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1화 (1/221)

제1화 - 연수가 이 게임을 하게 된 계기는 별거 아니었다. 어차피 퇴직도 했겠다, 다음 구직 활동을 하기 위한 연장선. 그사이 잠깐 시작해보는 정도.

처음 해보는 풀다이브 VR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게임사를 확 바꿔놓았다는 SM사의 신작 사이비 교주 시뮬레이터는 뇌파를 게임과 연결해 촉감 및 미각까지 연동했다는데.

솔직히 연수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난이도인지, 그런 것은 모른다. 그냥 남들이 오버테크놀로지 어쩌고저쩌고하길래 아 그냥 대단하다 싶었다.

내용 자체는 별거 없었다. 그냥 사이비 교단의 교주가 되어서 교단을 확장하는 내용이었다. 사이비라는 게 도의적으로 문제가 많은 악인이지만, 어차피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게임에서 사람 죽인다고 현실에서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 것처럼.

그리고 한껏 화제가 된 것도 있었다.

모든 상품에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이 게임은 스토리텔링을 기가 막히게 짰다. 외국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마케팅했겠지만, 한국에서는 코리안 게이머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남기는 방법이라고 할까.

이 게임에는 총 130개의 엔딩이 존재한다. 그런데 현재까지 밝혀진 엔딩은 129개가 전부라더라. 하지만 게임사에서 130개의 엔딩이 있다고 공언했으니 한 개는 무조건 있다는 것인데, 아무도 그걸 찾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클라이언트를 뜯어본 사람들도 난해하다는 말만 할 뿐이지 도저히 해석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안에 블랙박스 같은 부분이 있는데 누구도 그걸 찾아보지 못한다고.

이참에 게임사는 아예 상금까지 걸었다. 약 100만 달러의 상금으로, 게이머들에게 130번째의 엔딩은 여태까지의 엔딩과는 다른 해피 엔딩이라는 힌트를 남기면서 새 엔딩을 발견하게끔 종용하고 있었다.

뭐, 처음에는 그것에 보고 낚여서 게임을 시작했는데 연수는 벌써 6개월째 하고 있었다. 상금이 뭐라고……하는 것도 있고, 그냥 게임 자체가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메트로폴이라는 도시 안에서 5개의 사이비 교단있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되는 내용이었다. 사이비 교주가 되어도 되고 그를 쫓는 경찰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사이비교들이 교세를 확장하고 계시의 날에 도달하면 자동적으로 엔딩이 뜬다.

그런데 이 엔딩이 하나같이 배드엔딩이었다. 누구를 고르던 그랬다. 계시의 날에 도달하면 사이비 교주들이 모시고 있는 이계의 사악한 신에 의해 세상이 멸망했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전 세계가 불타오르거나, 거대한 해일로 침묵하게 되거나 끝없는 밤이 지속되거나, 모든 생물이 인간이 아닌 이형의 것으로 변하는 등등.

조금의 분기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선택지가 나뉘는데,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이미 봤었던 엔딩을 보고는 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에게 많은 원망을 받았다. 이 게임의 개발자는 극악의 난이도를 좋아하는 사이코패스라고 말이지.

도형으로 그리게 된다면 첫 번째 선에서 시작해서 사슴뿔을 연상케 하는 식으로 갈리는 129개의 모든 멀티 엔딩. 어쩌면 모든 엔딩이 배드엔딩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연수는 본인이 가진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어코 129번째 엔딩에 도달하게 된 것이었다. 전 세계의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마지막 130번째 엔딩을 볼 자격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플레이였다.

기기를 착용하자마자 주변은 온통 기괴했다. 피투성이의 대지에, 하늘에서는 오색으로 반짝이는 알 수 없는 덩어리 들이 둥둥 떠 있었다.

연수는 그간 플레이해온 사람들을 떠올렸다. 경찰, 마피아, 부랑아, 대부호, 사이비 교주, 등등. 해볼 수 있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해봤다.

그런데 누구도 계시의 날에 이런 하늘을 본 적은 없었을 것이었다. 바로 그를 제외한 모든 사이비 교주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연수는 ‘샤를’이라는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 그가 속한 무명교단이 그나마 온건해질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나머지 모든 사이비 교주를 한 장소에 몰아넣었고 무시무시한 폭발을 일으켜서 모두를 폭사시켰다.

