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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38화 (38/202)

#38

디에고

아인 강의 강변에서 물살을 가르고 나타난 브란트는 바닥에 쓰러졌다.

“크학.”

얼어붙었던 왼팔은 아직도 제대로 회복이 되지 않아 동상이라도 걸린 것처럼 새파랗게 변한 상태였다. 어깨와 허벅지에 박힌 화살을 뽑아든 브란트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악마의 힘을 꺼내면 주변의 모든 것을 말살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지 않으면 성기사가 추격해 올 거라고.

상대편에 성기사가 있었음에도 힘을 꺼낸 것은 명령은 절대적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모두 죽여서 증거를 인멸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이 힘을 써서 못 죽인 자들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자는 달랐다.

아칼란의 팀 하나를 전멸시켰고, 클리프 왕자와 호위기사 에트리안을 죽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상대의 실력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자신과 팀 하나가 나서면 과한 전력이라고 여겼는데 악마의 힘을 쓰고도 제압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도망쳐야만 했다.

그리고 악마의 힘을 너무 많이 썼다. 전신의 근육이 파르르 떨리고 피부 위로 푸른 혈관이 울룩불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근육이 부풀었다 줄었다 하면서 고통을 전해주었기에 브란트는 몸을 웅크리고 고통을 참았다.

악마의 힘을 쓴 반동에 한참을 고통에 몸부림치던 브란트는 진정이 되자 부들부들 떠는 몸을 일으켰다. 우선은 아칼란으로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딸이 위험하다.

아칼란의 습격 이후에도 밤에는 네프사엘이 꾸준히 마물들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밤에 보내는 마물도 거의 몇 시간에 한 번꼴이었다.

배가 침몰하면 안 되기에 밤에 깨어있어야 했지만,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아린과 함께 할 시간이 늘어났다. 아린은 브란트와의 싸움에서 뭔가 깨달은 것이 있는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또 한 마리의 마물을 발견해서 아린을 깨우자 그녀가 해머를 던져 마물의 머리를 깨고는 다시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계속 기도를 올리는 이유가 있나요?”

아린은 자세를 잡다가 에드의 물음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신성력이라는 것은 모두 아스트론 님에게서 오는 것이지만, 그렇게 허락받은 신성력을 지금까지는 그저 가져다 쓰기만 했거든요.”

아린은 양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그 신성력이 오롯이 제게 머무르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

신성력이 몸에 머물면 성기사는 모든 능력이 향상된다. 아린은 그저 기도하는 것만으로 조금씩이지만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역시 성기사는 사기 캐릭터였다.

아마도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는 테인을 만났을 터였다. 테인이 그녀를 만나보고 싶어서 가는 중이었으니까.

테인과 함께 하면서 그녀는 어떤 식으로 성장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럼 저는 다시 기도할게요.”

아린이 눈을 감고 기도를 한다. 기도하는 그녀의 몸에서 은은하게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 자체가 신비로워 성기사라기 보다는 성녀를 떠올리게 한다.

하긴 테인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마스터 팔라딘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다 했으니 신성력만 따지면 성녀에 버금갈 정도다 싶겠다.

그런 신성력을 몸에 품고 있으니 성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에드는 그런 그녀의 옆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구에서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은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별자리에는 관심이 없어서 이곳에서 보는 별들이 지구에서 보는 별들과 같은지 모르겠지만, 별들을 보면서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니 운치가 있었다.

에드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양손에 비도를 뽑아 들고는 동시에 날렸다. 2초 동안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동시에 두 개도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한 연습이었는데 두 자루의 비도 모두 조절할 수 있었다.

돌아온 비도를 손으로 잡아챈 에드는 이번에는 화살을 꺼냈다. 두 발의 화살을 동시에 쏘고 그 두 발의 화살을 동시에 조절한다.

마력 소모가 배로 늘어났지만, 이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술을 구사할 수 있게 해준다.

