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 큰 지진이 일어난 다음에 얼마 동안 잇따라 일어나는 작은 지진 정도의 위력.
하지만 이 지진을 통해서 샤를은 석판의 예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섯 번의 지진이 오고, 다섯 개의 시공간이 뒤틀린다.’
기록에 의하면 두 번째로 뒤틀릴 시공간은 치치노아사쿱탈 사원이었다.
체르노이 시의 남쪽에 있는 그 사원은 그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다고 했다.
현대에 와서 남아있는 것은 건축물의 터 정도.
그러나 남아있는 사원의 일각만 보더라도 파괴되기 이전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사원일 거라고 학자들은 말하곤 했다.
샤를이 그 사원에 도착했을 때, 예측대로 사원은 과거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다.
반짝거리는 황금이 사원의 벽면에 도배되어 있다. 보석과 황금으로 번쩍거리고, 사원 앞 광장에는 예술적인 여신의 동상이 놓여 있었다.
여신의 동상은 온통 다이아몬드로 이뤄져 있었고 수많은 팔이 달리고 머리 위에는 휘광처럼 찬란한 등불이 반짝거렸다.
사원의 옆에서 관광객들을 맞이하던 한 호텔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은 다들 너무 놀라서 창문을 열고 사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 세상에 맙소사.”
“내,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과거의 치치노아사쿱탈 사원은 이토록 찬란했었다니. 샤를도 보면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야 삐까뻔쩍이다!
-오스구나아아텔을 모시는 사원이라고 했는데 이 정도로 화려할 줄은 몰랐네. 현대의 사원은 그저 평범한 석조 건축물인데.
-쭈인, 저 황금 털어가자!
-뭐? 털어서 뭐하게?
-저 황금 아래에 죄다 달란트로 도배되어 있어!
-미친…….
샤를은 파기나레코르의 말에 이번에는 진짜로 욕을 뿜을 뻔했다. 저 모든 사원이 황금으로 도금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달란트로 만들었다고!?
-털?자!
-진짜 털고 싶은데.
저 사원을 뜯어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무럭무럭 들 때쯤, 샤를보다 먼저 그것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다.
호텔 입구에서 그 호텔의 벨보이로 보이는 남자가 자신의 예스러운 모자도 집어 던지고는 득달같이 사원을 향해 달려갔다.
“화, 황금! 황금이다!”
“보석도 있어!”
갑작스럽게 눈앞에 보석 궁전이 나타난다면 눈이 돌아가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벨보이를 시작으로 탐욕으로 눈이 번들번들해진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황금을 캐내기 위해서 작은 손 망치나 누군가 사용하던 공구가 들려 있었다. 심각한 사람은 자신의 만년필을 들고 달려가기도 했다.
황금은 무르니까, 어떻게든 캐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서 나온 행위.
그것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갈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었다.
황금의 사원 입구에는 전신을 검은색 붕대로 꽁꽁 감싸고 있는 한 전사가 있었다.
그의 양손에는 장비들이 들려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한 손에는 작은 라운드 실드 정도의 크기의 방패가 들려 있었고 다른 손에 무언가 둘둘 말린 것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펼쳐지자 대학살극이 일어났다.
‘연검!?’
우르미라고 불리는 그 물건은 남대륙에서 칼라리 파야트라고 불리는 무파에서 사용하는 연성 검이었다. 검이면서도 자유자재로 형태를 변경하며, 허리에 벨트처럼 찰 수도 있었다.
현대의 우르미는 겨우 1.6m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고대의 전사가 사용하는 우르미는 3m도 넘었다.
이 검이 휘둘러지자마자 다가오던 일반인들은 엄청난 속도로 분쇄되었다.
자신이 베였는지도 알지 못한 채 황금에 눈이 멀어 달려들다가 그대로 두개골이 대각선으로 절단되면서 피와 뇌수를 뿜는다.
춤을 추듯 몸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전력으로 검을 휘두르자 다가오는 자는 피와 죽음 속에서 죽어갔다.
