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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33화 (33/221)

제33화 - 샤를은 건물의 복도를 걸었다. 조금 걷자 꽤 많은 아이가 보였는데 그들은 자기들끼리 놀거나 따로 몰려다녔는데 외부인인 샤를을 신기하게 보다가 곧 사라지곤 했다.

그때 성인 여성을 만났다. 갈색 상의에 흰 치마를 입은 여성은 고아원의 교사를 맡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 안녕하세요…….”

교사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집사에게 들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와 잠깐 대화를 나눠서 정보를 습득했다.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은, 이 고아원의 정체였다.

“사실 여긴 평범한 고아원은 아니에요. 아이들은 대게 정신에 문제가 있거든요. 또 가끔은 고아가 아니더라도 이곳에 오기도 하죠. 흔히 말하는 이상행동을 한 경우에 부모가 와서 직접 맡기고 가기도 한답니다. ‘교정’이 끝날 때까지는 말이죠.”

“교정이라니요?”

“메트로폴 정신 병원에서 유명하다는 정신의학자분을 저희 고아원으로 모셨거든요. 이곳은 아이들의 정신을 치료하는 곳이기도 하고 또 갈곳 없는 아이들을 받아주는 고아원이기도 하죠.”

“흐음.”

그냥 고아원이 아니라 일종의 정신병원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삼엄한 담장이 걸려 있는 것에도 이유가 있었던 것 같군.

“아, 마침 정신의학자 선생님께서 오실 시간이네요.”

“그가 누구요?”

“메리 웰로드라는 분이세요. 그리고 선생님은 여성이랍니다.”

“……여성?”

이 시대에 정신과 의사 같은 것은 대게 남성이었다. 정신병원 의사는 시대를 막론하고 기피 업종이었으니까 이런 극악한 곳에 지원할 의사는 그리 많진 않다. 특히 여자는 더 그렇지.

고아원은 완전히 꽉 막힌 폐쇄적인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의외로 출입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식료품 및 소비재를 조달할 사람들, 고아원 교사들, 그리고 정신과 의사도.

“고아원 원장은 누구죠?”

“아 원장님은 집사님께서 대신 맡아주시고 계세요. 이 저택을 쓰는 이상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렇군.”

몽푀르 집사……. 그가 하는 일은 단순히 이 집안의 일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런저런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에브렌 린덴의 수족이라는 느낌이 든다.

“오셨네요.”

대화를 나누던 교사는 건물 1층 정문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가리켰다. 메리 웰로드는 초췌한 인상의 여성이었다. 잘 꾸미면 예쁠 것 같지만 짙은 피로가 다크 써클이 되어서 그녀의 눈 밑에 함께 하고 있었다.

“안녕, 세라. 이분은 누구?”

교사가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말했다.

“사라진 아이를 찾아주러 오신 탐정분이에요.”

“탐정……이라구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샤를 헥센입니다.”

샤를은 손을 내밀었다. 메리는 떨떠름해 보이는 듯 악수를 했다. 메리가 교사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사라진 아이가 누구야?”

“모리요.”

“바이올린 켜는 모리?”

“네.”

“그 아이가 대체 왜 사라졌지?”

“그건 저도 잘…….”

샤를이 그녀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모리라는 아이는 사라질 이유가 없었던 겁니까?”

“평소에 말은 아무것도 안 하는 아이였어요. 바이올린을 켜는 것 말고는 사실 다른 욕구도 없어 보이기도 했죠.”

“그 아이는 서번트 증후군입니다.”

샤를은 이미 현대에 그런 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얌전히 입을 다물고 메리의 말을 경청했다.

“메트로폴 의학협회에서도 나온 지 얼마 안 나온 단어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아이는 자폐증이 심각한 아이입니다만, 바이올린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죠.”

“그래요?”

“서번트 증후군에 걸린 태아의 좌뇌는 우뇌보다 늦게 성장합니다. 좌뇌 성장 중 태아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좌뇌 손상으로 인해 우뇌의 기능이 탁월해짐으로써 서번트 증후군의 증상이 발생한다고 우리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여러 면에서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아이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 자체는 이상하진 않겠군요.”

샤를이 말하자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것에 꽂히면 다른 건 하나도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아마 음식을 먹지도 않을 겁니다. 그 아이를 꼭 찾아주세요.”

샤를은 두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메리는 확실히 정신과 의사가 맞다. 그녀는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 말에 확신을 갖고 있다. 교사는? 사라진 아이에 대해 슬퍼할 뿐이지 제대로 된 진상은 모르고 있다.