에드는 2초 안에 날렸던 화살이 다시 돌아오게 해서 화살집으로 집어넣었다. 두 개의 화살이 다른 궤적을 그리며 날리는 화살인 만큼 머리도 지끈거렸다.

오른손으로 원을 그리고 왼손으로 삼각형을 그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에드는 마력이 바닥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어제의 자신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아인 강을 따라 상선이 흘러갔다.

칼림 시.

트라비아 왕국의 수도를 지키는 다섯 성 중 하나인 곳으로 넓은 아인강을 통째로 막는 수문을 설치한 곳이었다. 수문을 지키는 이들이 지나가는 배들을 막고 검문을 했는데 에드가 타고 있는 배에도 수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올랐다.

그들은 푸른빛을 내는 마차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특별히 더 신성력을 주입한 덕분인지 마차가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배에 타고 있는 이가 성기사이다 보니 그들은 별다른 제지도 없이 수문을 지나갈 수 있었다.

테인은 지팡이를 짚은 채 수문을 지나자 보이는 칼림 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특이점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찾지 못했네.”

“직접 가서 찾아봐야죠.”

아린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는 우선 교회에 들러 아칼란에 대해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나. 나는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겠네. 칼림 시에는 ‘잠 못 드는 밤’이 그나마 괜찮으니 그곳에서 보세.”

테인의 시선이 에드를 향했다.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저도 이것저것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테인을 만나서 너무나 쉽게 정보를 얻었고, 상대를 파악할 수 있었고 아린이 있어 돈 걱정 없이 지내왔다. 하지만 언제는 그런 것들에 의존해서 악마를 찾았던가?

소문을 따라 이동해서 그곳에서 악마를 수소문해서 잡아 왔던 이력이 있었기에 에드는 이번에도 칼림 시의 하층민을 통해서 정보를 구할 생각이었다.

칼림 시의 선착장에 도착해 마차를 타고 내린 테인은 영주와 안면이 있어 그곳에 가본다고 했다. 테인은 영주성으로 갔고, 아린은 교회로 간 후에 에드는 오랜만에 홀로 남겨졌다.

그림자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가만히 서 있으면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드는 후드를 눌러 쓴 채 시장을 지나가며 분위기를 읽기 시작했다.

아인 강을 끼고 있어서 칼림 시에는 어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시끌시끌한 어시장을 지나가면서 에드는 사람들의 한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사병을 모으라는 왕의 명령 때문에 칼림 시의 영주도 병사들을 강제로 징집하는 중인 것 같았다. 어부들에게 창이나 쥐여주고 전장에 내보낼 생각으로 보였다.

그래서 자신의 자식이 끌려가게 생겼다면서 울상을 짓고 있는 아주머니와 남편이 끌려가게 생겼다는 여인 둘이서 한탄하는 것을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어시장의 길을 걷던 에드는 골목길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 명의 소년이 한 명의 소년을 두드려 패고 있었다.

에드가 후드를 벗고 일부러 인기척을 내자 소년 하나를 걷어차던 소년들이 에드를 돌아보았다. 그림자 망토를 두르고 있어도 빙결의 활을 차고 있는 모습을 봐서인지 소년들이 바닥에 침을 뱉고는 떠났다.

“운 좋은 줄 알아!”

“거지새끼가.”

에드는 웅크리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몸을 데굴 굴러서 벽에 등을 기대고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슥 닦았다. 에드는 그런 소년을 내려다보다가 소년이 꼭 쥐고 있는 빵을 보았다.

에드는 그런 소년에게 물었다.

“그거 지키려고 하다가 맞은 거냐?”

소년은 슥 에드를 올려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툭툭 몸을 털었다. 그러고 보니 트라비아 왕국에서 보기 힘든 피부색을 지니고 있었다.

갈색 피부를 지닌 소년이 몸을 일으켜 걷는 것을 보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두드려 맞았는데 걸음걸이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잘도 급소를 피해서 맞았나 보다. 애들이 급소를 피해서 때릴 줄은 모를 테니 몸을 쓰는 재주는 그 세 명의 소년보다 더 뛰어나 보였다.

