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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악마 사냥꾼이 되었다-30화 (30/202)

#30

내기

그란트 상단은 대상단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큰 곳이었다. 트라비아 왕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상단의 상단주가 돕겠다니 에드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큰 힘이 되겠군요.”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일단 ‘석양이 머무는 곳’으로 가도록 하죠.”

처음에는 그곳에 간다는 말을 했을 때 표정이 굳어지더니 지금은 오히려 반대다. 자신이 먼저 가자고 하는 것을 보니 의아했지만, 테인도 만나야 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그란트가 앞장서서 이동하니 그를 따라서 걸었다.

“마스터 팔라딘을 뵌 지도 3년은 된 것 같은데 그간 정정하셨습니까?”

아린이 성기사라는 것을 알고 공통의 관심사를 꺼내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1년 전에 퇴마행을 나오기 전까지는 정정하셨습니다. 마스터 팔라딘과 연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하. 저는 그것 때문에 나서는 줄 알았습니다만.”

“그거야 옳은 일이라 한 것일 뿐입니다.”

에드는 아린의 대답에 픽 웃음을 흘렸다. 전직 프로게이머로서 스폰서에게는 최대한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라도 분위기를 맞춰줬었는데 그녀는 그런 것도 없었다.

하긴 아스트론 교단 자체는 상단들이 감히 비빌 수 있는 수준의 교단이 아니었고, 그곳에서도 최정상에 있는 성기사라면 저런 태도도 이해가 갔다.

그란트는 아린의 딱딱한 대꾸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역시 성기사다우십니다. 아스트론의 영광이 그대와 함께하기를.”

“아스트론의 영광이 함께 하기를.”

아린은 지금까지 함께 하면서 대하기 편해졌다 여겼지만, 태생이 성기사임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캐내는 것도 모르던 딱딱한 성기사.

함께 밤마다 마물들을 상대하면서 편해졌는데 다른 이들에게는 아직도 고고한 성기사임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귀족들을 대함에서도 그녀의 칼 같은 모습은 새로워 보일 정도였다.

그란트도 딱딱한 아린보다는 에드가 쉬워 보였는지 다가와서는 말을 건넸다.

“악마 사냥꾼에 대한 명성은 들었습니다. 스물이 넘는 악마를 잡았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 솜씨는 대단하시더군요.”

41마리째를 잡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정정해줄 마음은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할 따름입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힘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에드는 그 말에 사양하지 않았다.

“현철로 만든 화살촉의 화살 500발과 유물급 활을 강화해줄 수 있는 난쟁이, 그리고 빙결의 활을 강화시킬 수 있는 재료등 뭐든 되는 대로 구해주십시오.”

줄줄이 말하는 에드의 모습에 그란트는 잠깐 움찔했지만, 역시나 미소를 잃지 않았다.

“유물급 활을 강화해줄 수 있는 난쟁이라면 혹 볼코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악마의 시대 1에서도 재료를 가져가면 만들어주던 난쟁이였는데 아직 살아있나 보다. 그런데 강화는 꽤 날려 먹는 녀석으로 기억했다.

빙결의 활을 강화시킬 수 있는 재료라면 역시나 켈페시아의 심장 정도 되어야 한다. 잡는 난이도를 생각하면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다.

“냉기를 강화해준다면 아무래도 켈페시아의 심장이 필요할 것 같군요.”

과연 그란트는 대상단의 상단주답게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박식했다. 그래서 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되어야죠.”

그란트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현철로 만든 화살촉은 만드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못 만들 것은 없습니다. 켈페시아의 심장도 가격이 제법 나가지만 못 구할 것도 없고요. 다만 볼코프만큼은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왕궁 소속의 대장장이라서요.”

“그렇기는 하죠. 그건 시간을 내야겠죠.”

유물급 장비인 빙결의 활은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중급 악마에게는 통하지만, 과연 상급 악마에게도 통할까?

특히 대악마에게까지 통하려면 더 강화해야 한다. 들이는 마력 대비 더 강한 냉기를 뿜어내야 했다. 그러자면 강화는 필수다.

아무리 부자라도 거지가 되기에 십상인 강화.

그런 건 물주를 잡았을 때 해야 한다.

저 배포를 보라!

다른 건 다 해줄 수 있는데 볼코프는 만나러 가야 한단다. 왕궁 소속의 대장장이라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가기만 하면 해줄 것처럼 말하는 저 배포!

“한 달 뒤에 수도에서 만나도록 하죠. 그때까지 모든 걸 준비해 놓겠습니다.”