129번을 플레이하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는 몇몇 조건들을 만족하고 모든 사이비 교주를 해치운 뒤에 운명의 날에 도달하니, 이렇게 변해 있었다.

하늘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별빛으로 빛나는 무한한 은하 사이에서 끝없는 어둠이 강림한다.

‘이번에도 또 배드엔딩인가. 이번에는 이계가 통째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군.’

이미 도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지금은 메트로폴만 그럴 테지만 점점 퍼져나가 전 세계가 이렇게 변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시점에 샤를은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건 유성 같았다. 불꽃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샤를의 앞, 운명의 제단에 떨어진 것은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상태창을 확인해보니 ‘계시의 석판’이라고 적혀 있었다.

“계시의 석판?”

이건 한 번도 보지 못한 물건이었다. 수많은 엔딩을 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특이한 물건. 일종의 마도서나 위험한 물건일 수 있으므로, 샤를은 만지기 전에 간단하게 점을 쳐보려고 했다.

그때였다.

“크아아아아!”

“뭐야, 아직 살아있었나.”

암흑성도회의 교주 중 하나가 몸을 비틀면서 일어섰다. 치명상에 신체의 절반이 날아갔는데도 그는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계, 계시의 석판! 이것만 손에 넣으면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다! 닫혀버린 이 세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열려 있는 새로운 세계!”

“또또 너만 아는 소리 한다.”

그는 샤를의 몸을 플레이하면서 혀를 찼다. 암흑성도회의 교주가 손을 길게 뻗자 마치 연체동물처럼 그의 팔이 늘어나 계시의 석판으로 향했다.

샤를은 손을 뻗어서 주문으로 이뤄진 채찍을 사용해 놈의 팔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손에 넣기 전에 일단 쥐고 봤다.

[계시의 석판 조각]

[존재의 도약.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 계시의 조각. 운명의 완성]

“응? 이렇게 불친절한 설명은 처음인데.”

완전한 석판은 아니었고 조각이었다. 한 손에 쥘 사이즈였으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적혀 있는 부분은 하나같이 이상했다.

“아, 안 돼!”

“돼!”

채찍을 휘둘러 남은 교주 녀석을 처리했다. 그때 샤를은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하나가 아니라 자그마치 넷이었다.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퍼져나가고 세계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하나하나 강림하기만 해도 전 세계를 멸망시켜버릴 수 있는 괴물이 넷이나 내려오고 있다.

‘사악한 네 명의 신이 이계에서 강림하려고 하고 있어. 어느 한쪽이 강해져서 승리하지 않는다면 이런 엔딩이 나는 거 같군. 하, 빡빡한데.’

운명의 날에 도달하면 이계와 현실이 붕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샤를은 이런 엔딩은 또 처음 본다면서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계시의 석판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석판에서 도망치라는 의지가 샤를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샤를은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흠, 자꾸 도망치라고 하는데, 저장된 게임 파일을 삭제하고 다시 플레이하지 않는 이상 도망칠 수는 없지. 그냥 이게 129번째 엔딩인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게 샤를의 마지막 말이었다. 손에 있던 계시의 석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암전이 일어나면서 중앙에서 거대한 빛이 번뜩였다.

‘연출 죽이네.’

129번째 엔딩의 마지막은 마치 우주가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빛의 향연이었다. 샤를은 신기하다는 듯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가온 강렬한 빛 때문에 눈을 감았다.

* * *

샤를의 자택 침실. 여기가 바로 본편을 시작한 샤를의 스타팅 장소였다. 일단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 조금 기다리면 밖에서 샤를의 하녀이자 첫 번째 제자인 플로나가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일단 로그아웃부터 해둘까.’

129번째 엔딩을 보고 나서 좀 피곤해졌다. 나가서 일단 커뮤니티에 저장한 다시 보기 영상을 첨부해서 자랑글도 올리고 밥 좀 먹고 눈 좀 붙인 다음에 플레이해야 할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129번째 엔딩을 보고 난 이후에 캐릭터가 자동선택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뭔가 이유가 있는 건가.

