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147화 (147/202)

#147

강림

교황 밀로토의 미간에 화살을 꽂은 순간 막대한 경험치가 밀려왔다. 솔직히 국왕과 상급 악마를 죽이면서 레벨이 올랐기에 당분간 레벨이 오를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교황 밀로토가 죽는 순간 단번에 레벨이 올랐다.

30레벨.

10레벨 단위로 새로운 스킬을 익힐 수 있는데 30레벨은 조금 특별하다. 필살기를 익힐 수 있는 레벨.

이게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대악마에게도 유의미한 데미지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30레벨이 되면 기존에 익혔던 스킬들도 강화된다. 이번에 만난 대악마는 간격을 보는 눈으로 피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알았으니 아린을 더 키워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건 대단한 의미가 있는 레벨업이었다.

즐거움을 만끽하려고 하던 에드는 순간 휘청거렸다. 이게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니 노리스와 리베라 모두 멈춰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에드는 자신을 짓누르는 격을 느꼈다. 대악마를 만났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뭐지 싶었지만, 에드는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꼿꼿이 세웠다. 30레벨. 그건 단순히 스킬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에드에게도 격이라는 것이 생기는 레벨이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흐응. 제법이구나.”

에드는 교황 밀로토의 시체를 걸터앉은 이를 볼 수 있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은 끔찍할 정도로 순수한 파괴.

일종의 개념이다.

그걸 느낀 에드는 상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시···트···라.”

시트라는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천천히 에드를 향해 걸어왔다. 에드는 오싹함을 느꼈지만 버텼다.

“아스트론 그 년이 얼마나 염장을 지르던지. 그래서 찾아와 봤어.”

시트라는 그리 말하면서 다가와 손을 들어 올리자 죽은 그림자의 몸에서 하나둘 성유물들이 떠올랐다.

에이 씨. 저것들 챙기려고 했는데.

허공에 떠오른 성유물이 시트라의 손 위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하나로 뭉쳐졌다. 에드가 빤히 바라보는 중에 시트라가 양손으로 그걸 쥐더니 비틀어 뽑아냈다.

열 개의 성유물을 압축해서 만들어낸 단 하나의 화살.

시트라는 그렇게 화살을 만들고는 훅하고 바람을 불었다. 화살이 검게 빛나는가 싶더니 제 모습을 찾았다.

“아스트론 그년이 내 물건에다가 개수작 부린 것은 알지만, 이것만큼은 그년도 손대지 못해. 이것은 오로지 내 거다.”

시트라가 그리 말하고 손을 내밀자 화살이 에드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에드는 그 화살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온전히 시트라의 일부. 그 안에 담긴 것은 파괴의 권능이었는데 그녀가 직접 담아 놓은 만큼 그 순수함은 지금까지의 어떤 성유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시트라의 신성이 담긴 화살.

신의 무기. 신병이라고 불릴 만한 무기였다.

에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화살을 보면서도 손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 화살은 슬그머니 빙결의 화살집으로 들어갔다.

시트라는 슬그머니 다가와 에드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가 얘기할 때만 해도 안 믿었는데 넌 기대가 되네.”

에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트라가 말하는 ‘그녀’가 누군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입을 열려고 할 때 시트라는 왼쪽 눈을 찡긋거린 그녀가 뒷걸음질을 치며 손을 살살 흔들더니 사라졌다.

“커헉!”

그제야 숨을 토해낸 에드가 황급히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신이 세상에 강림한 여파가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에드는 본능적으로 뒤돌아 노리스와 리베라의 손목을 틀어쥐고 달렸다.

“꺄악! 왜 이러세요?”

“시주!”

당황해서 말을 꺼내던 노리스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인상을 딱딱하게 굳히고 빠르게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에드에게 손목 잡힌 리베라가 고개를 뒤로 돌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교황의 시체와 그림자들의 시체가 있던 곳. 그곳의 공간이 일렁이며 비밀 통로가 출렁이면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비밀 통로가 무너지는 사이로 그 시체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교황과 그림자들이 죽는 것을 보았지만, 저렇게 가루가 되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그림자들이 가지고 있던 성유물도 회수하지 못한 상황.

리베라는 고개를 내젓고 에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비밀 통로를 나온 그들은 사원 밖에서 그제야 긴 숨을 토해냈다.

“하아. 하아.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리베라의 물음에 에드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시트라가 직접 이곳에 강림했음에도 성녀인 그녀가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보면 다른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았다.

노리스는 인상을 굳힌 채 입을 열었다.

“단순히 비밀 통로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공간이 사멸했습니다. 교황의 죽음 때문입니까?”

“아뇨. 그는 마지막에 신성력을 발휘하지 못했어요. 신성력을 잃었다는 것은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말이에요. 그의 죽음으로 그만한 이적이 일어날 리 없어요.”

그때 저 멀리서 굉음이 울리기에 에드는 설명하는 대신 밖으로 나와 사원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에드를 따라 사원의 지붕 위로 올라온 이들은 왕도의 일부 건물들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하의 비밀 통로가 무너지면서 그 위에 서 있던 건물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에드는 새삼 시트라가 민폐를 끼친 것을 알았다.

에드는 리베라에게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일은 잘 해결된 것 같네요.”

리베라는 그 말에 에드를 바라보았다. 사실 교황 밀로토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어떻게든 그를 막을 생각만 했었는데 에드는 싸움이 시작되자 가차 없었다.