샤를은 두 사람과 헤어져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면서 이 저택의 구조를 익혔다. 전체적으로 시야가 탁 트여있다. 복도가 길게 이어져 있고 양옆으로 방이 여러 개 있는데 따로 교실은 없고 그곳에 아이들이 머무르는 것 같다.

돌아다니다가 샤를은 아무도 없는 창고 같은 곳을 발견했다. 창고 창문을 향해 뛰어간 그는 그 즉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창문 밖에는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의 턱이 있었다.

작은 턱을 손가락 다섯 개만 쥐고 매달렸다. 암벽 등반하듯 다섯 손가락을 턱에 걸치고 몸을 살금살금 내려서 옆쪽으로 이동한다.

아래층까지는 꽤 거리가 있지만 충분히 뛰어내릴 만했다. 다음 창문에서 뛰어내려 아래층 턱을 잡아채고는 몸을 일으킨 뒤 창문으로 들어간다. 아까 전 들렸던 주방 옆의 식료품 창고였다.

‘창문에는 쇠창살을 설치해두진 않았군.’

거기까지 가면 확실히 가두고 있다는 느낌이니까 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식료품 창고에서 기회를 틈타서 주방으로 돌아왔다. 주방장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주방 옆에 있는 파인애플들이 수상할 정도로 많이 있었다. 왜 이렇게 파인애플이 많지?

뒤쫓아오는 몽푀르 집사를 떨쳐냈다고 판단했다. 샤를이 주방에 온 것은 걸리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주방에서 발견한 핏자국.

왜 핏자국이 있었을까? 가까이 다가가자 누군가 헝겊으로 피를 닦아낸 자국이 있었다.

갈색으로 변질 되어서 제법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샤를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벽난로를 발견했다. 오븐 옆 선반. 걸리적거리는 쇠꼬챙이로 잠긴 부분을 열었다.

‘흐음.’

목탄을 집어넣은 포대가 있었다. 목탄을 옆으로 치우자 뒷면이 나온다. 안에는 열 수 있는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와 이거 비밀통로잖아?

-파기, 네가 먼저 들어가 봐.

-응.

파기나레코르는 마도서에서 너무 멀리 멀어질 수는 없지만 몇 미터 정도는 떨어져도 문제 없었다.

-여기 바로 옆에 통로가 있어. 근데 너무 어두워.

-그건 상관없지.

샤를은 목탄 포대를 옆으로 대어 놓고 안으로 들어선 다음 웅크리면서 목탄 포대를 끌어당긴 다음 문을 닫았다. 좁아서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밀통로로 들어간 흔적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비밀통로 는 웅크리고 들어가야 할 정도의 크기였다. 기어가면서 옷이 지저분해졌지만 개의치 않고 안으로 들어선다. 조금만 더 걷자, 기묘하게 생긴 통로가 나왔다.

굉장히 어두웠지만 샤를은 영성으로 인프라 비전을 형성할 수 있었다. 또렷해진 시야로 주변을 살펴보니, 벽돌로 이뤄진 공간이 있었다.

-이쪽으로 들어간 건가.

-주인! 여기여기!

파기나레코르가 손짓하는 곳으로 향하자 위로 올라가는 통로가 나왔다. 그리고 샤를은 여기가 어딘지 깨달았다.

‘여긴 에브렌 린덴이 사는 본 건물이잖아.’

두 건물을 잇는 비밀통로라……. 샤를은 벽난로에서 기어 나왔다. 벽난로 뒤쪽으로 이어져 있던 모양이었다. 지저분한 검댕이를 대충 천으로 닦아낸 샤를은 주변을 둘러봤다.

누군가가 살았던 방 같은데 정확히 누구의 방인지 알 수 없었다. 어딘지 확인해보기 위해 방을 뒤졌다. 젊은 여성의 방인 건 확실했다.

머리빗, 꽤 아름다운 장식의 악세서리들, 그리고 미스트위버 대학의 교복을 보아 세릴다 린덴의 방이었다. 죽은 지 꽤 되었는데, 어째서 이 방은 정리하지 않았을까?

자기 딸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방을 아예 정리하지 않은 걸까?

그런데 벽에 걸린 사진이 좀 묘했다. 세릴다는 형제자매가 여럿 있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찍은 사진은 오직 부모와 찍은 사진뿐이었다.

‘형제자매들과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어. 오직 부모와 찍은 사진뿐.’

린덴 가문의 자식이 여럿 있다는 건 게임을 돌아다니면서 자동으로 얻게 되는 정보다. 애초에 메인스토리와 별로 연관이 없는 린덴 가문이지만 그래도 부호 중의 한 명이니 알아는 둬야 했기에.

