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 어쩌다 운이 좋게도 에드워드의 계획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에드워드는 가장 먼저 보물을 발견할 사람을 죽일 셈이야. 그리고 데오그란트와 협력하고 있군.’
샤를은 데오그란트가 이미 누군가와 협력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단순히 아버지의 비서 역할만으로는 끝내고 싶지 않은 가 보군.’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 헬파이어 클럽이 이미 에드워드와 접촉해 있었다? 이건 샤를도 모르는 설정이었다. 게임 플레이를 할 때, 몇 번 정도 헬파이어 클럽의 교주가 되어본 적도 있었지만 이런 사건은 금시 초문이었다.
‘나는 철저하게 메인스토리를 중심으로 따라가고 있었어. 그런 내가 이런 중요하지 않은 사건을 신경쓰지 않은 걸 수도. 어쨌든 교단 내부의 영향력이 여기까지 미친다는 게 중요해.’
‘근데 이 복도, 아무리 봐도 수상해. 대체 이런 곳을 왜 만들어 뒀지?’
방 안을 감시할 수 있는 구조였다. 누군가 이곳에서 보고 있다. 요하네스 헥센의 비서인 데오그란트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조금 더 움직이자 그곳에는 비앙카 헥센이 있었다. 비앙카 헥센이 기르고 있던 원숭이 지엔은 벌써 아까보다 털이 더 자라 있었다. 원숭이가 거울 앞에 앉자 뒤에 비앙카가 섰다.
“자, 미용할 시간이란다.”
비앙카는 지엔의 털을 깎았다. 근데 가위질이 너무 빨라서 손이 안보일 지경이었다.
‘뭐야?’
아니, 비앙카는 거울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샤를은 비앙카의 눈이 뒤집혀 있는 걸 보고 진짜 미친 줄 알았다.
“요호. 요호호.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왜 굳이 보물을 찾아야하지? 보물을 안 찾고 그냥 죽이면 되잖아 유산을 상속할 사람이 나밖에 남지 않으면 아버지도 내게 모든 유산을 상속해주겠지. 그치? 지엔?”
샤를은 이 원숭이도 말을 할 줄 알았으나 그냥 원숭이는 우끼끼라고 울음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원숭이의 털을 다 잘라내버린 비앙카는 이제 원숭이를 바닥에 눕히고 말했다.
“자, 이제 잘 시간이에요 우리 아들.”
‘아들?’
아니, 전혀 아들로 보이진 않았다. 눈동자가 돌아온 비앙카는 눕힌 원숭이 옆에서 소아간호 책을 들어서 무어라 이야기했다.
“엄마가 간호하는 방법을 배웠다니까. 그러니까, 전신이 불편한 아이를 위한 간호 방법도 여기 적혀 있지.”
그리고는 누워있는 원숭이를 붕대로 꽁꽁 싸매는 게 아닌가? 보통 학대가 아니라 중증 학대였다.
그때쯤 샤를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더 볼 필요도 없었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같아 보여도 비앙카 이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에드워드보다 더 미친 것 같다.
갑자기 전신에 소름이 쫙 끼친다. 샤를은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벌떡 일어나서 총을 꺼냈다.
샤를의 뒤에 붕 떠 있던 철검이 즉시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그놈이야.’
저 멀리 저번에 봤던 그놈이 천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시뻘건 눈동자가 걸레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났다.
샤를의 철검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놈은 자신의 손톱을 들어서 철검을 쳐냈다. 그리고는 머리카락이 저절로 움직여 꽁꽁 묶었다. 철검을 머리에 묶은 놈은 새하얀 치아가 보일 정도로 씨익 웃으면서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신기한 장난감이라도 얻은 아이 같은 모양새였다.
‘저게 대체 뭐야?’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저게 사람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싸울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밀폐가 잘 되었더라도 바로 옆에 있는 에드워드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할 리가 없다.
샤를은 빠르게 뒤로 돌아서 원래 들어왔던 창고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창고문 밖으로 빠져나온 뒤에 초상화를 가져다 뒀다.
더는 놈이 쫓지는 않는 것 같았다. 철검 하나를 잃어버렸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잔뜩 사두었으므로 별로 문제는 없다.
“너, 봐버렸구나. 그 애?”
“…….”
샤를의 앞에 누군가 있었다. 방금전까지 서재 앞에서 만났던 엘리자베스였다. 그녀는 팔짱을 끼면서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고모님. 그 애라뇨? 그게 사람입니까?”
“사람? 글쎄. 잘모르겠네. 따라와.”
엘리자베스가 웃으면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아무래도 들을 얘기가 있는 것 같아서 샤를은 그녀를 따라갔다.
