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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44화 (143/221)

제144화 - “여긴 어디지?”

샤를은 그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뭐지?”

그래. 이게 옳은 질문이었다. 샤를은 그 공간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치 그 존재가 무(無)로 이뤄진 것 같은 모습.

그의 앞에 마치 무한한 선율이 있었다. 선율은 열차의 철도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저 멀리 그 끝이 보였다.

끝은 마치 터널처럼 생겼는데 새하얀 빛으로 감싸져 있어서 그 무엇도 쳐다볼 수 없었다.

샤를은 이곳이 주문을 사용한 직후의 세계라고 판단했다.

‘이건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 같은 거야.’

일반인으로선 절대 알 수 없는, 초월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이었다. 이 무수히 많은 선이 서로 엉키고 얽혀 운명을 만든다.

한 발자국 뒤로 가서 하나 들여다본다.

무수히 많은 선이 보이는데, 그중 몇 개가 묶여서 매듭이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메트로폴의 풍경이 보였다.

‘뭐야, 이건.’

손으로 건드려 가져다 댄다. 그리고 풍경이 변한다.

*

다음날도 유스티나는 광장에 나왔다. 그리고 모리도 마찬가지로 광장에 나왔다.

작은 음악가 소년과 휠체어를 탄 여성. 둘에게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그들에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렸다는 것이었다. 상실의 아픔이다.

모리는 린덴 저택에서 가족들을 다 잃었다. 함께 지내던 고아원의 아이들도 이제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의 삶을 살고 있었다.

유스티나는 계몽주의자에게 잠식당해서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사이에 그녀는 요원의 삶도 잃어버렸고 스스로의 정체성도 잃었다.

이 상실 때문인지, 둘은 어째서인가 서로 잘 어울리게 되었다. 나이를 뛰어넘어 마음이 통하는 친구라는 느낌.

거기다 유스티나는 자신의 발의 상처에 모리의 음악이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실제로 발이 들뜨는 것 같은 감각을 받기도 했었고.

“오늘은 근처에 맛있는 음식점에 데려다 줄게.”

“와! 정말요 누나?”

“응. 좋은 음악을 들려준 보답이야.”

*

그 장면이 보이자 샤를은 화들짝 놀라서 손을 뗐다. 이 매듭 하나하나가 모두 ‘운명’이다.

선과 선은 각자의 운명. 매듭은 그 선들이 얽혀서 만드는 사람들의 운명.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샤를은 유난히 반짝이는 선 하나를 발견했다.

직감하길, 그 선은 자신이었다. 샤를 헥센의 선. 너무나도 밝게 빛나고 타오르고 있어서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주 시커멓고 진득하게 검은 선 하나가 날아와 샤를의 선과 매듭이 얽히더니 곧이어 가위 모양으로 변해 샤를의 선을 잘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 선은 조금 뒤의 미래에는 곧 절단될 것처럼 보였다.

이제 한 발자국만 더 내디뎌 걸으면 그렇게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샤를은 그 선에 손을 가져 다 댔다.

*

인형은 꿈을 꾼다.

“흐흐, 그래. 그래!”

인형은 눈을 떴다. 눈앞에는 미친 듯이 웃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쓰고 있던 작업용 돋보기를 벗으면서 말했다.

“완성되었군. 내 걸작품!”

“…….”

“난 널 만들기 위해 꼼짝도 하지 않고 버텼다. 의식을 방해하고 교단의 성물을 훔쳐간 그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다! 넌 내 소망을 들어줘야 해.”

인형이 느낀 생각은, ‘싫다’는 감정이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이제부터 널 알료샤라고 부르겠다! 자, 저기 저쪽에 보이는 인형을 조각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인형은 창조자의 의견에 따르게 된다.”

생각과는 정반대로, 그렇게 말했다. 몸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 창조자는 알료샤를 지배하고 있었다.