형제자매들과 불화가 있는 건가? 거기다 또 이상한 게 더 있다.

사진 속 세릴다는 그다지 웃고 있지 않았다. 환하게 웃는 부모와 대조적이게도, 입꼬리를 올리면서 억지로 미소를 짓는 것 같다는 인상을 풍겼다.

흥미가 생긴 샤를은 이 방 전체를 뒤졌다. 그러다가 꼭꼭 숨겨진 물건을 발견했다. 일기였다.

‘세릴다 린덴의 일기?’

세릴다는 죽은 에브렌 린덴의 딸 이름이었다. 흥미가 돋은 샤를은 일기장을 꺼내서 확인했다. 일기장에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지만 샤를은 잠금장치를 아예 잘라 내버린 뒤에 열었다.

첫 페이지를 열었다.

『1911년. 1월 7일 흐림.

성인이 된 오늘, 나는 린덴 가문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고아원에서 자랐다. 어렸을 적은 기억나지 않지만, 고아원의 기록부에서 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난 린덴 가문의 사람이 아닌 것이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내 마음 같다. 난 이제 성인이 되었고 이제 내가 이 집 자식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왜 부모님은 그걸 알려주시지 않는 걸까.』

‘뭐야?’

세릴다가 친딸이 아니었어?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세릴다 린덴의 정보를 파악했다. 미스트위버 대학에 합격해서 기뻐하는 내용.

그리고 남자친구가 생겼다가 차였다는 둥.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역시 형제자매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샤를은 다음 페이지를 넘겼을 때, 의미심장한 문구를 발견했다.

『1911년. 2월 7일 맑음.

난 언젠가 아주 끔찍한 형태로 살해당하게 될 것이다.』

이전 페이지가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한 욕설로 가득 차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왜 스스로 끔찍한 형태로 살해당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있었나? 영성을 가지고 있어서 혹 미래를 예지한 것일까? 그런 것 치고는 다음 페이지에 평범한 일상이 기록되어 있었다.

‘페이지가 뜯겨나갔군.’

자세히보니 이상하게도 이전 페이지를 잡아 뜯었다. 다음 페이지도 아니고 이전 페이지? 뭐지 대체? 보통, 미스테리 추리물에서는 여기에서 막힌다. 더이상 물리적으로 얻을 단서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샤를은 보통의 탐정이 아니었다. 이 일기장을 챙기고는 심상 세계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대한 오벨리스크 앞에 도착하자마자 초에 불을 붙이고 잔상을 확인해 점을 쳤다.

하얀빛이 거대해지기 시작하더니 어떤 장면을 비춘다.

그건 세릴다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늦게 귀가했다가, 마침 저녁을 먹으러 거실로 가고 있었다. 거실에서 누군가 대화하는 모습을 본다. 그녀의 부모인 린덴 부부였다.

“그래서, 그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오?”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에브렌 린덴의 남편인 도어 린덴이 묻자 에브렌이 대답했다. 세릴다는 왠지 마음이 뭉클해져서 둘에게 인사를 하려다가 그 순간 멈췄다.

“그 아이를 죽일 수 있겠소?”

“내 손으로는 도저히 못 하겠어요.”

에브렌 린덴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세릴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해야만 하오. 죽이지 않으면 우리 가문의 염원은 끝이 나고 말아.”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고 끔찍하게 죽이죠?”

“우리는 불가능하지. 그래서 그자들에게 대신해달라고 하게끔 전해줄 수 있소. 마침 그자들은 시체가 되어줄 사람을 원하는 것 같더군.”

“하지만 그들에게 위임하면 그 아이의 시체는 돌려받을 수 없잖아요.”

“그건 걱정할 거 없소. 몽푀르가 되찾아올 거요.”

“여보…….”

너무 놀란 나머지 세릴다는 그대로 도망쳐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린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바들바들 떨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세릴다는 그 즉시 일기장을 꺼내서 미친 듯이 그 내용을 적었다가, 쭉 찢어내고는 입으로 씹어 삼켰다. 그리고 적었다.

『난 언젠가 아주 끔찍한 형태로 살해당하게 될 것이다.』

샤를은 그 순간 점술을 끝내고 현실로 나왔다.

‘이미 죽을 걸 알고 있었군.’

도망치거나 저항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제 죽음을 미리 인지했을 텐데도 말이다. 세릴다가 어떤 생각으로 살았는지는 지금으로선 도저히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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