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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91화 (91/202)

#91

도움

일행 중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둘뿐이다 보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야밤에 다시 지붕 위에 올라와야만 했다. 다른 이들은 위치를 파악하고 나면 함께 움직이기로 한 상태.

혈마석이 가리키는 방향이 선명했고, 느껴지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했으니 이곳에서 만나게 될 자는 어떤 악마이든 간에 넉넉한 경험치를 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이렇게 발 벗고 나서서 찾는 중이었다.

톰에 올라탄 디에고가 제리를 소환한 채 앞장섰고, 에드는 열심히 그 뒤를 따르는 중이었다. 어째 톰에 탈 수 있게 된 이후로 디에고가 부러워지는 중이었다.

“뭔가 느껴져?”

“예. 그런데 이거 이상해요. 안개라도 낀 것처럼 위치가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방향은 알 수 있어?”

“그게 느껴져서 그쪽으로 가는 중이에요. 일단 가봐요.”

“그래.”

지붕 위를 달려간 곳은 성의 서쪽에 있는 병영이었다. 새로이 병사들을 뽑아서 모아놓아서 그런지 그곳에는 수많은 천막이 처져 있었다.

천막의 수만 대략 오백 개가 넘었다. 그 안에 든 이들까지 생각한다면 못해도 천 명은 가뿐히 넘어갈 터. 그리고 병영이다 보니 경계도 삼엄하기 짝이 없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 느껴지는 게 있어?”

디에고의 머리 위에 올라있던 제리가 수염을 파르르 떨었다. 디에고는 가만히 그런 제리와 감각을 공유했다가 에드를 돌아보았다.

“감각 교란이 심해요. 저 안에 있다는 것만 파악이 될뿐이에요.”

에드는 그 말에 살짝 인상을 굳혔다. 병영은 전시 상태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이다. 그런 곳은 아무리 성기사라고 해도 들어갈 수가 없다.

에드는 가만히 그곳을 바라보다가 디에고에게 말했다.

“일단 돌아가자. 더 접근했다가는 아무래도 걸릴 것 같으니.”

저만큼 넓은 범위에 감각 교란을 시킬 수 있는 놈이라면 방비가 제대로 되어 있을 터. 그런 곳에 무작정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일단 병영이기 때문에 들어갈 방법을 따로 모색해야 할 것 같았다.

에드가 디에고와 함께 여관으로 돌아오자 그들을 기다리던 일행은 잔뜩 기대감을 품고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는 그들의 시선에 자리에 앉아서는 술로 목을 축이고는 입을 열었다.

“위치는 파악이 됐는데 더 접근하지 못했어요.”

“왜?”

“감각 교란이 일어나는 곳이 병영입니다.”

“병영?”

에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테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펠만 공이 칭왕을 하고 왕국을 선포한 상황에서 남부 귀족들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성공하면 개국 공신이 될 것이오, 실패한다면 역적으로 몰리게 되리라.

그러다 보니 병사를 징집하는 데 혈안이 된 상황. 그러니 병영의 경계가 삼엄하기 짝이 없을 터.

그곳에는 아무리 퇴마행을 하는 아스트론 교단의 성기사라고 해도 그냥 들여보내 줄 리가 없었다.

“똑똑하군.”

“언제는 멍청하게 군 적이 있었습니까?”

테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누군지 파악이라도 되면 할 말이 있으나 그것도 아니니 까다롭군.”

에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무리해서 잠입하려고 한다면 저 혼자는 가능할 겁니다.”

아린이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저번에 싸워보니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어요.”

덱스가 자신의 다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리가 잘릴 뻔했지.”

그런 말을 하면서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면 덱스도 제정신은 아닌 게 틀림없었다.

브란트도 그 말에 동의했다.

“강했다. 전에 싸우던 악마들과는 수준이 달랐어.”

엠마가 옆에 있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얘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보니 다들 고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조금 더 고민해 보죠.”