“음? 언어 모듈에 문제가 생겼나? 정상적으로 말하는 것 같지가 않군. 어쨌든 시작해봐라.”

자의식을 가진 인형은 그렇게 타의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요나스가 보낸, 인간의 신체를 베이스로 만든 전투 인형들과 격전을 벌였다. 놈들의 신체를 박살내고 피를 뒤집어썼다.

인형은, 그럴 때마다 자신이 만들어진 의도가 이것뿐인가 생각했다.

“이번엔 반항하는 적대세력의 마피아 놈들이다!”

명령에 따라 적을 죽이고 난 이후에 느끼는 감정은, 반발심이었다.

살해 그 자체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하지만 자의적으로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타의적으로 적을 죽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왜 나보다 약한 존재의 말을 들어야 하지?]

그리고 놈의 심장에는 왜 위대한 존재의 신성이 박혀 있는 것이지? 그건 놈에게는 과분하다.

하등한 창조자는 자신보다 우월한 피조물을 섬겨야하다. 그 반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생각은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어떤 계기가 있었다.

임무를 실패하고 난 그날, 보그다노프가 쭈뼛거리면서 알료샤에게 접근했다.

“음. 저, 저기 말이지.”

“…….”

하찮은 인간과 말을 섞는 것조차 우습다. 무표정하게 보그다노프를 보는 알료샤.

“이, 이거 받아줄래? 역시 허, 허리춤에 거는 거 위험한 것 같아서. 너 존나 쌔잖아.”

뭐지? 마치 청혼을 할 때 선물을 주는 것처럼 말하는 걸보니 이상할 정도의 불쾌감이 생겨났다.

하지만 알료샤는 보그다노프가 건넨 이스칸드의 적석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그 안에, 욕망이 있었다.

알료샤는 여태 창조주에게 반항할 수 없다는 알고리즘을 두뇌 모듈에 장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스칸드의 적석을 받자마자, 우선 순위가 변했다. 최우선 순위를 자신의 욕망으로 설정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인형은, 드디어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

흘러들어온 알료샤의 기억과 운명이 보인다. 샤를은 알료샤의 내면의 모습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창조되자마자 주인을 배반하기 시작했다. 조각 기계는 피조물이 창조주를 배신하는 것을 즐기고,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강한 억지력으로 피조물을 억누르는 것이 바로 조각구원회의 비술 중에 하나다. 그 비술을 파괴한 것이 바로 이스칸드의 적석.

‘이런 식으로 알료샤는 자신의 욕망을 해방했던 건가?’

조각구원회의 온갖 비술의 집약체인 알료샤는, 계기가 생기자마자 자기 자신을 해방했던 것.

샤를은 그런 알료샤의 운명과 너무나도 강하게 매듭이 묶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무리 잡아도 떼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잘라낼 수도 없고.

이렇게 뒤엉킨 실을 풀어내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다. 그렇다면 샤를의 운명이 잘려나가지 않게 바꿀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이 실이 모자란다면, 다른 실을 이으면 된다. 샤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 먼 곳에서 운명을 끌어와도 안 되고, 적대적인 운명을 끌어와도 안 돼.”

가장 가깝고 도움의 확률이 높은 실을 가져와야 한다. 조금 전에 봤던, 모리와 유스티나의 운명에 손을 뻗었다.

그 운명의 실이 샤를의 인도에 따라 끝까지 따라온다. 모리와 유스티나의 운명이 샤를의 운명과 겹쳐진다.

그 뒤에, 작은 실 하나가 더 따라붙었다. 샤를은 그 실에 주목했다.

*

부상을 입은 뒤, 플로나는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재생력 덕분에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

하지만 당장은 무기가 없었다.

“음. 어쩌지.”

무기가 없다고 싸우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요. 샤를 님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명령을 어기는 수밖에 없어!”

플로나는 당당하게도 샤를의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너무나 손쉽게 샤를의 비밀 서재가 있는 문을 열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샤를은 기겁했다.

