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31화 (31/221)

제31화 - “맨 처음에 나는 그 가문에 관해 정보를 조사하다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 렘 시대의 기록은 거의 남지 않았으니, 나는 내가 가장 잘 아는 사학자 친구에게 도움을 구했지. 자네도 알 거야. 왜 저번에 봤던 그 뚱뚱한 친구 말이야.”

“찰스 라이스?”

찰스 라이스 교수는 프랜시스 드레이크 박사와 함께 아미티지 교수의 동료라고 보면 된다. 대학을 공략할 때는 항상 영입해야 할 유명한 인재 트라이앵글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 어쨌든 렘 시대의 기록을 찾는 건 꽤 어려웠어. 너무 오래된 까마득한 과거이기 때문이지. 그래도 찰스는 꽤 많은 정보를 알아왔어. 찾아본 결과, 그 가문은 꽤 오래전에 자취를 감췄다고 전해져. 하지만 우린 이런저런 정보를 대조에서 이름을 개명했다고 들었어.”

“에이브라함 가문에서 다른 가문으로 변했다는 말이지?”

“……그 이름을 계속 말하지 않는 게 좋아.”

그러고보니 그랬다. 처음부터 드레이크는 에이브라함 가문 대신에 ‘그 가문’이라는 식으로 말을 둘러서 표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에이브라함 가문을 조사하는 동안 어떤 기이한 신비학적인 사건을 마주쳤을 확률이 있었다.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는 건가?”

“……자넨 아직 괜찮지만, 나처럼 계속 빠지게 되면 위험해.”

샤를은 대충 어떤 말인지 찰떡같이 이해했다. 어떤 존재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영향력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 에이브라함이라는 가문을 자세히 조사하는 자는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 점을 상기하면서 샤를은 드레이크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드레이크는 술병을 들어서 새로 잔에 따르고는 익숙하게 입안으로 부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얘기하기 어려운 불길한 얘기였다.

“그 가문은 저주받았어.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계보를 이었던 후손들은 하나같이 천재거나 미치광이가 대부분이었다고 하더군. 그리고 기이할 정도로 운이 좋거나 끔찍하게 불운해.”

“천재나 미치광이라고?”

“확실한 건 그 가문의 혈통에 어떤 신비학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찰스가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들의 가문은 이상하게도 주기마다 어떤 신비한 일을 겪곤 했으니까. 나도 그러려니 했지.”

“흐음.”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에이브라함은 계시의 석판 중에서도 사이먼이 가진 석판을 제외하면 가장 큰 덩이를 차지했다.

신비학적으로 얻어진 특성은 대부분 혈족으로 계승된다는 설정을 생각해볼 때 그 후손들도 계시의 석판 조각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우리는 그 가문의 이름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했어. 왜냐면 어느 순간 기록이 뚝 끊겼기 때문이야.”

“그래? 그럼 그 정보가 끝인가?”

“당연히 아니지.”

이번에는 드레이크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나와 찰스는 포기를 모르는 사나이들이거든. 수도에 있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해가면서까지 정보를 얻었지. 인맥이란 인맥을 다 동원한 결과, 흔적을 찾을 수 있었어.”

“꽤 이런저런 이름의 가문으로 변형되었더군. 고 헤르메스 시대에는 귄터라는 성씨를 쓰고 있었고 여명기에는 윈터라는 이름이었어. 여왕이 통치하던 시절까지는 말이야. 그 뒤, 윈체스터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었지…….”

“윈체스터라…….”

윈체스터 가는 무기상으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당장 저번에 드레이크가 자신만만하게 도박장에서 따냈다던 최신형 샷건도 윈체스터제였다.

“가문이 커질수록 그 방계는 굉장한 수로 늘어났어. 네가 너한테 건넨 종이 뒷면에는 그 방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흠…….”

샤를은 드레이크의 말을 따라서 뒷면을 읽었다. 언제 어느 시기에 분화되었는지 세세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샤를은 이렇게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맨 처음에 겨우 분량이 이 정도밖에 안 되냐고 생각했었는데 정정해야겠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정확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이걸 해낸 거다.

그때 샤를의 눈이 커졌다. 그중에 하나의 이름을 본 것이었다.