한 달. 없는 시간이라도 내서 갈 일이다.

그리고 마침 수도라면 보고 싶은 인물도 있었다.

자유기사 펜드리건. 악마의 시대 1의 주인공 중 유일하게 위치가 파악되는 존재이자 지금은 부마가 되어 있다고 했던 자.

대악마를 죽인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한 달 뒤에 뵙죠.”

그란트가 미소를 지으며 이들을 인도할 때 뒤따르던 아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필요한 게 있으면 진즉에 말했으면 교단에서 다 준비해 줬을 텐데.”

아린의 중얼거림에 에드는 미소를 지었다. 아스트론 교단에 돈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들의 도움을 그렇게 많이 받게 되면 그때는 빚을 지게 된다.

그란트는 목숨을 구해준 데다가 그가 스스로 지원해준다고 하니 흔쾌히 받겠지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린은 딱 에드가 들릴 정도로만 작게 중얼거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고한 성기사의 얼굴로 돌아왔다.

‘석양이 지는 곳’ 7층.

테인을 만난 곳에서 에드는 아린과 함께 앉아 진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메릴! 용서해 줘!”

“꺼져.”

그란트는 무릎을 꿇은 채 메릴의 드레스 자락을 붙들고 애원하고 있었고,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독설을 퍼부으며 그의 얼굴을 구두로 밀어내고 있었다.

“내가 잘못했소!”

질척대는 그란트의 모습에 에드가 헛웃음을 흘릴 때 테인이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그래서 잘 해결하고 온 건가?”

“예. 영주와 귀족들이 몇 죽기는 했지만, 가만두었다면 더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았으니 잘 막아낸 셈이죠.”

“다행이군.”

“그란트가 장비를 지원해준다고 해서 한 달 뒤에 수도에 들러야 할 것 같습니다.”

“수도에?”

“예.”

테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펜드리건을 만나 봐야 하니 나쁘지 않군. 아린 경은 어떠신가?”

“저는 퇴마행이 우선입니다.”

에드는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린. 솔직히 말하면 지금 상급 악마는 상대하기 무리라고 생각해요.”

아린은 에드의 말에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훈련 하나하나에도 목숨을 걸고 악마 사냥에 있어서 전부를 건 사내. 악마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그가 더 잘 알겠지만, 예언을 받은 이상 그녀는 성기사로서 책무를 다할 뿐이다.

“하지만 예언을 받은 이상 물러날 수는 없어요.”

“물러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악마를 상대하는 것은 만용일 뿐입니다.”

아린은 에드가 적극적으로 말리는 것을 보고는 한발 물러났다.

“적어도 다음 목표까지는 잡고 가도 될 것 같으니 그를 잡고 생각해 보도록 하죠.”

“잘 생각했습니다.”

에드는 자신과 함께하면서 아린이 쉬지 않고 경험을 쌓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과연 그녀가 상급 악마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믿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장비야 성유물이 세 개나 되니 굳이 자신처럼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필요는 없지만, 에드는 아직 장비를 더 올려야 했다.

앞으로 상급 악마만이 아니라 대악마까지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지금 장비로는 한계가 있었다.

일행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그란트와 메릴의 사이도 진척이 있었다.

“그란트 상단 내에 주류 쪽을 모두 넘겨.”

“그거면 되겠소? 원한다면 향수 쪽도 넘겨줄 수 있는데.”

메릴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는 것을 보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그란트가 얼른 말을 돌렸다.

“당신이 갖고 싶다던 베른 시 인근의 별장을 준다는 말이 잘못 나왔소.”

메릴이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좋아. 당신의 성의를 봐서 용서해주도록 할게.”

“고맙소. 내 앞으로 잘하겠소.”

그란트가 메릴에게 용서를 받고는 크게 웃으며 ‘석양이 머무는 곳’ 전체가 울리도록 소리쳤다.

“오늘 오신 손님들 술값은 받지 않을 테니 마음껏 드시구려!”

“와아아!”

아래쪽에서 환호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그란트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1만 골드의 배상금에 자신이 제시한 것들만 다 구해도 많은 돈이 들어갈 터인데도 불구하고 오늘 시원하게 골든벨까지 울리는 그란트의 배포에 감탄이 절로 일었다.

용서를 구할 때는 질척대는 모습을 보이더니 용서를 받고 나자 대범한 상단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넉살 좋게 자리에 앉아서는 테인과도 인사를 나눴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란트라고 합니다.”

“반갑소. 그보다 우리도 술값이 공짜요?”

