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심안
아린은 계속해서 콜린 공을 치료한 것은 아니었다. 콜린 공의 몸속에 깃든 마기는 무리해서 뽑아내려고 한다면 오히려 해가 되리라 판단한 아린이 그가 회복하기를 기다렸다가 조금씩 마기를 뽑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식사도 콜린 공의 방에서 하게 됐다.
그리고 아린이 있는 곳에는 에드도 있었다.
다른 이들은 내성에 방을 배정받아서 푹 쉬라고 전해둔 상태였다.
콜린 공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헤나가 한 여인과 함께 찾아왔다. 그녀의 뒤를 따라온 시녀들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헤나가 함께 온 여인을 소개시켜 줬다.
“저희 어머니세요.”
“콜린 부인이시군요. 에드라고 합니다.”
“얘기는 들었어요.”
콜린 부인은 가슴에 손을 얹고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아린과 에드도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자 콜린 부인이 눈물지은 채 아린에게 물었다.
“남편은 깨어날 수 있겠죠?”
“물론이죠. 이틀이면 훌훌 털고 일어나실 거예요.”
아린의 말을 들은 콜린 부인은 그제야 안도했다. 그러나 금세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제 아들 파렐은 어떻게 된 걸까요?”
아린은 아무런 답도 못했지만, 에드는 솔직하게 말해줬다.
“악마에게 기억을 뽑히고 죽었을 겁니다.”
“혹, 그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요?”
에드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해 보았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과연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또 이런 부분에서는 도움을 얻을 이가 있으니 한 번 시도는 해볼 가치가 있었다.
콜린 부인의 눈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담겨 있었다. 시신이라도 거두고 싶은 부모의 마음.
“찾아는 보겠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콜린 부인이 에드의 손을 꼭 쥐었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려운 부탁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콜린 부인은 귀족임에도 먼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에드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아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귀족들의 사냥은 단순한 사냥이 아니다. 그들의 사냥감은 마물이나 위험한 야수다 보니 사냥터가 위험한 곳이다. 그런 곳이니 악마가 파렐의 몸을 빼앗아 기억을 훔치고 몸을 갈아탔음에도 몰랐겠지.
어쩌면 당시에 함께 돌아온 이들도 악마에 홀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몸까지 바꾸지는 않았을 터.
에드는 디에고와 함께 콜린 성의 북쪽에 있는 산을 찾아갔다. 왕국의 남쪽으로 갈수록 대지가 평평해지는데 그곳에 우뚝 솟아 있으니 유독 눈에 띄는 산이었다.
에드는 다크를 타고 왔고, 디에고는 성을 나온 뒤로 톰을 소환한 채 따라왔다. 에드는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쉬지도 못하게 끌고 나와서 미안하다.”
“이 일이라면 제가 적임이니까요.”
디에고는 그리 말하고는 후안을 소환했다. 후안은 허공에 나타나서는 힘껏 기지개를 켰다.
-벌써 밤인가?
후안은 에드와 디에고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 성장이 정말 빠르구나.
디에고는 후안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아버지. 저 좀 도와주세요.”
-뭘 도와줄까?
“이 산에서 죽은 것으로 보이는 인간이 있는데 시신을 찾아야 돼요.”
후안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죽은지 얼마나 됐는데?
“한 달 조금 넘은 것 같아요.”
-오래돼서 쉽지 않겠는데?
후안은 그리 말하더니 디에고의 이마에 손을 돌렸다. 디에고가 가만히 눈을 감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에드가 물었다.
“뭐하는 겁니까?”
-마법을 전수하는 거지. 일단 사령안을 전수하면 찾는 것은 무리가 없을 걸세.
에드는 마법 전수라면 책으로 전수하거나 한참을 고생해야 할 것 같았는데 손만 대고 전수해줄 수 있는 것을 보니 디에고도 참 편하게 크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역시나 브란트가 고민이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전수가 끝났는지 후안이 디에고의 어깨를 잡은 채 말했다.
-지금 전수한 사령안이면 찾을 수 있을 거다.
후안은 그리 말하고 사라졌다. 디에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작은 목소리로 알아듣기 힘든 말을 중얼거리더니 눈을 번쩍 떴다.
초록색 신비로운 빛이 휘감긴 눈.
아론이 푸른 색의 신비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건 오직 사령만을 볼 수 있는 눈이었다.
디에고가 산을 올려다보고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형.”
“왜?”
“여기 사령이 너무 많은데요?”
마물과 야수들이 있는 곳으로 사냥을 왔을 테니 이곳에서 죽은 이들은 많을 터. 게다가 이곳에서 악마가 살았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수십, 아니 수백은 넘을 것 같아요.”
에드는 그 말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은 통해?”
“잠깐만요.”
디에고가 손을 내밀고 뭐라 중얼거리자 에드는 몸이 으스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뭔가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 파장을 읽어보니 확실히 뭔가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전신의 감각이 알려준다.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면 잡을 수 있다.
사령안이 없어도 사령을 느낄 수 있다면 아론처럼 ‘볼’ 수 없어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너무 시각에 의존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레벨이 오르면서 감각도 꾸준히 오르고 있었는데 오직 한 가지 감각에 주로 의지하다 보니 다른 감각이 깨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감각에만 의존해 보았다. 가까이 있는 디에고의 숨결부터 시작해서 다가온 사령의 기운. 그리고 타고 있는 다크의 숨결과 심장 박동.
그리고 바람이 불어오며 나뭇잎들이 비벼지는 소리와 함께 세계가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오롯이 그 감각에 집중하니 감각이 점점 확장되면서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뭇잎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를 통해서 나무의 형체를, 그리고 숲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심상에 그려지는 모습.
모든 것이 흑백인 세상에서 에드는 디에고와 마주한 사령을 ‘보았다’.