콜린 시의 병영에서 가장 큰 천막. 그 안에서 서류에 서명하던 사내는 천막으로 들어온 징집관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소란이 있었다고 들었다.”

“소영주님. 저 무도한 아스트론의 성기사가 나타나 저희를 겁박했습니다.”

소영주 파렐은 그 말에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턱을 괸 채 징집관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사촌 동생인 징집관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조아렸다. 파렐은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들과는 엮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지금 상황에서 괜히 아스트론 교단과 엮이게 되면 트라비아 왕국군 뿐만 아니라 아스트론 교단까지 상대해야 한다.”

“죄, 죄송합니다.”

“곧 출병이 있을 것이니 징집에 박차를 가하되 아스트론 교단과 엮이는 것은 주의해라.”

“예.”

징집관이 밖으로 나가자 파렐은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으로 걸어갔다. 천막 안쪽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고, 그곳에는 중년인이 누워 있었다.

파렐은 그런 중년인에게 다가가서는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는 말했다.

“아버지. 정신이 좀 드십니까?”

그 말에 중년인이 눈을 떠서 파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너, 넌 내 아들이 아니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십니까? 섭섭하게.”

파렐은 여유 있게 답했고, 중년인은 몸을 일으키고자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 모습에 파렐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가문의 인장은 어디 있습니까?”

“그걸 말하면 네가 날 살려두겠느냐!”

파렐의 눈이 붉게 변하더니 손을 내밀어 중년인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파렐의 손에 붉은 기운이 깃드는가 싶더니 중년인의 몸이 허리가 바짝 들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중년인을 바라보던 파렐이 손을 떼자 중년인의 몸이 침대에 널브러졌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버지. 인장이 없다고 해도 출병에 문제가 없으니 허튼 곳에 심력을 쓰지 마시죠. 그리고 계속 이렇게 저항하신다면 어머니와 여동생의 안위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중년인은 눈을 질끈 감을 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파렐은 그런 중년인을 내려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인장을 손에 얻었어야 했는데 그걸 손에 못 얻으니 여러모로 일의 진행이 더뎌졌다. 펜을 든 파렐은 입맛을 다셨다.

“아스트론의 성기사라···.”

라그록스에게 얘기는 들었다. 아스트론의 성기사가 혈마석을 지닌 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당했다고 들었다.

병영 전체에 교란의 술법을 걸어 놓았기에 며칠째 자신을 못 찾고 있으나 이제 슬슬 이상함을 눈치챘으리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병영으로 들어오지는 못할 터.

그렇다고 나가서 때려잡을 수도 없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할 일은 아스트론의 성기사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성기사를 상대할 자는 왜 안 오는 거지?”

라그록스는 성기사가 자신을 쫓아올 거라고 말하면서 그녀를 상대할 자를 보낸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으니 짜증이 났다.

병영에 들어갈 방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하게 나왔다. 하지만 딱히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오죽하면 에드가 디에고와 함께 용병으로 병영에 들어갈 생각마저 했을까?

예전 같았으면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일단 진입해서 악마라면 이마에 화살 한 방 꽂아주면 드러나게 되어 있는 법. 하지만 병영에 잠입해 놈을 찾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렇게 서로 의견을 내놓고 있을 때 여관으로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여인과 뒤를 따르는 사내.

여인은 로브를 깊게 눌러써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사내는 편한 옷을 입고 있어도 단련된 자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여인은 여관에 들어와 고개를 돌리다가 에드 일행을 발견하고는 잠시 주저하다가 다가왔다. 그녀의 등장은 일행 대부분이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테이블 옆에 섰을 때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는 것은 당연했다.

에드는 옆에 선 여인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저희를 찾아오신 겁니까?”

여인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법 시간이 늦은 데다가 지금 시국이 시국인지라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에드 일행을 제외하고는 두 테이블 정도밖에 없었다.

“잠시 합석해도 될까요?”

