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트롤
대저택으로 돌아가 시종장이 준비해 준 화살을 받아 무장을 온전히 챙기고 말에 올라탔을 때 베릴 남작이 기사 토미오와 함께 다가왔다.
모든 준비를 마친 모습을 보고 베릴 남작이 물었다.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시는 게요?”
에드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어쩌면 에드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아론에게 말한 것이 베릴 남작일 테니까.
아마도 켈피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모든 것을 계획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말하고 부탁했다고 해도 악마를 잡는 일이었기에 거절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역시나 귀족은 귀족이었다.
능구렁이같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순순히 답해주었다.
“아론 사제에게 광산의 악마에 대해서 전해 들었습니다. 그 악마를 잡으러 갈 생각입니다.”
“허! 그건 여기 토미오와 함께 병사들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원래 계획은 아마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이곳에 오면서 새로운 방법을 떠올렸겠지.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귀족이라면 응당 그래왔기에 이 정도는 애교로 넘길 수 있었다.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 떠나려는데 기사 토미오가 끼어들었다.
“악마 사냥꾼이 함께 간다면 굳이 병사들은 갈 필요가 없겠으니 저만 함께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베릴 남작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내 마음이 편할 것 같군. 부탁해도 되겠나?”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미오를 동행시키고, 이번 악마 사냥의 성과를 가져가려는 기사의 얄팍한 수가 눈에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경험치만 취하면 되니까.
토미오가 말을 준비해 온 후에 함께 사제 아론을 찾아갔다. 교회 앞에서 이미 말을 타고 기다리던 아론은 토미오를 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토미오 경. 함께 가주시는 겁니까?”
“어차피 제가 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역시 명예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명예를 알지. 너무 잘 알아서 그 명예 때문에 나선다는 것도 알았다.
토미오가 앞장서고 에드와 아론은 그 뒤를 따랐다.
북쪽 성문을 나가서 삼십 분 정도 말을 모니 작은 돌산이 나타났고, 그 밑에 자리 잡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을 두르고 있는 목책을 지키던 병사가 토미오를 보고는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전투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도움이 되니 다행이었다.
토미오는 마을의 광장으로 말을 몰고 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토미오는 사람들을 돌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광산에 악마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곳까지 안내할 자가 필요하다. 누구 없는가?”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짧은 갈색 머리 사내가 한 명 서 있었다. 그는 모두의 시선을 받고는 귀찮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론이 말에서 내려 그의 손을 잡았다.
“톨. 얘기는 들었습니다. 안내를 직접 하셔도 괜찮겠습니까?”
톨은 아론이 손을 잡고 하는 말에 얼굴을 슬쩍 붉혔다.
이봐! 사제는 남자라고!
“동료가 둘이나 놈에게 죽었습니다. 그놈의 죽는 꼴을 볼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귀찮아했잖아!
그래도 광산 안에서 길 안내를 해줄 사람이 있으니 놈을 찾느라 고생할 일은 없어 다행이었다.
톨의 안내를 받아 광산으로 들어간 에드는 광산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광산은 대충 장정 둘이 어깨를 마주할 수 있을 만큼의 폭이었다.
이 정도 폭이라면 운신의 자유는 있다. 도저히 움직일 공간이 나오지 않는 곳에서 악마를 조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 해도 이번 여정은 손쉬울 것 같았다.
에드는 옆에서 횃불을 들고 함께 걷고 있는 아론을 바라보았다.
“혹시 여기에 축성이 가능합니까?”
에드가 내민 것은 화살이었다. 아론은 그 화살을 가만히 바라보고는 눈을 감고 아스트론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화살에 푸른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이 세계에 와서 신성력을 다루는 사제와는 처음 움직이는 중이었고, 그랬기에 축성도 처음으로 보았다. 악마에게 있어 극상성을 지닌 신성력.
이거면 쉽게 악마를 제압할 수 있다.
아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시적이군요. 일반 강철이라 그런지 3분 정도가 한계입니다.”
“어떤 것에 오래도록 축성이 가능하죠?”
“축성을 오래 유지하는 것은 진은을 이용하면 가능하겠지만, 영구적으로 축성하는 것은 어떤 사제도 불가능합니다. 그건 오직 성유물만 가능한 거죠.”
신이 내려줬다는 성유물이 아니라면 어떤 사제도 영구적 축성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항상 사제를 끼고 다녀야 하는 걸까?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이따 악마를 만나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이죠. 그러려고 따라온 것이니까요.”
에드는 미소 짓는 아론에게 물었다.
“혹시 악마 사냥 경험이 있나요?”
“아뇨. 실제로 악마를 사냥하는 것은 성기사님들이 하는 일이죠.”
토미오는 뒤에서 들려오는 담소에 기가 찼다. 긴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에드가 악마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악마를 잡아 왔다는 것은 부풀려졌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켈피를 잡은 것은 진실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허명으로 부풀려진 자. 광산의 악마까지 저자가 처리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사제의 축성까지 받는다면 악마 따위는 자신도 얼마든지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그때 앞장서 걷던 톨이 걸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저 앞에서 나타났었습니다.”
토미오는 그 말에 검을 뽑아든 채 앞으로 나섰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앞장서지. 내 뒤로 물러나게.”
“예.”
톨이 뒤로 물러나서 횃불을 비춰주자 토미오가 앞으로 나섰다. 횃불을 들고 있던 아론이 한 걸음 더 나와서 기도를 올렸다.
“하늘에서 굽어살피시는 아스트론님이 은총을 내리사 용감할지어다.”
