 대우해줘야 한다는 것을 에드에게 배웠다. 새삼 그를 만나 많은 것을 배웠다고 여긴 아린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교회는 사제가 지키고 있어야 하고 교회를 찾아오는 모든 신도는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저를 가르쳐 주신 베네딕토 대주교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죠.”
에이든은 아린의 말에 흠칫 몸을 떨었다. 아린이 차기 마스터 팔라딘이고 지금도 대악마를 쫓는 과중한 업무를 맡고 있지만, 그것보다 베네딕토 대주교의 이름이 무거웠다.
대주교라는 이름도 무거웠지만, 에이든은 자신을 끌어주고 있는 주교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베네딕토 대주교가 아스트론의 눈을 관장하고 있다는 것을.
베네딕토 대주교는 아스트론의 눈을 관장하는 만큼 대륙에 그의 눈이 안 닿는 곳은 없다. 그런 그가 이곳에 일어나는 일을 모를까?
알면서도 쉬쉬해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차기 마스터 팔라딘이자 인맥이 있는 아린이 신도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움을 주고자 했는데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본보기가 될 수도 있었다.
에이든은 식은땀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마을에 있는 교회 사제들을 이곳에 부른 것은 안전 교육을 위해서였습니다. 마침 교단에서 북부의 상황을 듣고 보낸 보급품이 있으니 그것들을 풀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겁니다.”
아린은 이미 교단에서 보낸 보급품이 있음에도 그걸 쥐고 풀지 않았던 에이든을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미소와 함께 날려버렸다.
에이든이 자신이 말한 뜻을 정확히 읽었으니 앞으로 북부 마을에 보급품이 전달되는데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테니까.
자신의 몸보신을 하는 이들은 자신이 위험할 것 같을 때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일을 잘한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이만큼 조여줬으면 풀어줄 때도 되었다.
“에이든 사제님의 뜻을 오해하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다음에 교단에 보고를 올릴 때 사제님의 이름도 언급하겠습니다.”
“하하하하. 그래 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아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에이든이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아린 경의 앞길에 함께하길.”
“아스트론의 영광이 에이든 사제님과 함께하길.”
에이든은 아린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신입 성기사가 퇴마행을 나와서 대악마를 잡았다는 말만 들었을 때는 굉장한 기예를 지닌 이라고만 여겼는데 막상 만나보니 말솜씨도 예사롭지 않았다.
아린이 가지고 온 소식에 모두 다행이라고 여겼다. 특히나 디에고는 소년, 소녀들이 굶주린 모습을 보고는 마을을 떠나오기 전에 따로 찾아가 챙겨두었던 말린 빵을 건네줄 정도로 그들을 걱정했었다.
빈민가에서 살았던 디에고는 그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도시의 빈민가는 풍족한 이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굶주림이 일상인 곳이었으니까.
그래도 일행은 짐 마차 하나 가득 음식을 구했다. 보존 식량 위주로 구했으니 보급품이 닿기 전의 마을에서 조금씩 풀어도 보급품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으리라.
일행은 다시 북부의 마을들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네프사엘의 흔적이 있는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탐문하다 보면 놈이 먼저 찾아올 것을 알았기에 그들은 주의하며 이동을 시작했다.
아무리 지급된 보급품을 푸는 것이라고 해도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니라서 에드는 먼저 식량을 나눠주면서 이동하니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식료품을 나눠주는 마차.
그들은 식료품을 나눠줄 때 무작정 나눠주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 정도를 버틸 정도의 식량을 나눠주며 곧 아스트론 교단의 보급이 시작될 것임을 알려줬다.
그것만으로도 희망을 얻은 이들은 그들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기에 바빴다.
달리아 왕국과 전쟁 중에 아스트론 교단의 교회가 습격을 당했다는 것은 상인들도 마을에 가지 않게 만들었지만, 에드 일행의 소문이 퍼지면서 상인들도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이 아니라 아스트론 교단이 교회에 다시 사제를 보내면서 북부에 보급품을 푸는 것이 알려지면서 북부를 버리기보다는 그곳에서 장사하겠다는 생각에 식료품을 들고 가서 다른 것과 교환하거나 돈을 받고 거래했다.
그것만으로도 북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돈이 있어도 식량을 구하지 못했던 북부 마을에서도 이제 찾아오는 상인들 덕분에 굶어 죽는 이들이 줄게 되었다.
에드 일행은 벌써 북부 마을을 따라 계속 이동했다. 밤마다 정찰을 나가고, 제리를 소환해서 악마를 탐색해도 네프사엘은 발견하지 못했다.
오늘도 식량을 나눠준 마을을 나와 정찰하면서 확인해 보았던 다음 마을을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이동하던 중에 에드는 말을 잠깐 멈추고는 손을 들어 올렸다. 에드의 손짓에 일행이 마차와 말을 모두 멈췄다.
에드는 그렇게 일행을 멈추게 하고는 숲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을들을 이동하다 보니 길이 잘 닦인 대로들이 아니다. 숲에 난 길을 이동하는 중이었는데 에드는 잠시 멈춰서 숲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물러난다면 손을 쓰지 않겠다.”
에드의 목소리가 숲에 쭉 뻗어 나갔는데 잠시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가 화살이 하나 날아왔다.
에드의 품에서 튀어나온 석화의 비도가 화살을 쳐내고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숲을 쭉 날아간 비도가 상대의 활을 박살 내고는 돌아왔다.
이기어시를 사용해서 고속으로 날린 후에 돌렸기에 에드는 돌아온 비도를 받아 쥐고는 입을 열었다.
“제압하죠.”
에드가 좌측으로 노리스가 우측으로 뛰었다. 나머지 인물들은 마차와 짐 마차를 지키기 위해 대기했다.
에드는 다크의 안장을 박차고 솟구쳐서는 그대로 나뭇가지를 밟으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에드를 향해 화살이 날아왔지만, 에드는 이미 심안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읽고 있어서 화살이 날아올 때 이미 몸을 피하고 있었다.
가까워진 거리에서 에드는 상대의 복장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검은 가죽 코트에 활을 들고 있는 상대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지금까지 대악마 네프사엘을 추적하던 중에 실마리를 찾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악마와 관련된 자를 찾았다.
에드가 속도를 높이자 상대는 반응도 못 했고 에드는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무릎으로 상대의 턱을 받아 버렸다. 악마의 흔적을 쫓을 기회였기에 죽이지 않고 쓰러트렸다.
에드는 그를 쓰러트리고, 다른 이들을 쫓았다. 다른 이들은 악마에게 홀리지 않았는지 눈이 붉게 물들어 있지 않았다. 에드는 그들도 간단히 제압했다.
그렇게 다섯 명을 제압한 에드가 그들을 하나둘 어깨에 걸친 채 돌아왔을 때 노리스도 다섯 명을 제압해서 그들의 앞에 던져 놓았다.
테인이 그들을 보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크로우라···. 달리아 인이군.”
에드는 그들의 무기를 모두 빼앗아 한곳에 대충 던져 놓고는 그들 중 크로우 복장을 한 이의 뺨을 두들겨 깨웠다.
정신을 차린 사내가 에드를 보고는 반사적으로 품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무기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에드는 성큼 한 걸음을 걸어가 그의 목을 틀어쥐었다.
“켁!”
에드는 그런 상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 무심한 눈빛을 받던 크로우의 사내는 점점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결국, 시선을 피하는 사내를 향해 에드가 물었다.
“널 홀린 자가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