에드가 디에고를 슬쩍 보자 디에고가 고개를 내저었다. 악마의 힘을 지닌 자는 아니라는 말.

에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앉으시죠.”

사내가 의자를 꺼냈고, 여인이 그곳에 앉는 것을 보니 그녀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뒤에 선 사내가 다른 테이블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머니 하나씩을 건네주니 그들은 감사 인사를 하고는 다들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1층이 정리되자 사내는 주인과 점원을 찾아갔고, 그들도 주머니를 받고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야 여인이 깊게 눌러썼던 후드를 뒤로 넘겼다.

금발에 새하얀 피부의 여인은 아린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자신을 소개했다.

“전 헤나라고 해요. 콜린 공이 제 아버지 되세요.”

“아린입니다.”

아린에게 용무가 있어 온 것 같으니 그녀가 응대했다.

“성기사시죠?”

“예.”

헤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물었다.

“혹시 악마를 잡기 위해서 오신 건가요?”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을 줄은 몰랐다. 아린이 잠시 고민할 때 에드가 대신 답했다.

“맞습니다.”

헤나의 시선이 아린에게서 에드로 향했다. 성기사가 함께하는 일행에서 다른 이가 성기사 대신 대화를 주도할 줄은 몰랐나 보다.

갈팡질팡하는 그녀의 시선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헤나는 아린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에드에게 시선을 주는 모습에 에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에 에드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전 에드라고 합니다.”

헤나가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나서 생각에 잠길 때 뒤에 있던 사내가 고개를 숙이더니 속삭였다.

“악마 사냥꾼입니다.”

“아! 악마 사냥꾼!”

에드는 이제 자신의 이름이 트라비아 왕국 내에서는 꽤 알려졌음을 알았다. 귀족 중에는 모르는 이가 없는 걸까?

“그럼 정말 악마를 잡으러 오신 건가 보군요.”

“예.”

헤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린과 에드를 번갈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부탁드릴 것이 있어요.”

모두가 말없이 바라보자 헤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구해주세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좌중이 굳을 때 에드가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콜린 공이 위험하십니까?”

헤나가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에드는 그 모습에 담담히 말해주었다.

“엿듣는 이는 없습니다.”

적어도 에드의 기감을 속일 정도의 자들이 다가온 것이 아니라면 근처에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이는 없었다. 헤나는 그 말에 길게 숨을 토해내고는 말했다.

“한 달 정도 전에 오빠가 달라졌어요.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온 후로 뭔가 달라져 보였는데 얼마 전에 펠만 공이 칭왕 했을 때 아버지는 반대하셨어요. 그것 때문에 오빠와 큰 언쟁이 있었는데 그 뒤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콜린 공이 사라졌단 말입니까?”

“···예. 그리고 병사들을 징집하기 시작했고, 오빠를 찾아가 물으니 병영에 나와 계시다고만 할 뿐 아버지를 보여주지 않았어요.”

에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혹시 오빠의 눈에서 붉은빛을 본 적이 있습니까?”

헤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답했다.

“스치듯 본 거라 확실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아마 잘못 봤다고 여겼을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가 사라지고 영지민을 아끼던 오빠가 먼저 나서서 전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사냥에 다녀온 오빠와 눈이 마주쳤을 때 스치듯 보았던 눈빛은 분명 붉은색이었어요.”

지금까지는 누군지 특정하지 못해서 병영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군지 알아낸 것은 물론이고, 병영에 들어갈 구실까지 생겼다.

“근심이 많으셨겠군요.”

헤나는 에드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모습을 보고 에드가 아린에게 눈짓했고, 아린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안아줬다.

에드는 그 모습을 보고 말을 꺼냈다.

“저희가 악마를 잡고 아버지를 구해드리겠습니다.”

콜린 공이 살아있어야만 가능한 말이었지만, 그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다만 도움이 필요합니다.”

헤나는 그 말에 고개를 들어 에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엇이라도 돕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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