“물론입니다.”

“그럼 프레티안 32년산을 맛볼 수 있겠소?”

그란트가 메릴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직 남아있소?”

“당연하죠. 그게 아무나 사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니니까요.”

“오늘 내 은인을 대접하기에 이만한 것도 없을 것 같으니 어서 내오시오.”

메릴은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술을 가지러 갔다. 그 모습을 보고 에드가 그란트에게 물었다.

“귀한 술인가 봅니다.”

대답은 테인이 대신 해주었다.

“귀하지. 한 병에 가격이 100골드가 넘거든.”

에드는 순간 이 인간들이 미쳤나 싶었다. 100골드면 유물급 장비를 살 수 있는 돈이다. 대충 한화로 환산해도 1억이 넘는 돈인데 그게 술 한 병 값이라고?

에드가 놀라하는 사이에 메릴이 병을 가지고 왔다. 17년 산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가격을 알아서인지 후광이 비치는 것 같은 술병이었다.

테인이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펜드리건의 결혼식 때 먹어보고 꼭 한번 먹고 싶었더랬지. 이렇게 소원을 푸는군.”

메릴이 직접 가져온 병의 마개를 열자 그 안에서 폭발적으로 주향이 뿜어져 나왔다. 전에 맡았던 프레티안 17년 산보다 더 농축된 진한 향이었다.

이 정도로 향이 진하면 맛이 있을까? 어째 섬유유연제를 마시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가격이 가격이다 보니 살짝 기대도 됐다.

에드가 군침을 삼킬 때 테인이 한 마디 거들었다.

“귀하기도 귀하지만 독하기도 이만큼 독한 술이 없다고 하네. 그 말술인 펜드리건도 딱 세잔 먹고 쓰러졌으니.”

에드는 테인을 돌아보았다.

“테인님은 얼마나 드셨습니까?”

“난 두 잔. 더 마시면 죽을 것 같아 두 잔만 마셨더랬지.”

테인도 술을 좋아하는데 고작 두 잔만 마셨을 정도로 독한 술이라는 건가?

구미가 당겼다.

술잔에 모두 술을 가득 채웠고, 모두 잔을 들었다. 그란트가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시 한번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에드는 대답 대신 잔을 들어 보였고, 모두가 단번에 잔을 비웠다.

확실히 독한 술이라는 것은 알겠다. 뱃속에 들어갔다가 마치 브레스라도 토할 것처럼 열기가 확 치고 올라왔으니. 그렇게 올라온 열기에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니 그 향이 확 뿜어져 나와 장내에 진동했다.

단순히 입에서 향기가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주변에 향이 진동하게 하는데 마신 후에 나오는 향은 그 향이 은은하여 이것이 또한 감탄이 일게 했다.

한 잔을 비운 테인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서는 눈을 감고 음미하고 있었다. 이만큼 독한 술은 에드도 처음이었다. 독한 술은 꽤 마셔봤지만, 이건 지금까지 마신 술과는 수준이 달랐다.

지금 에드의 체력으로도 저 한 병이면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그때 아린이 얼굴을 붉힌 채로 잔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에드. 저랑 술 한 잔 더해요.”

에드는 마다할 필요를 못 느꼈다. 술이 줄어드는 것이 아깝다고 느낄 정도로 굉장한 술이었으니까.

“괜찮으시겠어요?”

아린이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그럼 내기하실래요?”

“내기요?”

에드는 멀뚱히 아린을 바라보았다. 아린은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로요.”

에드는 아린의 패기 넘치는 도전에 이 아가씨가 왜 이러나 싶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도전을 피해 본 적이 없던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여기 이분들이 증인입니다.”

“물론이죠!”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술잔이 채워줬고, 에드와 아린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과연 독한 술이라 그런지 아린은 두 번째 잔에 눈이 살짝 풀렸다.

에드도 알딸딸함을 느꼈지만, 아린에게 물었다.

“괜찮겠어요?”

아린은 호탕하게 잔을 내밀었다. 세 번째 잔이 채워지고 에드와 아린은 동시에 술잔을 비웠다.

아린은 태연히 잔을 내려놓더니 에드를 바라보았다. 에드는 그녀의 눈이 어째 더 또렷해진 것 같아 다음 술잔을 채우려고 했는데 그녀는 그 표정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에드가 손을 내밀어 받아주지 않았다면 내일 아침 이마에 난 혹을 봤을 정도로 기절하듯 쓰러졌다. 에드는 자신의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잠든 그녀를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귀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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