‘로그아웃.’

현실로 나갈 수 있어야 했다.

‘응?’

그러나 샤를은 나가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인터페이스 창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로그아웃 버튼도 없고 설명도 없다.

‘뭐야?’

연수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그의 뇌리에 어떤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풀다이브 VR게임을 하면서 뇌에 무리가 간다는 몇몇 비주류 연구자의 뉴스라던가. 혹은 흔히 보던 웹소설처럼 게임 속에 강제로 갇히게 되었다던가.

어쩌면 이 게임이 처음부터 게임이 아니었다던가. 진짜 있는 현실이라던가……. 수많은 가정을 해봤지만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X됐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호흡이 가빠졌다. 진짜로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게임은 게임이어야만 재밌는 것이었다. 그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 연수는 극심한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감정이 임계점에 도달한 것처럼 가라앉기 시작했다. 너무 극심하게 가라앉았기 때문에 연수는 자신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병이라도 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곧 이유를 알아냈다.

‘샤를의 특성에 냉정함이 붙어 있었지.’

신체에 마음이 따라가고 있었다. 뜨겁게 불타올랐던 생각이 차갑게 가라앉자 연수는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일어난 현상은 연수의 착각이 아니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었으니 부정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적응해야만 했다. 알고 있는 은사님의 말이 떠올랐다.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걸 잘 찾아내고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골라내는 사람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연수에게 장점은 무엇일까. 단점은 이미 명확했으므로 더 설명할 것도 없었다.

‘장점. 장점이라. 흠. 일단 샤를은 현실의 나와는 다르게 잘생기고 머리가 좋지. 두뇌의 성능 자체가 다른 느낌이었으니까. 돈도 많아서 저택도 있지. 그리고, 또. 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점뿐인데.’

연수는 머리를 쥐었다. 그가 마지막에 샤를을 플레이했던 것은 하드코어 난이도를 즐기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메트로폴에는 다섯 개의 교단이 있다. 그중에서 샤를의 교단은 제일 한미한 교단이었다. 왜냐면 모시고 있는 신이 없었다.

다른 네 개의 교단은 각자 사악한 신을 모시고 그들에게 강력한 힘을 물려받거나 하는데 샤를에게는 그런 게 없다. 자체 하드코어라는 뜻. 하지만 초반 정도는 편하다는 게 다행이랄까.

똑똑.

온갖 고민을 하고 있던 연수는 마치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이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어, 들어와.”

“교주님! 깨어나셨군요.”

고개를 돌리자 매우 예쁜 여성이 눈앞에 있었다. 염색이라도 한 것처럼 선명한 에메랄드 빛 머리카락은 윤기 있게 찰랑거렸고 붉은 눈동자와 대비되어 잘 어울렸다.

“안 일어나셔서 걱정했다고요. 교주님이 없으면 저는…….”

그녀는 샤를이 속한 무명교단의 첫 번째 제자, 플로나였다. 역시 예상대로 샤를의 초반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연수는 여기서 당황하거나 공포에 질리기보다는 현실과 맞부딪치는 것을 선택했다.

자연스럽게 샤를을 연기하면서 입을 연다.

“걱정하지 마. 플로나. 난 이제 멀쩡하니까.”

“아아 다행이야.”

플로나는 양손의 손가락 전부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연수는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플로나의 손가락에 감겨 있는 붕대가 왜 그랬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너 손가락이…….”

“제 피라도 먹여드려야 했거든요. 제 사랑 덕분에 깨어나신 게 분명해요.”

이 여자는 중증 사이코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무언가 빠진 것 같은 인간. 그게 플로나의 본질이었다. 여기서 샤를은 어떻게 했더라?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리 온.”

플로나는 강아지처럼 연수에게 다가왔다. 연수는 그녀의 양손을 잡아서 한데 모아서 손가락 위에 키스를 해주었다. 그러자 플로나는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어쩔 줄 몰려 했다.

“앞으론 그러지 마 알겠지? 네가 다치면 안 돼.”

“네. 네에――샤를 님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그렇게 할게요.”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플로나는 곧 방 밖으로 나갔다. 그 여자가 나가자마자 연수는 안색을 싹 바꾸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 완전 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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