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폭주
타로스가 모아 놓은 정보들을 열람하던 에드는 탑의 정상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심안으로 탑의 정상을 살핀 에드는 그곳에서 악마의 힘을 일깨운 브란트를 볼 수 있었다.
에드는 황급히 탑의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브란트가 벽에 박혀있는 다비드를 상대하는데 어째서 악마의 힘을 일깨운단 말인가?
올라가면서 심안으로 살핀 결과 다비드는 바닥에 내려와 있었고, 악마의 힘을 끌어낸 브란트가 사슬을 풀어서 휘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악마의 힘을 끌어낸 그의 상태가 이상했다. 악마의 힘을 끌어내도 그는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다비드의 몸을 조각내는 것을 보니 이건 이성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렇게 휘두르는 사슬에 담긴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탑의 최상층 벽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란에 왕궁의 병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악마의 힘을 일으킨 브란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무한정 그 힘을 쓸 수는 없다. 괜히 그 반동에 무력해지면 더 쉽게 당할 수도 있다.
그걸 알았기에 에드는 황급히 위로 뛰어 올라갔다. 탑의 정상에 올라가던 중에 날아오는 쇠사슬에 에드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콰앙!
계단 위쪽 벽이 부서져 날아가는 것을 보고 에드는 인상을 굳혔다.
“형님!”
브란트의 얼굴에까지 핏발이 서 있고 광기에 휩싸인 두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 반쯤 악마의 것과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두 눈이 모두 붉게 빛나고 있었다. 한쪽 눈만 별의 악마가 가진 힘을 보였을 때도 상대하기 까다로웠는데 두 눈 모두 붉어졌다.
에드는 조각난 다비드의 시체에 관심을 둬 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비드는 그냥 죽지 않았고, 뭔가 수작을 부렸다.
그리고 그건 브란트를 저 상황까지 몰고 간 게 다비드란 말이다.
이 새끼가 죽으려면 곱게 죽을 것이지.
에드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날아드는 사슬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뛰어야만 했다.
브란트를 죽이고자 한다면 죽일 자신이 있었지만, 제압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제압하더라도 탈출 못 한다.
에드는 이리저리 몸을 피하면서 연달아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에드의 화살이 줄지어 날아갔지만, 에슬란의 사슬이 자동으로 그것들을 쳐냈다. 하지만 에슬란의 사슬이 화살을 쳐내느라 공격이 뜸해졌다.
그 틈으로 에드가 파고들었다.
에드가 간격을 좁히고 들어가자 사슬을 휘두르는 대신 사슬을 팔에 두른 브란트가 주먹을 날렸다. 에드는 날아드는 주먹을 보며 고개를 틀어 피했지만, 그 주먹이 향한 궤도의 벽이 터져나가는 것을 보고 지금 브란트의 힘이 얼마나 치솟았는지 깨달았다.
이건 상급 악마라고 해도 때려잡을 힘이다. 압도적인 힘.
에드는 그 공격을 피하면서 품으로 파고든 상태로 브란트의 가슴에 성유물로 된 화살을 꽂아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브란트는 지금 악마의 힘이 깨어난 상황.
미래를 읽는다는 별의 악마의 힘이 깨어난 것인지 몸을 틀면서 무릎을 차올리고 있었다. 무리하면 화살은 꽂을 수 있겠지만, 무릎에 옆구리를 찍힐 상황이다.
지금처럼 힘이 강해진 브란트에게 옆구리를 맞았다가는 허리가 끊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에드는 화살을 앞으로 던지며 몸을 옆으로 날렸다.
파앙!
무릎이 꽂히던 타점에서 공기가 터져나갔다. 에드는 높은 민첩 덕분에 브란트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벽까지 물러난 에드가 벽을 밟는 사이에 던져 놓았던 화살이 브란트의 가슴에 꽂혔다.
이기어시로 날린 화살이 꽂히면서 신성력이 터져 나왔고, 그것은 악마의 힘에 반응했다.
콰앙!
강렬한 충격에 브란트가 튕겨 날아갔다. 에드는 벽을 차고 브란트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달리며 튕겨 나온 화살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브란트를 쫓아갔다.
튕겨 날아가던 브란트가 가슴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손으로 막으며 에드를 바라보았다.
“에드?”
“정신 들어요?”
브란트는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파악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으로 몰려오는 병사들과 기사단을 보고는 인상을 굳혔다.
탑에서 떨어지던 브란트가 몸을 뒤집어 바닥에 내려섰다. 그런 브란트의 앞에 에드가 내려섰다.
“무슨 일인지는 나중에 듣고 우선 몸을 빼내죠.”
브란트는 그 말에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충격에 정신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내부 깊숙한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건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브란트가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에드. 내게서 떨어져!”
에드는 그 말에 브란트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이성을 잃고 있었다.
악마의 힘에 잡아 먹히는 건가? 다시 한 방 먹여줘야 하나 고민이 들었지만, 지금 이곳으로 달려오는 기사단을 보면 그 짧은 시간에 한 방 먹이기가 쉽지 않았다.
에드는 우선 훌쩍 뒤로 뛰어서 탑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핏빛 근육질의 브란트는 에드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기사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피바람이 일었다.
브란트가 휘두르는 사슬은 달려드는 기사단의 몸을 분쇄해 나갔다. 한계를 넘어선 힘 스탯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에드가 야만 전사를 골라서 힘 스탯에 계속 투자해 왔다면 저만한 위력을 내보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제라드가 계속 성장해도 저 수준까지 갈지도 모르고.
그렇게 생각하니 브란트가 계속 다비드의 손에서 놀아났다면 저렇게 힘을 키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만 저 힘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계속 저렇게 이성을 잃고 폭주하게 된다면 에드는 그 뒤를 생각하기도 싫었다.
