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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76화 (175/221)

제176화 - “저희 할아버지는 그 근처의 땅을 예전부터 갖고 계셨어요. 돌아가신 부모님께 듣기론, 아주 오래전부터 가지고 계셨대요.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온 땅이라고 하셨어요.”

“그 풍차까지?”

“네. 그것도 카르펜 가문의 소유라고 하셨어요.”

샤를은 턱을 괴고 그 이야기를 들었다. 듣자 하니 부모님은 둘 다 오래전에 죽은 모양이었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고 했다.

샤를은 차분히 레나 카르펜을 관찰했다. 정성 들여 땋은 머리카락. 피부는 하얗고 손가락은 궂은일 하나 한 적이 없어 보인다.

부모를 여의고 자랐어도 명문 미스트위버 대학에 들어올 정도면 카르펜 가문은 부유한 편인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할아버지께서……. 흑. 아 죄송해요.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혼수상태에 빠지셨어요.”

레나 카르펜은 슬퍼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어요. 멀쩡하시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되시다니. 그분은 전날 풍차에 다녀온다고 하셨거든요.”

“풍차?”

“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풍차에 다녀오시기 전까지는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시다니 이상했거든요.”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닐 테지?”

일반인이 쓰러졌다면 보통 지병이나 갑작스러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풍차와 연관성을 짓지는 않을 것이다.

“네. 그, 예전부터 이상한 게 있었어요.”

“뭔데.”

“제가 어렸을 때, 풍차는 카르펜 가문이 항상 관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것이 의무라고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이 마차 사고로 돌아가시고 난 그다음부터는, 늘 하던 말씀을 안 하셨어요. 그리고 홀로 풍차에 가끔 갔다 오시곤 했죠.”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네. 그곳에 무엇이 있던 분명히 제가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 홀로 풍차로 가서 살펴보기는 무서워서, 할아버지의 물품을 정리하다가 봉인 재단에 관한 명함을 찾았어요.”

“그렇군.”

레나 카르펜의 할아버지는 영성자였고, 또한 봉인 재단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혹시 부모님의 자동차 사고도 풍차와 연관되어 있는 일일까요?”

“그건 아직 모르겠다. 차차 조사해나가야겠지.”

샤를은 레나 카르펜의 성격을 알 것 같았다. 곱게 보호받으면서 지내서 유약한 아가씨라는 느낌이 들지만, 가문의 유산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진 사람.

“혹시 내게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자료들은 없니?”

“아, 있어요.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기록 같은 건데, 저는 봐도 그냥 일기장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나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어서요. 필요하시다면 저희 저택에 오셔서 가져가시면 안 될까요? 좀 많을지도 모르니 하인을 데려오셔야 할 것 같아요.”

“알았다. 그렇게 하지.”

샤를은 본의 아니게 초대를 받게 되었지만 일단 정보를 갖고 가는 것과 그냥 가는 것은 다를 테니.

옆에서 듣고 있던 리카 웹스가 말했다.

“이 풍차에 대한 조사 때문에 저희 인력도 파견할 것 같아요.”

“네가?”

“아니요. 저는 아직 그런 일에는 조예가 없어서요. 대신 박사님 한 분이 오신다고 했어요.”

재단 내부가 마냥 바쁘더라도, 한 사람 정도 보낼 여유는 있나보다. 아마도 관리나 감시를 역할로 하는 사람이겠지.

“괜찮으실까요?”

“문제없지. 올 거라면 미리 기별을 주도록 하고.”

“네에!”

리카는 샤를의 옆에 착 달라붙어서 팔짱을 꼈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

“조심하세요. 이번 일은 간단한 일은 아닐 거라고 했어요.”

“그래 알겠다.”

대답을 듣자마자 리카가 뒤로 한걸음 물러나서 배시시 웃었다. 영성자로 각성하고 난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요망함이 붙은 느낌이다.