걷다가 문득 샤를은 눈치챘다. 방금 전의 그 복도에 놈이 있었다면……. 샤를이 자고있는 동안에 그놈이 벽 뒤에서 그를 관찰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음을…….
순간 소름이 쫙 끼치는 것 같았다.
*
‘괴물’은 ‘아픈 철덩이’를 쏘는 그 사람이 던져준 ‘철 토막’을 들고 신기하다는 듯 살펴봤다.
멋있다. 검에 있는 장식도 멋있고 칼날은 자신의 손톱만큼이나 날카로웠다.
이런걸 나한테 주다니, 나랑 친해지고 싶다는 뜻일까? 그런데 이 곳에 온 외부인은 그 사람이 처음이었다.
‘괴물’의 세계는 단조롭다. ‘하얀 옷’을 입은 나쁜 아저씨들을 만나고 무섭고 수염난 늙은 사람을 만난다. 가끔 ‘베스’가 맛있는 사탕을 줄 때도 있지만 베스는 그다지 많이 볼 수는 없다.
복도 옆에 있는 빨간색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얼른 지하로 내려오라는 뜻이었다.
가지 않으면 ‘따끔’해진다. ‘괴물’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가 자신이 들고 있는 ‘철 토막’을 어딘가 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하얀 옷’을 입은 나쁜 아저씨들을 만나러 가야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
*
엘리자베스의 방으로 들어간 샤를은 이곳이 본관이고, 방금 전에 있던 통로와는 연결되지 않은 것을 알았다. 누군가 들을 일은 없다.
그 점이 안심되는 것과 동시에, 묵는 곳을 서관에서 본관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를은 방 안을 살폈다. 하나같이 고급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사치스럽다. 동시에 샤를은 옆쪽 철상 사이로 쳇바퀴를 돌고 있는 햄스터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이 저택의 사람들……. 하나같이 동물을 기르고 있어. 왜지?’
샤를이 주변을 살피든지 말든지 방으로 들어온 엘리자베스는 서랍을 열어서 담배를 꺼냈다.
고상한 상류층 여성의 경우, 시가보다는 궐련을 폈으며 담배를 필 때 손으로 집는 게 아니라 전용 담배 집게를 들어서 집어서 폈다.
또 담배를 손으로 잡아서 피더라도 담배를 집어넣을 담뱃대(관통형 고깔 모양)를 따로 만들어서 그 안에 궐련을 넣어서 폈다. 손에 더러운 것이 닿기 싫다는 고상한 생각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담배를 빨아들인 다음에 내려놓았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애가 그런 식으로 담배를 피는 모습은 언밸런스함 그 자체였다.
“그 녀석은 1890년도 생이야. 순서로 치면 너보다 형이겠네.”
“형? 왜 그런 식으로 말하죠?”
“일단 피가 이어져 있긴 하거든. 너희 둘 다.”
샤를은 그 말을 듣고 떠올려서는 안 될 생각을 떠올렸다. 복도에서 마주쳤던 그 짐승이, 어쩌면 샤를의 형제일 가능성을.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요하네스에게는 여자가 꽤 많았어. 가끔 하녀를 안기도 했고 말이야. 하녀 중 하나도 자식을 낳았지.”
“……설마.”
“그래, 방금 봤던 그 아이도 요하네스의 사생아란다. 지금은 그 누구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하는 진실이지. 그 아이는 그냥 ‘괴물’이라고만 불려. 이름 조차 없지.”
“어떻게 그럴 수가…….”
샤를은 자식들을 전부 모아서 보물을 찾아내라고 외치던 요하네스를 떠올렸다. 서자였던 샤를과 유마도 이 저택으로 불러들였음에도 그 이름도 없는 존재는 자식으로 인정받지도 못한 셈이었다.
“못 믿겠지만. 사실이야. 그리고 그 녀석이 허락받은 시각은 밤이지. 평소에는 저택 어딘가에서 돌아다니면서 살아.”
“이걸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죠?”
그때 엘리자베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총?’
그건 열쇠처럼 보이면서도 총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열쇠총이었다. 연사는 불가능해보였지만 그래도 총은 총이었다.
“내가 이 저택의 모든 문을 관리하는 비밀 관리인이거든. 아버지께서 내게 유산으로 남겨주신 거지. 이 저택은 거의 천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비밀을 만들었어. 그리고 이제 내가 그걸 관리해.”
“그걸 왜 제게 말씀하시는 거죠?”
그 질문에 엘리자베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따로 말했다.
“너도 영성자겠지?”
“……그렇습니다.”
“어느 교단에 속해 있니?”
“마도서를 읽고 독학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뭐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다. 빙의 전 샤를은 그짓거리를 진짜로 했거든.
“혼자 마도서를 읽고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아있는 거야?”