달려오던 기사단 하나가 박살 나는 동안 브란트의 몸에도 여기저기 상처가 났지만,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브란트의 능력이라면 상처 하나 날 상대가 아니었음에도 상처가 난 것은 그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공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기사단 하나가 바닥에 핏자국만으로 남을 정도로 적들을 박살 낸 브란트는 겁에 질린 병사들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모습에 겁에 질린 병사들이 우루루 뒤로 물러나다가 쓰러질 때 브란트가 왈칵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몸 근육이 꿈틀거리며 울룩불룩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에드는 그걸 보고 곧장 몸을 날렸다.
브란트가 악마의 힘에서 벗어나고 있다. 차후에 어찌 될지 몰라도 일단은 그를 구해야 한다.
큰 힘을 썼으니 그만한 반동이 올 터.
병사들이 겁에 질려 아직 반응하지 못할 때 에드가 브란트를 옆구리에 끼고 내달렸다. 서쪽 탑은 내성의 서쪽 가장자리에 있어서 그쪽의 성벽만 넘으면 바로 내성을 벗어날 수 있었다.
에드가 벽을 밟고 단숨에 치고 올라가 성벽을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병사들은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했다.
그만큼 기사단 하나가 분쇄되던 모습은 그들에게 충격이었다. 아무도 그들을 쫓을 생각조차 못 했고, 그곳에는 반파된 타로스의 탑만이 남아있었다.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에드의 품에 안겨 있는 브란트의 상태는 끔찍했다. 아직도 몸의 근육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면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우선은 그를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일행을 표적으로 삼던 다비드는 물론이고 타로스를 완전히 박살 냈으니 당분간은 안전할 터였다.
에드는 호텔 방으로 들어와서 브란트를 침대에 눕혔다. 그런데 브란트는 허리가 휘어지며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고통에 자해라도 할까 싶어 에드는 그를 침대에 묶어 버렸다. 그때 문이 열리고 아린이 들어왔다. 아린은 디에고를 업고 있다가 에드와 브란트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아빠!”
아린의 뒤를 따라 들어오던 엠마가 놀라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에드가 그녀의 앞을 막았다.
“엠마.”
“오빠! 아빠가!”
“후유증이야. 형님은 이겨낼 수 있을 테지만, 네가 지켜보면 안 될 것 같아.”
지금도 몸이 삐걱거리는 모습을 딸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을 터.
에드는 엠마가 브란트를 못 보게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아린이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디에고도 일단 이곳에 두고 갈게요. 엠마. 언니랑 가자.”
디에고도 침대에 눕힌 아린이 엠마를 데리고 나갔다. 에드는 혼자 남아 디에고를 보았다. 디에고의 상태도 심각했다.
창백한 안색에 피칠갑을 한 디에고도 그렇고 더 강해진 악마의 힘을 다룬 브란트도 아린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에드는 그저 수건에 물을 적셔 둘의 몸을 닦아 줄 뿐이었다. 핏물을 닦아내고 있으려니 아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엠마는요?”
“너무 놀라고 힘들었던 것 같아서 재웠어요.”
수면 마법으로 재운 걸까?
어찌 보면 다행이다 싶었다. 브란트의 상태도 하루 이상은 걸릴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디에고는 어떻게 된 거죠?”
“혈마석의 악마가 찾아왔었어요. 디에고와 엠마가 걱정되어 빈민가로 찾아가는 중에 폭음이 들려서 쫓아갔는데 악마는 놓쳤어요.”
디에고의 상태를 보면 악마와 싸웠나 보다.
“디에고 혼자서 악마를 상대했단 겁니까?”
“엠마를 숨겨놓고 죽을 각오로 싸웠다고 하더군요. 능력 이상으로 힘을 써서 뻗은 것 같아요. 문제는 회복 마법을 써주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자력으로 회복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거고요.”
에드는 그 말에 디에고를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 엠마에게는 진심인가 보다. 목숨을 걸 정도로.
에드는 디에고의 머리를 만져주고는 브란트에게 갔다. 그의 입에 수건을 물려놓아서 혀를 깨무는 일은 없었지만, 그는 아직도 몸이 들썩이고 있었다.
“그런데 브란트씨는 어떻게 된 거죠?”
에드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답했다.
“타로스를 모두 처리하고 다비드도 제압한 상태에서 원한을 갚을 기회를 줬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폭주했어요. 지금은 후유증을 겪는 중이고요.”
아린은 가만히 브란트를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혈마석의 악마를 쫓던 중에 일행이 이렇게 큰 피해를 본 적이 있던가?
두 명이 위태로운 것은 물론이고, 나머지 일행은 감옥에 갇혀 있다. 적국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폭주는 어떻게 막은 거죠?”
“제가 아니라 왕국의 기사단이 막았죠. 기사단 하나가 갈려 나갔어요.”
그저 폭주했던 힘이 다 돼서 쓰러지는 것을 간신히 구했을 따름이다. 죽이는 거라면 모를까 제압만 하는 것은 지금의 에드도 힘겨운 일이었다.
“그럼 언제 또 폭주할지 모른다는 거예요?”
“예.”
에드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잠시 의식을 차렸을 때 물러나라고 소리치기는 했지만, 그 뒤로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건 악마 그 자체였다.
에슬란의 사슬을 휘감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상태로도 폭주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면 이건 폭탄이나 다름없다.
“혼자서는 제압 못 해요. 만약에 또 폭주하게 될 때는 둘이 함께 있어야겠어요.”
“그래야죠. 그보다 잘 견뎌내야 할 텐데.”
지금도 브란트의 몸은 뼈가 어긋났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고, 근육도 뒤틀렸다가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 모습만 본다면 마치 환골탈태하는 것만 같았다. 이 일이 전화위복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