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시선 끌기
저주술사가 나타난 순간 에드는 고민하지 않고 비도를 던졌다. 그것도 그냥 던진 것이 아니라 이곳까지 오면서 수련한 이기어시의 새로운 활용법으로.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이기어시의 특성으로 방향을 투척 방향으로 조절할 시에 그 속도를 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게 더해진 속도는 가히 섬전을 방불케 했다. 게다가 관통 스킬을 가지고 있어 제대로 방비하지 않은 자의 머리에 박아 넣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
눈만 마주치면 저주를 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지만, 어차피 저주는 막을 수 있었다.
경험치는 중급 악마에 조금 못 미쳤다.
에드는 카일이 어버버 하는 사이에 그를 놔두고 차분하게 저주술사에게 다가가 이마의 현철 비도를 뽑고 몸을 뒤졌다. 저주술사도 일단은 신비술을 다루는 자이니 그에 걸맞은 무구를 가지고 있을 테니 루팅은 필수다.
저주술사가 끼고 있던 반지 두 개와 허리에 차고 있는 한 손에 들 수 있는 무언가의 뼈로 만든 것 같은 오브를 집어 든 에드는 주섬주섬 그것들을 챙기고는 저주술사의 시체를 끌고 와서 카일이 있던 감옥에 던져 넣었다.
카일은 멍하니 에드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자신과 리프가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한 것은 카르엔 대신의 뒤에 서 있던 저주술사 이스페르토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카르엔 대신은 자신의 성을 듣는 순간 만나주겠다고 해서 만나보았고, 아버지의 죽음보다는 동생의 생사를 묻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할 때 이미 저주에 걸렸다.
자신이 상대에 대해서 알았다고 해도 저토록 쉽게 이길 수는 없었을 것 같았다.
에드는 태연한 얼굴로 카일에게 다가와서는 물었다.
“걸을 수 있나?”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각에 당해서 지금까지 고생했지만, 체력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카일이 몸을 일으키는 동안 에드는 감옥들을 돌아보았다.
저주술사가 죽어서 그런지 그들은 고통으로 신음할 뿐, 자해는 멈췄다. 그런데 이들 가만두면 곧 죽을 판이다. 아린과 함께 왔으면 죽지는 않게 해줬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펜드래건이 있다면 그에게 말해서 직접 이곳으로 쳐들어오게 하면 그만이다. 대악마를 잡은 그라면 말 그대로 일인무적. 명분을 가진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그는 부재중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테인과 얘기를 나눠봐야겠다.
“리프는 기억났어?”
“난쟁이 여자는 노예로 인기가 많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을 구해준 것도 구해준 것이지만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게다가 상대를 죽이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냉혹함.
카일은 자연스럽게 말을 높였다.
“이곳에 없는 것을 보면 벌써 노예 상인에게 팔았을 수도 있는 건가?”
에드는 잠시 고민했다. 수색을 더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카일을 데리고 우선 빠져나가서 진행해 볼 것인지.
아무리 카르엔이 이곳의 주인이라고 해도 본채에 사람을 숨겨 놓았을까?
저주술사가 있으니 못할 일도 아니다. 카일에게처럼 환각을 보여주고 사지를 묶고 입만 가리면 되니까.
에드는 카일을 잠시 바라보았다. 본채에 오가려면 카일을 데리고 이동할 수는 없다. 본채의 경비는 이곳과는 또 다를 테니까.
저주술사는 자신의 능력을 믿어서인지 아니면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사람을 곁에 두지 않았지만, 카르엔은 다를 터였다.
“본채에 다녀올 테니 이곳에서 사람들 좀 돌보고 있어. 어쩌면 중요한 증인들이 될 수도 있으니까.”
에드는 그리 말하고 감옥의 문들을 모조리 잘라서 열어줬다. 에트리안의 검을 휘둘러 감옥의 문을 베는 모습을 보고 카일은 새삼 에드의 능력에 놀라고 있었다.
카일도 이곳에 갇힌 이들이 단순히 이스페르토의 저주 실험에 이용되기만 한 이들이 아니라 카르엔이 죽여야만 하는 이들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저주가 풀려서 거의 탈진해 쓰러진 이들의 상처를 옷을 찢어 싸매는 식으로 상처를 돌보는 사이 에드는 더 기다리지 않고 움직였다.
에드는 곧장 별채를 나와서 경계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들을 피해서 본채를 향해 이동했다.
본채에 다가간 에드는 솔직히 감탄했다. 본채의 네 귀퉁이에는 병사들이 넷씩 모여서 경계를 설 수 있는 경비소가 준비되어 있었다.
어디를 뚫어도 한쪽 경비소는 쓰러트려야 할 판이다. 게다가 경비소에 있는 경비들을 쓰러트린다고 해도 경계 근무 교대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에드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본채는 워낙에 큰 대저택이라 저 안을 수색하는 시간은 오래 걸릴 터. 그러니 경계 근무 교대 시간을 기다린다.