이 학살극의 끄트머리에서 일격을 피할 수 있었던 일반인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눈앞의 피 분수를 감상했다.
“끼야아아아아악!”
“사, 사람이 죽었어!”
샤를은 그 연검이 닿는 거리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딱 사원의 경계선까지가 그 죽음의 사정거리였다.
입구에 들어오는 자는 모두 죽는다.
-여신의 무덤에 들어서는 자, 모두 죽게 되리라.
그런 정신파가 이 일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울려 퍼졌다.
‘그럼 이 사원의 수호자같은 건가. 황금 사원의 수호자라. 오스구나아아텔의 유해를 지키기 위한 파수꾼이라면 저렇게 강력한 것도 이해가 가.’
허락받지 못한 자가 들어오는 것은 모조리 막는 것 같다. 앞사람의 죽음을 보고 정신이 되돌아온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쳤다.
몇몇 바보 같은 사람들은 먼 거리에서 권총을 쏘면서 그 전사를 노렸지만, 탄환을 막아낸 전사는 연검을 휘둘러 마치 뱀의 혀처럼 멀리서 총을 쏘는 자를 끝까지 추적해서 해치웠다.
그리고 난 뒤에는 다시 사원의 안으로 들어가서 입구 근처에 가고일 동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정면으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겠는데.
-그럼 쭈인, 내가 주의를 돌려볼까?
-아냐, 의미가 없어. 정면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야 해.
고대의 전사를 피해서 사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샤를은 황금 사원을 쭉 둘러보면서 담 근처에 손을 대서 어딘가 들어갈 곳이 있는지를 찾았다.
샤를과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는지 불쑥 담을 넘는 사람들이 근처에 있었으나, 담을 넘는 순간 들리는 비명.
“아, 악어가 있다니!? 흐아아아아악?!”
-저런, 저 친구는 잡아먹혔네.
-흐음. 어떻게 하지?
-쭈인. 근데 말이야. 사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정해진 게 아닐까? 예를 들어서 징표를 가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든가.
-하지만 그 징표를 가진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지.
그렇게 고민하던 샤를은 문득 오스구나아아텔이 이 사원에 순장되었다는 말을 떠올렸다.
‘기록에 의하면 사원에 오스구나아아텔이 매장되어 있었다고 했었지. 그리고 그녀의 부하들도 순장되었고. 하지만 내가 알기로 현대의 치치노아사쿱탈 사원에서 발굴된 것은 서적이나 유물 따위라고 했어. 만약 왕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면 여긴 사원이라고 부르지 않고 릉(陵)이라고 했겠지.’
일단 확실한 건 지금 시간대에는 이 사원 안에 여신의 유해가 있다는 것.
근데 만약 오스굿이 죽기 전에 앞으로 자신의 사형제들이 자신의 무덤에 방문할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들도 막았을까?
샤를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남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담을 훌쩍 넘어 안으로 들어섰다. 눈앞에는 거대한 악어가 먼저 들어선 도굴꾼을 그대로 잡아먹고 있었다.
악어는 새로운 침입자를 감지하자 주둥이를 틀어서 샤를로 향했다.
-쭈인?
-기다려봐.
그 악어는 코를 킁킁대더니, 곧 샤를에 대해 신경을 껐다. 그리고는 다시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면서 조용히 주변에 동화되어 은신했다.
-어떻게 한 거야?
-그런 게 있어.
샤를의 내면에 있는 석판을 감지하자마자 곧바로 그를 무시한 거다. 이럴 거면 입구로 들어갔어도 그 수호자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원 내부로 들어서자, 진짜로 사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온갖 금은보화가 샤를의 눈 앞을 가렸다.
-털!자! 털!자!
-조용히 해. 보물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파기나레코르를 달래면서 안으로 들어서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복도에는 진귀한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화려한 고대의 장식들을 넘어서 사원의 중앙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거대한 보석의 무덤이 있었다.
계단처럼 층층이 무덤이 있었는데 맨 아래에 있는 무덤은 평범한 나무로 되어 있었지만 맨 위쪽에 있는 무덤은 그 찬란함이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덤 위로 올라가자, 누군가의 영혼이 떠올라 샤를을 맞이했다.