‘아니!? 어떻게 들어간 거야!? 보안을 그렇게 중요하게 해뒀는데.’

아무래도 플로나의 스토커 능력은 상상 이상인 것 같다.

비밀 장치를 숙숙 사용해서 비밀 서재로 들어간 플로나는 그곳에서 샤를의 콜렉션을 뒤졌다.

샤를이 플렉스 ̄하게 된 이후 충동구매 했던 여러 무기가 놓여 있었다.

샤를은 보통 중요한 물건은 심상 세계에 가져 다두는 편이지만 그다지 중요한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비밀 서재에 넣어뒀었다.

“음. 여긴가.”

무기고를 뒤적거린 플로나는 곧이어 유물 하나를 찾아냈다.

“둔기가 아니라서 좀 아쉽지만, 아쉬운 대로 이 대검이라도 쓸까.”

딱 봐도 심상찮아 보이는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대검이었다. 손잡이 포함, 2m는 되어 보일 법한 대검을 한 손에 들고 플로나는 이리저리 검을 휘둘러보았다.

“음. 딱 맞는 거 같아!”

‘아냐! 그거 위험한 물건이라고!’

샤를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 핏빛 대검의 이름은 ‘무장혈사제의 대검’이었다.

혈사제라고 불리는 이계의 존재들이 들고 다니는 대검으로, 강한 전투 능력을 발휘하는 대신 사용자의 피를 흡수하는 마검이었다.

그리고 샤를의 나머지 컬렉션을 이리저리 뒤지다가, 곧 칼튼의 혈청을 발견했다. 샤를에게 딱 두 병이 있었는데, 한 병은 그의 품에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비밀 서재에 보관하던 중이었다.

“좋아. 이제 샤를님을 따라가자.”

무기도 챙겼겠다. 든든해진 플로나가 칼튼의 혈청에 손을 댔다.

*

“흐으. 플로나 너는 진짜.”

플로나의 실은 누가 인도하지 않았는데도 플로나의 실이 따라와 샤를의 실과 엮이기 시작했다.

“어쨌든 고맙다.”

샤를은 왜인지 뿌듯해지는 걸 느끼면서 매듭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운명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원래라면 얽힐 일이 없는 운명을 끌어온 결과, 미래가 바뀌게 될 것이다

운명 조작의 주문 사용이 끝나자, 샤를은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 가위검이 들이밀리는 것이 보인다. 목과 너무 가깝다.

‘절단’이 시행되려고 할 때쯤, 플로나가 칼튼의 혈청을 사용해서 순식간에 샤를의 곁에 도착했다.

그리고 대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면서 가위검의 한쪽 날을 쳐내서 궤도를 바꾸었다.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게 더 먼저였다.

“꺄악! 샤를님에게서 떨어져!”

가위검이 튕겨져 올라가면서 허공을 절단했다. 허공에 검은색 균열이 일어나면서 잘라지더니, 곧 그 균열이 사라졌다. 공간을 자른 거다.

샤를은 자신이 운명을 조작한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상황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플로나! 조심해! 그 대검은 사용자의 피를 빨아들인다.”

“알겠습니다!”

-쭈인 진짜 죽을뻔 한거 아니야?

-그러게.

샤를은 플로나가 앞을 막고 있자 든든해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운명 조작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동시에 샤를은 자신이 사용한 주문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과거를 ‘수정’해서 현실의 운명을 뒤집을 수 있다니?

여태까지 그가 사용했던 주문들은 직관적으로 불꽃을 피어올리거나 냉기를 만들거나, 환상을 만드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운명 조작 주문은 샤를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 주문은 비직관적이고 주문의 단점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이 주문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 부작용이 있을 지도 모른다, 샤를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앗!? 샤를님!? 플로나 누나!?”

그때, 멀리서 아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이올린을 등에 매고 유스티나의 휘체어를 밀고 있었던 모리였다.

‘이게 이렇게 엮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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