그렇게 어둠 속에 숨어 기다리기를 한 시간. 경계 근무 교대하는 모습을 본 에드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림자 망토가 체온 유지 기능이 있어서 몸이 굳지 않았지만, 이제 작정하고 움직일 생각이라 긴장을 풀어 줄 겸 몸을 풀었다.
그리고 경계 근무 교대가 끝난 경비소를 향해 움직였다. 경비소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2층 높이였는데 2층은 기둥만 있고, 벽이 막혀 있지 않았다.
에드는 달려가던 그대로 도약해 단숨에 2층 높이의 경비소 안으로 파고들었다. 경비병 하나가 에드를 보고 입을 열기도 전에 에드의 주먹이 상대의 턱을 후려치고 지나갔다.
경비병 하나가 쓰러질 때 다른 경비병들이 몸을 돌렸지만 그들의 중심에서 에드가 돌려찬 회축이 그들의 턱을 스쳤다. 모두 몸이 핑그르 돌더니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에드가 부축해주고는 대충 바닥에 눕혔다.
에드는 주위에 귀를 기울였지만, 이곳에서 일어난 소란을 감지한 곳은 없어 보였다. 에드는 태연히 계단을 내려와 대저택을 바라보았다.
제법 밤이 깊어 불이 켜진 곳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에드는 리프가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었기에 대저택으로 다가갔다. 마침 경비소가 있던 곳이 대저택의 뒷문 쪽이라 그 앞에 선 에드는 그곳까지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고 다가갈 수 있었다.
에드는 잠겨 있는 문을 보고, 에트리안의 검을 뽑아서 검기를 이용해 걸쇠를 베어내고는 문을 열었다. 소리도 없이 잘라내서 경비소들은 여전히 잠잠했다.
에드는 안으로 들어가서 뒷문을 다시 닫고는 귀를 기울였다.
저주술사의 별채와 다르게 이곳에서는 곳곳에서 말소리와 발걸음 소리, 그리고 잠든 이들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에드는 발걸음 소리를 따라 이동해 보았다.
전부를 다 뒤지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니 정보를 얻어야겠다.
에드가 소리 없이 움직여 발걸음 소리의 주인을 찾았을 때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상대는 집사 중 하나였다. 랜턴 하나를 들고 걸음을 옮기는 집사의 뒤편에 따라붙은 에드는 그의 목에 비도를 바짝 붙이고는 속삭였다.
“조용히.”
흡 숨을 들이마신 시종이 고개를 끄덕이기에 에드는 그를 붙든 채 가까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그릇과 찻잔등이 진열장에 가득 진열된 곳이었다.
세트로 맞춰진 그릇과 찻잔은 철철마다 바꿔 쓴다더니.
에드는 그곳에서 집사의 뒤에 선 채 입을 열었다.
“묻는 말에 잘만 답하면 살 수 있다. 이해했나?”
집사가 고개를 끄덕이기에 에드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사흘 전 잡혀 온 난쟁이 여자를 찾고 있다. 이름은 리프. 어디 있는지 아나?”
“그녀라면 오늘 오후에 노예 상인이 데리고 갔습니다.”
역시 집사 정도 되니까 고급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노예 상인의 이름은?”
“발터입니다.”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갑게 말했다.
“네가 내 얼굴을 못 봤기에 살려주는 거다.”
그 말을 끝으로 에드는 집사의 뒤통수를 후려갈겨 쓰러트렸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얻었으니 이제 돌아가 리프를 구해야 할 차례였다.
에드는 집사의 옷을 벗겨서 그의 팔을 뒤로 묶어 놓고는 구석에 잘 쑤셔놓고 밖으로 나왔다. 에드는 들어온 길로 나와서 곧장 별채로 이동했다.
경계 근무 교대 시간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니 그 안에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몸을 빼낸 에드는 별채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카일이 가장 심각한 다친 이의 옆에 앉아있었다. 에드가 혼자 돌아온 것을 보고 카일이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됐습니까?”
“오늘 오후에 노예 상인에게 팔려갔다고 하더군.”
카일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한시가 급합니다. 노예 상인은 첫날 밤부터 혹독하게 다루니까요.”
에드는 잠시 카일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동료의 안위를 이렇게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을 보니 인성은 제대로 박혀있는 놈 같았다.
어쨌든 메르헨의 옆에 붙어 있을 놈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 사람은 누구야?”
“아, 이 분은 가도 공으로 제게 숙부님이나 같은 분입니다. 마젤타 왕국과 교섭을 위해 넘어갔다고 했습니다. 남부 귀족 연합의 배신의 증거라고 불렸는데 이 분이 이곳에 갇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마젤타 왕국과 교섭을 위해 넘어갔다고 했던 인물이 이곳에 잡혀서 저주술사의 저주에 당하고 있었다?
짙은 모략의 냄새가 났다.