“린덴……가문?”

“왜지?”

“아냐. 아는 이름이 있어서.”

“음, 린덴 가문이라면 꽤 오래전에 방계에서 갈라져 나왔다더군.”

샤를은 뒤에 적힌 방계의 이름을 보면서 빠르게 속독했다. 몇몇 관심을 끌 정보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드레이크는 이제 좀 괜찮아졌는지 시가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이 시대 인간들은 담배를 기호품 이상으로 사랑했었으므로 비흡연자인 샤를은 벌써 적응을 끝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좀 이상한 부분이 있긴 해.”

“이상한 부분?”

“서류상으로 보면 윈체스터 가문이 직계인 것은 확실해. 하지만 너무 승승장구하고 있단 말이지.”

“그게 이상해? 저주 때문에 끔찍하게 불운하거나 어마어마할 정도로 운이 좋다면서. 이번 윈테스터 가문은 어마어마하게 운이 좋은 편일지도 모르지.”

“아냐. 그들은 대게 천재나 미치광이도 같이 배출했단 말이지. 하지만 이번 대의 윈체스터 가문에는 천재도 미치광이도 없어.”

“그건 좀 이상하군.”

“내 말이. 솔직히 윈체스터 가문이 존경받을 만한 거대 가문이긴 하지만 그렇게 특출날 정도로 천재는 없다고 알고 있거든.”

샤를은 그러다가 기이하게도 린덴이라는 이름으로 눈이 갔다. 어쩌면 그가 린덴 가문에 초대된 것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아니지. 그렇게 운이 좋을 리도 없을뿐더러 너무 딱 떨어지는 우연이 아닌가.

눈치 빠른 드레이크가 담배 연기를 쭉 뿜으면서 말했다.

“걸리는 이름이라도 있나 보지?”

“그래.”

“내가 조사해줄까?”

“아니. 더 일을 의뢰할 생각은 없어.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거든.”

“다행이군. 그걸 조사하느라고 죽는 줄 알았거든.”

드레이크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재떨이에 담뱃재를 툭툭 덜었다. 항상 자신만만한 그는 어째서인지 그 말을 하면서 두려움을 겪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더는 파고 싶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그 가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무언가 감염되는 것 감각이 들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선을 넘어버릴지 모르는 위험함이라고 할까. 거기다가 요즘엔 꿈속에서 기이한 것이 보여. 아주 먼 어떤 사원에서 누군가 손짓하는 것 같은 꿈을 꿔.”

“사원?”

“그래 하얀 상아로 이뤄진 사원이었어. 그 앞 주변에는 정원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기화요초로 가득한 장소였어. 그 앞에는 가시가 잔뜩 난 찔레꽃의 얼굴을 가진 남자가 서 있고…….”

“그만.”

샤를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멍한 눈동자로 자신의 꿈에 대해서 말하고 있던 드레이크가 정신이 들었는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방금 내가 뭘 말한 거지?”

“넌 이미 충분히 역할을 다했어. 수고했으니 돌아가 봐도 좋아. 그리고 여태까지 찾은 자료는 모두 파기하도록 해.”

“자네…….”

아미티지 교수가 건넸던 팔찌의 영성 방호로도 드레이크의 정신에 무언가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이상으로 계시의 석판 조각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조사하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홀리는 것을 보면 말이지.

샤를은 드레이크가 떠나기 전에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저번에 성물에 작업하고 남은 광명 교단의 성수였다.

“집에 가서 환각을 볼 때마다 마셔.”

“고맙군.”

드레이크는 샤를의 충고를 받아들이고는 성수를 들고 떠났다.

샤를은 눈을 가늘게 뜨고 턱을 괴고 생각을 하다가 아무리봐도 마음에 걸려서 심상 세계로 들어갔다. 지금은 정보가 필요할 때다.

거대한 허공의 오벨리스크가 나오자 샤를은 그 앞에 자신의 초가 멀쩡히 잘 있는지 확인했다. 일단 겉모습은 그대로였다.

“시작해볼까.”