“…….”
“뭐, 어쨌든 아무래도 상관없지. 난 이 저택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조력자로서 널 골랐거든.”
“네?”
“너의 형제들이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는 건 알고 있지?”
“…….”
솔직히 말해서 저택 내부를 돌아다니며 관찰한 것만 해도 셋 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넌 그런 문제가 보이지 않더라고. 동물도 기르지 않고.”
“……? 동물이 무슨 문제라도.”
“아니. 별거 아니야. 그 부분은 별 문제가 없어.”
그렇게 말을 얼버무린 엘리자베스가 담배를 재떨이에 털어 넣었다.
“보물을 찾는데 나와 협력하는 게 어떠니.”
“협력하고 난 뒤엔?”
“네가 다음 대 가주가 되어 유산을 물려받는 거야.”
“고모님이 받는 건 뭡니까?”
이런 협력 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로 돌아가는 게 옳다. 그냥 믿기에 엘리자베스는 여러모로 수상하고 비밀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난 계속 비밀 관리인의 자리를 물려받는 거지. 그러면 나머지는 불만 없어.”
“……그 비밀, 그게 뭔지 제가 알 수 있습니까?”
“아니. 비밀은 혼자 알고 있으니 비밀인 거야. 세 명이 아는 순간부터 그건 공공연한 진실이 된단다.”
“세 명?”
“나와 가주 한 명은 알고 있어야만 하는 비밀이지.”
꽤나 극단적인 엘리자베스의 주장이었지만, 그렇게 중요한 비밀이라면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자베스가 샤를에게 비밀이 존재한다고 털어놓은 이유는 둘 중 하나일 터였다.
샤를을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 말하거나, 아니면 일이 끝나고 난 뒤에 샤를의 뒤통수를 치면서 목숨을 끊어버리거나.
물론 전자는 설득력이 없다.
샤를이 김연수일 때조차, 그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려 결국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취직해야 했을 때까지 어린 시절부터 그가 겪은 일들에서 얻은 교훈은 대부분의 사람을 믿지 말라는 점이었다.
어쨌든 그런 것을 떠나서 엘리자베스와 협력하는 것은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지금도 매일 밤 돌아다니는 괴물의 존재가 뭔지 알아챌 수 있었으니까. 이 저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협력자의 존재는 필요하다.
완전히 믿을 수는 없겠지만.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럼 잘 됐다. 보물에 대해 알아낸 정보를 앞으론 계속 공유하는 게 어때?”
“나쁘지 않군요.”
샤를은 여태까지 알아낸 것을 말했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모든 비밀을 말하진 않았다. 특히 그의 어머니 샤를로테의 목걸이에 관해서는.
“……그런 겁니다.”
“흐음. 300년 전의 에단 헥센을 마지막으로 보물의 행방이 사라졌다는 말이지?”
“고모님은 아는 것이 있습니까?”
“나도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이 있어. 너. 요하네스가 왜 보물에 집착하는 지 알아?”
“아버지가요? 아니요. 모릅니다.”
샤를은 아버지라는 단어를 쓴다는 점에서 굉장히 이질적이고 불쾌한 느낌을 받았지만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듣기로는 이 보물이 가문의 흥망성쇠와 관련이 있다고 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게 아닙니까?”
“요하네스는 보물을 찾지 못하면, 무언가 ‘잃어버려’.”
“잃어버린 다니요?”
샤를은 뭔가 표현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뭘 잃어버리는데? 그리고 잃어서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요하네스는 오래 살지 못한다면서.
“어차피 오래 못 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병원에서 췌장암 진단을 받은 정도라면, 어떤 식으로든 조작할 수 있어.”
샤를은 턱을 괴었다. 처음부터 거짓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
곧 죽을 거라는 핑계로 헥센 가문의 사람들을 모았다. 보물을 찾기 위해서 굳이 헥센 가문의 사람들을 모을 필요가 있었을까?
요하네스는 어마어마한 거부였고 그 돈이면 메트로폴 잡역부를 병사를 징집하듯이 불러서 만 단위로 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목적이 보물찾기건 혹은 다른 목적이 있건. 헥센 가문의 사람이 필요한 것이었다.
또는 외부인에게는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비밀이 존재하던가. 알아차리기만 해도 위협이 되는 일일지도 모르지.
몇 가지 추측이 있었지만 샤를은 하나만 입에서 열었다.
“보물을 찾는 데, 헥센 가문의 사람이 필요한 것 같군요.”
“빙고.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하네스에게는 헥센 가문의 사람이 필요한 거야. 그가 낳은 자식들 말이야.”
그 부분은 따로 조사를 통해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샤를은 엘리자베스의 단어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그가 낳은 자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