에드는 가도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숨이 넘어가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피투성이 상태였다.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리면 그것만으로도 위험하다.
에드는 죽은 저주술사의 망토를 가져와 찢어서 가도를 자신의 등에 꽁꽁 싸맸다. 그리고 그 위로 그림자 망토를 두른 후에 카일을 돌아보았다.
“경비에게 걸리지 않고 빠져나가야 해. 몸은 어느 정도나 회복됐지?”
사흘간 제대로 먹지도 못했겠지만 카일의 눈빛만큼은 살아있었다.
“짐이 되지 않겠습니다.”
메르헨 정도 되는 신비술사의 곁을 지키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여긴 에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처지지 마.”
에드가 먼저 밖으로 나가서 주위를 살피다가 조용히 움직이며 돌멩이 몇 개를 주워들었다. 혼자 들어갔다가 나가는 거라면 들키지 않고 조용히 나갈 수 있겠지만, 짐까지 달고는 흔적도 없이 빠져나갈 수 없다.
순찰하는 경비병들을 피해서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는데 등에 업혀 있던 가도가 신음을 흘렸다.
“누구···억!”
경비병 둘의 목에 돌멩이를 맞힌 에드는 카일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빠르게 빠져나가야겠다. 따라와.”
에드가 먼저 달리자 카일도 뒤처지지 않고 달려왔다. 에드가 사람을 업고 최대한 그에게 무리가 가지 않도록 달리고 있다고 하지만 그걸 따라오는 것을 보면 카일도 제법 실력이 있는 자인가 보다.
가는 중에 몇 번 더 순찰하는 경비병들을 만났지만, 손에든 돌멩이로 모두 기절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달리는 중에 뒤에서 다른 순찰자가 쓰러진 자들을 발견했나 보다.
“침입자다!”
에드는 사방에서 불이 켜지는 것을 보고는 걸음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담벼락까지 달려간 에드가 카일을 돌아보았다.
“넘을 수 있겠어?”
카일은 담벼락을 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무리입니다.”
에드는 경비병들이 횃불을 들고 움직이는 뒤쪽의 소란을 듣고는 담벼락을 향해 네 개의 비도를 날렸다. 비도를 담벼락에 박아 넣은 에드가 빠르게 말했다.
“넘어가.”
지그재그로 박아놓은 비도를 보고 카일이 빠르게 담을 넘어갔다. 에드는 네 개의 비도를 모두 회수하고는 벽을 두 번 차고 담벼락을 넘어서 바닥에 사뿐히 내려섰다.
“컥!”
뒤에서 들리는 신음을 듣고 에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것 때문에 뒤쪽에서는 큰 소란이 일고 있었다.
에드는 벽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로 가도를 카일에게 건넸다. 카일의 몸에 가도를 잘 묶어 준 후에 그림자 망토까지 벗어서 그의 위에 덮어줬다.
“잘 들어. 이 길을 따라가면 대문에 포효하는 사자 문양이 그려진 곳이 있다. 그곳에 에드가 보내서 왔다고, 테인님을 뵙게 해달라고 해. 그곳에 가면 성기사가 있으니 치료를 도울 수 있을 거다.”
카일이 에드를 보면서 물었다.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나는 시선만 끌고 빠져나갈 거야. 저들의 시선을 돌리고 나서 움직여.”
카일은 그 말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메르헨을 돕는 거다. 나중에 갚아.”
그리 말한 에드는 다시 담벼락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담벼락을 뛰어내리고는 본채를 향해 돌진했다.
카르엔이 펜드래건의 집을 살피고 있었다고 해도 에드는 그곳을 오갈 때 그림자 망토를 두르고 활을 든 채로 움직였다. 그림자 망토를 벗고 활도 없는 지금의 자신과 연관 시키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침입자라는 외침 때문에 경비병들이 눈에 불을 키고 정원을 살피던 중이라 에드는 금세 발각 됐다.
“저기다!”
경비병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면서도 에드는 곧장 본채를 향해 달렸다. 본채의 발코니에 나와 있는 비쩍 마른 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있었지만, 에드의 뛰어난 시력은 그자의 교활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자의 뒤에 선 자도 눈에 들어왔다.
에드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는 허리를 틀어서 그대로 돌멩이를 던졌다. 당분간 자신을 신경 쓰지 못하게 한 방 먹여줄 생각으로 날린 돌멩이에 뒤편에 서 있던 자가 검을 뽑아 휘둘렀다.
이미 예상했던 것이라 돌멩이가 허공에서 마구처럼 아래로 꺼져서 검을 피했다. 그리고 그대로 카르엔의 가슴에 적중했다. 죽지는 않겠지만 당분간 거동은 힘들 거다.
“켁!”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카르엔의 모습을 확인한 에드가 병사들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잡아라!”
“대신께서 암습을 당하셨다! 잡아라!”
검을 휘둘렀던 자가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뒤를 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