초를 켠 다음 샤를은 그 불빛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눈꺼풀의 어두운 공간이 마치 밤하늘처럼 느껴졌다. 밤하늘에 떠 있는 잔상은 그의 상상력에 맞추어서 이런저런 형태로 변하면서 점술을 행할 준비를 끝마쳤다는 사인을 보냈다.

‘에브렌 린덴은 에이브라함 가문의…….’

갑자기 그 순간이었다. 아직 점술 문구가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허공에 엄청난 천둥소리가 울렸다. 샤를이 깜짝 놀라서 별이 매달린 하늘을 올려다보자 그곳에 기이한 일렁거림이 보였다.

마치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무언가 다가오는 듯했다. 알 수 없는 존재가 샤를의 심상 세계로 침범하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건 마치 사악한 신의 강림 같잖아?’

위기감을 느낀 샤를은 서둘러 초를 꺼서 좌표를 흐트러뜨렸다. 초의 잔상으로 점을 쳤으니 이것이 매개체가 된 것은 확실했다.

예상이 적중해서 기이한 일렁거림은 곧 사라지면서 공간의 균열도 금세 없어졌다. 뭔가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기지로 잘 넘어간 듯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샤를은 자신이 무엇을 실수했는지 알았다.

“연결되어 있어.”

샤를은 계시의 석판 조각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물리적인 연결이 아니다. 어떤 영적인, 혹은 그 이상의 어떤 것을 매개로 삼아 시공간을 초월해 연결되어 있는 거다.

그걸 모르고 점을 쳤으니 문제였지. 하지만 손해를 본 건 아니었고 오히려 엄청난 정보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에브렌 린델은 분명히 에이브라함의 가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샤를의 점술이 발동할 때 두 석판 조각이 연결되는 상황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점술의 성과는 있었다.

‘하지만 방금 그건 단순한 석판 조각이 아닌 것으로 보여.’

샤를이 가진 석판 조각은 어떤 의지를 갖고 있었다. 방금 그 공간 너머에 있는 존재는 샤를의 석판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하긴 에이브라함 가문에서 수천 년을 지나온 것이었다. 그 사이의 시간은 신비학의 대가인 샤를조차도 무슨 일이 있었을지 짐작도 할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였을 것이다.

“어쨌든 해야 할 일은 확실하네.”

에브렌 린덴의 초대를 받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샤를은 심상 세계를 빠져나오려다가 마침 플로나의 상태창을 확인하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플로나의 별이었다. 손을 뻗자 플로나의 기도가 보였다. 플로나의 기도에 손을 대자 그녀의 마음이 전해졌다.

‘샤를님이 무탈하셨으면 좋겠어요.’

흐뭇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플로나의 다른 마음도 전해졌다.

‘그리고 샤를님의 머리가 갖고 싶어요. 내 방에 있으면 항상 우린 같이 있을 텐데.’

…….

이건, 뭐야? 비유법 같은 것인가? 샤를은 플로나의 욕망을 듣고는 식겁했다. 이렇게 기도로 듣는 건 아주 깊은 내면의 욕망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샤를은 플로나의 내면을 더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시선을 돌려 플로나의 상태창을 열어봤다.

【무명 교단의 첫 번째 제자】

【플로나 레이튼】

[스탯]

[신체 8, 정신 5, 행운 2 계몽 5]

[특성]

[충성심, 양손 무기술, 강한 의지력,]

[보유 기술]

〔아공간 보유술〕 - 특정한 장비를 아공간에 넣어 보유할 수 있습니다. 이 아공간은 플로나가 어렸을 적 영성을 깨닫고 스스로 개발한 능력으로 그렇게 넓은 공간은 아닙니다.

〔바다뱀 인간과의 계약〕 - 이계에 있는 존재와 계약해 대가를 받는 대가로 그 힘을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플로나와 계약한 존재는 대가로 동족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계몽이 너무 높은데.’

상시 5 정도의 계몽이면 별로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신 수치가 의외로 높다. 그간 플로나가 내면의 광기를 드러내지 않은 건 이 정신력으로 자신을 눌러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로나가 계약한 존재는 샤를도 알고 있었다. 동족화는 심각한 패널티다. 기회가 되면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계약을 주선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샤를은 저 멀리 떠 있는 부유석들을 보면서 이 심상 세계가 어쩌면 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