*

며칠 뒤 샤를은 메트로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레나 카르펜의 저택을 찾았다. 교외에서도 조금 멀리 있는 곳으로 외딴곳에 살고 있었다.

저택 내부로 들어서자 특유의 오래된 건물 냄새가 났다.

“아, 오셨어요.”

저택의 집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레나 카르펜이 와서 그를 맞이했다. 평상복일 때는 교복을 입고 있을 때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래도 한 번 만나봐서 그런지 예전처럼 떨면서 얘기하진 않았다. 이런 타입 꽤 있지. 모르는 사람과 만나는 것을 꺼리지만 아는 사이가 되면 별 거부감이 없는 사람.

“그래. 남긴 물건이 뭔지 알고 싶은데.”

“일기장이에요. 근데 좀 개수가 많거든요.”

레나 카르펜을 따라 카르펜 가문의 저택에 있는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 적힌 명패에 노마 카르펜이라고 적혀 있었다. 레나 카르펜의 조부의 이름이다. 방 안은 마호가니 나무의 가구들이 가득 차 있었고 문 앞에 측백나무의 향낭을 걸어두었다.

“여기 있어요.”

서재 한쪽에 마련된 서가에 책이 우르르 꽂혀 있다. 모든 책에 제목이 없었다. 다만 날짜로 기록되어 있었을 뿐.

한 권 뽑아서 읽어보자 이게 일기장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제목 대신 오직 날짜만 적혀 있다.

「1863년 5월 3일. 마침내 나는 할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그분의 비원을 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영성자가 되었다. 이 신비로운 영적 세계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놀라운 일들을 가능케 했으며 진실로 숨겨야만 하는 것이었다. 비술은 숨겨져 있어야만 비술이라고 불리우는 법이었다. 이런 걸 일반인들이 알아챈다면…….」

날짜는 젊은 시절의 것으로 보인다.

“본래는 중구난방으로 아무 데나 놓여 있었거든요. 저택을 샅샅이 뒤져서 이곳에 모아서 한데 정리했지만, 날짜가 가끔 다른 일기장도 있을 거예요. 저도 아직 다 읽지는 못했거든요.”

“그럼. 난 이 일기를 읽고 있을 테니, 나중에 부르도록 하마.”

“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교수님.”

샤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일기장을 읽는 동안 맑았던 서재의 창밖은 우중충해지고 변덕스러운 메트로폴의 날씨답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젊었을 적의 기록은 대부분 카르펜 가문의 업을 이었다며 좋아하는 내용이었다. 내용도 철없는 내용이 많았다.

마법을 사용해 지나가는 여자의 치마를 들치거나 하는 식의 치한 짓을 한 적도 있었으나, 선을 넘은 것까지는 않다.

그 뒤에 반성하는 내용이 있었으니까.

「위대한 영성의 재능을 이딴 식의 저급한 일에 사용했다니! 나는 머저리다! 다시는 술을 먹고 마법을 사용하지 않을 테다!」

이 이후로는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노마 카르펜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카르펜 가문의 권리를 누리기만 해왔던 나는 의무는 무거운 것이며 숭고히 해야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이후 샤를은 몇 가지 단서를 찾았다.

「오늘은 서커스단이 메트로폴로 공연하러 온다고 했다. 아들이 함께 가자고 칭얼댔지만 나는 칼같이 거부했다. 나는 광대가 싫다. 풍차 내부의 그것을 연상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두 갈래로 난 고깔모자…….」

“고깔?”

그러다가 샤를은 그게 제스터 캡이라고 불리는 광대들의 모자라는 걸 떠올렸다. 풍차 내부에 그런 것이 대체 왜……?

「아들은 지금 서커스단을 보지 못하러 가서 침울해져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이 녀석도 광대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스르륵.