치고받아도 충분히 승산이 보이는 모습에 에드는 소년을 따라갔다.

어째서인지 시선을 끄는 소년을 따라 걸으니 소년은 어시장을 지나 빈민가로 들어갔다. 그런 소년을 따라 계속 걷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차갑기 그지 없었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몇몇 소년들은 돌멩이를 던지려고 하다가 에드와 눈이 마주치고는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렇게 소년을 따라가니 소년이 허름한 집 앞에서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최대한 깔끔하게 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작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왔어.”

“그래. 아들. 오늘은 일거리가 있었니?”

“빵집 톨 아저씨네 밀가루 옮겨주고 빵으로 일당 받았어.”

“고생 많았구나.”

“금방 물에 끓여올게.”

“그래 줄래?”

소년이 불을 피우고 그 위에 올린 냄비에 물을 가득 붓고 빵을 넣고 끓이는 모습을 집 밖에서 살펴보던 에드는 돌아서서 어시장으로 향했다.

트라비아 왕국은 대륙에서 가장 큰 힘을 지닌 왕국이다 보니 왕국민들은 부지런한 이들은 어지간해서 굶지 않는다.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곳.

그런데 저 소년이 이리도 살기 어려워 보이는 건 아마도 혼혈이라는 것 때문이리라.

에드는 어시장으로 가서 고기와 빵을 넉넉히 구매해서 다시 소년의 집으로 향했다. 그사이 빵을 끓인 것을 어머니에게 먹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다 허물어진 창문을 통해서 보였다.

호호 불며 어머니에게 빵죽을 먹이는 소년을 보던 에드의 시선이 그 어머니에게 향했다. 초췌하다고는 하나 분명 어머니는 트라비아 인이었다. 문제는 그녀의 눈 밑이 보라색으로 죽어있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못 먹어서 그런 문제가 아닌지 어머니는 몇 술 뜨지도 못하고 자리에 누웠다. 소년은 그런 어머니의 자리를 봐주고는 부엌으로 와서 어머니가 남긴 것을 냄비에 넣고는 어머니 곁으로 가서 팔과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기침하면서도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지더니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소년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에드의 앞에 서서는 물었다.

“아저씨. 구경났어요?”

이제 10살이나 되었을까? 가슴께 밖에 오지 않는 소년은 어머니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세상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에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는 그런 소년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뭐 좀 물어보려고.”

“묻기는 뭘 물어요? 저 바빠요.”

소년이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돌아서려고 할 때 에드는 망토 안에 들고 있던 것들을 꺼냈다. 빵과 고기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보고 소년의 눈이 커졌다.

그러나 소년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오히려 에드를 경계했다.

“엄마가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고 했어요.”

“어머니가 잘 가르쳐 주셨네.”

에드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나서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에드가 물러나자 소년은 당황한 채로 바구니와 에드를 번갈아 보았다.

소년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곧 유혹에 굴복하고 에드를 바라보았다.

“뭘 묻고 싶으신 건데요?”

“우선 이름?”

“디에고요.”

“아버지가 페르산 왕국 분인가 보네.”

디에고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건 제 피부색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에드는 디에고가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린 것 같기에 내심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어머니 언제부터 아프셨니?”

“어머니요? 한 달 정도 됐어요.”

“사제에게 보여봤어?”

디에고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저런 몸 상태로 교회에 어떻게 가요? 그리고 사제님이 이런 곳까지 오실 리도 없고요.”

에드는 디에고의 반응은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 말고도 근처에 저렇게 아픈 사람들이 꽤 될 텐데?”

디에고는 에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뇨. 엄마 말고 아픈 사람은 못 봤어요.”

“그래?”

아무리 봐도 악마가 관여된 것 같은데 왜 그녀만 병에 걸린 걸까? 에드는 디에고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

디에고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한 달 전에 사라졌어요. 엄마가 아프니까 사라졌어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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