“형. 숲 안쪽으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에드는 천천히 눈을 떴다. 역시나 눈을 뜨면 사령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에 그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시각과의 괴리 때문에 적응이 조금 필요할 것 같지만, 세상을 보는 방법이 달라졌다.
“가자.”
그렇다고 디에고의 도움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령이 있다는 것만 알지 그 사령이 적인지 아군인지조차 파악이 안 되니까.
에드는 말을 몰아가면서 지금 깨달은 것을 체득하기 위해 집중할 때 디에고는 톰을 타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런 디에고의 주위로 사령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었다.
그건 마치 불빛에 몰려드는 불나방을 닮았다.
“디에고.”
“예?”
“사령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지?”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
“괜히 휩쓸리면 안 된다.”
사령은 말 그대로 죽은 자들. 그런 자들에게 휩쓸리게 되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디에고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형. 사령은 감히 말도 못 붙여요.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그 자신감에 찬 모습. 그저 어리게만 보았던 디에고도 사령술사로 커가는 중이었나 보다. 가만 놔둬도 알아서 크고 있으니 괜히 뿌듯했다.
그렇게 다크를 타고 가던 중에 말이 들어가기 힘든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디에고는 잠시 그 앞에 서서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다크는 두고 가야 될 것 같네요.”
에드가 다크를 돌아보았다. 다크가 뛰어난 말이라고 하나 그래봐야 말이다. 이런 야밤에 마물이나 야수를 만나면 그것만으로도 위험하다.
“톰을 두고 가죠. 그럼 위험은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디에고가 톰에서 내려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톰이 그 손길에 머리를 비비더니 다크의 옆에 턱을 앞발에 괴고 누웠다. 에드는 다크의 목을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톰과 함께 숲으로 들어갔다.
숲에 들어간 에드는 사방에서 느껴지는 사령들에 이곳이 악마의 거처였음을 깨달았다.
“이곳에서 지냈나 보네.”
“어떻게 알았어요?”
“이곳에 사령이 많은 것 같아서.”
“보이지도 않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에드는 굳이 자신이 심안을 떴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지은 채 디에고에게 말했다.
“어서 찾기나 해보자.”
“따라오세요.”
디에고가 단검을 꺼내 들더니 앞장서 가면서 나무들을 쳐냈다. 그런 디에고를 따라가면서 에드는 만약을 위해 활을 뽑아 들었다.
“괜찮다니까요.”
디에고가 웃으며 걷는데 에드는 그를 따라 걷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사령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뭔가가 달라졌다.
“디에고.”
“예?”
“내 뒤로 와라.”
에드가 하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디에고가 에드의 뒤로 가서 섰다. 그리고 앞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요?”
“뭔가 이상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피부에 전해지는 감각이 경고하고 있었다.
에드가 두 발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빙결의 활에 마력을 주입했다.
사령도 영체이니 이들을 상대하는 데는 일반 화살은 통하지 않는다.
에드가 집중한 사이에 디에고는 그가 왜 그러나 하면서도 지금까지 이유 없이 그랬던 적이 없었기에 그를 믿고 기다렸다. 그런 디에고의 눈앞에 주위에 있던 사령들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숲 깊은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사령들을 보니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형!”
“알아.”
뭔지 모르지만,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사령들이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뭔지 보여?”
“보여요. 사령들이 어떤 힘에 의해 모이고 있는데 끔찍하게 고통스러워하고 있어요.”
“악마의 힘이야?”
“악마의 힘이 담긴 뭔가가 있어요. 그리고 그게 작동한 것 같아요.”
그냥은 작동하지 않고 에드와 디에고가 왔을 때 작동했다?
라그록스인가? 네프사엘인가?
누가 되었든 이곳에서 뭔가 만들어지고 있다면 그걸 처리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다.
위히히히.
귀신의 곡소리인가? 바람 소리인가?
에드는 저 앞에서 벌어지는 것이 주변의 사령을 집어삼키면서 새로운 뭔가가 되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에드는 그걸 그냥 지켜볼 마음이 없었다.
심안으로 보기에도 지금 저것은 주위의 사령을 모조리 끌어모으면서 점점 강해지고 있으니까.
그 꼴을 봐줄 마음은 없었다.
에드가 날린 두 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갔다. 새하얀 냉기를 머금은 화살이 날아들어 깨어나고 있는 무언가에게 적중했다.
쩌저저적.
얼어붙고 나서야 그 크기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반경 20미터가 넘는 기이한 형체는 끌려오던 사령마저 모두 얼려버렸다.
거대한 얼음 안쪽에서 두 가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창천의 푸른색과 어둠보다 더 검은 어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두 가지 기운이 얼음 속에 갇힌 사령들을 모조리 죽여나갔다.
“어?”
사령 하나하나의 경험치는 얼마 안 되는데 그 수가 하나둘이 아니다. 족히 수백은 넘어가는 그 경험치들이 쌓이고 쌓이니 부족했던 경험치가 차오른다.
레벨이 오르기에는 부족했지만, 시체 하나 찾으러 왔다가 주워가는 경험치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에드는 쌓인 경험치에 흡족한 미소를 지은 채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해골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해골산의 정상에 유별한 해골이 있었다.
화살은 그 해골에 박혀 있었다.
“이거구나.”
화살이 박힌 해골은 손안에 들어올 정도의 크기인 크리스탈 해골이었다. 화살은 그 해골의 두 눈이 있어야 할 구멍에 꽂혀 있었다.
에드가 화살을 뽑아 들고 크리스탈 해골을 집어 들었다. 뒤따라 들어온 디에고가 그 해골을 보며 말했다.
“그게 뭐예요?”
에드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해골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그때 디에고의 등 뒤로 나타난 후안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