「공포는 우리의 안식이며 동반자이다.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친숙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는다. 아들이 조금 더 대범했으면 좋으련만. 내 아들은 겁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머리는 똑똑해서 가문의 사업을 잘 키우고 있다. 하지만 숨겨진 비원. 카르펜 가문의 업을 아들에게 넘겨야 할까? 그러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이 아이가 이 막중한 임무를 견딜 수 있을까? 차라리 손녀딸에게 이 업을 넘겨주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손녀딸은 온실 속 화초로 자라서 여린 심성을 갖고 있지만, 이상할 정도로 겁이 없다. 두려울지언정 해내는 모습을 보니 손녀딸이 오히려 더 자질이 있을 것 같다.」

스르륵. 이번 기록은 몇십 년 뒤의 기록이다.

「1888년 4월 22일. 원하지 않았건만, 기어코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내 아들이 우리 가문의 업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었다. 비밀스러운 지킴이에 관한 일과 파수꾼의 의식, 그리고 ‘질서를 조롱하는 광대’에 관한 내용이 적힌 고서적을 발견하고는 다 읽고 나서 내게 와서 묻고 있다. 난 고민에 빠졌다. 자질이 없는 아들이지만, 이 아이에게 가문의 업을 전수해야 할까? 이럴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다. 그분께서 있었다면 조언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강령술로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싶기도 했지만, 강한 영적 능력을 가진 영성자를 불러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 포기했다. 이건 오롯이 내가, 나만의 의지로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마음이 무겁다. 아들은 내일까지 답을 달라고 했다.」

스르륵. 이 페이지는 매우 난잡하고 거친 글씨로 쓰여 있었다.

「바보 같은 일이었다. 나는 내 우둔한 결정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나 따위가 뭐라고 대체 그런 결정을 내렸지? 그런 결정을 내렸던 과거의 나를 만날 수만 있다면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고 싶다.」

「그들이 원했다고 풍차에 아들 내외를 데리고 갔던 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아직 그들이 준비되지 않았음을 나는 인지해야만 했다. 미리 겁먹지 말라고 언급을 했음에도 그들은 겉으로만 멀쩡해 보였지 속으로는 오금이 떨릴 정도로 겁에 질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 이후로는 일기장이 마구 찢겨 있었다. 아마도 추정해보건대 레나 카르펜의 부모가 죽은 사건이 이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나저나 겁을 먹었다라. 겁을 먹은 것과 자동차 사고가 무슨 관계지?”

샤를은 다시 눈을 돌려서 몇 개의 일기장을 더 읽었지만, 그 뒤로는 후회와 회한 그리고 손녀딸에게 이 업을 전수해야만 하는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기는 거의 오늘날의 날짜와 비슷해져만 갔다.

「1912년 1월 29일.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이 근방에서 실종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의례 그렇듯 메트로폴 내부에서 일어나는 범죄 사건의 결과라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닌 것 같다.」

「풍차에 가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봉인이 느슨해진 것을 파악했다. 나는 매우 놀란 상태다. 기계식 미로를 뚫고 지하 끝에 내려가 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스르륵.

「1912년 2월 8일. 젠장. 헨리와 스펜서가 사망했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제 풍차의 봉인이 느슨해진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그것이 풀려나오면 세상은 대재앙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내가 막아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실패하게 된다면, 내 손녀딸에게 이 과중한 업이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헨리도 스펜서도 없으니 그 아이를 이끌어줄 사람이 없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비한 다음 계획이 있다. 우리의 선조, 카르펜 가문의 시조이신 마르크 카르펜께서는 봉인 재단의 설립에 도움을 주신 분이다. 아직 그 연고는 살아있을 것이다. 명함을 올려두고 떠난다. 이 명함이 내 손녀딸에게 발견되지 않기를.」

“그렇게 된 거군.”

그래서 이 일기를 뒤지던 레나 카르펜이 봉인 재단에 연락했던 건가.

봉인 재단에 넘어갔던 사건이 샤를에게 건너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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