온갖 곳에 보석을 달았고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인은 엑토플라즘 상태가 아니었다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해 보였다.
-이상하군. 분명 사형제들의 기운이 느껴져서 한바탕 쏘아 줄려고 했건만, 네게서는 모든 사형제의 기운이 같이 느껴지는구나. 누구 하나라고 특정하기 어려울 만큼 말이야.
그녀는 오스굿. 렘 노인의 제자였다. 고대의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건 대면하게 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계십니까?”
샤를은 공손히 질문했다. 이 존재는 그만큼의 위업과 격을 쌓아온 존재이므로 죽었다고 해도 존중해줄 가치가 있었다.
-대충은 알고 있다. 갑작스럽게 시공간이 뒤틀렸고 내 사원은 미래로 내던져진 것 같구나, 아이야. 네 이름은 무엇이지?
“샤를 헥센입니다.”
-이상한 이름이군. 어쨌든 너는 내 사형제들이 가진 석판을 많이도 갖고 있는 것 같구나.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석판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흐음. 이건 문글로즈가 늘 존재할 거라고 말하던 미래인가. 애초에 석판의 정보조차 유출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에이브라함과는 다르게 문글로즈는 누군가 나타나 석판 조각을 통합할 거라고 했었지.
“음? 그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샤를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알아내고 싶었다. 자신이 석판을 얻은 세계가 바로 문글로즈가 예상하던 미래라는 건가.
-그 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겠구나. 신의 길을 걷고 있는 자여.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알 것 같구나. 예언자를 아느냐?
“예언자 헤르메스를 말하는 겁니까?”
-잘 알고 있군. 그는 내 사형제 사이먼을 속여서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었다.
석판이 깨질 때의 장면 회상을 자세히 분석할 때, 사이먼의 뒤에 존재하는 흑막이 바로 헤르메스였단 말인가?
샤를은 놀라운 진실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사이먼을 통해 석판을 빼앗은 뒤에는, 그를 다른 세계로 보내서 한동안은 살려뒀었다. 그리고 쓸모없어진 그를 죽이고 석판 조각을 빼앗았지.
“그럼 석판 조각 하나가 헤르메스의 손에 들어갔다는 겁니까?”
-바로 그렇다.
-문글로즈가 예언했던 미래에서 네가 해야할 일이 그 무엇보다 크다. 난 문글로즈와 약속을 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가 예언한 미래가 맞다면, 모든 석판 조각을 통합하려는 존재에게 석판을 건네주겠다고 말이야. 그러니 내 것을 누군가에게 줄 때가 되었군.
그렇게 말하고 오스굿이 손을 뻗자 샤를의 심상 세계 속으로 또 다른 석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 석판이 갖고 있는 공간은 끝없이 보이는 울창한 수해(樹海)처럼 보였다.
석판이 오벨리스크로 날아와 그대로 달라붙어서 석판의 불안정한 부분을 채웠다.
수해가 샤를의 심상 세계 어귀에 자리 잡자, 화산 옆쪽에 거대한 평원과 울창한 숲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 수호자가 느껴지지만, 지금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집중해야 할 사람이 있었으니까.
현실로 빠져 나와 오스굿에게 물었다.
“예언자는 석판에 당신의 유해를 찾아야 시문두하가 강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적어뒀더군요.”
-예언자가 남겼다고? 그 석판 자체가 함정이다. 그는 매우 간교하고 계략을 부리길 좋아하는 자라, 그의 장단에 맞춰주다가는 큰 곤욕을 겪게 될 것이다.
“시문두하는 어떻게 처리하죠?”
-그는 내가 가진 운명의 셉터를 훔쳤었다. 본디 그에게 주어지기에는 매우 과분한 물건이지. 지금 이 상황은 전부 시문두하가 자신의 권능을 통제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는 오스굿이 선언하듯 말했다.
-그의 계략을 파훼하고 죽여라. 운명의 셉터를 가져와 네 것으로 삼아라.
그리고 그 계책을 이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