푸른 빛이 내려와 토미오의 전신을 휘감았다. 토미오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 성큼 앞으로 나섰다.
“저건 뭡니까?”
“용기를 부여하는 것으로 장비에 축성하는 것보다는 오래 가죠. 특히나 토미오 경은 아스트론 신자이시라 효과가 더 오래 갈 겁니다.”
에드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이 세계로 끌려온 자신은 아직 어떤 종교를 가질 마음이 없었으니까.
에드는 언제든 대응할 수 있게 화살을 시위에 걸고는 조용히 뒤를 따랐다. 그리고 감각을 일깨웠다.
횃불이 타는 소리 외에 천장 위를 두드리는 소리.
에드는 톨에게 물었다.
“악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봤습니까?”
“아뇨. 그저 동료의 비명을 들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끔찍한 소리가 들렸죠.”
“혹시 천장으로 끌려 올라갔습니까?”
톨이 놀라서 에드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에드는 아론을 돌아보며 말했다.
“화살에 축성 좀 부탁드립니다.”
아론은 순순히 화살에 축성을 걸어줬다. 에드는 시위를 한껏 당긴 후에 기감에 잡히는 방향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어둠을 가르고 나아가는 푸른 빛줄기.
갑작스러운 에드의 공격에 토미오의 시선도 그 빛줄기를 쫓아갔다. 그리고 그 빛줄기에 적중당한 괴물을 볼 수 있었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다가오는 존재는 박쥐를 연상케 했다. 그런데 그자의 가슴팍에 화살이 박혔다. 축성 받은 화살이 박히면서 빛이 사라졌지만 대신 악마의 비명은 들을 수 있었다.
캬아아악!
박쥐를 닮은 악마 트라칸이었다. 동굴에서 종종 보이는 놈으로 하급 악마 중 하나다.
그런데 동굴에서 상대하면 이만큼 까다로운 놈이 없다. 동굴에서 만날 수 있는 악마는 대충 네 종류였는데 그중 가장 까다로운 놈이 걸렸다.
비명을 지르는 트라칸을 향해 토미오가 앞으로 달려갔다.
“젠장! 멈춰!”
다급하게 불렀지만, 토미오는 이미 앞으로 튀어나간 후다. 에드는 아론을 돌아보았다.
“혹시 보호 마법 없습니까?”
“잠시만요!”
아론이 토미오를 향해 손을 내뻗고 신성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트라칸이 입을 벌렸다.
에드는 톨의 어깨를 잡고 뒤로 당겼다. 그리고 트라칸의 음파 공격이 날아들었다.
“커헉!”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달려가던 토미오는 그 음파 공격을 맞고 형편없이 뒤로 날아왔다. 바닥을 구르는 토미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토미오가 정면에서 맞아주는 덕에 음파 공격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벽을 튕기며 날아온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간격을 볼 수 있는 에드에게 있어 트라칸은 상당히 까다로운 존재였다. 저 음파 공격은 동굴에서 만나면 벽에 튀어서 난방향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체력에 그동안 투자한 것이 있어서 몸으로 버틸 수 있었다.
토미오를 구할 시간도, 축성을 다시 받을 시간도 없었다.
음파에 휩쓸려 횃불도 꺼진 상황에서 토미오의 몸을 감싼 은은한 푸른 빛이 전부였지만, 에드는 상대의 위치를 명확히 읽을 수 있었다.
간격을 본다는 능력이 이 세계로 들어오니 상대의 살의를 읽을 수 있었다. 그 살의가 상대의 위치를 명확히 읽게 해주었다.
에드는 한 호흡에 다섯 발의 화살을 연달아 날렸다. 그렇게 날아간 화살들은 단 한 발도 빼지 않고 모조리 트라칸에게 적중했다.
캬악!
트라칸이 비명을 내지를 때 토미오가 바닥을 구르며 몸을 일으켰다. 축성 받고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음파 공격 한 번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살았으니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몸을 일으킨 토미오가 이를 악물더니 다시 트라칸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 저 트롤 새끼.
“축성!”
에드는 길게 말할 시간도 없어서 소리쳤고, 말뜻을 알아들은 아론이 화살촉에 축성을 걸어주었다.
달려간 토미오가 바닥에 내려온 트라칸의 양쪽 날개 끝에 있는 발톱에 양쪽 어깨를 뚫린 채 들리고 있었다. 트라칸의 가장 강한 공격이 음파 공격일 뿐.
근접 전투 또한 강한 녀석인데 그 안으로 들어갔으니 죽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눈앞에서 죽게 둘 수도 없었다.
토미오가 잘한 일이라면 단 하나. 아론이 걸어준 축성으로 인해 횃불 대용이 되었다는 점밖에 없었다. 트라칸이 입을 벌린 채 토미오의 목을 물어뜯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에드는 시위를 꼬았다.
“가지가지 하네.”
에드가 꼰 시위를 놓자 화살이 푸른빛을 머금고 날아갔다. 푸른 유성처럼 날아가는 화살이 그리는 궤적은 토미오의 관자놀이를 스치고 그대로 트라칸의 미간에 박혔다.
축성 받은 화살은 그대로 트라칸의 미간에 깊숙이 박혔다.
트라칸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확실히 축성 받은 화살이 좋다.
보통 악마들은 죽기 직전에 죽은척하는 것을 무슨 패시브처럼 썼는데 축성 받은 화살이 미간에 박히니 바로 죽어서 경험치가 들어왔다.
“끄아악!”
트라칸이 쓰러지면서 바닥에 떨어진 토미오가 비명을 내질렀다. 역시 어디를 가나 트롤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