시트라에게 버림받은 것을 보면 그가 벌인 일은 신도 허락하지 않은 일이라고 할 지라도 교황이 죽은 것은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교단 내에서 그가 태자 저하 암살을 획책한 것을 아는 이들이 또 있습니까?”

“마스터 팔라딘은 알지도 몰라요.”

“알더라도 그들이 나설 일은 없겠죠. 돌아가서 수습하세요.”

리베라는 아직도 머리가 팽팽 돌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에드가 말을 이었다.

“정보의 우위에 선다는 것은 여러모로 이점이 많죠. 저들이 교황의 움직임을 모를 때 정리할 수 있을 거예요.”

리베라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힘이 되어줄 이가 필요해요.”

에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교내에 무력을 사용할 일이 있다는 겁니까?”

“아마도요.”

마스터 팔라딘이라.

에드는 이번 일에는 자신이 나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교황 밀로토야 급하기도 했거니와 밖으로 나왔기에 부담 없이 싸울 수 있었지만, 교단 총본회에서의 싸움은 얘기가 다르다.

외부인이 개입한다면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리라.

“론멜과 함께 가세요.”

론멜 혼자서라면 약간 부족하다고 여겨지지만, 교단 내에 남은 이들은 그리 강하지 않다. 마스터 팔라딘 정도가 살짝 걱정되었지만, 리베라도 만만치 않은 실력자니 어떻게든 되리라.

리베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서두르죠.”

에드는 일행과 함께 호텔을 향해 뛰었다.

론멜은 왕도에서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며 일어난 소란 때문에 깨었다가 혹시나 해서 에드의 방을 찾아갔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

그러면 일단 에드부터 찾아가 보면 된다고 여겼다. 그렇게 달려간 론멜이 에드의 방문을 부술 듯 열고 들어갔을 때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던 리베라와 눈이 마주쳤다.

“성녀님?”

에드와 노리스는 이미 방안에 있다가 고개를 돌려 론멜을 바라보았다.

에드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론멜을 바라보았다.

“론멜 경. 노크도 없이 이게 뭐하는 겁니까?”

론멜은 에드의 분위기에 흠칫 놀랐다. 오늘 저녁에 만났을 때와 지금 만난 에드의 분위기가 달랐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한 느낌.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사과부터 했다.

“미안. 그보다 성녀님과 왜 함께 있는 거야?”

에드는 더는 할 말이 없었기에 리베라를 돌아보았다. 리베라는 그 시선에 론멜의 앞으로 다가갔다.

“론멜 경.”

“예. 성녀님.”

“날 도와주세요.”

성녀가 홀로 총본회를 나와서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 론멜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성녀님의 뜻이라면.”

에드는 그 말에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앞뒤 안 가리고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론멜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녀가 뭘 말할 줄 알고 대뜸 저러는지.

“다녀오세요. 대신 무사히 돌아와야 합니다.”

론멜은 그 말을 듣고는 에드가 이번 일에 대해서 알고 있음을 알았다.

론멜의 시선이 리베라를 향했고, 그녀는 에드를 한 번 보고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 론멜과 함께 떠났다.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노리스가 에드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 알려주실 겁니까?”

성녀 리베라가 있을 때는 묻지 않았지만, 둘만 남으니 물을 수 있었다.

고작 교황이 죽었다고 세계의 법칙이 흔들릴 일은 없으니까.

에드는 노리스의 물음에 순순히 답했다.

“시트라께서 강림했습니다.”

노리스는 그 말에 인상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랬나 보군요. 하긴 그 정도 일이라면 신의 강림 외에는 생각해 볼 수 없겠군요. 혹시 무슨 얘기를 나누셨습니까?”

에드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리고는 답했다.

“뒷담화요.”

“예?”

시트라가 아스트론의 뒷담화를 했다는 것을 어찌 설명할까? 에드는 그저 고개를 내젓고는 말했다.

“다음에 얘기하죠. 오늘은 쉬어야겠습니다.”

노리스는 가만히 에드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모르지만, 에드가 신의 강림을 알았다는 것을 보면 그를 찾아왔다는 말. 그런 만큼 에드에게는 홀로 있을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죠. 그럼 편안한 밤 되시길.”

노리스가 반장하고는 방을 나섰다. 에드는 홀로 남아서야 화살집에서 새로 얻은 화살을 꺼내 들었다. 성유물 열 개를 압축해서 만든 것을 보면 그 무게가 상당할 법도 한데 역시나 신이라 그런지 무게는 얼마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균형이 잘 잡혀 있었다.

이 화살이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신이 직접 그 권능을 담아줬다. 이 화살에 담긴 것은 아마도 파괴의 권능.

아무 곳에서나 연습할 수 없다.

그래도 마음에 쏙 들었다. 화살촉을 쓰다듬던 에드는 화살집에 화살을 돌려 넣었다.

좋은 선물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봐야겠다. '그녀'가 누구인지.

굉장한 무기를 손에 넣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에드는 민첩에 스탯을 투자하고 스킬들을 살펴보았다.

필살기급의 스킬은 마력의 소모도 크지만, 그 위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필살기 중에는 방향성을 잘 타야 한다.

그리고 에드는 이기어시를 택했을 때 이미 방향을 잡았다. 에드는 스킬을 찍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론멜을 보내놓기는 했지만, 그냥 손 놓고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에드는 창문을 넘어 총본회를 향해 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